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만 이기면 된다
(서프라이즈 / 손오공 / 2009-02-27)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 후보자 시절에 대통령이 한 말이다. 끔찍하게도 정확하게 짚었다.
아마도 이명박 대통령의 유일한 정직한 말인 것 같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 세상이 뒤숭숭하다. 전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생중계되며 남대문이 불타 없어질 때부터 뒤숭숭은 시작되었다. 돈만 앞세우는 논리 앞에 살인 사건은 연속극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눈앞의 욕망을 참지 못하는 어린이 성폭행도 이어지고 있다. 대명천지에 공권력에 의한 살인이 진행된 용산사태는 책임까지도 멸종되어 버렸다. 신뢰는 바닥까지 붕괴되어 버렸고 어느 놈도 믿을 수 없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모든 것이 거짓이고 위장이고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정책에만 뛰어난 사람들이 국민들을 임계점으로 내몰고 있다. 벼랑으로 몰고 있다. 탄핵이 현실로 다가올 것만 같은 그들이 새로운 논리를 개발하였다. 국민이 불안해하면 불안을 해소시켜 주면 되고 오해를 했다면 그냥 오해를 풀어주면 된다. 하지만, 아무런 할 말이 없다. 이제는 모두를 유언비어로 몰고 가고 있다. 자기들 말만 못 믿는 사회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못 믿는 사회를 조장하고 있다.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자는 잡아간다는 대국민 협박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 괴담이란다. 무엇이 괴담인가? 학생들이 불안하다는 말이 괴담인가? 광우병이 위험 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달라는 말이 유언비어인가? 인터넷과 소통을 이야기하는 미네르바가 괴담인가?
전쟁에 있어서 성스런 전쟁은 없다. 그냥 전쟁일 뿐이다. 전쟁에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독재의 필요가 있을 뿐이다. 폭력을 행사하는 자들은 대중의 기억을 두려워한다. 무소불위의 진시황조차도 과거를 빌어 와 현재의 권력을 비판하는 올곧은 선비들을 두려워했기에 역사 최대의 치욕으로 일컬어지는 분서갱유의 무리수를 놓았다. 국민들은 입이 틀어 막혔지만 20년도 지나지 않아 진을 역사에서 지워 버린다. 대중의 기억을 두려워하는, 폭력과 독재자로 대변되어지는 그들은 지식 사기꾼을 내세워 역사를 왜곡하고 여론을 호도하며 군, 경, 검을 내세워 법으로 치장한 채 대중의 입을 틀어막는다. 대중의 입에 재갈을 물려 놓고 막무가내 밀어붙이기가 그들의 후안무치 전략이 되었다.
폭력이 법의 이름으로 나타나는 동안 약자로 통칭되는 국민들은 유모차 뒤에 몸을 사리게 되고 물대포의 공포를 느끼며 폭력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재와 미래의 폭력에 맞서는 것은 과거를 교훈 삼아 불의를 그냥 지켜보지만 않는다. 동학, 3.1운동, 4.19의거, 서울의 봄, 그리고 촛불처럼 기록의 기억이 꺼지지 않는 한 민중은 일어서게 될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더욱 강력한 무기가 대중들의 손에 쥐어져 있고 서프라이즈로 번져나가게 될 기록의 기억은 그 어떤 총칼보다도 위대한 힘을 지닌다. 기록을 기억할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는 이상 폭력은 절대로 승리할 수가 없다. 전 국민들이 수배자가 될지언정 독선을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인류 보편적인 진리이다. 역사를 기억 한다는 것은 독재와 폭력에 맞서는 민중의 무기다. 그들의 협박 속에 힘없는 민중의 피가 역사의 가장 어두운 한 페이지가 될 오늘을 기록하고 있다.
기원전 200년경 동양에서 폭력 권력자 진시황이 한갓 민중의 힘에 의해 무너지던 시기에 오리엔트 문명과 헬레니즘 문화를 번성시키던 지중해 연안의 패권은 100여 년간 카르타고와 치른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의 차지가 된다. 지중해를 장악한 로마의 교통이 수월해지면서 농산물의 폭락으로 이어진다. 로마 농민들의 불만을 귀족층들은 자기들의 기득권에만 몰입하며 사회개혁을 제안하던 그라쿠스 형제를 살해하고 계급계층의 갈등을 폭력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로마는 인류의 가장 비참한 폭력의 역사로 점철된다.
한니발, 키케로, 폼페이우스, 카이사르, 브루투스,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 클레오파트라 등 수 많은 임페리얼로 일컬어지는 인물들이 칼 아래 목숨을 잃게 되는, 폭력에 의존한 불법적 상태로 다스리던 로마는 결국 가장 약한 하층민에 의해 제국이 멸망하게 된다. 전쟁과, 폭력과, 독재로 사회문제가 해결된 역사는 인류 역사상 단, 한 건도 없다.
일제는 항쟁의 지도부일 수 있는 민족대표 33인을 협박 속에 투항시킨다. 근대화의 교육을 받았다는 지식 사기꾼들을 내세워 국민들을 현혹시킨다. 법을 내세운 공권력은 식민지국에 대한 혹독한 진압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대중의 자발성은 계급적 고통을 민족독립으로까지 승화시켜나간다. 이미 국민들은 3.1운동 시기에 교화의 대상이 아닌 역사의 주도자로 자리매김하게 되나 해방 이후 친일 부르주아들은 민중들의 계급적 자기의식을 민족의 단결을 내세운 교묘한 논리를 내세워 친일의 역사를 이어나가는 수완을 발휘하게 되며 한국적 민주주의를 내세운 군사정권의 정치적 기반과 야합에 성공하게 된다.
계급적 자기의식을 형성하면서 기득권을 위협하는 민중세력을 억누르고 친일 부르주아 세력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야합이었던 것이다. 도시민이 시작하고 농민이 적극 호응하면서 전국으로 번져나간 3·1 운동은 항쟁의 지도부가 잡혀가 완전히 와해된 상태에서 대중의 자발성으로 나타나게 된다.
부처님이 가고 부처님의 제자들이 모여 부처님의 말씀을 결집하여 기록한다. 불경이다. 예수님이 가고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한다. 성경이다. 모든 왕조는 새로 세워지면 전 왕조가 왜 망했는지? 새로운 왕조가 어떻게 성공했는지에 대한 치열한 토론이 이루어진다. 토론의 기록이 사기다. 체계적이며 시대적 요구로 사마천의 사기도 이렇게 탄생한다. 인류의 위대한 기록의 원천은 바로 토론인 것이다. 치열한 토론을 거치며 부조리에 대한 비판, 잘못된 사회에 대한 울분, 능력은 있으나 인정받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동정 속에 감동이 나오고 정의가 살아난다.
기득권자들의 시장의 탐욕을 넘어서는 독식에 집착한 나머지 민주주의 자체가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경찰이 개찰로 불리고 검찰이 떡검으로 불려지며 사법부마저도 ‘몰아주기는 관행’이었다는 쪽팔리는 변명으로 일관하는 위기를 맞고 있다. 유신시대의 몰아주기 관행에 대하여서는 대법원장의 공식적인 과거사 반성에 대한 자기부정의 극치를 대한민국의 사법부에서 보게 된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 공화국이다. 법관이 법관을 못 믿고 부정하며 잘못은 고쳐나가는 것이지 관행이라는 명분으로 퇴행시키는 것이 잃어버린 10년인 모양이다. 갈팡질팡에 거꾸로 공화국이다.
신자유쥬의란 이름으로 경제가 위기에 처했고 녹색성장을 들먹이며 환경이 위기이며 국제화란 미명하에 교육이 퇴행하고 질서를 이야기 하며 인권을 탄압한다. 안보가 위기이며 기득권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려 국민의 눈과 귀를 막으려 하는 언론이 위기다. 법치란 이름으로 민주주의가 위기이다. 암울한 대한민국의 위기의식은 지도부가 없는 대중의 자발성은 집단 지성으로 나타나 촛불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계기를 부여하고 있다.
민초들의 힘은 진을 멸망시켰으나 귀족층으로 대변되어지는 기득권 세력들은 항우를 앞세워 또 다른 권력 유지에 급급해 하며 전투를 치르는 족족 승리한다. 하지만, 변방 동네 이장에 불과하던 유방의 민중의 힘은 단, 한 번의 승리로 한을 출발시킨다. 한 번만 이기면 된다.
남대문이 불탔고 화왕산이 불탔고 용산에서 국민들의 마음이 불태웠졌다. 국민주권과 서민경제에 대한 현실인식에서 대중들이 자발적으로 촛불을 들고 있다.
촛불은 불탈 것이고 촛불은 단, 한 번만 이기면 된다.
그 한 번이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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