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슈머,건강정보,소비자의 힘

[스크랩] 죽음을 안고 살아라.

장백산-1 2009. 10. 1. 23:14

 

 

 

염라대왕이 지옥행을 판결하면서 말했습니다.

 

"살아 있을 때 내가 보낸 천사를

 

보지 못하고 악행만 일삼았구나!"

 

어리둥절한 사람이 "천사라니요?" 묻자,

 

염라대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병든 사람, 늙은 사람, 죽는 사람 등이

 

내가 보낸 천사였느니라.

 

이 천사들을 보고도 자신은 예외라 생각하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은 사량심(思量心)으로

 

일생을 보낸 사람이로구나!"

 

 

하루만 소식을 들어도 지구촌은 지옥입니다.

 

김해에 국내외인을 실은 중국 항공의 비행기가 추락했습니다.

 

현장의 끔찍한 중계방송에 눈을 뗄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공간이동의 편리성과 속도를 보장하는 문명의 이기(利器)가 오히려 저승사자로 돌변합니다.

 

 

어저께 후배들과 읽은 크리슈나무르티의 말씀인

 

'죽음을 데리고 살아라'의 구절이 통렬하게 와 닿습니다.

 

죽음 하나는 누구나 예외 없이 맞이해야 하는 손님입니다.

 

죽음을 아주 두려운 것으로 인식되게 하는 모든 지상의 교육이

 

맞는지 틀리는지 점검해볼 시간도 없이 말입니다.

 

 

결핵의 만연이 다이어트 망상의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무섭게 확산되고 있다는 뉴스와 함께

 

강남 번호판을 일부러 구해 단다는 허세의 세상을 읽습니다.

 

온몸에서 돌이 나오는 희귀한 병을 앓는 시인이 눈물을 자아내게 하는가 하면

 

신라의 달밤을 부른 원로가수의 죽음은 또 다른 아련함을 남깁니다.

 

 

20년 단골 냉면 집을 모처럼 갔더니 전통적으로 내오던 뜨거운 육수가 나오질 않습니다.

 

냉면을 먹기 전에 먼저 장(腸)을 데워주는 일종의 건강 원칙을 죽이고 있습니다.

 

태연하게 찬물 가져다주는 신세대 종업원을 볼 때

 

이 냉면집의 짧은 수명을 예측할 수 있군요.

 

전통적으로 요리하던 주방의 할머니가 돌아가시지 않았나 추측이 가는 장면입니다.

 

 

죽이지 말아야 할 전통도 있지만

 

죽여야 할 관념도 있습니다.

 

죽음을 무조건 악(惡)이라 여기는 관념적 전통을 부수는 장자(壯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연히 사냥하다 산중에서 만난 여인을 왕은 강제로 왕궁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러나 왕궁의 극진한 배려와 자유에

 

그녀는 초라한 오두막집을 떠나올 때 울은 것을 후회했다고 합니다.

 

우리의 죽음도 이와 같을 지 모른다고 장자는 주장합니다.

 

떠나 올 때 서러웠던 삶이 죽음 뒤의 찬란한 자유에

 

오히려 애착했던 삶이 초라해 보일 지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실로 지구의 삶은 그대로 셰익스피어 비극보다 더 비참하지 않습니까?

 

카드 빚 수백만원에 목숨을 끊고

 

종교와 사상과 피부색으로 전쟁을 하고 말입니다.

 

'집으로' 같은 영화에서 겨우 위로를 얻는 우리들 아닙니까?

 

자연 그대로 무저항의 할머니 같은 사랑을 받지 못한 자기에 대한 연민심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분명 맞이할 죽음에 대해 솔직하지는 못합니다.

 

비행기 추락사고의 소식에 전율하면서도 정면으로

 

자신 주위 사람들의 죽음에 투영시켜보는 작업은 기피합니다.

 

 

남해를 강타한 호우가 북상해서 가랑비로 내립니다.

 

새벽이 밝아 옵니다.

 

새들이 지저귑니다.

 

어제의 일은 죽었기에 오늘이 신선하게 밝아 옵니다.

 

새들은 확실히 죽음을 아는가 봅니다.

 

그러기에 저렇게 밝은 소리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산중의 늦게 핀 자목련화가 비바람에 아무 저항 없이 죽음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죽을 줄 모르는 인간들만이 어제의 기억으로 살아

 

오늘도 원한과 슬픔으로 얼룩지고 있습니다.

 

여기 신라의 부설거사(浮雪居士)가 지었다는 사부시(四浮詩) 중 첫 귀가 있습니다.

 

 

처자권속삼여죽(妻子卷屬森如竹)

 

금은옥백적사구(金銀玉帛積似丘)

 

임종독자고혼서(臨終獨自孤魂逝)

 

사량야시허부부(思量也是虛浮浮)

 

 

<처자권속이 대나무 우거지듯 많아도,

 

금은보화나 비단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어도,

 

임종에 당해서는 홀로 외로운 혼만 떠나가니,

 

생각으로 헤아려 분별하는 사량심(思量心)

 

이것은 허무하고 뜬것이로세.>

 

 

모처럼 죽음과 함께 살아본 오늘에서야

 

하나도 미워할 대상은 없다는 걸 깨달은 날이기도 합니다.

 

애증(愛憎)으로 얽혔던 인연들이 사고로 죽었다 상상하니 말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모든 질병은 애증에서 비롯된 것 아닙니까?

 

 

진정한 재탄생은 애증의 감옥을 벗어나는 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직하게 죽음을 데리고 사는 길이 최선입니다.

 

진정한 건강은 자신과 타인의 최후를 의식하고 사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여기에 영원한 사랑이 있습니다.

출처 : 金烏김홍경을 사랑하는 사람들
글쓴이 : 정심주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