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識이 子息인줄 잘못알고 / 현정선원
<문>
確然하게 性品을 밝히지 못하면 또다시 돌아와서 이 지리멸렬하고
뒤숭숭한 악몽을 반복해야 하는지요?
모순 되지만, 성품을 밝히지 못했다는 단 하나의 절박함과 세속일에 회한없는
여유로움의 기묘한 이중성이 함께합니다.
제가 지금, 무슨 오해와 착각에 빠져 있는지요?
<답>
지금에 이렇게 묻고 대답하고 하면서, 혹은 알기도 하고, 혹은 이해가 되지
않아서 계속 헤아리고 더듬고 하는 등의, 이것은 당신의 '본래 마음''이 아니고,
다만 앞의 境界의 虛妄한 모습에 대한, 전혀 自己 中心的인 生覺에 지나지 않는
겁니다. 그것은 '意識'이요, '마음'은 아닌 것이니, 境界가 나타나면 곧 따라서
났다가, 境界가 사라지면 바로 따라서 사라지는, 다시 말해서 당신의 '본래
마음'의 거울에 비쳐지는 업식(業識)의 그림자인 겁니다. 그런데 '앞의 경계'
(前境)는 常住하는 것이 아니므로 따라서 그 '업의 그림자'(業影)도 전혀 實다운
것이 아닌데, 사람들이 무시이래(無始以來)로 이 도적(6識)을 아들인 줄 잘못
알고, 이것을 고이고 섬기느라고 저마다의 '恒常한 것'을 등지고 살아온 지가
너무 오래 된 겁니다.
불교의 성지(聖旨)는, <지금 이렇게 보고 듣고 하면서 분명하게 아는>, 이
모든 지각활동(知覺活動)의 性品이 바로 '참 나'요, 이 '참 나'에게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니, 행여 정식(情識)으로 이 法을 배우려 해선 아니 됩니다. 납자
(衲子)라면 모름지기 모든 식신(識神)을 깨끗이 털어 버려야 하리니, 만약
수행자가 <견문(見聞)의 生覺을 지으면서> '본 바'(所見), '들은 바'(所聞)와
같은 온갖 지견(知見)들을 긁어모으는 것으로써 공부를 삼는다면 이것은 수행도
아니요, 구도자(求道者)도 아니니, 영영 도(道)와 상응할 분수가 없는 겁니다.
설사 당신의 모든 견문각지(見聞覺知)의 일들을 다 털어 버리고, 마음으로
지극히 미묘한 유한(幽閑)함을 느낀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의근(意根)
으로 법진(法塵)을 희롱하는 데 지나지 않는 것이니, 구경열반(究竟涅槃)의
寂滅한 境地도 끝내 虛空꽃으로 돌아간다는 事實을 알아야 합니다.
영지(靈知)는 알아도 몰라도 어긋나니, 어떻게 공부를 지어야 할까?
이렇게 업신(業身)은 털어 버렸으니, 여의주(如意珠)는 어디에 있는가? ―
고개를 돌리기만 해도 벌써 어긋납니다.
-현정선원 법정님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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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경님이 올린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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