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알아차림과 사념처 수행

장백산-1 2014. 1. 18. 21:17

 

 

 

 

알아차림의 정확한 의미



<질문>


여러 가지 수행에 대한 글들을 읽다보면 알아차림이란 용어가 많이 나오는데,

 

이제 수행을 시작하는 입장에서는 정확하게 무엇을 意味하는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손을 씻을 때라면, 알아차림의 對相이 되는 것이

 

손을 씻으려는 意圖인지, 물과 손이 만나感觸인지,

 

찬물에 손이 닿는 것을 싫어하는 느낌인지, 손을 씻는다는 動作 그 自體인지,


(이 경우에도 손을 씻고 있다는 것을 언어로 형상화하기 이전에 직관적으로 알아차리는 것

 

인지, 언어로써 알아차리는 것인지-즉 내가 손을 씻고 있구나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는 것

 

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이 다 對相이 될 수 있고 이중에서 하나만 注視하고 있으면 되는

 

全部를 다 알아야 되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너무 어리석은 질문 같지만 초보자의 어려움을 이해하시고 답변하여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답변>



처음 수행을 시작하면서 알아차림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면 아주 쉬울 것 같은데도 

 

實際로 수행을 해보면 어떻게 해야 해야 하는 것인지 정확하게 그 의미가 다가오지 않습니

 

다. 그렇더라도 자꾸 알아차림을 하다보면 점차 이렇게 하는 것이 알아차림이구나 하고

 

차림에 대한 의미가 점차 정리되어 다가옵니다. 이것은 수행이 발전하고 있다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알아차림이란 빨리어로 사띠(sati)라는 말입니다.

 

이 단어에 대한 정확한 우리말 해석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sati는 두 가지의 큰 뜻을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sati에는 1) 記憶이라는 뜻과

 

             2) 알아차림, 注視, 觀察의 뜻이 함께 들어있습니다.

 

 

이때 1)의 기억이란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고, 현재를 알아차려야하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를 깨어서 알아차리고, 또 그 알아차림이 이어지는 것, 즉 지속적인

 

 알아차림을 할 것을 기억해서 실제로 알아차림, 주시를 하는 것이 sati입니다.

 


그리고 수행이라는 것은 몸, 느낌, 마음, 이라는 네 가지 對相을 알아차리는 것인데,

 

이때 對相을 알아차리는 방법이 위빠사나(vipassana. 분리해서 통찰한다)이면 위빠사나

 

수행이라고 합니다.

 

 

즉, 알아차림이라란 깨끗한 마음의 作用을 일으켜, 身-受-心-法이라는 네 가지 對相

 

分離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洞察하는 것을 身受心法 四念處 위빠사나 수행

 

라고 합니다. 그래서 알아차림(sati)과 유사한 뜻을 가진 우리말은 注視하다, 지켜보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알아차림은 마음의 작용인 52가지 행(行)중에 하나입니다.

 

즉, 네가지 對相을 깨어서 지켜보는 行爲입니다.

 

그리고 이 지켜보는 行爲를 그 瞬間의 마음이 아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알아차림은 깨어있는 행위이고, 이 행위를 마음이 아는 것입니다.

 

이 마음은 선한 마음, 즉 유익한 마음(해탈열반을 도와주는 마음)입니다.

 


 

손을 씻을 때 意圖를 지켜보는 行爲는 알아차림을 가지고 마음을 보는 것이고 (心念處),

 

손에 물이 닿는 感觸을 아는 行爲는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이고, (受念處)

 

찬물을 싫어하는 것을 아는 行爲는 육체적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이며,(受念處)

 

손을 씻는 動作 그 自體를 알아차리는 行爲은 몸을 알아차리는 것이고,(身念處)

 

지금 알아차리는 行爲와 對相 그것을 아는 마음이 每 瞬間 變한다는 事實을 아는 것은

 

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法念處)

 

 


이때 ‘내가 손을 씻고 있구나’하고 명칭을 붙이면서 알아차리는 경우도 있고, 명칭 없이

 

直觀으로 알아차릴 수도 있습니다. 名稱을 사용하는 경우는 對相正確하게 겨냥하는

 

效果가 있고, 名稱을 사용하지 않고 直觀으로 보면 對相性稟을 보는 效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散亂하여 마음이 대상에 집중이 되지 않으면 잠시 명칭을 붙일 수도

 

있지만,窮極的으로 對相의 性稟(法)을 보기 위해서는 명칭을 붙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


위빠사나의 알아차릴 대상인 몸과 마음에는 身受心法 네 가지 대상이 항상 함께 있기

 

때문에 이들이 다 알아차릴 대상이지만, 이들 중에 가장 두드러진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마음은 한 瞬間에 하나밖에 모르기 때문에 同時 全部를 다 알아차릴 수는

 

없습니다.그러나 알아차림이 예민해지면 알아차림의 속도가 빨라서 많은 對相을

 

正確하게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래서 수행은 이래야 한다는 어떤 生覺을 버리고, 對相이 나타나는 대로 알아차려주고

 

다시 나타나는 대상을 또 알아차려주고 하면서 自然스러운 意識의 흐름을 타고

 

알아차림을 이어가는 것이 알아차림의 核心입니다

 

 


그리고 지금 질문하신 내용이 결코 어리석은 내용이 아닙니다.

 

모든 위빠사나 수행자들이 정확하게 알아야 될 내용입니다.

 

실제 수행을 하면서 경험한 내용을 질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