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나는 없다--(5)

장백산-1 2014. 7. 26. 02:16

 

 

나는 없다(5) - 모든 것은 그저 일어난 무언가일 뿐이다 나는 없다 / 바로보기

2013/08/01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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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그저 일어난 무언가일 뿐이다

 

 

 

 

 

 

問題는 生覺 自體가 아니라 당신이 거기에 얼마나 사로잡히는가입니다.....

自身의 生覺을 왔다가 가버리지 않는 어떤 것으로 誤認하면

生覺은 대단한 說得力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나"라고 불리는

이야기는 우리가 반복해서 듣고 또 듣는 레코드와도 같습니다.

 

우리는 生覺합니다. "이것은 나임이 분명해. 왜냐면 이건 나에 

대해 生覺할 때 내가 生覺하는 거니까." 生覺의 이런 習慣的 性格은 우리를 安心시키고 달래줍니다. 하지만 조금만 솔직해진다면 당신이 "나"라고 불리는 그 이야기를 잊어버리는 瞬間들이 있음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나"라고 불리는 生覺의 特別열차를 잊어버리는 瞬間들 말입니다. 그렇게 "당신"이 存在하지 않을 때

조차도 '意識(awareness)'은 여전히 지금 여기에 存在합니다....

 

그렇다면 이 두려움을 經驗하는 主體는 누구입니까?

"당신"이 實際로 存在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두려움이라고

부르고 있는 이름 관념 또한 당신이 경험한 뭔가가 아닙니다.

그건 그저 일어난 무언가일 뿐입니다. 

- 25~26쪽-

 

 

'나'라는 것도 그저 일어난 무언가의 現象일 뿐이다.

이러한 말에 수긍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肉身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저 드러난 現象, 드러난 生覺'이라는 말이 完全히 消化가 되려면 本性에 대한 體驗이 있어야

합니다만, 이러한 말에 수긍이라도 한다면 스스로를 볼 準備가 점점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反面 '나'라는 것 역시 生覺이다는 말에 反論을 提起하고 싶고, 疑問이 있다면, 아직 準備가

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體驗이 없는 狀態에서 說法을 듣는 것은 스스로를 볼 準備를 하는 過程이니 이 期間을 허투루

生覺하지 마세요. 說法을 들으면서 自身도 모르게 生覺이 잦아들고 그러면서 모든 것이

生覺일 뿐이었다는 바른 見解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흔히 體驗을 해야 門안에 들어왔고, 비로소 工夫할 資格이 생겼다고 말들은 하지만

事實 그 以前부터 工夫는 되어져 있습니다. 그것을 確認하는 過程이 남은 것이죠. 그러니

說法을 듣기 前이나, 工夫에 대한 發心을 하기 前이나, 工夫가 무르익어 둘 없는 하나에

확고히 안착한 듯한 때나 本質的으로 아무런 差異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本性에 대한 體驗을 强調하는 理由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分別心에서 벗어나는 體驗을

해봐야 잃어버린 樂園의 存在를 眞心으로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確固히 뿌리를 내리면 거기에 安着하는 일은 時間 문제입니다. 물론 간혹 길을 잃고 엉뚱한 方向으로 나가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요.  그러나 本性에 대한 確認이 없다면 결코 分別心에서 解放되기가 어렵습니다.

分別心이란 本來 따로 있는 것이 아니지만, 그것의 正體를 못보고 그것의 매커니즘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分別心에서 벗어나려면 이것에 대한 미련이 없어야 합니다. 여기에 계속 머물고 싶은 마음이 있고, 分別心의 패턴에 놀아나고 있다는 生覺이 없다면 分別心에서 발을 떼기가 어렵습니다. 分別心에서 벗어나는 일은 分別心의 構造를 明確히 보는 것입니다.  보통의 우리는 모든 것을 分別心이라는

色眼鏡 쓰고 보고 있으면서 그 色眼鏡의 正體에 疑問을 提紀하지 않고 있습니다. 本性의 體驗이란 分別心의 色眼鏡이 瞬間的으로 中心을 잃고 제자리에서 벗겨져 色眼鏡이 사라진 틈으로

백주대낮의 태양빛을 보는 일이라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썬글라스가 저절로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꾸 움직이고 헤매고 발을 굴러야 썬글라스가 떨어져 나갈 確率이 높은 것이지, 안경을 꽉 붙들고 있다면

魂飛魄散할 일이 벌어지지 않는 以上(분별심이 감당하기 벅찬 일) 分別心의 패턴은 공고합니다.

한번 本性을 確認하고 나면 分別心이 어떤 것인지가 점차 分明하게 드러나지요. 처음에는 커다란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本性의 자리에 익숙할수록 微細한 分別妄念들이 드러납니다.

 

그러니 일단 바른 法을 案內하는 말씀에 충분히 익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그 길을

사람들의 말씀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시간은 스스로가 워밍업을 하는 시간입니다. 

설사 앞서간 사람들의 설법을 듣지 않더라도 삶을 통해 現象界의 덧없음을 가슴깊이 알게 된

사람이나, 진실에 대한 갈증이 무르익은 사람은 스스로 준비가 된 것이고요.

 

生覺으로는 도저히 길을 찾을 수 없겠다는 스스로의 결론,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스스로의 결론, 도저히 오도가도 못하는 地境에 處해야 툭 던진 한 마디, 혹은 어떤 意圖하지 않은 狀況에서  스스로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체험을 목표로 돌진한다면

결코 스스로를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체험하겠다고 하는 마음이 벌써 分別心에 속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에고가 두 손을 들어야 참나가 드러납니다. 가르침을 듣는 것은 에고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야.'하는 포기선언을 이끄는 과정입니다. 

 

문득 스스로를 確認하고 보면, 모든 것이 스스로일 뿐임이 점점 明確해집니다.

모든 것에 相對가 없습니다. 現象은 分明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나지만, 밖에서, 안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하지만, 모든 것이 다 스스로의 投映일 뿐입니다.

이것을 참나라고 하든, 깨달음이라고 하든, 不二中道라 하든, 經驗하는 主體뿐이라하든,

의식(awareness)라 하든, 똥닦는 막대기라 하든, 뜰앞의 잣나무라 하든, 무(無)라 하든,

개에게도 佛性이 있습니까? 하든, 부처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입니까? 하든,

무슨 말이 나와도 이것이고, 무슨 生覺이 일어나도 이것이고, 무슨 感情에 휩싸이든 이 일이며,

오늘 참 바쁜 날이 될 것같습니다 하든 이 일이며, 아무 일이 없어도 이 일입니다. 그러니

무더위에 건강하세요해도 다른 말이 아닌 이것이고 이 일입니다

 

모든 일이 本來 아무 일이 아닙니다.

本來 아무 일이 아니면서 모든 일로 明確히 드러납니다.

生死가 本來 없지만, 그래도 生死는 끝없이 계속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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