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1, 과학 시대의 불교

장백산-1 2013. 6. 1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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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조회 60 |추천 0 |2010.05.30. 21:19 http://cafe.daum.net/sejon/3Pcw/433 

과학으로 보는 불교의 중심사상


양형진

(yangh@korea.ac.kr)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물리학과 졸업. 인디아나 대학교 물리학 박사.

신시내티 대학교 박사 후 연구원. 매릴랜드 대학교 교환교수.

현재 고려대 자연과학대학 물리학과 교수 겸 정보보호대학원 겸임 교수.

저서로 < 산하대지가 참 빛이다-과학으로 보는 불교의 중심사상>

역서로 <과학의 합리성>(양형진-조기숙 공역),

<놀라운 대칭성>(양형진-염도준 공역)이 있다.



1. 과학 시대의 불교


오늘날 우리는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다. 과학 혁명에서 시작하여 산업 사회와 후기 산업 사회를 거쳐 이

 

제는 정보화 시대에 이르렀고, 기초 과학은 소립자의 극미의 세계에서 우주 저쪽의 극대의 세계에 이르

 

기까지 인간 지식의 지평을 넓혀 놓았다. 러셀이 철학이란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종교와 윤리의 견해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적 탐구의 결과라고 하였듯이, 이러한 자연과학은 철학과 세계관에 영향을 주면서

 

상호 역동적으로 발전하여 왔다.


갈릴레이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마젤란의 항해, 다윈의 진화론 등에서 비롯된 세계관의 변화는 신

 

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세계상에 젖어 있던 서구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또한 뉴턴은 과학

 

을 이용하여 신의 존재 혹은 신의 섭리를 증명하려 하였고, 엥겔스는 《자연변증론》에서 자연과학의 견

 

고한 기반 위에 변증법적 유물론의 제법칙을 구축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역사의 궤적은 자연에 대한 이

 

해가 세계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왔으며, 자연의 이해에 기반하여 세계관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계속되

 

어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계관이나 철학은 이처럼 자연과학이 제시하는 세계 이해를 통해서만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자연과학이 제공하는 삶의 기반에 의해서도 또한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과학 시대를 사는 오늘날의

 

우리는 삶의 양식은 물론이고 삶의 정신적 기반마저도 과학의 산물과 과학의 세계상에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면 과학이 제시하는 세계상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

 

해하고,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의 삶을 고양시켜 줄 수 있는 세계관을 찾는다는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물론 오늘날의 우리는 뉴턴과 엥겔스 시대에 가능하였던 미숙한 자연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현대의 성숙

 

한 자연과학이라는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를 바탕으로 과거의 그 어느 때보다도 훌륭

 

한 세계관을 마땅히 구축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아주 다르다. 오늘의 우리는 우리 문명이

 

지니는 모순에 대해 그 반성적 기초를 지니고 있지도 못하고, 이러한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

 

관을 제시하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적 배경 속에서 서구 문명과 여러 면에서 그 맥락을 달리하는 동양적 세계관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어쩌면 아주 당연한 일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불교의 세계관은 여타의 다른 종교와 달리 자연

 

과학의 성과와 모순되지 않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 정합적이라는 특성을 지닌다. 물론 전 우주적 진리

 

가 하나의 통일적 전체를 이루는 것이라면, 그에 대한 여러 표현은 물론 서로 모순되지 않아야 한다. 그

 

러나 우리는 역사 속에서 자연과학의 세계상과 종교적 세계관이 서로 모순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던 것

 

이 또한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험과 관찰을 기반으로 하는 자연과학의 세계 이해가 오직 명상만으로 이룩해 낸 불교적

 

세계관에 접근해가고 있다는 경험은 우리에게 불가사의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당연

 

히 그래야만 한다. 자연과학이 인류가 이룩해 낸 그 어떤 지적 작업보다도 자연세계에 대해 신빙성 있는

 

설명을 제공해 주는 것이라면, 그리고 불교의 세계관이 우주적 진리를 바탕으로 하여 전개된 것이라면

 

그 둘은 마땅히 정합적인 체계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불교와 과학은 아주 이질적인 것처럼 보인다. 불교의 궁극적 관심은 태어나면서부터 어쩔 수 없이 안고

 

있는 존재론적 고통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혹은 그로부터 어떻게 해방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며(불

 

교에서는 이 존재론적이며 근원적인 해방을 해탈이라고 한다), 자연과학의 관심은 자연세계를 어떻게 더

 

잘 이해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를 어떻게 잘 응용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이야기하는

 

내용이나 주제도 무척 달라 보인다.

 

 

 

 

 

이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20세기 이후에 자연과학의 세계 이해의 성과가 불교의 세계관에 접

 

근하여 간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은 일체의 사물이 서로의 연관성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현대 과학의 성과 위에서 가능해진다. 이는 곧 불교에서의 연기론(緣起論)에 기초한

 

세계관을 자연과학이 예증해 주고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불교 공부를 한 사람이 현대 과학이 제시하는 세계상을 보거나 현대 과학을 공부한 사람이 불교

 

의 세계관을 볼 때, 이 두 세계 사이에 놀라운 연관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마치 큰 산을

 

오르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을 때, 그 각각의 길이 서로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 모든 길이 하나의 같은 산

 

안에 품어지는 것과 같다. 두 길을 따로 오르는 사람들은 정상에 다다르기까지 그들이 같은 산을 오른다

 

는 사실조차 모를 수도 있지만, 정상에 이르고 나면 같은 산을 올랐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佛敎와 科學은 산에 오르는 방법 자체를 아예 달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헬기를 타고 산 정상으로

 

가는 방법과 밑에서부터 한 걸음씩 걸어서 정상에 이르는 방법에 비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와 관련하여, 이 글에서는 불교의 緣起論的 世界觀을 自然科學의 世界相을 통하여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를 제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