모든 괴로움이 시작되는 출발점은 안다라고 착각을 하는 의식(意識), 즉 식(識)이다
부모는 자녀에 대해 알고 있을까? 부모가 알고 있는 자녀의 모습이 정말 그 자녀일까?
사실은 나 자신도 나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이럴 줄은 몰랐어’라고 하며 스스로에게도 놀라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사실 스스로 내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나도 나를 모른다. 자신도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이 질문이 인류의 근원적인, 그러나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숙제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하물며 내가 자식에 대해 어떻게 안다고 할 수 있나?
평생을 함께 동고동락한 남편이나 아내에 대해서도 우리는 정말 안다고 할 수 없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판에 어떻게 몇 번 보고 그 사람을, 그것을 안다고 할 수 있나?
오직 모를 뿐이다.
이러함에 대해 숭산큰스님께서는 ‘오직 모를 뿐’이라고 하셨다. 이처럼 내가 나도 모르는데,
어떻게 몇 번 보고, 혹은 한두 번 보고 상대를 그것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보고 알았다’고 여긴다. 비행기를 찍은 사진을 보고 비행기를 안다고 하듯이,
한 사람을 몇 번 보고 그 사람을 안다고 하듯이, 우리는 본 것을 ‘보아서 안 것(안식/眼識)’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눈으로 보아서 알았다고 여기는 모든 안식(眼識), 모든 의식(意識)은 전부 다 진실이 아니다.
모든 안식 의식은 착각일 뿐이다. 허망한 거짓된 생각일 뿐이다.
이것을 반야심경에서는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내지 무의식계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乃至 無意識界)’라고 표현했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여기는 그 모든 것들은 사실 정말로 아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봐서 안다(안식/眼識)’고 여기고, 그렇게 안 것을 진짜라고 여기며 거기에 집착한다.
바로 이러한 착각된 의식(意識), 식(識), 분별심(分別心)을 진짜로 여기고 집착하는데서 괴로움은 시작된다.
모든 괴로움이 시작되는 출발점이 바로 안다라고 여기는 의식(意識), 즉 식(識), 분별심(分別心)이다.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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