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간지의 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 그는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지성적이었던 사람 [김정란]

장백산-1 2009. 7. 14. 02:15

김정란펌/이제는 아프지 않은 나의 캡틴, 평안하소서
번호 71942 글쓴이 daily(daily) 조회 3501 등록일 2009-7-12 22:51 누리1862 톡톡0


이제는 아프지 않은 나의 캡틴, 평안하소서
노무현, 그는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지성적이었던 사람


(오마이뉴스 / 김정란 / 2009-07-12)

 
  
2003년, 2월 취임사를 낭독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전대통령서거

나에게는 노무현 대통령과의 개인적인 인연은 별로 없다. 너댓 차례 만났던 것이 전부였다. 내가 그를 처음 눈여겨보기 시작했던 것은,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5공 청문회 때였다. 그때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가 의분에 가득찬 정의로운 사람일 뿐 아니라, 매우 지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 나는 우리 나라 국회의원들의 낮은 수준에 절망하고 있었으므로, 그의 등장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나는 "우와, 웬일이니, 올바르고 똑똑한 국회의원도 있네"라고 생각했다. 그가 증인들을 몰아붙이는 솜씨는 대단했다. 명쾌한 단문의 질문들. 논리적으로 꼼짝 못하도록 치밀한 틀을 짜는 기술. "대단하다. 저 사람 누구지?"

 

정치인 노무현은 그렇게 처음으로 나에게 "올바르고 똑똑한 국회의원"으로 각인되었다. 그것은 그를 처음으로 직접 만났던 자리에서도 나에게 남겨진 인상이었다. 그가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기 전에, 월간 <Win>에서 차세대 주자들을 시리즈로 인터뷰하는 기획이 있었는데, 그때 노무현이 제1 주자로 선택되었고, 나는 그 인터뷰 자리에 패널의 한 사람으로 참석했었다. 그는 교수들이 던지는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했다. 상당히 완비된 매뉴얼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언제나 절대 운명 앞에 홀로 섰던 그, 노무현

 

그를 두 번째로 만났던 것은 부산 어디에선가였던 것 같다. 지나가는 길에 그의 모습을 보았고, 그냥 수인사 정도를 나누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세 번째 만남은 상지대학교에서였다. 그때 우리 학교에서는 국민의 정부 정책 토론회가 열렸었는데, 당시의 기라성같은 정치인들 여러 명이 참석했었다. 교수 한 사람이 발제를 하고, 그 발제에 대해 정치인들이 토론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때 노무현은 열 댓 페이지에 해당하는 교수의 긴 발제문을 단 몇 줄로 명쾌하게 요약한 뒤에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이런 저런 수사를 늘어놓으며 다른 정치인들을 경계하면서, 자기를 알리기 위해 정치적 발언을 하는 다른 정치인들과는 달리, 그는 군더더기 없이 바로 핵심으로 들어갔다.

 

역시 "무섭게 똑똑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아주 쿨하고 페어하다는 느낌. "음, 깔끔한 실무형이군. 게임 룰을 아는 사람이야. 정치적 췌사가 없다. 무지 마음에 드네. 저 사람 대통령 되면 좋겠다. 그런데 민주당 경선을 통과할 수 있을까."

 

그때부터 그는 나에게 합리성의 아이콘 같은 것이 되었다. 그는 기적처럼 민주당 경선을 통과했다. 2002년에 나는 파리에서 안식년을 보냈다. 파리 교외 낭테르의 한 조그만 방에 앉아서 인터넷을 껴안고 살았다. 프랑스의 인터넷은 느리고 자주 끊겼다. 게다가 시간 차 때문에 밤낮이 뒤집힌 생활을 해야 했다. 그래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광주 경선 때는 혼자서 소리치고 악악대고 펄쩍펄쩍 뛰고 난리를 쳤다. 정말 기적이 일어났던 것이다.

 

나는 9월쯤 귀국했다. 그리고 누구나 다 아는 난리법석이 벌어졌다. 한심한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지지율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그를 흔들어대면서, 정몽준에게 추파를 던졌다. 그리고 이어진 아슬아슬한 후보단일화 드라마. 노무현이 정몽준의 무리한 요구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간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노무현은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그대로 다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는 던져야 할 때, 과감하게 던진다. 그러는 그의 태도를 두고 사람들은 승부사적 기질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것이 그의 진정한 '실존적 투기'였다고 생각한다. 그는 어떤 순간, 운명 앞에 단독자로 선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그 뒤에는 절대의 운명 앞에 홀로 서는 것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을 그보다 더 잘 이해하고 실천한 정치인은 없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지성적이었던 사람

  
[미공개 사진] 손녀를 무등 태우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2007.9.29)
ⓒ 고 노무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 제공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그는 꼼수를 쓴 적이 없다. 꼼수 외에는 아무것도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그의 행위는 최고수의 고단수로 보일 것이다.

 

그들은 운명 앞에 한 번도 벌거벗고 서 본 적이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을 자신의 유불리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자들은 노무현이 내리는 결정 앞에서 판판이 나가 떨어진다.

 

탄핵 사태 때에도 탄핵을 시도했던 자들은 민심의 역풍을 맞자, 노무현이 탄핵을 유도했다고 법석을 떨어댔다. 노무현은 아닌 것을 아니라고 했을 뿐이다. 거기에는 아무 꼼수도 없다. 그는 승리하기 위해서 잔머리를 쓰지 않는다. 그래서 잔머리를 쓰는 자들은 예상하지 못했던 그의 '실존적 투기' 앞에서 패배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난 다음에는 개혁당 창당식 때 그를 보았다. 내 바로 옆 자리에 그가 앉게 되었는데, 나는 카메라가 따라붙는 것이 싫어서, 딴 사람을 그 자리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그의 옆 옆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노무현이 문성근의 열정적인 연설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던 그 유명한 장면에서 카메라에 잡힐 뻔했다.

 

그리고 그가 대통령이 된 후에는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임명장 수여식 때, 그리고 그의 임기 말에 안동에서 열린 균형위 세미나 때 그를 보았다. 그날 머리가 엉망이어서 베레모를 쓰고 갔는데, 악수할 때 방싯 웃으며 "어, 모자를 쓰셨군요. 잘 어울리네요"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따뜻한 손, 부드러운 미소, 그리고 그 뒤로 엷게 비치는 어떤 깊은 피로감과 쓸쓸함. 그것이 그를 만난 마지막이었다. 나는 씩씩하게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오래 지켜보았다.

  

5년 내내 기득권 세력에게 물어뜯기고, 같은 당 소속 국회의원들에게서조차 왕따당했던 대통령. 대통령이면서도 세상의 모든 모욕을 다 겪어야 했던 사람. 그렇게 얻어맞고 수모를 당하면서도 한 번도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권력을 사유화하지 않았던 사람. 미련곰탱이 원칙주의자. 그러나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지성적이었던 사람. 이 희귀한 정치인은 나에게 누구였을까?

 

그가 봉하마을로 내려간 뒤, 그를 보겠다고 달려가는 사람들 곁에 있는 그를 보는 것이 참 좋았다. 그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이나 불려 나오면서도 늘 웃었다. 어이구, 이 양반 대통령 그만둔 게 어지간히 좋은 모양이네.

 

이른 바 '노간지'로 불리는 사진들을 꼬박꼬박 챙겨보면서 나는 행복했다. 그가 더 이상 사악한 혓바닥으로 무장한 저 잔인한 기득권 세력과 조중동에게 시달리지 않는 것이 좋았다. 그가 자연 안에서 그 특유의 어린아이같은 천진함으로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는 것에 안심했다. 때로는 그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대통령이 너무나 피곤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광객들이 어지간히 빠지면 한 번 찾아가리라, 했었는데… 그랬었는데….


그가 간 뒤, 내장에서까지 핏물이 쏟아져 나오다

 

  
5월29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가 열린 서울광장에서 시민들이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며 노란색 물결을 이루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남소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그가 가고 난 뒤, 나는 프랑스인들이 "내장적 슬픔"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어떤 감정인지 비로소 이해했다. 온몸이 울다 못해서, 내장에서까지 핏물이 쏟아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이곳 저곳에서 추도사를 써달라고 했지만, 도저히 쓸 수가 없어서 거절했다. 아마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추도문 같은 것은 쓸 수 없을 것 같다. 그의 죽음이 객관화되지 않는다. 그날 부엉이 바위에서 떨어진 것은 노무현이 아니다. 그날 죽은 것은 나다. 내가 죽은 것이다. 나는 그와 함께 모욕당하고, 그와 함께 절망하고, 그와 함께 바위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허공으로 몸을 던졌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고 난 뒤에, 나는 길게 길렀던 머리를 짧게 잘랐다. 무엇인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곤 이상한 느낌이 엄습했다. 매일처럼 모욕당하는 느낌.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면, 내 얼굴 위로 역하고 끈적거리는 침 같은 것이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그 느낌은 노무현 대통령을 둘러싸고 이른 바 박연차 게이트가 보도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점점 더 심해졌다.

 

아침마다 얼굴에 떨어져 있는 그 역한 침은 점점더 끈적거리는 것으로 변했다. 나중에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참을 수 없는 모욕감. 가슴이 벌벌 떨리고, 숨이 가빠졌다.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말인가. 대체 이 사람을 어디까지 모욕해야 저들의 잔인한  욕망이 가라앉을까. 나는 울부짖었다. "주여, 대체 언제까지니이까?"

 

나는 한순간도 노무현 대통령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그 같은 사람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와 같은 기질의 소유자들은 굉장히 높은 자존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 세상의 그 무엇도 그들이 설정한 존재의 절대 기준을 충족시키기 못한다. 그런 사람들은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 거짓말 같은 것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존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비루하게 거짓말을 하고 살아남느니, 차라리 죽는 길을 택한다. 만일 문제가 자신 하나에 관계된 것이었다면, 노무현은 끝까지 싸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자신 때문에 온갖 고통을 겪는 것은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그가 살아 있는 한, 저 잔인한 자들이 온갖 방법으로 그와 그의 주변에 가하는 모욕은 끝나지 않을 것이며, 결국 법적으로 승리하더라도, 그들이 그의 피를 다 빨아먹은 뒤에, 그에게 남겨질 것은 남루한 육신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들이 더 이상 추악한 송곳니를 드러내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그들에게서 노무현이라는 먹잇감을 빼앗아야 했다. 그의 죽음의 외적 형식은 자결이지만, 그 내용은 타살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검찰과 언론이 그의 목덜미에 송곳니를 박고 피를 빨아먹었다. 그에게는 바위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몸을 던질 힘 밖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해서 바위 위로 올라갔다.


노무현 존재 자체가 악몽이었던, 뻔뻔한 에일리언들

 

  
2008년 8월 13일. 생가마당에서 방문객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계시는 대통령님. 손녀 서은양이 신기한 듯 관람객들을 보고 있다.
ⓒ 고 노무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
노무현대통령

모든 언론이 와글와글 그를 모욕하고 있던 무렵 어느 날 밤에 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파리한 얼굴을 한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이 보였다. 그가 힘없이 입을 달싹이며 뭐라고 말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렸다. "노무현이 죽었대." 검은 바람이 소용돌이치며 불었다. 그리고 나뭇잎들이 갑자기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차가운 냉기가 훅, 하고 느껴졌다. 나는 꿈의 냉기에 놀라 오밤중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눈 앞의 어둠이 스멀거리며 내 몸을 에워쌌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던 것 같다. "어쩌면 그 양반이 이 사악한 자들의 손아귀를 벗어나는 일은 그 방법 밖에 없는 걸까?" 그리곤 그 꿈을 잊어 버렸었다. 그런데 2009년 5월 23일 새벽에….

 

그런데 과연 노무현은 대통령이었던가? 오세훈 서울 시장을 위시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연설을 하러 국회의사당에 들어갔을 때, 오만한 자세로 삐딱하게 앉아서 일어서지조차 않았다. 그들은 있는대로 건방진 포즈를 취하며,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경멸감을 숨기려 들지 않았다. 국회의원들이 대통령에게 이런 무례한 행동을 하는 나라는 천지 간에 대한민국 밖에는 없을 것이다.

 

 

한나라당과 조중동은 그들이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한나라당은 소위 연극이라는 형식으로 온갖 천박한 욕지거리로 그를 모욕했다. 그들은 노무현을 증오하고 모욕하는 것이 그들의 존재이유인 것처럼 굴었다. 그 모욕은 노무현 대통령의 5년 임기 내내 끊이지 않았다. 처음에 컬럼 등에서 노무현을 옹호하던 나도 나중에는 지쳐 빠졌다. 상대방은 뻔뻔함을 무기로 가지는 에일리언들이다.

 

그들에게는 논리도 철학도 영혼도 없다. 단지 자신에게 유리하기만 하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고, 천연덕스럽게 말을 바꾸고, 자신의 잘못을 상대방에게 뒤집어씌운다. 불리하면 "빨갱이"라고 악을 쓰면 그만이다. 논리도, 양식(良識)에의 호소도 아무 소용도 없다. 그들에게 유일한 진리는 '나의 이익'이다. 그것을 건드리는 자는 모두 잔인하게 밟아 죽인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라는 사실은 그들에게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 노무현은 대통령이 아니었다. 단지  처치해야 할 적이었을 뿐이다. 그들은 이를 드러내고 5년 내내 노무현을 물어뜯었고, 그리고 퇴임 후에도 물어뜯어 결국은 죽여 버렸다. 도덕적인 노무현의 존재 자체가 그들에게는 악몽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부도덕의 굴레를 뒤집어 씌워 죽여야 했다. 가능한 한 그를 더러운 존재로 만들어야 했다.


대통령에게 "까불었다"고 하는, 대한민국 보수 언론

역사에 길이 남을 <중앙일보> 논설위원 정진홍의 칼럼은, 노무현을 더럽히고 싶다는 강박관념을 발작적인 방식으로 드러낸다.

"(박연차가) 돈이 아니라 똥을 지천으로 뿌리고 다녔다(...) 그 똥을 먹고 자신의 얼굴에 쳐바르고 온몸 전체에 뒤집어쓴 사람들이 지난 시절 이 나라의 대통령이었고 그 부인이었으며 그 아들이었다." - <중앙일보> 2009년 4월 11일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엿새째인 지난 5월28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찾은 어린이와 조문객들이 조문하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 유성호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내가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지만, "똥"이라는 말이 신문 칼럼에 등장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일 것이다. 우아한 포즈를 취하기를 즐기는 기득권 지식인이 이렇게 참지 못하고 격하고 천박한 언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모든 언어는 무의식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정진홍을 위시한 기득권 세력은 그 동안 깨끗한 노무현 때문에 자기가 "똥묻은 자"처럼 느껴졌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정진홍 등은 원한에 사로잡혀 "똥"을 노무현에게 돌려주려고 한다. 그러나 그 시도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정진홍은 이 칼럼으로 인해서 영원히 "똥을 뒤집어쓴" 채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에게 가해진 집단 린치의 원인은 역시 역사에 길이 남을 <조선일보> 김대중 논설위원의 칼럼에서 웅변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어쩌면 노씨와 그의 사람들이 지금 당하고 있는 정도는 노씨 등이 너무 까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조선일보 2009년 3월 30일 자)"라고 쓴다.

 

안 까불었으면, 즉, 그들에게 투항하고 고분고분 말을 들으며 그들의 곳간을 채워주는 머슴 노릇이나 했으면 그렇게 심하게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까불었다. 즉 주제넘게 기득권의 이익을 위협하면서 공동체의 선을 위해 사회를 재편하려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나라 기득권 세력의 최고 브레인 중 한 사람인 <조선일보> 김씨는 "까불었다"는 지극히 상스러운 표현을 쓰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이 표현의 천박함과 노골적인 계급성을 눈여겨 보라. 세계 어느 나라 칼럼에서 이런 표현이 사용되겠는가? 가히 역사적인 사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이 당하고 있는 고통의 본질을 알려주고 싶어서 몸이 달아 있다.

 

"알았어? 네가 비리를 저질렀는지 안 저질렀는지 그건 사실 문제가 안돼. 그건 문제의 핵심이 아냐.  우리가 이명박이 저지른 비리를 문제삼던가? 우리 편은 얼마든지 비리를 저질러도 돼. 그건 우리 이익을 해치지 않거든. 본질적인 것은 네가 까불었다는 것, 즉, 우리의 기득권에 반기를 들었다는 거야. 너는 지금 그래서 고통당하고 있는 거야."

 

김씨는 그렇게 전직 대통령을 '노씨'라는 경멸적 호칭으로 부르면서, 노무현이 당하고 있는 모욕의 본질을 알려줌과 동시에 자신이 힘을 가진 로열 패밀리의 일원이라는 것을 과시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김씨 등의 잔인한 가학적 욕망은 채워질 수 없게 되었다. 노무현은 그들에게서 먹이를 빼앗아 버린 것이다.


아직도 가슴을 후벼 파는 그의 마지막 한 마디

 

  
10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안장식이 예정된 가운데 정토원에서 49재를 마친 고인의 유골함이 아들 건호씨에 의해 안장식장으로 옮겨지고 있다.
ⓒ 권우성
노무현 전 대통령 49재

노무현에게 가해지는 집단 린치를 보면서 나는 우리 사회가 아직 중세기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을 했다. 노무현은 일국의 대통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우리 사회의 실질적인 영주들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광장으로 끌려나와 바퀴형에 처해진다. 그의 사지는 모든 사람이 보는 가운데 바퀴에 묶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그의 몸에 침을 한 번씩 찍찍 뱉으며 지나간다.

 

검찰이 그의 피의사실이라고 줄줄이 흘렸던 것들 중에서 사실로 증명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들은 팩트가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영주님들의 행동대원인 검찰이 말하는 그대로 노무현의 죄를 복창했다.

 

검찰은,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기관이며, 로열 패밀리의 중심 세력인 그들 조직의 개혁을 추진하려고 했던 노무현에게 당했던 창피를 복수하려는 듯, 최소한의 증거도 확보되지 않은 피의사실을 질질 흘리며 잔인한 여론재판을 수행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되던 날, 이층 창문에서 그를 내려다 보면서 활짝 웃고 있던 이인규, 홍만표 검사의 얼굴은 두고두고 역사에 남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 웃고 있는 잔인한 얼굴들을 형틀에 묶인 노무현의 고난과 함께 오래 오래 기억할 것이다.

 

나는 마지막 길을 나서는 노무현을 따라간다. 새벽 공기는 맑고 차다. 그는 경호원에게 담배가 있느냐고 묻고,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라고 말한다. 이 말들이 발설된 시간대와 정황은 나중에 경호원의 초기 진술과는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그가 그런 말을 했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의 마지막 말이 가슴을 후벼 판다.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우리는 그렇게 그를 모른 척 비껴 지나갔던 것은 아닐까. 그에게 다가가 그의 진실을 믿는다고, 사악한 혓바닥들의 거짓에 굴하지 말라고, 우리가 지켜 드리겠다고 말해야 했다. 우리는 그를 혼자 두고 "지나갔다" 그런데, 보라.

 

노무현은 "저기 지나가지" 않고, 그의 몸을 던져 "여기 온다". 영원히 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골함이 정토원에 도착할 예정인 가운데 29일 밤 경남 김해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추모객들이 촛불로 '노짱님 사랑해요' 글자를 만들고 있다.
ⓒ 유성호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그는 부엉이 바위 아래로 떨어져 내리지 않았다. 그는 우리의 마음속, 깊은 영혼 속으로 뛰어내렸다. 우리는 부엉이 바위 아래로 달려가 울며 떨어지는 그의 몸을 받는다. 그는 상징이 되어 날아간다.

 

오, 세계는 얼마나 징조로 가득차 있는가. 그가 몸을 던진 부엉이 바위 옆에는 뱀 바위가, 그리고 그 옆에는 사자 바위가 있다.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의 새 부엉이는 어둠을 헤치며 날아오른다. 노무현은 시대의 마지막 어둠을 찢고 뱀의 혓바닥과 싸웠다. 그 옆에 사자가 버티고 있다.

 

노무현의 죽음에 통곡했던 수백만의 사람들, 그리고 여전히 봉하 마을로 모여드는 수많은 사람들이 흘린 눈물은 실로 눈부시게 피어나는 이성의 전조가 될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안장식을 하루 앞둔 9일 저녁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대통령 49재 추모예술제 행사위원회'와 '한국문학평화포럼'이 공동으로 마련한 '노무현 전 대통령 49재 전야 추모예술제'에서 김정란 시인이 추모시를 낭송하고 있다.
ⓒ 유성호
김정란

상징 전통 안에서 사자는 대표적인 태양 동물이다.

 

 그것은 주체의 눈부신 각성과 당당한 독립을 의미하는 힘찬 상징이다. 우리의 통곡은 노무현이 몸을 찢으며 맞서 싸웠던 저 밤의 뱀들의 저주를 이겨내는 빛의 포효가 될 것이다. 사자는 어느 날, 뱀을 제압하고 승리의 함성을 지를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당신을 볼 수 없다는 것이 몸서리쳐집니다. 구멍가게에 앉아 손녀에게 쭈쭈바를 사주시면서, 행여 손녀의 손이 차가울까 봐 휴지로 돌돌 말아서 건네주던 따뜻한 마음을 가진 그 착한 사람을, 그 선한 미소와 어린아이같은 천진한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것이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럽습니다.

 

당신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던 우리가 이제야 당신의 찢어진 몸을 쓰다듬고, 당신의 부서진 뼈를 맞추어 드립니다. 우리가 내장까지 떨리는 통곡으로 당신의 피를 씻어 드립니다. 다시는 몸을 받지 마소서. 다시는 사악한 자들이 당신을 물어뜯지 못하도록 윤회의 사슬 안으로 돌아오지 마소서.

 

굿바이 마이 캡틴, 나의 소중한 친구여. 당신과 한 시대를 살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당신은 우리의 영혼 안에 영원히 오는 분으로 살아 계십니다. 이제는 아프지 않은 나의 캡틴, 평안하소서, 옴 샨티 샨티.'

덧붙이는 글 | 김정란 기자는 시인이자 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