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거대한 ‘진실의 문’을 열었다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선정에 부쳐
시인이자 소설가인 한강의 작품이 서점가를 강타하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이라는 낭보가 전해진 6일 만에 그의 책은 누적 기준으로 100만 부 넘게 팔렸다. 가장 많이 판매된 건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이다. 전국 공공도서관 1000여 곳에서도 대출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뉴욕을 방문한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현지에서 축하 메시지를 보냈을 만큼, 교계에서도 그의 수상자 선정에 환호하고 있다. 작가의 불교 인연 때문이다. 노벨문학상, 프랑스 콩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맨부커상을 수상(2016)하며 가진 기자회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현재로서는 특별한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아요. 하지만 중요한 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부처님오신날인데요. 어릴 때 연등회를 처음 보고, 이렇게 아름다운 게 세상에 있나, 이런 생각을 했었던 기억이 나요. 불교라는 종교에 각별한 정이 있습니다.”
맨부커상 수상 때와는 달리 한강은 아직 공식 기자회견을 하지 않고 있는데, 그 뜻을 아버지 한승원 작가를 통해 전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치열해 날마다 주검이 실려 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겠느냐며 기자회견을 안 하기로 했다고 한다.”
한강의 작품 속 핵심어를 하나 꼽는다면 단연 ‘폭력성’이다. 굳이 ‘폭력성’이라고 지칭한 건 물리적 폭력뿐 아니라 제도와 관습, 차별, 폭언 등으로 인한 폭력까지 포함해야 하기 때문이다. ‘채식주의자’(2007)는 가부장적 폭력성을 다뤘다. 그로부터 7년 만에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2014)를 선보였고, 또다시 그로부터 7년 만에 제주 4·3 항쟁을 말한 ‘작별하지 않는다’(2021)를 출간했다. 두 작품 모두 ‘국가 폭력성’을 다뤘다. 세 작품을 통해 작가는 자신에게, 혹은 독자들에게 묻는다. 도대체 인간의 잔혹함은 어디까지이고, 인간의 존엄함은 지켜질 수 있는 것인가?
영국의 가디언은 최근 세계 각국 독자에게 한강의 소설들이 어떤 의미인지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 작품을 조명했다. 특히 ‘소년이 온다’와 관련한 인터뷰가 인상적이다. “소름 돋고 폭력적이어서 고통스러웠다. 내가 (1980년 광주 시위의) 학생들과 함께 있는 것 같았다. 1980년 학생들에게 가해진 폭력은 우리가 전 세계에서 반복해서 보는 일이다. 미국에서도 펼쳐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는 그런 일이다.”
한강의 소설을 펼친다는 건 광주와 제주 항쟁의 진실에 다가서는 것이기도 하다. 1980년대 사실주의 작가들이 항거 현장을 묘사한 작품을 내놓으며 열어젖힌 ‘진실의 문’에 하나 더, 아니 거대한 ‘진실의 문’이 열린 셈이다. 벌써 국내에서만 100만 명이 문 앞에 서 있다. 독재정권에서나 행했던 블랙리스트, 유해 도서 등의 폭력성으로는 ‘진실의 문’을 닫을 수 없다는 얘기다. 광주와 제주 시민이 “이제야 위로받는다”고 토로하는 연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광주와 제주를 아는 그날, 광주와 제주의 한과 원망은 가라앉을 것이다.
한강의 작품을 본 독자는 분노만 일으키지 않는다. 무참히 짓밟힌 존엄성과 평생 안고 가야 할 끔찍한 고통을 어떻게 극복하고 치유해 가는지를 처절하면서도 아름답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자는 행간 속에 흐르는 참회와 용서를 읽어내며 때로는 위로도 받는다. 그래서일까? 한강의 작품에서 우리는 부처님 말씀을 간접적으로 듣는다. “모든 생명은 폭력, 죽음, 채찍을 무서워한다.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남을 죽이거나 해롭게 하지 말라.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행복하라.”
작가는 10대의 사춘기 무렵에 “나는 누구인지, 사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왜 살아야 하고 왜 죽어야 하는지 따위의 의문들에 시달리던 때가 있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2005·한강 이상문학상 작품집-기억의 양지’) 20대 후반 불교에, 30대 후반 천체 물리학에 깊은 관심을 가진 건 이 화두를 깨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 있다. 한강의 모든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중편 소설 ‘아기 부처’(1999)다.
작가는 주인공 ‘나’를 통해 고통의 원인과 해결하는 법을 써 내려가며 인간이 지향해야 할 ‘자기 얼굴’을 보여주었다. 한강이 전한 그 얼굴은 ‘관음의 고요한 얼굴’이었다.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어떤 작품을 선보일지 독자들의 기대감은 벌써 부풀고 있다. 단언컨대. ‘아기 부처’에서 보여주었듯 인간 존재 방식에 관한 통찰은 계속될 것이다.
[1749호 / 2024년 10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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