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나는 없다 (6)

장백산-1 2014. 7. 26. 03:13

 

 

 

나는없다(6)-생각은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것입니다 나는 없다 / 바로보기

2013/08/03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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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것입니다

 

 

 

당신이 生覺하는 '당신 자신'이 選擇을 한 적은 없지만,

그럼에도 選擇은 恒常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누가, 무엇이 내 삶을 살고 있단 말인가?".....

 

生覺이라는 것을 한번 살펴봅시다. 당신은 어떤 生覺을 할지 自身이 生覺을 選擇한다고 生覺합니까? 어떤 生覺을 해야겠다고 그 生覺을 選擇하면 그 生覺이 떠오르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저 生覺이 나는 것입니까? 단 한 生覺도 당신이

生覺해야 하겠다고 決定한 적이 없다면, 그것을 과연

"당신의"生覺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 生覺이 당신 生覺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 생각을을 당신의 책임 아래 이루어진

生覺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生覺은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것입니다.

生覺은 그저 나타나는 것일 뿐입니다.

生覺의 本來 性質이 어떠한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알아차려보십시오.

그리고 自細히 한번 들여다보십시오.

당신의 生覺들 중 어느 정도가 眞實입니까?

그것들은 과연 믿을만 한가요?

당신의 生覺들의 大部分이 거짓이고 믿을 만한 案內者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당신은 生覺들에 興味를

잃어버릴 것입니다....實體가 없는 生覺들로 '지금 이 瞬間의 豊饒로움을 빼앗길 필요는 없습니다. 生覺과 '지금 이 瞬間의 差異는, 幻想과 現實의 差異와 같습니다...

사실 生覺은 우리 自身과 지금 이 瞬間 사이에

幻想의 層을 形成해, 구름처럼 現實을 덮어버립니다...

 

生覺이란 "지금 이 瞬間"의 깨어진 사금파리 한 조각 같은 것일 뿐이어서, 거기에 너무 執着하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다른 모든 것을 놓치게 됩니다. 

- 28~29쪽-

 

 

우리는 살아가면서 살아있음을 實感하지 못합니다. 제가 어떤 분에게 質問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거 맞죠?"  "그렇죠."

"우리는 살아있다는 것을 어떻게 確認할 수 있죠?"

"심장이 가슴속에서 벌렁벌렁 뛰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그렇게 긴 시간과 이해가 필요합니까?

"심장"이란 말이 다 나오기도 前에 살아있음을 바로 確認하게 되잖아요.

살아있지 않다면 '심'이라는 말이 나오겠어요? 기미만 보여도 살아있음을 確認하지요."

 

우리 意識은 本來 實在의 자리에 있으면서 世上을 生覺 分別 判斷 解釋해서 理解로 그림 그리며

그림 속에 빠져 살아왔습니다. 理解는 죽은 그림이에요. 살아있는 現場에 있지 못하고 머릿속에

남겨진 盞想에 빠져 있어요.

깨달음이란 달리 말하면, 생생하게 살아있는 現場에 사는 일입니다. 恒常 變함없는 實在,

恒常 생생하게 살아서 꿈틀대는 實在에 明確히 視線을 주는 것이죠. 사실 이 實在가 없으면

우리 의식 마음이 그림도 그릴 수 없어요. 이 實在가 그림을 그리는 것인데, 우리 모두는

거기에 속아서 그림이 實在한다고 錯覺하지요.

 

無明은 어둠을 뜻합니다. 어떤 어둠일까요? 캄캄한 어둠일까요? 분간 못하는 어둠일까요?

저는 흐리멍텅한 어둠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分別心은 實相을 鮮明하게 보지 못해서

흐리멍텅하게 보기 때문에 생기는 現象이라고 봅니다. 生覺을 하면서도 生覺의 正體를 모르고

生覺 거기에 自身의 存在를 실어서 이리 흔들 저리 흔들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죠. 

 

實相을 明確히 보세요. 거짓된 生覺에 믿음을 주지 마세요. 지금껏 生覺에 依持해서 平生을

살았는데, 그 生覺의 正體가 무엇인지 낱낱이 들여다 보세요. 生覺이 어떤 놈인지요. 우리는

生覺이라는 도둑놈에게 곳간 열쇠를 맡겨놓고 依持하며 살고 있어요. 내 삶의 열쇠를 맡긴

生覺이란 놈의 正體를 正確히 볼 意志도 없이요.  어느 瞬間 불쑥 들어온 생각이란 놈에게

아무 疑心도 없이 내 삶을 내맡겨 버렸습니다.

 

生覺은 하는 게 아니라 宇宙法界의 因緣따라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기 前의 生覺과

지금의 生覺이 한결같은가요? 뭔가 조금이라도 달라지지 않았나요? 이 달라진 生覺은 내가

豫想하고 意圖하여 일어난 生覺인가요? 生覺은 그냥 因緣따라 自身의 業識과 記憶, 思考能力에

맡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내가 어찌해볼 수 없는 것이 生覺이에요.그런 生覺을 내 生覺이라고

할 수 있나요? 그 시시각각 철부지처럼 이리 튀고 저리 튀는 生覺이라는 놈에게 내 存在를

내맡길 수 있나요? 生覺을 믿지 마세요. 어떠한 內容의 生覺이든 당신의 生覺이 아니라 그냥

宇宙法界의 因緣/條件이 어우러져 화합해서 이렇게 저렇게 드러나는 生覺일 뿐이에요.

 

그런데 말이죠. 이러한 철부지같은 生覺이란 놈은 恒常 變化無常하여 믿을 수 없지만, 이 믿을

수 없는 온갖 現象들이 지금 이 瞬間 일어나고 있단말이에요. 이 現象들을 드러내는 어떤 것이 

恒常한다는 느낌은 없나요? 우리가 生覺을 統制할 수 없지만 宇宙法界의 因緣따라 시시각각 

生覺과 感情과 여러 現象들이 드러나잖아요.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입니까? 드러나는 모든 

現象들은 태어나고 사라지지만 이 現象들이 지금 이 瞬間 어딘가 알 수 없는 곳에서 쉼없이

드러나는 일. 否定하고 싶어도 否定할 수 없고 肯定하고 싶어도 肯定할 어떤 物件이 아닙니다. 

그래도 지금 눈앞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끊임없이 推動되고 있다구요.  이것을 정말 싹 쓸어서

否定할 수 있나요?

 

實在를 잡으려고 하지 마세요. 實在는 어떤 드러난 現象이 아니기에 모양이 없어서 잡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確認은 되지요. 지금 이 瞬間의 끊임없는 드러나고 사라짐을 通해서요.

보이지 않는 손의 존재를 의심할 수 없잖아요. 瞬間瞬間 創造의 現場에 있으세요.

創造된 現象인 物件을 따라가다가 虛妄함 속에 빠지지 말고요. 드러난 現象은 반드시 사라집니다. 固定된 實體가 없는 虛妄한 것이니까요. 그러나 創造의 現場은 늘 생생하지요. 宇宙 萬物이 여기

創造의 現場에서 所生하지 다른 데서 所生하지 않습니다.

 

創造의 現場 이것의 存在를 몰록 確信하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생기는 것이 體驗이고 體得입니다. 體得이라고 하는 理由는 언제나 確認코자하면 바로 確認이 되니까요. 찾는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찾는다는 것은 지금 눈앞에 없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찾아나서는 일이지만, 確認은 기미만 보여도 금방 確認이 되는 것이 잖아요. 確認은 바로 눈앞에서 可能한 것이지, 어디 가서 찾아내는 게 아닙니다. 

 

實在는 언제 어디서나 存在하는 것이기에 이리 저리 눈을 돌릴 필요가 없죠. 

눈앞에서 바로 보세요. 뭔가 꿈틀대는 기미가 보이자 마자 바로 確認이 됩니다. 

 

世上萬事가 늘 이 瞬間의 일이어서 깨달음도 이 旬間에 일어나고 妄想도 이 瞬間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直接 맞닥뜨려 보세요. 直接 부딪쳐 보세요. 生覺 속에 숨지 마세요.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에 내가 던질 수 있는 모든 것을 던져버리세요.

우리 뒤에도 앞에도 아무것도 없답니다. 그냥 瞬間瞬間 눈앞에서 부딪치는 일이 全部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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