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마음은 나의 실재가 아니다

장백산-1 2013. 8. 7. 16:54

 

 

 

[마음은 나의 實在가 아니다] - - - 에크하르트 툴레

 

 

生覺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이 事實이 엄청난 苦痛임에도 

우리는 이 事實를 깨닫지 못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칠 줄 모르는 生覺의 行列이 騷音이 되어,

內面의 고요한 世界를 發見하지 못하도록 防害하고 있는 것입니다.

生覺이라는 것은 一種의 疾病입니다. 疾病은 均衡이 무너질 때 생깁니다.

마음을 부리지 못하고 마음의 부림을 당하는 것이 곧 疾病입니다.

내 마음을 나라고 믿는 것은 幻想이요, 기만입니다.

부림을 당해야 할 道具인 마음이 主人의 자리를 점령하고 主人 行世를 하는 꼴입니다.
 
개들이 뼈다귀를 물어뜯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마음은 늘 問題点들을 붙들고 늘어지기를 좋아합니다.

마음은 特別한 課業에 使用되기 위해 거기 存在하는 道具이며 연장입니다.

마음이란 本質的으로 生存을 위한 道具입니다.

마음은 다른 마음들과 對適할 때 攻擊과 防禦를 하고, 情報를 얻고, 貯藏하고, 分釋하는 일은 잘하지만

創造的이지는 않습니다. 
 
現代의 社會시스템은 우리들의 마음이 공격과 방어를 하는데 삶의 大部分의 時間을 虛費하도록

보이지 않게 그러나 强力하게 强要하고 있고  이러한 傾向은 점점 더 强化되고 있습니다.

삶의 大部分의 時間을  마음이 공격과 방어를 하는데 使用됨으로서 內面에서 흘러나오는

사랑, 기쁨과 平和라는 에너지를 느낄 時間이 거의 전혀 주어지지 않는 실정입니다.
 
사랑과 기쁨과 평화의 에너지는 存在의 深奧한 狀態로 마음 너머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對立이 없습니다.

反面, 마음의 一部인 感情은 二元性의 法則에 따릅니다. 簡單히 말하자면 惡이 없으면 善도 없습니다.

快樂의 에너지는  恒常 外部에서 오지만 기쁨의 에너지는 內面에서 일어납니다. 오늘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이 快樂이 떠난 자리에는 苦痛만이 남게 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랑의 關係들을 보면  처음의 陶醉狀態가

지나가면, 사랑과 증오의 愛憎關係가 줄다리기를 할 뿐입니다.
 
自由를 向한 첫걸음은 점령한 者인 '生覺이라는 者'가 眞情한 당신이 아님을 깨닫는 데 있습니다. 또한 

生覺이란 者는 단지 앎의 領域의 아주 작은 한 조각에 불과하다는 事實을 自覺하기 始作하는 것입니다.
 
'生覺하는 者'를 지켜본다는 것은 머릿속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 자리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目擊者/注視者/觀察者의 立場에서 지켜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生覺이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는 아무런 見解도 갖지 말고 그냥 그저 듣기만 하십시오.

그 올라오는 生覺이라는 목소리에 아무런 判斷도 하지 말고 非難을 퍼붓지도 마십시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 올라오는 生覺의 行列(매트릭스)이란 事實  重毒이나 다름없습니다.

重毒이란 무엇일까요? 간단히 말하자면 내 마음대로 내 意志대로 멈출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에고(ego)는 無意識的으로 自己 自身을 마음과 同一視함으로써 造作된 거짓 自我를 뜻합니다.
 
生覺(現在意識)과 意識(潛在意識,無意識,純粹意識)은 同意語가 아닙니다.

生覺은 단지 意識의 작은 一部에 불과합니다. 生覺은 意識 없이는 일어날 수 없지만,

意識은 生覺을 필요로 하지 않고 存在합니다. 生覺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生成되는 것이지만,

意識은 그냥 五感을 通하여  客體를 認識하는 存在입니다. 
 
無心이란 生覺의 헤아림이 없는 純粹意識의 상태입니다.
 
感情은 생겨나는 生覺에 對한 몸/마음의 反應입니다.

攻擊的이거나 敵對的인 生覺을 하면, 우리 몸 안에는 분노의 에너지가 强化됩니다.

强烈한 感情은 身體內部에 生化學的 變化를 일으킵니다.

몸안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生化學的 變化가  感情이 가진 肉體的, 物質的인 側面입니다.
 
엄청난 噴怒를 내면에 품고 있으면서도 이를 알지 못하고, 또 그것을 表出해 보지도 못한 사람들은

噴怒를 품고 있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뚜렷한 理由도 없이 身體的인 攻擊이나 言語的인 暴力을 당하곤 합니다.

그것은 自身도 모르게 强烈한 噴怒의 에너지를 주위에 發散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潛在되어 있는

噴怒의 에너지를 자극하여 내게로 끌어당기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生覺은 腦속에서 進行되는 反面,

感情은 物質的인 料素를 强하게 갖고 있기 때문에 主로 몸 안에서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일련의 生覺들은 感情의 形態로 生覺 스스로를 擴大하고,

感情의 振動 周波數는 애초의 生覺들에 계속해서 에너지를 提供합니다.

生覺과 感情은 서로가 서로를 擴大 擴張  再生産하여 키워 냅니다.
 
마음이 하는 主要한 課業 中 하나는

感情的인 苦痛에 對抗하여 싸우거나 感情的인 苦痛을 除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감정적인 고통을 제거하더라도 그것은 一時的으로 苦痛을 덮어둘 뿐이고,

事實 마음이 感情的 苦痛을 없애려고 싸우면 싸울수록 感情的인 苦痛은 점점 심해질 뿐입니다.

왜냐하면 마음 그 自體가 問題의 根源이기 때문입니다.
 
欲望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지 마십시오. 깨달음을 成就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냥 그저 바로 지금 여기 이 瞬間에 現存하십시오. 그렇게 함으로써

마음을 그냥 그저 고요하게 지켜보는 者로서 存在하고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