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메일

[스크랩] 방하착(放下着)

장백산-1 2011. 4. 10. 16:44

방하착(放下着)                                                        - 무념스님 -

 

내가 군대에 있을 때입니다.

내가 해군 출신임을 미리 밝혀야겠군요.

여성분들은 아무 재미도 없고 지루한 군대 이야기를 한다고 하실지 모르지만, 군대 이야기도 철학과 결부시켜서 새기면 재미있습니다.

 

찌는 듯한 여름이 다가오자 부대는 전투수영이라는 새로운 훈련을 하기 위해 어느 외딴 섬, 사람들이라고는 눈 씻고 보아도 보이지 않는 이름 모를 해변으로 갔습니다.

그곳에 군용 텐트를 치고 반합에 밥과 라면을 끓여먹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래사장에서 지겹고 피곤한 피티 체조를 반복하거나 바닷물에 들어가 수영훈련을 했습니다.

우리는 네 그룹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수영을 아주 잘하는 그룹, 보통 그룹, 잘 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수영을 할 수 있는 그룹, 그리고 엥카반이었습니다.

 

엥카는 배가 정박할 때, 배가 떠내려가지 못하도록 깊은 해저에 고정시키는 아주 무거운 쇳덩어리입니다.

엥카(닻)는 아주 무거운 쇳덩어리이기 때문에 조각배가 아니면 손으로 던질 수 없고, 선수 또는 선미에 엥카윈치에 감아서 내리고 올립니다.

아무튼 엥카는 무조건 가라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엥카반은 물에 들어가기만 하면 가라앉는 사람들입니다.

난 난생처음으로 물에 들어가면 가라앉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이 몸이 뚱뚱해서 물에 가라앉는 것일까요?

몸이 비쩍 마른 사람도 물에 가라앉는 걸 보면 그 문제와 몸무게와의 함수관계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르키메데스가 발견한 부력의 법칙에 따르면, 무거운 철판으로 만든 배도 물에 들어간 부피만큼의 물의 무게가 밑에서 떠받치기 때문에 물에 뜰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무거운 사람도 물에서는 둥둥 뜬다는 것은 자연의 법칙입니다.

그런데 왜 엥카반의 사람들은 자연의 법칙에서 벗어날까요?

 

물리적 육체적으로는 물에 가라앉는 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건 순전히 정신적인 것일까요?

아마 그렇겠지요?

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으니 이제 정신적인 문제로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엥카반은 모두가 물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물에 들어가는 것은 자체가 공포입니다.

이들은 물에 들어가면 공포가 일어나고, 호흡이 가퍼지고, 몸에 경직이 옵니다.

긴장한다고 몸무게가 더 나가는 것도 아니고 부력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을, 그 어떤 물리적 현상도 없는데 하여튼 가라앉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은 물에 들어가기만 하면 뜹니다.

이들은 깊이 잠수하여 전복을 따거나 소라, 해삼을 찾으려고 되도록 오랫동안 물 속에 있으려고 노력하지만, 산소공급이 부족해지면 어쩔 수 없이 물속에 있으려는 노력을 포기합니다.

그 순간 몸은 저절로 물위로 떠오릅니다.

정상적인 사람은 아무리 물속에서 오래 있으려고 해도 물 위로 떠오르는데, 엥카반은 아무리 물에 떠 있으려고 해도 가라앉으니 참으로 아이러니입니다.

 

언젠가 내가 출가해서 기림사에 있을 때, 해군 법무장교 한 사람이 찾아왔었습니다.

그 사람은 사령관과 함께 사령관 차를 타고 이동할 경우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내가 사령관 옆자리에 타기만 하면 긴장이 오고,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상관에 대한 어려움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그가 법무장교이지만 해군이라는 군 특성상 수영훈련을 했으리라 생각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혹시 수영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전투 수영에 참여해본 적이 있습니다.”

“바다에 들어가면 몸이 가라앉습니까?”

“처음에 바다에 들어갔을 때는 두려움과 긴장으로 몸이 가라앉았습니다.”

“두려움과 긴장에서 완전히 벗어났을 때는 어땠습니까?”

“가라앉으려고 해도 가라앉지가 않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물에 대한 두려움을 놓아버리면 물에서 대자유를 얻습니다. 물에 둥둥 떠서 몇 시간이고 즐길 수 있습니다. 파도만 치지 않는다면 누워서 책을 볼 수도 있습니다. 대자유를 얻으려면 무엇이든 내려놓으십시오. 두려움도 긴장도, 상관에게 잘 보이려는 의도도 모두 내려놓으십시오. 놓아버리면 어디서든 자유를 누릴 것입니다.”

그때 법무장교는 깊은 이해를 한 듯했습니다.

 

수영을 잘하는 방법은 먼저 물에 대한 두려움, 긴장감 또는 물에 대한 관념을 모두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몸은 저절로 물에 떠오릅니다.

이때 손을 뻗어 저으면 되는 것입니다.

 

놓아버리려고 하는데 잘 되지 않는다고요?

놓아버림이 잘 된다면 상근기입니다.

우리네 대부분 사람들은 수없는 과거생에서부터 익혀온 움켜쥐려는 습성 때문에 놓아버림이 잘 되지 않는 게 당연합니다.

놓아버리려면 먼저 알아차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두려움과 긴장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모두 알아차려야 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움켜쥐려고 하는지를 먼저 알아차려야 무엇을 내려놓을지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조사하는 것이 알아차림이고, 조사가 끝나면 지속적인 주시를 통해 내려놓는 것입니다.

상근기가 아닌 바에는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한꺼번에 내려놓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두려움, 긴장 등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 탐욕, 분노, 질투, 인색 등과 같은 생각이 당신의 자유를 구속합니다.

편집증적인 사랑, 지나칠 정도의 가족에 대한 집착이 자신을 얽매고, 남의 자유까지도 속박합니다.

얽매임에서 벗어나면 해탈입니다.

해탈은 대자유를 의미합니다.

 

역대 선지식들이 강조하신 그 유명한 말씀.

“놓아버려라[放下着]!”

놓아버리면 인생의 항로에서 자유롭게 헤엄을 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입니다.

당신은 자유롭게 헤엄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물속으로 가라앉아 익사당하기를 원하십니까?

출처 : 생활속의 명상도량 광주자비선원
글쓴이 : 부민스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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