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회광반조 (回光返照)

장백산-1 2012. 8. 7. 22:34

 

 

① 회광반조(回光返照)
죽음도 어쩌지 못하는 밝은 生命자리
自身 잃지 않고 狀況에 깨어 있어라

우리의 視線은 밖을 向해 두리번거리고 있다. 사람들은 밖을 向해 헐떡이다가 自身을 잃어버린다.

自身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自覺하지 못하고 狀況과 對相에 끌려간다. 또한 우리는

預期치 못한 狀況이나 너무 긴장하여 머리가 白紙처럼 하얗게 굳어지는 瞬間에 허둥대며 곤경에 빠지곤 한다.

스스로 돌이켜 비추어 보라”

그렇다면 어이할 것인가? 그럴 때는 自身의 內面을 깊숙이 바라보아야 한다. 그렇게 밖으로 向하지 않고

自身을 돌이켜 비추어 보는 것을 禪에서는 회광반조(回光返照)라 한다.

임제 선사는 말한다.
“그대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스스로 돌이켜 비추어 보라. 다른데서 求하지 말지니, 그대 몸과 마음이 조사님이며 부처님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爾言下便自回光返照, 更不別求, 知身心與祖佛不別).”

임제록(臨濟錄)》

주변으로부터 나를 刺戟하는 어떤 말을 듣는 瞬間, 급박한 狀況이 벌어지는 瞬間, 그 말과 狀況에 사로 잡혀

허둥대거나 안절부절 말고 自身을 조용히 돌이켜 보라는 것이다. 돌이켜 自身을 비추어보면

이리저리 날뛰던 마음이 멈춘다.

우리 內面에는 '때 묻지 않는 부처님 性品'이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을 다른 말로 眞理 그 自體, 本來 모습, 神靈스러운 當體라고도 한다.

禪에서는 우리 모두 本來 成佛해 있다고 선언하지 않는가. 따라서 우리가 스스로 自身을 돌이켜 보는 순간,

本來 부처님 자리에 들어서게 되므로 感覺의 부림이나 온갖 장난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우리는 一般的으로 밖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 성가신 소리, 정신 나간 소리, 화나는 소리를 듣고 마음이

불같이 달아오르거나 맥 빠진 사람처럼 의기소침해 진다. 是非와 善惡, 好惡와 美醜의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갈피를 잡지 못한다. 魂飛魄散하는 狀況도 벌어진다.

그렇게 허둥대면서 自身을 학대하고 남을 怨望하며 녹슬어간다.

境界의 波濤에 흔들리지 않고…

그러나 어떤 狀況과 條件에서든 自身을 돌아볼 수 있다면, 自身의 따스한 內面을 바라볼 수 있다면,

內面에 간직된 寶物, 永遠히 녹슬지 않는 금덩어리가 自身임을 보고 그 瞬間 境界의 파도에 左右되지

않을 수 있다. 內面을 直視하고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혀 그 고요한 마음속에서 活路를 모색한다.

波濤에 따라 이리저리 출렁거리지 않고 世上을 차분하고 명징한 視線으로 보게 된다.

어렵지 않다. 自身을 돌이켜 보기면 하면 된다. 돌이켜 보는 瞬間 나는 '眞情한 나 自身'과 만난다.

《능엄경》에 ‘반문문성反聞聞性)’이라는 말이 나온다.

소리를 듣는 性品을 다시 돌이켜 들어보라는 의미다.

소리를 듣고 있는 나를 다시 돌이켜 비추어 본다는 것이다.

어떤 소리를 듣는 나가 있고, 그렇게  '그 어떤 소리를 듣는 나'를  '다시 들여다보는 '가 있다.

노래하고 소리치는 나가 있고, 그렇게 '노래하고 소리치는 나'를  '다시 돌이켜 보는 나'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소리를 듣는 나'는 '外部 條件에 따라 오락가락 返應하는 나'이다. '겉마음'이다.

그러나 '그 소리를 듣는 나'를  '돌이켜 보는 '는 '오락가락하는 나'가 아니다.

'內面에서 파릇파릇하게 숨 쉬고 있는' '眞情한 나'이며 '본마음'이다. '본마음'을 찾는 것이 이다.

差別· 分離의 아픔· 境界는 없다

우리는 回光返照를 通해서 그 '眞情한 나'와 만난다. 그 고요한 瞬間, '그 靜寂의 瞬間에 나'는

너와 세상과 하늘과 함께한다. 거기엔 差別과 分離의 아픔과 境界는 없다. 바로 그 자리에 서면

우리는 소란스러운 外部 境界에 自身을 잃어버리지 않고 狀況에 깨어 있게 된다.

어떤 소용돌이에도 함몰되지 않고 호수처럼 맑은 精神으로 숨 쉬게 된다.

話頭를 들 때도 回光返照하는 方法이 있다.

“이 뭣고” 할 때 <“이 뭣고” 하며 묻는 나 自身>을 돌이켜 보는 것이다. 나를 돌이켜 보며 도대체 “이 뭣고” 하면서 묻는 이놈은 무엇인가 疑心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렇게 話頭 疑心을 지어간다. 나를 움직이는 이놈, 과연 이 當體는 무엇인가 하고, 疑心을 일으키는 瞬間, 그 瞬間 모든 判斷과 生覺의 作用이 사라지고 無念, 無我의 자리에 同參한다. 바로 그 자리에 모든 境界와 是非를 떠난 本來 모습을 엿보게 된다. 임제선사가 말하지 않았던가.

바로 돌이켜 비추어보는 그 자리가 부처와 조사의 자리니 달리 다른데서 찾지 말라고….

밖의 條件에 허둥대지 말라. 돌이켜 自身을 비추고 自身을 보라.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明澄하고 透明한 視線으로 世上을 바라보라. 파도가 자고 비바람이 멈출 것이다.

죽음 直前에 이른 사람이 갑자기 精神이 鮮明하게 밝아지는 것도 回光返照라 말하기도 하나보다.

回光返照란 그렇게 죽음도 어쩌지 못하는 밝은 生命자리다.

고명석/조계종 포교연구실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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