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나는 없다 (3)

장백산-1 2014. 7. 26. 01:19

 

 

 

 

나는없다(3)-우린 그것에 관해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나는 없다 / 바로보기

2013/07/28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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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그것에 관해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당신의 自己 이미지는 그 自體가 하나의 生覺일 뿐입니다....

듣고 있는 存在, 生覺하고 있는 存在는 分明히 있습니다만 누가, 무엇이 그 일을 하고 있나요? 바로 여기에 神秘가 있습니다. 

自己 自身에게 正直해진다면, 당신은 "나"라고 부르는 그것이

그 일을 하고 있다고 斷言할 수 없을 것입니다. ....

 

 感覺 情報를 알아차리는 그것은 무엇일까요? 혼자만의 독백을 듣고 있는 그것은 무엇일까요? 당신이 만들어내는 自己 이미지를 알아보고 그것들에 기만당하지 않는 그것은 누구일까요?  "나"라는 生覺까지도 包含한 그 모든 生覺의 根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知覺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몸이나 頭腦 속에서 그것을 찾아낼 길이 없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지금 이 순간 여기'에 存在합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事實은, 우린 그것에 關해 生覺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여기'에 生覺하고, 보고, 느끼고, 몸을 가지고 있는

'巨大한 神秘'가 存在합니다. 이 巨對한 神秘는

'意識(awareness)'이라는 根本 特性을 갖고 있습니다.

즉, 이것은 生覺과 느낌과 感覺을 意識하고 있습니다.

- 21~22쪽-

 

참으로 극복하기가 어려운 것이 이 肉體가 '나'라는 生覺입니다. 스스로를 個別者로 여기는 視角. 그러나,이 만져지는 肉體는 그냥 식(識)일 뿐입니다. 말하고 듣는 이것이 主體가 있고 客體가 있어서 그 過程 속에서 여러가지 것들이 生成한다는 것이 旣存의 世界觀이었다면, 主滯도 識이고, 客體도 識이고, 그 過程도 識이고, 나타나는 여러가지 現象들이 識임을 體驗的으로 받아들일 때 個別者를 '나'로 여겼던 生覺이 崩壞되기 始作합니다. 

 

마음工夫란 그동안 따로 따로 나눠서 世界를 보아오던 信念의 틀이 崩壞되는 것입니다. 달리

어떤 境地를 얻는 工夫가 아닙니다. 공부 과정에 조금이라도 얻은 것이 있다면 놓아버리십시오.

 

모든 것이 識일 뿐이어서, 어느 것도 實다운 게 없습니다.

우리가 經驗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자, 여기까지는 說明이 됩니다.

만법유식(萬法唯識)이라고 했듯이 모든 것이 識이라면 그 識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이 識이라는 證據를 대보세요?'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제가 여러분들에게 그 증거를 들이댈 수는 없습니다. 그 識이라는 것이 제가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것이라면

기꺼이 드리겠지만, 결코 그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식(識, awareness)을 '참나'라고 하기도 하고, '本性'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 말은 이게 스스로이니 스스로가 確認해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당신을 제가 드릴 수 없지 않습니까? 당신의 本性은 본래 당신에게 갖추어진 것이기에

제가 보여드릴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모든 가르침의 말씀들은 "너(識, awareness)를 봐" 라는 소리와 같다고 축약할 수 있습니다. 自己가 自己를 봐야 가르침의 효험이 있는 것이지, "너를 봐."라는 구절을 암기하고 다닌다고 가르침의 효험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 공부는 實踐의 工夫입니다. 肉體的인 實踐이

아니라 內的인 實踐이지요.

 

내가 나를 봐야 하는데,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瞬間에도 識은 끊어짐없이

發動하고 있다는 것이죠. 쓰는 중에 문득 잘 쓰이고 있는 놈을 確認해야 합니다. 보라고 하지만

보여지는 것을 보는 게 아닙니다. 이미 모양으로 드러난 것을 보는 게 아니라, 모양이 드러나는

것을 通해 드러나지 않는 것을 確認해야 합니다. 根源意識은 모양으로써 스스로의 存在를 證明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머리로는 안되는 일입니다. 머리는 認知와 理解를 要求하고 認知와 理解는 이미 分別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分別되는 것을 떠나 識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 몸이지요.

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 했듯이 하나인데, 우리는 보여지는 것만 보고, 보이지 않는 것은 보지

못합니다. 當然하지요. 보인다는 것은 貌樣을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보여지는 와중에  

보이지 않는 것이 確認될 뿐입니다.

 

確認해 보십시오. "참나가 무엇입니까?" "키보드입니다."

 

"본성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무엇입니까?" "본성"

 

確認이 됩니까? 사실 '키보드', '본성'할 때만 確認되는 것이 아니라, 물음이 떨어지자마자  

역력하게 確認됩니다. 이것은 시작도 끝도 없는 것입니다. 늘 이래왔으니까요. 이 하나가 世上의 全部임이 了達되면 끝나는 것입니다. 여기에 익숙해지는 일만 남았지요. 이 일을 다시 머리로

헤아리지만 않는다면요. 늘 이것은 確認될 뿐이지 槪念化하거나 整理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냥 늘 이 일, 이 일, 이것, 이것, 그래, 그래....나중에는 念頭에 두지도 않아요. 다 똑같은데 일일이 確認한다는 게 우습잖아요. 모든 것이 이 일뿐임이 明白히 確認되면 저절로 푹 쉬어집니다.  

 

우린 이것에 대해 生覺할 수 없지만 늘 確認할 수는 있습니다.

바로 당장에라도요! 

 

당신에게 펼쳐지는 모든 일이 늘 이 일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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