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보살계의 근본 취지

장백산-1 2014. 8. 5. 20:58

 

 

 

 

 

보살계의 근본취지[受菩薩戒法序] 강의 11

 

以梵網經云   一切有心者 皆應攝佛戒라하시니 且稟人者  誰不有心이리오

凡成佛者   皆從心現이니   所以釋迦出世하사   開眾生心中佛之知見하시고

達磨西來하사   直指人心  見性成佛하시니라 

 

[원문] 그러므로 梵網經에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부처님의 계[佛戒]에 포섭이 된다.”고 하시니라.

그리고 또 세상에 사람 된 者  어느 누군들 마음이 있지 않겠는가.

 

무릇 성불한다는 것은 모두가 마음으로부터 표현되는 것이다.

그래서 석가모니부처님은 세상에 오시어 중생들의 마음 안에 있는 부처의 지혜를 열어서 보여 주시고,

 

달마대사는 인도에서 중국에 오시어 사람들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서 그 性稟을 보고 부처를 이루게

 

하였다.

 

[해설]

 

영명연수선사는 사람이 곧 文殊菩薩이며 普賢菩薩이며 觀世音菩薩이며 부처님이라는 이 事實을

 

自身의 個人的인 見解로 설명하지 않고 철저하게 經典의 말씀을 인용하여  理解시키고 있다.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아무리 훌륭한 조사스님들의 마음이라 하더라도

석가모니부처님을 더 높이 믿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서 앞에서는 梵網經과 華嚴經을 引用하였고, 또 다시 범망경을 인용하여

보살계, 즉 부처님 계가 우리들 범부중생들의 마음속에 모두 포섭이 된다는 것을 다시

증명하여 밝혔다.

 

“범부중생들의 마음”이라고 하였으니 이 세상에 사람 된 자로서 마음 없는 이가 누가 있겠는가. 

사람이란 마음을 뜻하는 것이고 마음이란 또한 사람에게 있으므로 해서 마음이라 한다.

만약 마음이 없는 몸뚱이뿐이라면 그것은 송장이지 사람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이라는 말 속에는 마음이 함께 포함되어 있고

 

마음이라는 말 속에는 사람을 함께 지칭하고 있다.

성불(成佛)이라는, 卽 부처가 된다는 뜻은 설사 무엇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지만

 

설사 달라지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도 역시 마음으로부터 나타남이지

 

그 마음 外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법화경(法華經)에서 말하기를 “석가모니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시어 중생들의 마음 가운데

 

있는 부처의 智慧를 열어주고 보여주고 깨닫게 하여주고  들어가게 하였다.”라고 하였다.

비록 열어주고 보여주고 깨닫게 해주고 들어가게 해 주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본래로

 

사람 사람들이 이미 다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한 것이라서 열어주고 보여주고

깨닫게 해주고 들어가게 해 줄 일이 아니지만 방편으로 表現하자니 그렇게 밖에 달리

말을 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마치 남의 주머니에 있는 것을 보고 “당신의 주머니에 무엇이 있군요.”라고 하는 식의

참으로 싱거운 사람의 말에 불과하다. 조사가 말씀하기를 이와 같은 原理에서

 

“人人이 本來부터 갖추고 있으며 個個가 完全無缺하다.”고 하였다.

 

달마대사(達磨大師,?-528)는 중국의 남북조시대에 중국 선종(禪宗)을 창시한 인물이다.

당시의 불교와는 많이 다른 坐禪을 통하여 불교의 바른 가르침을 실천하는 새로운 불교를 강조한 분이다.

남인도 향지국(香至國)의 셋째 왕자였으나 후에 대승불교의 승려가 되어 선불교를 달통하고

 

서기 520년경 중국에 들어와 북위(北魏)의 낙양에 이르러 동쪽의 숭산 소림사에서 9년간

 

면벽좌선(面壁坐禪)하고 나서 제자 혜가(慧可)에게 禪法을 傳授하였다.

 

영명연수선사는 달마대사가 왜 중국에까지 왔겠는가?

흔히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인가?[如何是 祖師西來意]”라는 표현으로

인구에 무척이나 많이 회자되는 사건이다.

그 일도 역시 華嚴經의 가르침이나 法華經의 가르침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서 그 마음의 性稟을 보게 하고 부처를 이루게 한 것일 뿐

 

다른 의미는 없다고 하였다.

만약 부처님의 안목과 조사의 안목이 다르고 가르침도 다르다면 서로가 전혀 관계없는 사이가 되고 만다.

마음이 같고 眼目이 같고 가르침이 같은 것은 너무나 當然한 理致다.

 

달마대사가 처음 중국에 왔을 때 양나라 무제라는 임금이 매우 환대하여 맞아드렸다.

양나라 무제는 스스로 가사를 입고 왕궁에서 경전을 강설하고 큰 사찰들을 무수히

지었으며 출가 수행하는 스님들을 많이 길러내어 불교를 크게 흥왕시킨 분이다.

그래서 그를 불심천자(佛心天子)라고 부른다.

달마와 양무제가 처음 만났을 때의 대화가 너무나 유명하다. 우리는 그들의 대화에서

佛敎의 眞實이 무엇인가를 確然히 알 수 있는 열쇠를 찾는다.

양무제는 달마대사를 만나자 마자 자신이 그동안 쌓은 온갖 불사(佛事)의 功德이 얼마나 많은가에 대해서

 

자랑삼아 물었더니 달마대사는 전혀 功德이 없다고 하며 일언지하에  부정하였다.

즉, 眞正한 功德은 自身의 內面에 이미 存在하는 그 마음이 가장 큰 功德이며 福德이며 神通이다.

눈에 보이는 무수한 사찰과 경전을 강설하고 출가 수행하는 사람들을 수없이 길러낸 그런 功德은

 

한 낱 造作에 불과한 것이며 眞實한 것이 아니므로 虛妄하고 無常한 것이기에

 

그런 功德을 유루복(有漏福)이라 한다.

대사의 안목으로는 도저히 공덕이라고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

 

불교는 사람 사람들의 內面에 이미 存在하는 本性의 偉大性에 눈을 뜨게 하는 것이지

 

그 외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幸福이라는 것도 역시 그렇다. 幸福은 어디서 오는 것이 아니다. 幸福은 우리들 自身의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한 모습인데 그것은 이미 내 안에 存在하고 있었다는 事實이다.

그러한 內容을 영명연수선사는 菩薩戒의 근본취지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간략히

 

이끌어 와서 讀者의 바른 眼目을 열어주고 있다.

보살계를 통하여 眞正한 佛敎가 무엇인지, 人間의 眞正한 價致가 무엇인지를 바로 알라는 뜻이리라.

가져온 곳 : 
카페 >무진장 - 행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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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해솔|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