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면목(本來面目) 6

부처가 소리를 듣는다

[부산 청사포] '들숨에 감사, 날숨에 사랑' 외치다. 부산 청사포에서 지극히 현실적이고 솔직한 '들숨에 건강, 날숨에 재력' 이라는 나무판에 쓰인 글귀를 보고 혼자서 빵~터져~~^^..... 사람들은 어떤 소리를 들을 때 습관적으로 '내가 소리를 듣는다'라고 생각합니다. 듣는 내가 있어서 내가 내 귀로 내 바깥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다고 여기는 것이지요. 그러나 내 바깥에서 나는 소리를 '내가' 듣는 것이 진짜 확실합니까? 만약 '내가' 내 바깥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 것이 진짜 맞다면, 귀를 통해 소리가 들릴 때, 내 마음대로 소리를 안 들을 수도 있어야 합니다. 소리를 듣는 내가 있으니까 내 맘대로 소리를 듣지 않을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입니다.. 소리를 '내가' 듣는 것이면 소리가 들려올 때..

나를 활짝 드러냄이 진실한 관계의 시작이다.

나를 활짝 드러냄이 진실한 관계의 시작이다. 인간관계의 핵심은 나를 활짝 열어 보이는 데 있다.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를 있는 그대로 활짝 드러낼 수 있는가. 그렇다면 깊은 인간관계는 시작될 수 있지만, 여전히 나를 숨기려 하고, 치장하려 하고, 나의 모든 것을 보여 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대의 모든 인간관계는 피상적일 수 밖에 없다. 피상적인 인관계를 맺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은 즐거움이 아닌 부담이고 괴로움이다. 피상적인 인관계를 맺는 사람 앞 에서는 끊임없이 연극(演劇)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연극(演劇)에서 벌어지는 실수는 용납될 수 없다. 연극(演劇)에서 실수하지 않으려면 계속해서 힘을 주고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이런 인간관계는 자연스럽지 못하다. 억지스럽고 에너지만 끊임없이 낭비..

인생(人生)의 진면목(眞面目)

인생(人生)의 진면목(眞面目) <혜암선사> 불생(不生) 불멸(不滅), 불생(不生) 불사(不死)가 묘법(妙法)인데, 우리들은 무한(無限)한 세월을 살아 오면서 우리들의 형상(모습)을 얼마나 많이 바꾸었던가? 천상세게(天上世界) · 인간세계(人間世界) · 아수라세계. 축생세계. 아귀세계. 지옥세계 등의 갖가지 고통의 세계 즐거움의 세계를 윤회하면서 몸을 받을 때마다 몸의 껍데기를 바꾸어 썼다. 선업(善業)을 지어서는 천상이나 인간세계에 났고, 악업(惡業)을 지어서는 귀신이나 아귀나 축생이나 아수라의 몸을 받아 영겁(永劫)으로 무수한 고통을 당했다. 그러면 그렇게 영겁의 세월동안 무수한 고통을 당한 원인(原因)은 무엇인가? 일체 중생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진면목(眞面目)을 망각(忘却)한 데 있다. 쉽..

본래의 나,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는 방편의 말이 가리키는 '이것'

본래의 나, 진짜 나,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는 방편의 말이 가리키는 '이것' 본래의 나, 진짜 나,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는 말은 우주삼라만상만물, 우리들의 본래의 모습을 가리키는 방편(方便)의 말이다. 방편(方便)의 말인 진짜 나, 본래의 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다른 방편(方便)의 말로 깨달음, 진리, 법(法), 본성(本性), 자성(自性), 진성(眞性), 불성(佛性), 참나(眞我), 도(道), 진여(眞如), 여래(如來), 일심(一心), 진심(眞心), 성품(性稟), 부처(佛), 선(禪), 마음(心), 법신(法身, 공(空), 허공성(虛空性), 무(無), 무생법인(無生法印), 통일장(統一場), 전시안(全視眼/모든 것을 다 보는 눈), The all seeing eye,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존재, 눈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