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諸行無常이 革命이다

장백산-1 2013. 5. 25. 21:49

 

 

諸行無常에 대한 글입니다... 革命이라 表現되네요...|좋은글 나누기
티거 | | 조회 16 |추천 0 | 2013.05.25. 17:40 http://cafe.daum.net/truenature/KIMF/4295

기사를 읽고 잠시 생각해 봤습니다...


고인 물은 썩는다... 썩지 않을려면 흘러야 한다... 

구르지 않고 停締되어 있으면 退步이다... 다시 굴려야 한다... 이게 혁명이다...

세상은 變한다.. 變한다는 것을 認定하고 같이 變해야한다... 이것이 혁명이다... 

눈앞에서 變하고 있는 세상을 알아차릴 수 있는 智慧가 있기를...

세상과 같이 變해가는 내가 될 수 있기를....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래는 기사 원본입니다... 


사회적인 문제와 가치관에 대한 언급도 있습니다...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빅 이슈>, 일본어판, 214호, 2013년 5월1일자

얼마 전 일본 교토 가모가와 근처에서 <빅 이슈>(www.street-papers.org)를 만났다. 한국어판도 있는데 접하지 못하다가 반가운 마음에 샀다. 세계 41개국에서 발행되며 1만4000명의 路宿人이 販賣員으로 일하는 雜紙

<빅 이슈>는 노숙인의 自立을 지원하기 위한 네트워크다. 편집, 기획, 집필 등 각 분야의 전문가가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고 실제작비 외 수익은 모두 노숙인에게 돌아간다.

한달에 두 번 발간되는 <빅 이슈> 일본판(www.bigissue.jp) 가격은 300엔(약 3300원). 그중 160엔이 판매자의 몫이다. 이들은 잡지 판매 노동을 통해 자립중인 노숙인임을 밝힌다. 월세방을 얻을 돈이 모아지면 다른 직업을 구하거나 <빅 이슈> 운동가로 성장하기도 한다.

原來 이 紙面의 素材는 국내에서 출판된 단행본으로 한정했지만, 기사 하나하나의 問題意識이 좋아서 꼭 쓰고

싶었다. 최근 내가 읽은 資本主義 關聯書 중에서 가장 現實的인 代案과 “전업화(專業化)에 反對하는”(16쪽)

새로운 勞動 槪念을 보여준다. 일본인 친구는 “<겐다이시소>(현대사상, 일본의 ‘고급’ 문예시사지)보다

깊이가 있다”고 말한다.

“革命은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認定하는 것이다.”(6쪽) 이 말은 오랫동안

社會運動에 참여해온 유명 여가수 가토 도키코(71)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부터 2011년 일본 동북부 지역을 강타한 大地振, 이른바 ‘3·11’ 까지의 人生 歷程에서 깨달은 바를 이렇게 要約했다.

 

“ 레볼루션(revolution)에는 反亂의 意味도 있지만  회전(回轉, re-volution)한다는 뜻도 있다.

世上이 어떻게 變하든 宇宙森羅萬象은 恒常 運動하고 있으니 사는 것이 革命이다.

日常的으로 일어나는 無數한 작은 變化가 世上을 흔들리게 하고(搖) 時代를 變化시킨다.”

치열하면서도 원숙한 그의 말은 내 일상의 소소한 挫折에 救援의 ‘한 말씀’이 되었다.

며칠 전 ‘실력과 진보의식’을 두루 갖췄다는 어느 경제학자가 “家族이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페미니스트(나?)가 家族의 價値를 無視한다”며 女性主義 代表도 아닌 내게 憤怒를 표했다.(물론, 터무니없다.

가장 큰 問題는 國家가 해야 할 일을 家族 內 女性 勞動으로 떠넘기는 이른바 韓國形 福祉다.)

나는 “엥겔스부터 읽으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런 反應은 家事勞動에 對한 國家와 資本,

南性 個人의 利害關係와 無知를 反映하는 것이지만 우리 모두가 共有하는 意識이기도 하다.

卽, 더 이상 家族制度로부터 착취당하지 않으려는 “눈앞의 革命”에 대한 혐오.

革命은 黨派的 槪念이다. 勞動者의 革命은 ‘차르’의 몰락이다. 하지만 이는 普遍的인, 따라서 낡은 槪念이다.

黨派性들은 相互 黨派的이기도 하다. 黨派性은 ‘敵과 나’ 두 개가 아니다. 수많은 黨派性이 있다.

사람마다 處地에 따라 革命의 槪念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 다름을 全切運動의 이름으로 “革命을 일으킨다”,

이것이 旣存의 革命이었다. 그러므로 한 번에 일어나는 革命은 不可能하고, 可能하다면 거짓이다.

큰 政治와 작은 政治, 構造와 個人, 社會의 안과 밖이 分離되어 있다는 思考.

그래서 건장한 몇몇 個人은 變革의 主體이고,

少數者로 불리는 나머지 大多數 사람들이 겪는 事小한 問題는

全切運動이 成功한 以後 解決‘해준다’는 發想.

이런 認識이 人類의 계속적인 革命 試圖가 政權 交替에 불과하게 理由이며,

社會變化에 對한 民衆의 折望과 無關心(“그 밥에 그 나물”)을 招來했다.

二分法과 苦痛의 序列化가 反革命이다.

사는 것이 革命이라면, 地球上 모든 이들의 日常은 革命中인 그 무엇이다.

내가 變革시키고자 하는 社會는 내 몸과 混在된 나 自身이다.

쿠데타를 包含한 旣存의 革命 패러다임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認定”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民衆을 分裂시키는 ‘問題’로 보고 抑壓한다.

低出産, 同性愛者의 結婚權 主張, 兵役 拒否, 높은 離婚率….

“지금 일어나는 革命을 認定하라”  그리고 解釋하라.

정희진 여성학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