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의 주례사 [금고옥조]입니

[스크랩] 일체=중생, 일체는 살아있음 의미(월호스님의 선어록의 향기)

장백산-1 2011. 3. 29. 01:07

일체=중생, 일체는 살아있음 의미



“세존께서 말씀하신 ‘일체 중생은 모두 불성을 갖추고 있다’는 말의 참뜻은 어떠한 것인가? 그것은 이름 지을 수 없는 그 무엇이 분명하게 현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때는 중생이라 부르고, 어느 때는 유정(有情)이라고 하며, 어느 때는 온갖 생물, 어느 때는 온갖 생류(生類)라고 하는 것이 모두 중생이며 일체 존재이다.

다시 말해서 온갖 존재(悉有)가 불성이며, 그 온갖 존재의 한 온갖(一悉)을 중생이라 한다.”

                                                                      - <정법안장(正法眼藏)>

<열반경>의 핵심사상은 ‘일체 중생은 모두 불성을 갖추고 있다’(一切衆生 悉有佛性)는 것이다. 그래서 중생 속에 감추어진 불성의 씨앗을 수행을 통해 살려내다 보면 언젠가는 부처가 되리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정법안장>의 저자이며 일본 조동종의 개조인 도원(道元, 1200~1253 도오겐)선사는 이를 ‘일체는 중생이며, 온갖 존재(悉有)로서, 불성이다.’ 라고 독특하게 풀이하고 있다.


산하 대지가 ‘불성의 바다’

현상의 無常함이 곧 불성

첫째로, 일체는 중생이라는 것은 일체는 살아있다는 의미이다. 통례로 살아 있다고 하면, 동물만을 살아 있다고 생각하고 초목이나 산하 등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동물만이 아니라 풀도 나무도 산도 강도 모두가 살아있는 것이다. 중생이란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이며, 게다가 그것이 불성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부처의 생명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산하대지가 모두 불성의 바다인 것이다.

둘째로, 일체는 온갖 존재(悉有)라 함은, 전 세계에 감추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 있어서의 일체가 지금 여기에 현전하고 있는 것이다. 일체는 드러나 있으며, 어느 것 하나 감추어진 것은 없다. 그러므로 불성을 머나먼 미래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우리 둘레 도처에 드러난 존재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셋째로, 온갖 존재는 불성이라고 하는 것은, 현상세계의 무상 교류의 모습이 그대로 불성이라는 것이다. 초목의 무상(無常)함이 곧 불성이다. 사람의 몸과 마음의 무상함이 또한 불성이다. 국토산하가 무상함은 곧 불성인 까닭이다. 최상의 깨달음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또한 불성인 까닭에 무상이다. 대반열반 또한 무상인 까닭에 불성이다. 이처럼 현상세계의 무상한 모습이 그대로 절대적 의의가 있는 것이어서, 사람들이 찾고 있는 진리라는 것은 사실은 모두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세계 그 자체와 다름없는 것이다. 온갖 것 하나하나 일상생활 전부가 지혜의 드러남, 진리 자체의 체험이라고 하는 것이다.

일체는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허공 꽃(空華)이며,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그림의 떡(畵餠)이어서, 실체가 있는 것은 하나도 없지만, 일시적 모습 외에 따로 영원은 없는 것처럼, 거짓된 모습 외에 따로 진실은 없다. 진실은 이미 현재에 이 허공 꽃 가운데에 남김없이 드러나 있는 것이다.

일체의 세계 및 일체의 사물은 모두 그림의 떡이기 때문에, 인간이 체험하고 있는 진리는 그림으로 나타나고, 부처는 그림에서 생겨난다. 따라서 그림에 그려진 떡이 아니면 허기를 채워주는 약이 없다. 이른 바, 색즉시공(色卽是空)이자 공즉시색(空卽是色)이며, 진공(眞空)은 묘유(妙有)라고 하는 것이다.

월호스님 / 쌍계사 승가대학 교수

출처 : 석가모니불
글쓴이 : 동다송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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