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無我) 16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어떻게 사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어떻게 사나 스님의 글을 읽고 궁금한 것이 생겨 질문 드립니다. 스님께서는 방하착 하라고 하시는데 수행을 할 때 무엇이 어떻게 되려는 그 마음, '채식을 해야겠다는 생각,' '매일 절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놓아야하나요. 예, 아주 중요한 질문을 해 주셨어요. 불교를 공부하면서 생기기 쉬운 또 자칫하면 잘못 빠지기 쉬운 부분에 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불교를 '공(空)사상'이라고 하고, '무아(無我)'라고 하고, 방하착(放下着) 하라고 하니까 사람들은 또 그같은 말들에 빠져서 그같은 말들 거기에 집착을 하기 쉽습니다. 본래는 텅 빈 것이고 없는 것이니 다 놓아버리라고 하면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고, 돈도 벌지 말고, 의지도 갖지 말고, 수행도 하지 말고, 아무런 의욕도 없이 살라는 의..

보는 자로서의 너는 누구냐?

보는 자로서의 너는 누구냐? 누가 보는가? 누가 말을 하는가, 누가 생각을 하는가, 누가 행동을 하는가, 누가 보고, 누가 듣고, 누가 맛을 보는가? 과연 이 '보는 놈', 말을 하는 놈, 생각을 하는 놈, 행동을 하는 놈, 듣는 놈, 맛을 보는 놈이 누구인가? 대상을 볼 때는 대상이 보이지만, 대상을 보지 않을 때는 대상이 보이지 않는다. 고정된 성품을 지닌 실체적인 '보는 자'가 있다면, 마땅히 언제나 무언가를 보아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대상을 볼 때만 대상이 보이지, 대상을 보지 않을 때는 대상은 보이지 않는 채로 있다. 단지 대상을 볼 때만 '대상을 보는 자'가 있고, '보여지는 대상'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대상을 보지 않을 때 '대상을 보던 자'는 어디에 있으며, '보여지는 대상'은 어디에..

고통의 강을 완전하게 건너가자

고통의 강을 완전하게 건너가자 - - - 월호스님 누구나 이미 불성(佛性 : 부처의 성품, 부처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불성(佛性)은 나에게도, 남에게도, 온 세상에도 충만해 있다. 그러므로 불성(佛性)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마치 바다 속에 살고 있는 물고기가 바다를 얻으려고 하는 것과 같고, 허공을 날아다니는 새가 허공을 얻으려고 하는 것과 같다. 이세상 모든 것들은 불성(佛性)자리에서 드러나서 불성(佛性)자리 속에서 살다가 불성(佛性)자리에서 죽는다. 죽었건 살았건 상관없이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다 불성(佛性)자리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성(佛性)자리는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확인하기만 하고 보기만 하면 된다. 불성(佛性)자리를 확인하고 보기 위해서는 고정관념(固定觀念)을 쉬어야 ..

'나'라는 것은 없다.

'나'라는 것은 없다. - - 법상스님 '나'는 없습니다. 무아(無我)입니다. '나'는 이 세상, 이 우주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나'가 없는 이유는 '나' 홀로 독립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며, '나' 혼자 독립적으로 스스로 배워 익힌 것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몸도 내가 아니며, 마음, 생각 또한 내가 아닙니다. 우리의 몸은 부모님을 의지(依持)서 태어났으며, 마음들, 생각들은 가정, 학교, 사회,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오며 부딪쳐온 모든 환경들로부터 배워 익힌 경헙들에 불과합니다. 이 세상 어느 하나 '나' 혼자 독립적으로 스스로 만들어 놓은 것은 없습니다. 결코 찾을 길이 없습니다. 몸은 부모라는 인연에 의해서 물려받은 것입니다. 또한 몸을 구성하고 있는 지수화..

노년이라는 겨울의 길

노년이라는 겨울의 길 어디쯤 왔을까 길을 가던 발걸음 잠시 멈추고 뒤돌아 보니 지금까지 걸어온 길 모르듯 앞으로 걸어갈 길도 알 수가 없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삶을 사랑했을까, 지금도 삶을 사랑하고 있을까. 어느 모임 자리에서 번듯하게 내세울 명함 하나 없는 노년이 되었다. 붙잡고 매달리고 싶었던 그리움의 순간들, 매달리고 십고 놓고싶지 않았던 욕망의 시간도 노년이라는 겨울의 문턱에 서서 뒤돌아보니 모두가 놓치고 싶지 않았던 추억들이다. 이제는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걱정하지 말자. 아쉬움도 미련도, 즐거움도 쾌락도, 추억과 그리움으로 간직하고, 그래도 노년이라는 겨울을 맞이하는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가 있으니 오늘이 있으니 내일도 그렇게 믿고 가자. 어디쯤 왔는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도..

일체개고(一切皆苦), 무상(無常) 무아(無我)는 괴로움(苦)이다

일체개고(一切皆苦), 무상(無常) 무아(無我)는 괴로움(苦)이다 - 삼법인(三法印) 강의(10) 괴로움이란 즐거움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내 마음먹은 대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될 때 즐거움을 느끼고 내 마음먹은 대로 내 생각대로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괴로움을 느낀다. 내가 원하는 대로 잘 되면 행복,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되면 불행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떤 것을 원하는가. 언제까지나 영원히 항상(恒常) 하는 것을 원한다. 나라는 존재가 영원히 항상 하기를 원하고, 내 소유물이 항상 하기를 원하며, 내 가족이 항상 하기를 원한다. 내가 빨리 죽기를 원하거나, 내 돈, 내 소유물, 내 지위, 내 권력, 내 가족, 내 이웃들이 항상 하지 않고 빨리 없어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내가 관여하지 않아도 저절로 된다.

내가 관여하지 않아도 저절로 된다. --- 법상스님 당신이 처음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당신 스스로가 원해서 태어났을까? 지금의 이런 외모, 성별, 국적, 적성, 성격, 취미, 재능 등을 당신 스스로가 선택해서 태어났는가? 지금 현재 당신은 어떤가? 당신은 지금의 그 키를 스스로 선택했는가? 만약 당신이 아프거나, 특정부분이 건강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어떤가? 당신은 당신의 거친 피부를 스스로 선택했는가? 나이드는 것은 어떤가? 지금 이렇게 나이들어가는 것을 스스로 선택했는가? 이 모든 것들의 결정이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저절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침에 밥을 먹고 나면 소화를 내가 시키는가? 아니다 저절로 이루어진다. 화장실 가는 것도 때가 되면 저절로 가진다. 늙고, 병들고, 죽는 ..

나는 경험하는 자이자 동시에 경험하는 일이자 동시에 경험된 세상이다.

나는 경험하는 자이자 동시에 경험하는 일이자 동시에 경험된 세상이다. - - 몽지와 릴라 선원에 나오는 사람들과 대화를 해 보면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가 살아온 삶, 지금 하고 있는 일, 자신의 몸과 마음의 상태, 자기가 하고 있는 마음공부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소중한 시간을 내서 선원에 찾아왔을 때는 그 사람의 마음도 진실한 마음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마음공부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어 한다. 자기가 제대로 마음공부 길을 가고 있는지 궁금해한다. 불행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삶에 대한 불안, 삶에 대한 불만족, 삶의 괴로움을 이야기 한다. 이런 저런 과정을 거쳐 지금의 마음공부에 이르게 되었다고 이야기 한다. 이런 이야기를 물론 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무엇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알아야 ..

나는 어디에도 없다. 무아(無我)다.

나는 어디에도 없다. 무아(無我)다. '나'는 어디에도 없습니다(무아/無我입니다). '나'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무아/無我입니다). '나'가 없는 이유는 '나' 홀로 만들어진 것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며, '나' 스스로 배워 익힌 것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몸도 내가 아니며, 마음 생각 또한 내가 아닙니다. 몸 부모님을 의지해 생겨난 것이며, 마음이나 생각은 가정, 학교, 사회, 그리고 살아오며 부딪쳐온 모든 환경들로부터 배우고 익혀 온 것들에 불과합니다. 어느 것 하나 내 스스로 독자적으로 만든 것은 없습니다. 어느 것 하나 내 스스로 독자적으로 만든 것은 결코 찾을 길이 없습니다. 몸은 내 스스로 독자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입니다. 또한 몸을 구성하고 있는 지수화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