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대통령 김두관

김두관과 룰라 대통령

장백산-1 2012. 5. 26. 21:13

 

 

 

월낚는 강태공



농부출신의 오뚜기 김두관 지사..


대선후보로 급부상한 김두관 지사가 연일 화제다. 9년 정도 그를 주목하고 지켜보았지만 참으로 놀랐다. 그는 정말 사막과 광야에서 굴하지 않고 물과 길을 여는 사람 같다. 나는 열린우리당 시절 장영달 후보 전당대회 수행하면서 지켜 보았고, 여의도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나는 20003년부터 김두관 지사의 연이은 정치적 도전, 실패, 좌절 그리고 조그마한 성공을 가슴 졸이며 지켜보며 응원해왔다. 경남 출신으로 난 민주당에서 일하면서 민주개혁 진영에 서있는 것 자체로 빨갱이 취급받는 보수의 땅에서 상식과 양심을 가지고 지역에서 뿌리박고 정치하는 그에게서 미안한 마음과 경외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나는 김지사의 실패와 성공을 지켜보면서 그가 마치 무한 형벌을 받는 시지푸스처럼 지역주의, 기득권의 험준한 산을 올라가다 미끄러지고 다시 올라가는 일을 반복하며서도 실패를 양식 삼아 진화하고 있는 모습에 참 감동 받았다. 그를 솔직히 내 생각과 글로서 평가해보고 싶었다. 


2002년 김두관은 무소속으로 경남도지사에 출마하여 김혁규 지사에 패배했다. 당시 한나라당 출신 김혁규지사 지지율 76%, 남해군수 출신 무소속 김두관 17.6% 내가 지켜본 그의 첫번째 패배이다. 

이후 2002년 무현 대통령의 권유로 그는 정권교체에 참여했다. 그는 노대통령이 집권하고 2003년 열린우리당이 3당이었던 시절 행자부 장관으로 임명받았다. 조그마한 성공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그는 시골촌놈, 지방대생, 벼락출세한 장관이자, 노무현과 같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한나라당 지배의 국회에서 천대받고 멸시 당했다. 그리고 말도 안되는 이유로, 당시 여당이 힘이 없었다는 이유하나로 어처구니 없이 해임당했다. 그의 두번째 실패다. 

이후 2004년 그는 그의 고향남해에서 전 국회의장이던 박희태의장과 맞붙어 초박빙 승부끝에 지역주의 장벽에 1% 미만의 초박빙 승부에서 좌절하고 말았다. 그의 세번째 실패이다. 

2005년 그는 이후 열린우리당 당의장 선거에서 유시민 대표와 참정연 출신으로 동반 출마하여 또다시 실패한다. 유시민 대표가 양보할 줄 알았다가 동반 출전하면서 대중성이 아무래도 약하던 그가 밀렸던 것이다. 이후 김두관 참모를 중심으로 속았다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 이후로 유시민과 김두관의 길이 갈라진 듯하다. 그의 네번째 실패다. 당시 전당대회에서 김두관은 연설이 익숙하지 않아서 정말 화려한 웅변으로 대의원을 감동시킨 유시민 후보에게 지도부 마지막 티켓을 내주고 말았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연이은 재보궐 선거 패배하자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로이 뽑혀 지도부에서 그는 3위에 오르면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한다. 당시 김두관은 연설능력이 여전히 부족했지만 특유의 십자가 연설이라는 화재를 낳은 포즈를 취하며 진정성있는 연설을 보여주며 당당히 지도부에 입성했다. 2006년 5.31 지방선거에 도지사로 다시 출전한다. 여당이었지만 노무현 정부에 심판론에 휩쓸려 그는 장렬히 패배한다. 그의 다섯번째 실패다. 

김두관은 2007년 대통령선거 경선 컷오프 탈락 이후, 열린우리당을 탈당해 무소석으로 남는다. 그의 여섯번째 실패다. 이듬해 2008년 총선에서 무소속 당적을 유지하며 총선에 임해서 싸웠지만 다시 낙선하고 말았다. 그의 일곱번째 실패다. 

2010년 김두관은 다시 경남도지사에 3번째로 도전한다. 노무현도 성공하지 못했던 일, 부산경남의 지역주의와 완고한 보수주의의 성벽을 허무는 기적이 일어난다. 당시 지역주의라는 장벽을 깨기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그의 모습에 참 많은 분들이, 심지어 골 수 한나라당 지지자들까지 마음이 움직였다. 7전 8기 행장부 장관, 상임중앙위원 당선 이후 사막에서 기적을 이루어낸 값진 3번째 성공이다.

2년이 지난 지금 김두관이 대선을 앞두고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거나, 경남을 혹시 새누리당에게 빼앗기는 것이 정권교체에 걸림돌이 되는 것인가의 산수나, 미시경제를 가지고 고민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그에게는 실패가 성공보다 당연한 것이고 그는 언제는 불가능하다고, 어렵다고 피해본 적이 없기때문이다. 그냥 묵묵히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면 실패에도 조금도 좌절하지 않고 그 길을 택하고 그속에서 그는 놀랍게 성장해왔기때문이다. 

현재 김두관은 미약한 지지율, 인지도, 도지사 중도사퇴의 부담, 문재인의원, 안철수 교수의 존재를 넘어서야 비로서 박근혜와 맞붙을 수 있다. 참 어렵고 험난한 일 처럼 본인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가 가진 잠재력은 충분히 민심의 폭탄을 터뜨릴 잠재력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김두관의 경쟁력이다. 


첫째, 김두관은 카리스마가 있다. 카리스마는 승리한 경험이다. 적을 제압한 장수에게 주어지는 존경이다. 박근혜, 안철수의 가장 큰 인기 비결에도 상대와의 큰 싸움에서 이긴 경험이 카리스마가 된 것이다.

둘째, 농민의 아들 김두관은 독재자의 딸과 가장 대척점에 삶의 이력에서 가장 차별화된다. 박근혜가 국정경험과 오랜 정당경험을 통해 정치 전문가, 국가와 결혼한 우파 애국주의자라면 김두관은 찢어진 가난에 전문대를 가까스로 졸업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가장 밑바닥에서 끊임없이 실패하면서 자신을 일으켜세운 보통 시민이자, 국가의 공동체를 고민하는 애국적 진보주의자이다.


셋째, 김두관은 국정, 지방자치 경험을 두루쌓은 정치, 정책 전문가다. 손학규 후보 함께 장관, 도지사, 대통령 특보 등을 역임하여 국정경험과 끊임없는 당내, 국회의원 선거출마를 통해 전쟁에 익숙한 정치 전쟁 전문가이다. 한마디로 큰 싸움을 치룰 수 있는 담력, 용기, 개인기를 겸비한 정치전문가라는 점이다. 김두관, 손학규 후보 정도가 제대로 국가비전, 국정철학 등 대통령이 필요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넷째, 김두관 단점인 인지도 부족은 오히려 단기간에 폭발적인 지지율의 확장을 가져올 카드이다. 손학규, 안철수, 문재인 모두 이미 전국적인 인사도 그를 모르는 야당 지지자들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다. 하지만 김두관은 인지도가 매우 낮다. 얼마전 조사에서 30% 미만까지 나왔다고 한다. 인지도 100% 상황에서 야권의 다른 후보들의 지지도가 현자 위치라면 표의 확장성은 제한적 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김두관은 이야기가 다른다. 그의 스토리가 공개 될 수록, 그가 경남이라는 변방을 떠나 중원으로 다가올 수록 그가 어떤 메시지를 던지느냐에 따라서 지지율의 확장성, 역동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섯째, 김두관은 실패를 통해 진화했다. 지난 10년간 그를 지켜보면서 그의 한계를 많이 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에 내가 깨달은 바는 김두관은 어쩌면 2004, 2005년, 2007년 내가 본 그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어쩌면 도저히 견디기 힘든 실패를 거듭하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다. 그의 현안 대응을 보면서 김두관 지사가 실패를 양식삼아 쌓아자신을 성숙시키고 진화해왔다는 확신이 든다. 


여섯째, 김두관은 연이은 좌절과 실패로 용기를 잃은 서민들에게 위로이자, 희망이다. 김두관은 찢어진 가난에도, 정치적 실패에도 좌절하거나 주저앉지 않았다. 그는 다시 일어났다. 오히려 실패를 양식삼아 불가능을 향해 또다시 발걸음을 옮긴 용기와 담력의 소유자다. 그의 인생 역정 자체게 양극화 시대에 실패와 좌절로 용기를 잃은 대한민국의 서민들에게 조그마한 위로이자, 희망이다. 

일곱째, 김두관은 시대정신과 조응한다. 김대중과 만델라는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시대정신에 호응했다. 인종차별, 영호남 차별의 철폐를 원했던 시대정신에 호응했다. 노무현과 링컨 인권변호사이자, 기득권 세력에게 끝까지 미움받고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지만 국민의 가장 큰 사람을 받은 대통령이다. 남부와 북부의 노예제를 둘러싼 갈등종식, 균형발전과 지역주의 해소라는 시대의 요구가 참 아이러니하게 닮았다.

그런데 김두관은 정치의 공간 한 가운데 룰라를 불러냈다. 


지자체 장에서 대통령으로, 보수세력과 타협하고, 미국과도 불화하지 않으면서 서민의 삶을 진전시킨 노동자 출신 대통령과 농사꾼과 이장 출신 도지사 김두관 묘하게 어울린다. 시대정신의 가호가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