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나는 없다 (14)

장백산-1 2014. 7. 28. 02:17

 

 

나는 없다(14)-어느 것도 다른 어느 것과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나는 없다 / 바로보기

2013/08/22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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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것도 다른 어느 것과 分離되어 있지 않습니다

 

 

 

 

 

 

 어떤 生覺을 生覺으로 認識하기만 하면 生覺은 치워버릴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生覺은 恒常 그래 왔고 지금도 그러한

'하나임'을 건드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分離는 단지 하나의

生覺일 뿐이며, 恒常 그래 왔습니다. 그것을 알아차리기만 하면 그것을 生覺을 한다고 해서 問題될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몸/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生覺과 느낌과 感覺에 集中하도록

얼마나 잘 條件지어져 있는지를 알아차리도록 하십시오.....

 

느낌은 온전한 眞實일 수 없습니다....느낌은 '하나임'을 받아들이는 데 적절한 道具가 아닙니다. 生覺 또한 '하나임'을 알기 위한 적절한 道具가 아닙니다. 生覺과 느낌은 그것들이 잘 하는

분야에만 쓸모가 있습니다. ... 우리가 말하고 있는 그

'하나인 根源'은 生覺이나 느낌과는 相關없이

'바로 지금 여기'에 있지 않습니까?....

당신은 옳은 答을 아는 것처럼 거기가 어디인지 그것이 무엇인지 實際로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은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온전히 느낄 수 없지만, 그것은 여기에 있습니다.

'巨大한 神秘'가 있으며 그 안에서 모든 것이 일어난다는 事實을 認識하기만 하면, '巨大한 神秘'의 一部만 느끼더라도 아무 問題 없습니다.

 

당신은 이 푹신한 의자를 더 이상 '巨大한 神秘'와 分離된 것으로 보지 않고, 이 의자의 形相에서 '巨大한 神秘'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다른 人間, 하나의 느낌, 하나의 生覺이나 判斷 등 온갖

모습으로 活性化되어 나타나는 '거대한 신비'를 實感할 것입니다... 아무리 달라보여도 어느 것도 다른 어느 것과 分離되어 있지 않습니다. 

- 60~62쪽-

 

 

문득 本性을 體驗을 하고도 分離感에 휩싸일 수 있습니다. 體驗을 하자마자 巨大한 神秘, 卽 實相法界에 合하여

頭頭物物이 다른 게 아님이 明確해지기는 어렵습니다. 그동안 分離의 틀속에 젖어 살아왔기에 그러한 習慣이

금방 녹아 없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本性 體험 以前의 分離感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모든 것에서 分離感을 느끼고 나 홀로 世上에서 뚝 떨어져 나온 아주 微弱한 存在로 여겨지기 일쑤입니다. '孤獨'은 分別的 思考에 사로잡힌 人間이 가진 治癒할 수 없는 病일 것입니다. 그러나 깨달음은 다른 次元의 '孤獨'을 보여줍니다. 모든 것에서 홀로 뚝 떨어져 나온 分離의 孤獨이 아니라, 온 世上, 宇宙森羅萬象이 하나임을 確認하는 겁니다. 이 하나는 相對가 없는 하나이기에 分離感이 存在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른 것처럼 보여지기는 하지만, 다른 게 아님이 確認됩니다. 사람間의 差異도 사라지고 사람과

事物間의 差異도 사라지고, 事物과 生覺, 感情과의 差異도 사라집니다. 無差別적인 하나임이 確認됩니다. 그러니

오로지 홀로임이 確認된 者의 '고독'은 고독이 아닙니다. 외로움이 끼어들 틈이 없으며, 스스로 하나다, 나뿐이야

라고 되뇌일 이유도 없지요.

 

우리가 무언가를 자꾸 確認하는 理由는 그것이 當然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普遍化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과 區別되는 무언가가 있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本性 體驗을 하고도 자꾸 分離感이 드는 理由는 分別로서

自身의 體驗을 揆明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表現하자만, '나'라는 個人이 사라지지 않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고'는 本性 體驗을 했다고 쉽사리 조복되지 않습니다. '나라는 生覺'은 뿌리가 깊어서 쉽게

와해되지 않습니다. 이 '나'가 活動하면 分離感이 表出됩니다. 이 '나'가 깨달음을 對相化하려 듭니다. 나의 입맛에 맞게 깨달음을 整理하려 듭니다. 本性은 整理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本性은 本來 그 자리에 있었고 앞으로도

變치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꾸 自己가 이룬 業積인 것마냥 깨달음을 손에 넣으려고 합니다. '내가 깨달았어. 내가 體驗했어.'와 같은 에고의 목소리가 귓가를 어지럽히지요. 이 목소리에 속아 넘어간다면 바로 分離의 길로 접어드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려 하지 마세요. 그냥 내버려두세요. 처음에는 그냥 體驗한 자리에 죽은 듯 있는 게 상책입니다.

낯선 곳에 익숙해지는 時間이 必要하지요.

 

내가 에고가 我相이 깨달을 수는 없습니다. 本性이 깨어난 것이지요. 나와 깨달음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나라는 生覺' 我相 에고가 無力해져야 합니다. 

 

 

體驗을 하면 分離感에 휩싸이다가도 문득 精神을 차리면 如如한 자리가 드러납니다. 分別妄想 속에 있다가도 

금방 아무 문제가 없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체험을 한 것같은데 시간이 지나니 체험한 자리가

사라져버렸다면 境界를 보고 체험했다고 여긴 것입니다. 境界는 時間이 지나면서 變用되고 달라지고 사라지지만, 本性은 時間이 지나도 恒常 變함이 없으며, 이것밖에 없음이 더욱 確固해질 것입니다.   

 

 체험 이후의 工夫는 確認한 자리에 익숙해지는 일입니다.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체험한 자리도 따로 없고

境界도 따로 없어서 무엇에도 拘碍될 게 없음이 明確해지는 瞬間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옳은 답을 아는 것처럼 거기가 어디인지 그것이 무엇인지 실제로 알 수는 없습니다.

 

온 누리가 하나임기에 正答이 따로 없습니다.온 누리가 如如하기에 이것이 머무는 場所가 따로 없습니다.

온 누리에 充滿하여 가득하기에 그것만을 가려내어 알 수가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이 일일 뿐입니다.

옳은 答을 生覺해내려 애쓸 때도 이것을 떠나있지 않지요. 깨달음을 찾아 여기저기 여행을 떠나더라도 

발걸음 하나하나가 바로 이 일이지요. 지금 한 글자 한 글자 읽어감에 바로 이 일이 確認될 뿐입니다.

 

 

당신은 이 푹신한 의자를 더 이상 '巨大한 神秘'와 分離된 것으로 보지 않고, 이 의자의 形相에서 '巨大한 神秘'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다른 인간, 하나의 느낌, 하나의 생각이나 판단 등 온갖 모습으로 활성화되어 나타나는

'거대한 신비'를 실감할 것입니다... 아무리 달라보여도 어느 것도 다른 어느 것과 分離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기 저기  둘러 보아도 이 아닌 것을 볼 수 없습니다.

 

境界를 따라가지만 않는다면,

말속에서 뜻에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生覺함에 生覺속을 헤매지만 않는다면,

느낌이 어디에서 일어나는지만 바로 본다면....

 

 世上萬物이 코 앞에서 스스로의 빛으로 創造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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