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의 천수경 강의 제11강 _ 십악참회(口業) 영상법문 녹취록
아 오늘 지난번에 초하루 기도랑 일요법회가 겹쳐지면서 천수경 강의를 그때 지난번에 했었는데요. 그 천수경 강의를 좀 마저 끝내고 다른걸 하는게 좋을 것 같아서일단 천수경 강의를 하던 부분을 좀더 하고 마치겠습니다.
지난번에 두가지 십선게 십악참회하는 부분에서 살생중죄금일참회와 투도중죄금일참회까지를 했었습니다.
오늘은 사음중죄금일참회인데요. 여기까지 이 세가지가 몸으로 짓는 세가지 惡業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몸으로 지은 세가지 重罪를 금일 참회합니다.하고 천수경을 독송할 때마다 늘 身口意 三業으로 지은 죄업을 언제나 참회하고 있는 것이죠.
세번째가 邪陰重罪今日懺悔인데, 이것은 우리가 알다시피, 소극적으로는 불사음 삿된 음행을 하지 않고 適極的으로는 올바른 異性關係 正陰의 淸淨한 性生活을 한다.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삿된 사음을 하지마라 이러면 이제 내 배우자 이외의 다른 어떤 다른 사람과의 삿된 異性關係 이런 것들을 이야기 하죠. 그래서 이런 것들을 당연히 하게 됐을때는 우리 그렇게 생각해보면 되죠.
내가 만약에 쉽게 말해 바람을 폈다. 그러면 다음생이나 나중에 아니면 내 자식이나누군가가 나중에 가정을 이루었을 때 똑같이 바람을 피우는 사위나 며느리를 만난다. 아니면 내가 다음생에 내 아내나 내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 그런 것을 받았을 때 내가 어떨까? 왜냐면 언제나 같은 일이 내게 벌어지거든요.
내가 行爲한 것이 그대로 내게 벌어지는 것이 因果應報이기 때문에 내가 行爲한 것은 그대로 나에게 되돌아 온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전에 제가 한번 말씀을 드린 것 같은데, 어 예전에 어떤 분이 쉽게 말해서 바람을 피우고 계시는데, 그거에 대해서 저한테 상담을 좀 하셨던 분이 계셨는데 그 분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너무 괴로워서 힘드신 거예요. 바람을 안 필때는 그 사람이 만나고 싶어서 괴로워 죽겠고 그러면 만나면 안되겠다 싶어서 안 만나고 있을 때는 안 만나니까 괴롭고 그리고 이제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만나려고 저 멀리 멀리 한 두시간 거리 더 멀리 외곽에 가서 몰래 만나가지고 데이트도 하고 하는데 만나서 데이트를 하면 이거 왠지 모르게 누군가에게 걸릴 것같은 걱정이 되니까또 근심 걱정이 되는거예요. 그래서 만나면 만날 때 항상 초조하고 불안하고 근심걱정 되고
또 집에 돌아와서 아내한테 온갖 핑계를 대야되니까 근심걱정이 되고 자식들 앞에도 괜히 면목이 없고 이 도저히 이렇게 사니까 사람이 사는게 아니라서 이런 진실하지 못한 마음 가지고는 살 수가 없겠더라는거죠. 그래가지고 그래 이러면 안되겠다. 하고 탁 정리를 하고 났더니 또 안 만니까 괴롭더라는거예요. 그러니까 아예 여러분들 지금 없을 때 없을 때가 좋더라는 겁니다.
괜히 딴 사람들 요즘에 얘기 들어보니까 애인이 저 결혼하신 연세 드신 분들 중에도 따로 또 애인 있는 분들이 있다.라는 얘기가 많이 있기도 하던데. 그 부러워할 게 없다. 있으면 다 고뇌고 번뇌고 그게 고뇌고 번뇌가 아닌 사람은 그게 또 문제가 있겠죠.
그래서 삿된 음행을 하게 되면 당연히 내가 그러한 果報를 그대로 받게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아프게 상처를 주는 일인 것이죠. 그래서 내가 누군가에 상처를 주게 됐을때에는 그대로 나에게 그 상처가 돌아 올 수 밖에 없는 것이겠죠. 그래서 다행히 삿된 음행을 하지 않고 淸淨한 生活, 法界를 莊嚴하는 올바른 生活을 한다.
또 이 청정한 생활이라는 것이 바로 부처님 법문을 듣고 가장 청정한 어떤 법문을 듣고 청정하게 身口意 三業을 잘 닦아가는 어떤 그런 삶입니다.
그 本生經이라는 경에 보면 연상의 여인은 어머니로 알라. 중년의 여인은 누이로 알라. 젊은 여인은 딸로 보라.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하여 불제자들은 젊은 몸이면서도 欲情에 이끌리지 않고 自身의 몸을 깨끗이 保全한다. 하는 경전이 있습니다.
이처럼 어떤 愛欲이라고 할까요? 연세 많이 드신 분들 또는 보살님들 중에 쉽게말해서 결혼도 했다가 이혼도 하고 또 남자도 만났다가 이혼도 하고 이렇게 해보신 분들 하고 대화를 해보니까, 그 분들이 그런 얘기를 하시데요. 이 나이 되니까 이 뭐 남자 사랑 이거다 쓸데 없는거라는걸 이제 깨닫겠다고 다 소용없는거고 뭐 사랑이거 뭐 세상의 남자들은 거기서 다 거기고 아무리 잘났어도 얼굴 뜯어먹고 사는 것도 아니고 다 거기서 거기더라는 이렇게 얘기를 하시더라구요.
그런데 거사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뭐 바람도 피워 볼만큼 피워보고 뭐 연애도 해볼만큼 해보고 이랬던 분들이 이런 얘기를 하세요. 뭐 세상에 아무리 잘난 여자라고 해도 다 거기서 거기고 늙으면 똑같이 다 늙어 가는거고, 그 매력이라는게 어데까지 언제까지 가겠는가 이렇게 얘기를 하시던데요.
事實은 가만히 生覺해보면 우리가 여러분들이 여러분 자식들이 콩깍지 끼여가지고 여러분이 봤을때 도저히 아닌데, 얘는 정말 아닌데, 본인이 콩깍지가 꼈을때는 심지어는 남자가 그 여자한테 폭력을 쓰는데도 불구하고 좋다고 결혼하겠다는 사람도 있다고 그래요.
뭐 우리가 봤을 때는 어르신들이 봤을 때는 이거는 도저히 아닌데, 콩깍지가 끼여있으니까, 이거를 아무리 아무리 도시락을 싸들고 말려도 그냥 좋다고 하잖습니까? 그것이 내가 그야말로 탁 애욕에 사로 잡히고, 집착에 사로잡히게 되었을 때는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로 보지를 못하게 되죠. 그사람의 좋은 점들만이 눈에 탁 콩깍지가 씌여서 보이게 되고 뭔가가 쉽게 말해서 있어 보이고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냥 그런 사람인데 내가 갑자기 딱 사랑에 빠지게 되면 그 허물까지도 좋아 보인다 말이죠.
근데 사실 진짜 여러분 人生을 살아 보시니 그러시잖습니까? 世上 살아보니까 진짜 그렇게 막 미친듯이 내가 정말 모든걸 포기하면서미친듯이 정말 이렇게 할만한 그런 異性이 어디있겠습니까? 뭐 대단해 봐야 까짓것 뭐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그러나 제가 이것을 무시하라는 소리가 아니라,내가 삿된 음행의 대상으로 불사음의 대상으로 삼을 만큼의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있는듯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말이죠.
연예인들 막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단 말이죠. 옛날에 뭐 피디분이 우리절에 나왔을 때, 그 분 얘기 들으니까, 이 분 막 열변을 토하면서 TV에 나오는 누구누구누구 얘기를 하면서 정말 착하고 정말 천사 같고 이미지가 너무 좋은 이런 연예인들이 이것만 딱 끝나고 뒤로 가면 입에서 쌍스러운 욕이 막 나오는데, 그 말 한마디 들으면 정말 정이 다 떨어진다고 오만정이 다 떨어진다고..,
그러니 남자들은 그걸 모르니까, 이게 막 天使줄 알고 좋아한다고 하면서 속이 터진다는 얘기를 하더라구요. 정말 아름다워 보이고 예뻐 보이고 뭐 착해 보이고 해도 저는 그래 보이데요. 이 아이들이 그렇게 참 착하고 예쁘게 막 보이는데 갑자기 그냥 아무리 예쁘고 잘나 보여도 거기 입에서 거친 욕이 막 나오고 그러면 아~ 참 가슴이 아프고 이거 참 답답하고 참 가슴이 아프데요.
그래서 우리가 정말 그렇다고 해서 콩깍지 끼는 사랑을 하지 마라는 건 아닙니다. 여러분들 자식들이 콩깍지 낀 사랑을 할 때는 내버려 둬야됩니다. 내가 아니라고 해서 뭐 해도 안된다 말이예요.
이 부모님들 같은 경우 무슨 점을 보고 나서 그 점집에서 결혼하면 절대 안된다 그랬다. 그러니까 결혼 안시켜 버리요. 그래 가지고 그 결혼을 안시키고 점을 보고 나서 결혼 안시켜 가지고 이 여자가 그 점 본 사람을 뭐 이상한, 이상한 절에서 이상한 스님이 점을 봐줬나봐요. 그런데 결혼 안된다. 큰 일 난다. 이렇게 얘기를 했나 봅니다. 그런데 그 스님을 이제 고소 해가지고 그 스님이 승적을 박탁당하기도 했었어요.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점집은 더 심하죠.
정~말 어리석은 짓입니다. 점을 보고서 점이 안좋으니까. 두 사람을 점괘라는거 하나 때문에 결혼을 못하게 한다. 정말 이건 어리석은 일이죠. 만의 하나 그 사람 둘사이에 정말 결혼하면 안 될만한 어떤 業으로 매어 있다. 그러니까 그 두 사람이 참 결혼해가지고 정말 고통을 당할 業이다.그런다 할지라도 본인이 결혼 하겠다하고 본인이 좋다고 하면 콩깍지가 꼈으면 그건 왜 낀거겠어요. 콩깍지가 꼈다는 것은 그것은 그 두 사람의 業이기 때문에 그래요. 因緣, 因緣 그 두사람의 因緣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 두사람이 함께 해결해야 될 今生에 宿題가 있는겁니다. 課題가 있는 거예요. 두 사람이 함께 가난을 겪어 가면서 그 힘든 과정속에서 어렵게 어렵게 힘들어서 살아가고 그것을 두사람은 어찌 보면 합의 하고 합의 해서 우리 이런 어떤 힘든 일이지만 우리 겪어내보자. 이런 마음이 있을 때 결혼 하는 것이고, 그런 걸 堪當하고 감쌀 수 있다라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게 하나의 業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쉽게 말해서 이생에 와서 풀어야 할 삶의 과제고 숙제 일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무조건 하지 못하게 하면 좀 극단적으로 얘기를 하면. 그 두사람의 이 業을 함께 한번 이 힘든 業을 함께 이겨 내보고자 하고 이 業을 이번 生에 탁 털어내고 이 業을 털어냄으로써 보다 깨닫고 盛熟하기 위해서 이生에 왔는데 그걸 못하게 해버리면 또 다른 방식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단 말이예요. 또 다른 方式의... 또 다른 業이 찾아 올 수 있다 말입니다. 또 다른 방식으로...
예를 들면, 다른 사람과 결혼해 가지고 조건 좋은 사람과 결혼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 사람이 사기를 쳤다든가, 아니면 아주 그 사람이 아주 형편 없는 사람이였든가, 내 딸을 두들겨 패는 사람이라든가, 아니면 괜찮은 사람인데 결혼해서 자식을 낳았는데 자식이 이상하게 됐다든가. 사고가 났다든가,
이를테면 우리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어떤 흐름, 탁 거스를 수 없는 흐름들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내 慾心 때문에, 내 執着 때문에 기어이 그 흐름을 틀어 막으려고 하는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는데, 그래서는 안된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그 또한 그들이 감당해야될 業이라면 내가 그 흐름을 감당해 주는 것이 그 저 정목스님이 그러셨나요? 감당하겠다! 뭐든지 힘든 일, 괴로운 일, 답답한 일, 어려운 일들이 오면 그냥 외쳐라. 내가 감당하겠노라고 외쳐라. 이렇게 얘기를 하셨던데.
그걸 왜 바로 許容하고 왜 堪當합니까? 삶을 왜 감당합니까? 힘든 데 왜 감당하고, 왜 받아들이고, 왜 수용하고, 왜 허용합니까? 삶 그 自體가 眞理이기 때문에 그런거예요. 諸法實相이기 때문에...
뭐랍니까? 그 法界, 法界 이러는데 一塵法界라? 하여간 참된 하나의 참된 法界다. 이런 表現을 씁니다. 내 삶이 드러나 있는 이 現實世界 自體는 그야말로 참된 法界의 消息이다. 우리가 그러나 그 法界가 나에게 주려고 하는 깨달음을 다 理解하지 못 할 뿐이지... 그 理由, 그 法界의 消息을 아는 賢者의 視線에서 봤을 때는 삶에서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 하나도 없다라는 말이죠.
그러고 나서 다음번 몸으로 짓는 세가지 악업 살생과 투도 도둑질과 사음 삿된 음행 이 세가지가 몸으로 짓는 대표적인 세가지 삿된 잘못이고 이것이 몸으로 짓는 것이 죄업이 가장 강한 것이죠. 가장 해서도 안되는 왜냐하면 머리속에 맴돌 때는 일단 머리속에 있고 현실이 되지 않아서 남들에게 피해는 당장 안주지 않습니까?
그런데 몸으로 딱 벌써 業을 저질러 버리면 이거는 살생도 투도도 사음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 말이죠. 그러니까 강력한 피해를 실질적으로 딱 저질러 버리는게 되니까,이거는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죠. 그래서 오계 가운데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가 살생, 투도, 사음 세가지가오계 가운데 가장 중요한 세가지가 1, 2, 3번으로 나온 겁니다.
그 다음이 불망어과 불음주라는 것은 입으로 짓는 것중에 가장 해서는 안되는 것 뜻/마음/의식으로 짓는 것중에 가장 우리에게 直接的인 打擊을 주는 것이 두가지를 더 포함한 거거든요.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거 가장 直接的인 果報가 돌아오는 것이 바로 몸으로 짓는 業입니다. 물론 意業이 가장 根本이 되지만 몸으로 짓는 업은 당장에 저질러 버리는 거니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그렇다.
그 다음에 네가지가 네가지 십악 참회할 것 중에 네가지가 입으로 짓는 네가지 업입니다. 첫번째가 망어인데요.망어는 망령된 말이다. 그래서 거짓말 하는 것, 이런 것을 의미합니다. 거짓말을 많이 하면 남의 놀림을 받는 과보를 받는다. 소극적으로는 不妄語하고 적극적으로 바른말 正語를 한다.
正語라는 말은 거짓말이 아닌 참된 말이죠. 世上에서 가장 참된 말이 뭐겠습니까? 바로 부처님 말씀, 경전의 말씀, 조사어록 이런 말들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바른 眞理의 말들을 입에 담고 법을 설하고 법을 가르쳐주고 이렇게 하는 것이 불망어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소극적으로 실천할 때는 망어하지 않는 것이지만,적극적으로 실천할 때는 참된 진리의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펴는 것, 이 또한 적극적인 불망어의 실천이기도 하다.
거짓말을 많이 하게 되면, 우리 마음속에 眞實되지 못함을 演習하게 되겠죠. 마음이 진실하지 못한 것을 자꾸 연습하게 되니까, 자꾸 뭔가 숨기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진실 되지 못한 얘기를 자꾸 하게 되니까,탄로 날까봐 두렵고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이 자꾸 마음속에서 演習이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불안하고 초조하고 두려운 것이 자꾸 演習되니까, 숨기는게 자꾸 演習되니까, 내 人生에 앞으로 登場할 것이 지금 내가 그 마음을 演習하는 거예요. 그 마음을 演習하게 되니까, 앞으로 등장하는 내 인생속에서 자꾸 불안한 일이 생기고, 초조한 일이 생기고 자꾸 자꾸 뭔가를 더 숨겨야될 일이 생기고 자꾸 거짓된 말을 더 해야되는 일이 자꾸 생기고 그래서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또 다른 거짓말을 끊임없이 낳을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법구경에 보면, 오로지 입을 지켜라. 무서운 불길같이 입에서 나온 말이 내 몸을 태우고 만다. 일체중생의 불행은 그 입에서 생기나니, 입은 몸을 치는 도끼고, 몸을 찌르는 칼이다.
어~ 여러분들 이런 일들이 있죠. 나는 별생각없이 누구의 단점에 대해서 여기 절이니까. 예를 들면 우리절은 전혀 안그러는데요.그 보통 절에 다니면 그런 일이 정말 많습니다. 모든 단체가 마찬가지예요. 단체들이.
단체에 있으면 야 저쪽 사람들은 뭐 이렇고 저렇다는 둥 뒷말 막 하고 저 사람은 이러니 저러니 하고 뒷말하고 또 심지어는 임원들 같은 경우 뭔 일을 할때 저 임원단들이 이렇다 저렇다더라 뒷말을 막 하고 이런 일들이 더러 더러 집단 단체 생활을 하다 보면 있단 말이죠.
그런데 야 임원들이 뭐 이런 잘못을 했다. 하고 얘기를 하는데, 별 생각없이 한거예요. 이사람은 이분은 그렇게 크게 심각하다고 생각 안했지만 모였으니까, 이얘기 저얘기 하다보니까 그야뭐 그 얘기 정도야 해도 되고 않해도 되는 말이고 그 정도야 사실은 그 정도의 실수는 누구라도 할 수 있고, 또 어찌 보면 내가 봤을 때는 좀 잘못된 것이지만 누군가가 봤을 때는 그게 잘된 것일 수도 있는, 이 정도는 넘어가 줄 법한 큰 잘못이 아닌, 이런 거지만 얘기하다 보면 이제 그런 얘기가 나온다 말이죠. 자신은 별 생각없이 맞어 이건 잘못된 것 같애 하고 한두마디 했습니다. 별생각 없이.
그런데 그 다음 주나 그 다음 주에 절에 딱 나와 보니까, 난리가 난거예요. 야 이런 얘기가 들리더라. 우리가 야 뭐 임원들이 엄청나게 잘못한 것처럼 엄청난 소문이 도는 것처럼 얘기가 되고 사람들이 얘기를 하더라. 신자들이 얘기를 하더라. 이러면 갑자기 전 신자들이 난리가 났더라. 노발대발 하더라. 이런 얘기까지 된다 말이예요.
왜 그러냐 하면? 말이라는 게 에너지를 갖습니다. 힘을 가집니다. 말은 내 안에서 그냥 맴돌고 있을 때는 힘을 가지지 않는데, 입을 벌려서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 이거 갑자기 심각한 게 돼버려요.
내 마음속에는 심각도 5정도의 심각도를 가지고 얘기 했을 뿐인데, 이 말이 딴 사람에게 들리면 이게 20, 30 정도의 심각성를 가지고 들리기 시작하는데요. 이 사람이 제3자에게 또 얘기를 했단 말이예요. 그러면 이건 갑자기 50프로 70프로 80프로 100프로의 무게감을 가지고 심각성을 더해 가지고 돌기 시작합니다. 또 다른 있지도 않은 말까지 부풀려진 채로 그러니까 나중에 두,세사람만 건너가면 엄청 심각한 말이 돈 것처럼 이 사람들이 엄청 잘못한 것처럼 이렇게 돌기 시작한다 말이예요. 이런 일들을 많이 봤습니다.
그래가지고 난리가 났어요. 신도님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여기를 얘기하는 게 아니예요. 전혀 전혀 여기에는 그런 일이 없습니다. 지금 난리가 나가지고 제가 이제 모아기지고 전체적으로 모아서 한번 얘기를 했었어요. 그리고 처음 어디서부터 나왔는지를 찾아가지고 보니까 이분이 얘기를 했길래 그분을 여쭤봐서 그렇게 심각한 일이 진짜 있었습니까? 하고 여쭤봤어요.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 분은 정말 아무 무게감없이 아주 가볍게 그것도 되게 좋은 의도로 뭐냐면? 이분들에게 이런 얘기를 전혀 안해도 되지만 내가 약간의 이런 마음이 있었으면 걔중에는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도 누구 누구 정도는 있을 수 있으니까, 얘기 안하는 것 보다는 임원분들에게 얘기하게 되면 임원분들이 조금 더 배려할 수 있겠구나해서 좋은 의도로 아주 가볍게 이건 뭐 전혀 무게감을 가지지 않고 가볍게 얘기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얘기가 두번 세번 거치면서 엄청난 심각한 일처럼 부풀어진다 말이죠. 이런 일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지간한 말은 어지간한 이것이 정말 도움이 되는구나 이러지 않을 말 같으면 말을 조심해서 해야되죠. 내입에서 나온 것이 도끼가 되어서 다시 나를 치게 돼있거든요. 이렇게 돌게 되면 나중에 그 소문들이 이사람은 처음에 좋은 의도로 했겠지만, 나중에 돌고 돌다 보면 나중에 이 사람을 나쁜 사람처럼 매장을 시키기도 하고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그러잖아요. 말한마디 자신은 별 생각없이 했던 말인데, 돌고 돌고 돌아가지고 이 아이를 매장을 시켜버립니다. 왕따를 시켜버려요. 반에서 제는 아주 나쁜 말을 뒤에서 하는 애다. 이래가지고 막 왕따를 시키고 그 아이와 대화를 나눠보면 그 아이들은 정말 억울하다 말이죠. 이런 일들이 정말 많죠.
부부지간에 이런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남편은 남편의 입장이 있고 아내는 아내의 입장이 있다 보니까, 아내는 집에서 이렇게 계시니까, 남편이 집의 일을 좀 도와줬으면 좋겠는 입장이 있고, 남편은 내가 밖에서 너무 힘들고 밖에서 욕 얻어먹고 이사람들한테 이리치고 저리치고 막 힘들어서 집에서 만이라도 편히 좀 쉬고 싶고 서로 입장이 다른 상태니까, 거기서 풀어야지 이걸 밖에 나가가지고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막 하다보면 서로 입장이 다른 거지 우리가 그렇습니다. 한쪽의 입장만 들으면 안되는 이유가 그거죠. 한쪽의 입장만 들으면 저 사람이 정말 나쁜 놈 한다 말이죠.
보살님들의 얘기만 들으면 그 보살님 남편은 정말 나쁜 놈 같단 말이예요. 나중에 알고 나서 거사님 얘기를 들어보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고, 그 럴만 하고 또 이유가 있었고 그런데 또 사람들의 성격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일일이 본인이 이러이러한 좀 힘든 일이 있어서 그때는 좀 못했는데, 그걸 일일이 하나하나 다 꼬치꼬치 아내한테 얘기하는 것도 좀 그렇고 때로는 내가 좀 윗 사람한테 많이 혼난거 이런거 가지고 아내한테 얘기할 수도 없고, 그러다 보니까 그때는 기분이 안좋아서 그렇게 했는데, 그걸 또 이해 못해줬다. 이렇게 얘기를 하다 보니까, 제입장에서는 참 그렇구나. 그럴 수 있구나. 그런데 아내는 그런 자세한 입장을 또 모른다 말이죠.
또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 입장에서는 집에서 막 난리가 나고 자식들 하고 이런 일 있고 저런 일 있고 그냥 막 옆집 아줌마 하고도 싸우고 뭐 온갖 일들이 있는데, 남편이 와가지고 갑자기 버럭 화를 내버리면 또 화가 나고 그런데 이제 그 안에서 해결 돼버리면 문제가 아닌데, 바깥으로 가버리면 이 말이 아주 좀 안좋게 돌더란 말이예요.
그래서 이 말이라는 것이 정말 위험합니다.그 수많은 사건 사고들이 다 말에서 나와요. 아이들 고등학교 때 왕따가 되고 힘들어 하고 죽고 싶어 하고 이러는 것도 보면 말에서 부터 시작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진짜 말을 어떻게 할 것이냐? 이 말이 그 집안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놔요. 어떤 거사님이 애들 있잖아요. 초등학생 애들이, 중학생 애들이 욕을 엄청 잘하는 아이들이 있잖습니까? 그 뭐 어지간하면 백프로입니다. 부모님이 입이 거칠 확률이 높습니다.부모님이 입이 거칠 확률이 높아요.
제가 얼마전에 목사님 신부님하고 같이 밥을 먹으로 식당에 갔어요.그 저쪽편에서 시끌시끌 한겁니다. 난리가 났어요.거기 식당안에도 사람들이 엄청 많은데, 저쪽에서 난리를 치는 분이 한 분 계시는거예요. 이렇게 멀리 이렇게 쳐다 봤더니만 정말 참 어이없는 일을 보고 제가 정말 가슴 아팠었어요.
아내하고 자식하고 서너명이 온겁니다. 자식이 그 옆에 있고 아내도 그 옆에 있어요. 그런데 이 분이 아주 별거 아닌 일로 음식이 늦게 나온다고 막 소리치고 난리를 친거예요. 그래가지고 인제 늦게 나왔는데 이 사람 말로는 그겁니다. 자기가 저 사람보다 조금 더 일찍 왔는데, 왜 내게 늦게 나오고 저 사람이 먼저 나왔느냐 그 뭐 메뉴가 달라서 그렇다. 이건 오래 걸리는거다 그렇다. 그래도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는데, 아주 쌍스러운 말을 해가면서 소리를 막 치더라구요.
그 분이 좀 황당해가지고 약간 나중에 화날 만도 한데 황당해 하니까, 어디 손님한테 이런식으로 하냐 그러면서 막 뭐라고 하다가 좀있다 그게 나왔습니다. 나왔는데 한입을 먹더니만 이게 트집을 잡으면서 이게 음식이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막 나오라 그러고 사장 나오라 그러고 하는데 그냥 부드럽게 하는게 아니고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가슴이 팍팍 찌를 정도로 내가 가슴이 아플 정도로 막 삿대질를 하면서 욕을 욕을 하면서 막 혼을 내는데, 제가 그 남자분도 참 안쓰러웠지만 그 앞에 옆에 앉아 있는 자식들과 아내가 고개를 푸욱 숙이고 아빠를 말리지도 못해요.고개를 푸욱 숙이고 이렇게 조마조마해 하면서 부끄러워 하면서 그런데 겁이 나가지고 겁에 질려서 겁에 질린 표정으로 그냥 고개를 푸욱 숙이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야 저 아들이 저 아내가 얼마나 저런거에 많이 당했으면 저기서 이거 좀 제재도 못하고 한마디 하지도 못하고 고개를 푸욱 숙이고 부끄러워 하면서 혼자서 저러고 있을까?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제 가슴이 정말 찢어질듯하게 아프더라구요.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그러니 그런식으로 하는 부모님 밑에 있는 아들이 똑같이 합니다. 아들이 속으로 욕을 하지만 학교가면 똑같이 하거든요. 친구들한테. 그런 어떤 정말 말로 하는 이런 行動들이 이런 것들은 정말 우리가 조심해서 해야됩니다.
말은 에너지를 가지기 때문에 그 波動하는 에너지는 强力하게 宇宙法界로 나아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나 자신을 分明히 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말의 習慣이 그래서 重要한거죠.
말의 習慣을 부드럽게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그야말로 말 自體로 福을 짓고 말을 험하게 하는 사람은 말 自體로 福을 다 까먹어 버리는 거예요. 말로 福을 다 까먹어 버리는 겁니다. 똑같은 말인데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게 정말 중요한 겁니다. 똑같은 얘기를 하는데 언제 할건지 어떤 식으로 할건지 이거 말에 따라서 일이 아주 좋게 풀릴 수도 있고, 이 사람을 더 좋아하게 될 수도 있고 이 사람이 대개 나쁜 짓을 했어요. 이거 내가 얘기 해줘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말 하느냐에 따라서 두 사람이 원수가 될 수도 있구요. 어떻게 말 하느냐에 따라서 이 사람이 이 사람을 더 좋아 하면서 정말 두 사람이 단짝이 되어가지고 이럴 수도 있습니다. 분명, 분명하게 있어요. 그래서 그런 어떤 안좋은 얘기를 딱 할 때는 우리가 화가 날때 바로 가서 얘기하면 절대 안됩니다.
자식에게도 남편에게도 아내에게도 화가 났을 때 막 성격 급해가지고 바로 전화 해가지고 그 자리에서 욕을 하고 화를 내면 절대 안됩니다. 아무리 냉정하게 얘기한다고 냉정하게 얘기하면 괜찮으니까, 지금 한다. 안됩니다. 나는 냉정하다고 생각하지만 내안에 이미 화의 에너지가 나를 지배했기 때문에 그 화의 에너지가 나를 집어 삼켰기 때문에 그 말이 튀어 나올 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平定心이 되찾은 다음에, 심지어는 그 사람에 대한 원망심이나 이런 것들이 잦아든 다음에,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 다음에. 그 사람을 진정 돕기 위해서, 이 사람이 이런 行動을 하면 얼마나 사람들에게 욕을 얻어 먹겠나. 나라도 이 사람을 고쳐줘야겠다하는 이런 자비스런 마음이 바탕이 되었을 때, 그 사람에게 가서 얘기를 하면 내 意圖가 너를 혼내야 되겠다. 너가 잘못했으니까, 너는 혼 좀 나봐야 된다라는 意圖가 아니고, 너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 하는 意圖가 아니기 때문에, 이 사람을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이 사람을 바꿔줘야 되겠구나라는 사랑과 자비의 意圖이기 때문에 말이 좋게 나갈 수 밖에 없어요. 그러면 관계가 좋게 끝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前者보다 後者의 마음을 가지고 나에게 와서 얘기 해줬을 때, 상대도 더욱 고맙고 감사함을 느끼게 되고 이 사람은 그거를 더욱 강력하게 받아들여서 그 사람은 바뀝니다. 사람이 바꿔요. 그런데 원망심을 가지고 말하면 절대 바뀔 수가 없겠죠.
그래서 경전에 보면, 망어에 대한 얘기가 정말 많습니다. 망어는 능히 삼악도에 떨어지게 하고,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두가지 업보를 받는다. 첫째, 사람의 비방을 받는 사람이 되고,두번째, 다른 사람의 속임을 당하는 사람으로 태어난다. 지지론에 나오고요.
또한 妄語는 진실한 종자를 끊기 때문에 성인을 속이고 현자를 속여서 하늘도 용납치 않는다. 그래서 拔舌地獄에 가게 되고 설사 발설지옥을 여읠지라도 까치나 까마귀가 되어서 사람들의 길흉같은 거를 알리는 그런 畜生으로밖에 태어나지 못한다. 이렇게 경전에 나옵니다.
그리고 옛날에 한 아라한이 산꼭데기까지 사뿐사뿐 뛰어 올라가는 거를 보고 어떤 道人이 공부를 좀 한 분이 야 저사람 꼭 원숭이 같네 하고 말했는데, 그 말 때문에 이 사람은 오백세 동안 줄곧 원숭이 노릇을 하며 태어났다.그러면서 자신의 과보를 받았다는거죠. 그러니까 그야말로 선인들 아라한이 사뿐사뿐 뛰어가는거를 보고 辱을 했다 말이예요. 큰 果報를 받습니다.
저희 은사스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화를 내고 욕을 하고 혼을 많이 내시는지 우리 스님들 모여가지고 하소연을 우리들 끼리 하는거예요. 스님들도 똑같습니다. 모여 앉아가지고 큰스님 너무 하신다고 그러면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느냐. 어떻게 신도님들 앞에서 우리 뺨을 때릴 수가 있느냐? 어떻게 우리 심한 욕을 할 수가 있느냐? 막~ 뭐 우리끼리 뒷담화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떤 중간 되는 고참 스님께서 그래 너희들 참 얼마나 힘들겠니. 마음도 이해가 된다. 그런데 내가 찬물을 끼얹는 이야기겠지만, 같이 욕을 해줘야 되겠지만 내가 한마디만 할께 하면서 이 이야기를 했었더라구요. 그 스님께서...
그런데 어쨌든 우리 은사스님께서 그 많은 큰스님들께 인가를 받았던,지금이야 뭐 어쨌든 모르겠지만서도 우리가 그 은사스님의 意圖가 뭔지 우리는 자세히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공부를 해가지고 法을 깨달으셨던 지금이야 나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잘모르겠지만 하면서 하시는 말씀이 어쨌든 法을 깨달으시고 공부를 하셨던 분이신데,
그 道人에게 우리가 辱을 하면 이 아라한에게 저 원숭이 같다는 그 말 한마디 해가지고 오백세동안 원숭이 노릇을 하면서 살았던 사람이 있다는데...우리가 辱을 하면 우리가 그렇게 되지 않겠느냐? 그 얘기를 하는데 야 참 진짜 말을 조심해야되겠구나. 그때 그 생각이 강하게 들더라구요. 일반인들도 아니고 그 참 어른 스님을 그렇게 얘기를 하면 되겠나. 이런 생각이 아주 강력하게 그때 들었었습니다.
특히나 공부하는 사람, 공부할 때 그런 사람들한테 공부하는 것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이러면 안된다 말이예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理由는 절에서 공부하는 수행자, 공부하는 도반들끼리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많다는 말이예요. 공부 잘하는 사람은 내가 공부 잘했다라는 相을 가지고 막 얘기를 하니까,그 듣는 사람은 재수가 없고 그러니까 이 말 가지고 막 뒷담화를 한단 말이죠. 공부하는 것 가지고도 그런 분이 계시는데, 그러면 안된다.
그 또 兩舌이라고 해서 이간질하는 말입니다. 두가지로 말하는거죠. 이쪽에서 이 말하고 저쪽 가서 저 말하고 사람들 서로 이간시켜서 서로 和合을 깨뜨리는 말을 하는거죠. 혹은 이 말을 했다가 또 바로 말을 뒤엎어서 저 말 했다가, 그런 自己 利益을 위해서 말을 자꾸 바꾸는 일을 일삼는 그런 것을 양설이라고 합니다.
양설을 많이하면 이간질하는 말을 많이하면 절친한 친구에게 배반 당하는 果報를 받는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소극적으로는 불양설을 하고 적극적으로는 허망하지 않는 참된 말, 진실된 말, 또 대중을 화합시키는 말, 또 부처님의 가르침들을 많이하는 것 이것이 이제 필요하다.
그래서 이간질을 많이 하면 친구가 배신하게 하고, 친구와 싸우게 하고, 친구 둘 사이를 갈라놓고 和合을 깨뜨린다 말이예요. 그래서 헐뜯게 하기 때문에 그런 과보로 내가 나중에 누군가에게 배신당하게 되고, 사람들이 자꾸 나에게 싸움 걸어오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만 있으면 그 組織이 깨지는거예요.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신기하게 그 사람만 가면 그 조직이 깨지고 그 조직이 온갖 和合이 깨뜨려지고, 이게 五惡罪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라한에게 피를 내는 죄, 부모님을 죽인 죄 이런 것과 동급의 죄예요. 和合을 깨뜨리는 罪는, 대중의 和合을 깨뜨리는 罪가 가장 危險합니다.
그런데 대중의 화합을 깨뜨리는 것은 사실은 쉽거든요.중간에서 이간만 딱 시켜버리면, 바로 막 깨진다 말이예요. 서로 이 단체 저 단체가 서로 헐뜯고 싸우게 되고,이렇게 대중의 화합을 깨뜨리는 말을 하는게 아주 위험한 것이죠.
그 다음에 惡口라고 해서 거친말, 욕설, 거친 욕설을 하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다음생에 추한 음성을 가지게 된다.소극적으로는 불악구하고 적극적으로는 사랑스러운 말 愛語를 써야한다.
거친 욕설을 하면서 막 욕설을 하는 말 자체에 뭐가 담겨 있냐면 상대를 개, 돼지 취급하는 얕보는 마음, 깔아뭉개는 마음이 담겨있겠죠. 그런 마음이 演習이 되는겁니다. 상대를 얕보는 마음, 욕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을 演習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世上 사람들로부터 이 宇宙法界로부터 내가 깔아뭉개짐을 당하고,욕을 듣게 되고, 아주 무시를 당하게 되고, 구설수에 오르게 되고 비난을 당하게 되는 그런 果報를 받게 됩니다.
그 다음에 欺語라고해서 꾸며내는 말인데요. 꾸미는 말 기어를 많이하면 사람이 信用이 없어진다. 없는 걸 자꾸 꾸며내니까, 신용이 없어지고 적극적으로 실어 실다운 말을 해야된다. 正直하고 眞實한 말을 해야한다.
그래서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꾸며내는 말을 많이 하게 되면 당연히 거짓된 마음이 연습 되고 삶 자체도 가짜의 삶이 이어지기가 싶습니다.그러니까, 자꾸 꾸며내니까 자꾸 꾸며내기 되니까 진실이 없고 자꾸 꾸며낸 거를 가지고 내 인생을 자꾸 만들어 내는거예요. 그러니까 자기 마음의 내면이 얼마나 텅~비고 空虛해지겠습니까?
그러니까 남들 앞에 가서 어떻게 말해야 하면? 남들 앞에 가서 자기를 자꾸 치장해야되요. 자기를 자꾸 더 꾸며 내는 것으로써 자기를 포장해야됩니다. 그러니까 자꾸 자기 포장만 생기게 되고 진실된 자기를 드러내지 못하게 되고 그러니 포장된 나의 모습만을 자꾸 보여야 되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어떤 신용을 잃게 되고 이런 사람들이 있잖습니까? 자기 과대포장을 자주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남들 앞에서 자기 자랑을 하고, 자기 외모같은거에 자꾸 관심이 많죠. 왜냐하면 겉에 드러난 모습, 그 안에 있는 眞實된 참된 나의 마음 이런 것들에 關心이 있는 게 아니라, 겉에 드러난 모습에 關心이 많으니까, 그래서 자꾸 거짓 말로 꾸미게 되는 거예요.
자꾸 외모에만 관심이 많고, 뭐 피부 맨날 뭐 미용 이런거 하러 다니고, 성형수술같은 거 하러 다니고 그건 뭐 무조건 나쁘다 이런것 보다도 거기에만 完全히 執着이 되어서 사로 잡혀서 있는 사람들이 있단 말이죠. 그렇게 되면 또 옛날에 내가 이랬고 저랬고, 내가 좋았던거 잘했던거, 자기 학벌 자꾸 자랑하고 이래다 보니까 또 자꾸 자랑할 것 없나. 자랑해야 되는데 자랑할 게 없으니까 자식을 들볶기 시작하는 겁니다. 자식이 공부를 잘해야 자식 공부 잘한 걸 내가 자랑할 수 있으니까,그러니까 자식을 들볶고 들볶고 들볶아서 자식이 성적이 잘나오면,그것 가지고 친구들 막 만나서 또 자랑하고 자랑하고
그러니까 자기 포장을 많이 하는 하려는 사람일수록 정말 自身의 內面은 空虛해지기가 싶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가지고는 세상앞에 나서기가 힘든겁니다.그러니 마음은 점점 텅~비고 空虛해지고 그러니까 뭐랄까 나약한 사람이 되죠. 남들의 말 한마디에 내가 左右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에 對해서는 關心이 없어요. 남들이 나에게 내리는 判斷과 評價에만 關心이 자꾸 가는 겁니다. 남들이 하루 욕을 하면 하루 종일 우울하고, 남들이 좀 칭찬하면 하루 종일 氣가 살아있고, 그러니까 남들의 말에 휘둘리는 얼마나 불쌍하고 참 공허하고 그런 사람이겠습니까?
우리는 전혀 남들에게 휘둘릴 필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남들이 나에게 내리는 판단과 평가가 옳은 것이라면 그 귀담아 들어야죠. 그리고 그 옳은 일들도 많기 때문에 귀담아 듣고 내가 필요한 말은 들을 필요가 있겠죠. 그러나 그것을 가슴 아파하면서 傷處 받을 필요는 없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요 그 사람도 그 사람 自身을 몰라요. 그 사람도 그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 아닐 확률이 높은게 아니라 우리는 깨닫기 前에는 다 衆生입니다. 다 어리석음속에서 헤매는 사람이예요.
나를 判斷하고 나를 辱하는 사람도 그 사람도 本人 自體가 올바른 사람이 아닐 確率이 높은데 그 사람이 하는 말 그리고 그 사람이 하는 말에 뭔가 깊은 고민을 하고 깊은 뭔가 막 이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해주면 정말 좋겠지 하고 그런 깊은 고민을 그런 말도 아니죠. 그냥 툭툭 내뱉는 말이기 쉽죠.
물론 그 속에 뼈가 담긴 말, 그 뼈를 내가 탁 추려서 바꿀 마음의 어떤 공부를 삼을지언정 그걸 가지고 가슴 아파할 필요는 없다 말이죠. 휘둘릴 필요는 없다.
그래서 이렇게 말로 짓는 네가지 惡業에 대해서 그때 그때 매일 매일 참회를 해야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망어중죄금일참회, 기어중죄금일참회, 양설중죄금일참회, 악구중죄금일참회하고 이렇게 하고 참회를 하는 겁니다.
그 다음에 나머지 세가지가 意業으로 짓는 세가지 악업을 참회하는 것인데요. 아주 중요한 불교에서 어찌보면 가장 중요한 석가모니부처님의 핵심 가르침 하면 뭐냐하면? 涅槃에 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涅槃이 뭐냐하면? 貪瞋痴 三毒心의 불길을 훅하고 불어 끄는 것, 이걸 涅槃이라고 합니다. 탐진치 삼독심의 불을 끄는 것,
卽, 貪내고 慾心낼 때, 막 熱이 나죠. 몸에 막 慾心이 나가지고 慾心이 날 때 보면 몸이 뜨겁고 熱이 확확 나잖습니까? 이 熱이 三毒心의 뜨거운 불길이란 말이죠.
화날 때 화가 날 때 온몸에 熱이 나서 불길처럼 들끊죠. 이게 이제 三毒心의 뜨거운 불길이란 말입니다.
그 뜨거운 불길을 훅 불어 끄는 것, 이게 涅槃이다. 人間이 사람들이 가장 다스려야 될 두가지 마음 이게 貪心과 瞋心입니다. 貪心과 瞋心 탐심과 진심은 어디에서 나오느냐? 癡心에서 나옵니다. 어리석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어리석은 마음, 癡心만 조복하면 모든 게 끝이예요. 癡心이 없으면 貪心, 瞋心은 안나옵니다. 그래서 十二緣起에서 모든 괴로움의 根本 原因은 無明心, 어리석은 마음이라고 말한거예요.
그런데 癡心이라는 無明心, 어리석은 마음에서 나오는 대표적인 行이 貪心과 瞋心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조복시켜야할 마음 다른 게 없어요. 貪心과 瞋心입니다. 탐심 진심 調伏되면 저절로 치심이 닦기고, 또 치심 무명, 어리석음이 조복되서 智慧를 닦아 가는 理由가 지혜를 닦게 되면 저절로 탐심과 진심이 닦깁니다.
다른 말로 뭐겠어요. 여러분이 修行하는 理由는 뭡니까? 智慧를 닦기 위해서입니다. 智慧를 닦으면 痴心이 없어지니까 自動的으로 貪心과 瞋心이 잦아드는겁니다. 줄어드는 겁니다. 내가 마음工夫가 됐는지, 안됐는지 알아보려면 貪心과 瞋心이 얼마큼 過去보다 줄어들었는가? 나의 過去보다 내가 옛날보다 얼마만큼 더 화를 덜내고 얼마만큼 더 慾心을 덜 부리는가? 이걸 보면 내 痴心이 내 無明心이 내 어리석은 마음이 얼만큼 닦였는지...내가 얼마큼 마음工夫가 되고 있는지, 절에 나오니까, 얼마나 바뀌고 있는지. 절에 나와서 이사람 바꿨다. 그 대표적 두가지 마음이 바뀌게 되는 겁니다. 貪心이 잦아들고 瞋心이 잦아드는 方向으로 마음이 바뀌고 있는가? 자기 자신을 스스로 点檢하는 方法입니다.
그러면 이 貪心과 瞋心은 어디서 나오느냐? 癡心에서 나오는데, 痴心은 뭐를 痴心이라고 하느냐? 뭐가 치심이냐면요? 뭐가 어리석은 마음이냐면? 내가 있다고 錯覺하는 生覺/마음/意識 이 나라는 것이 있다고 착각하는 생각/마음/의식 이게 어리석은 마음, 癡心입니다. 無我일 뿐인데... 緣起的 存在일 인데... 나라는 존재는 이게 진짜 내가 아니고 因緣따라서 만들어진 固定된 實體가 아닌 虛妄한 相이라고 했잖습니까? 緣起法에 依해서 因緣 따라서 만들어진 텅~빈 게 나의 實際의 모습일 뿐이지. 진짜 나는 없습니다. 진짜 나라고 할만한 固定된 實體가 없는데 내가 진짜로 있다고 錯覺하는 幻想/生覺일 뿐예요.
진짜 내가 있다. 내 몸이 있다. 내 性格이 있다. 내 感情이 있고, 내 生覺, 내 思考方式이 있고, 내 欲求가 있고, 내 認識이 있다. 이렇게 虛妄하게 錯覺하는 生覺 뿐입니다. 五蘊이라는 게 진짜로 있다고 錯覺하는 겁니다.
없는 나를 내가 있다고 幻想인 生覺으로 錯覺하니까 내 것을 늘려나가고 싶은 貪心이 생기는겁니다. 나다 내가 있다는 生覺/錯覺하는 痴心이 있으니까, 내 것이다 하는 貪心을 늘려나가려고 하는 내 것 내 소유를 늘려나가려고 하는 貪心이 생기고, 또 내가 옳다 하는 내 生覺에 執着하고, 내 生覺에 執着하고 있는데 남들이 그 생각이 틀리다고 하면 화(瞋心)가 생겨나는 겁니다. 또 내 거를 더 많이 늘리고 싶은데 늘려나가지 못하면 화가 나는 겁니다. 거기서 瞋心, 화내고 성내는 마음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我相,내가 있다하는 착각하는 생각, 나다하고 생각하는 我相, 이게 모든 無明心, 어리석은 마음의 始作이란 말이예요. 이 나라는게 보배이기도 하지만 이 나라는 이게 나를 괴롭히는 核心인 겁니다.
그러니까 佛法은 다른 게 없어요. 無我입니다. 無我...無我相 空, 緣起, 無自性, 金剛經에서는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이래서 꿈과 같고 환영과 같고 신기루와 같고 물거품과 같고 이슬 같고 저 번갯불과 같다. 固定된 實體가 있는 게 아니예요. 신기루와 같은 것이다. 진짜가 아니다. 佛法은 다 이거 아니겠습니까? 無生法忍, 어떤 것도 本來 나온 바가 없다. 緣生은 無生이다. 제가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因緣따라서 만들어진 것은 本來 나온 바가 없다. 이 몸뚱아리가 있다고 生覺하지만 本來부터 있는 것이 아닌데, 있다고 生覺하니까 누가 날 無視하면 무시했구나 生覺하고 괴롭고 화나고 짜증나고 화나는 마음(瞋心)이 생긴단 말이예요.
내가 진짜라고 生覺하니까 錯覺하니까 내 것도 진짜라고 生覺하고 錯覺하니까 내 집, 내 차, 내 돈, 내 명예, 내 권력, 내 지위 이런 것들을 늘려가려는 貪心으로 血眼이 되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첫번째 우리가 조복 받아야될 게 탐심입니다. 탐심.. 탐욕. 사람마다 저마다 다 다른 탐욕이 있어요. 다 다른 탐욕이...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큰, 공부에 대한 욕심이 있겠죠. 이걸 이제 수승한 공부에 대한 욕심,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나를 깨닫게 하는 욕심 이건 다른 말로 욕심이라고 안하고 乘化된 慾心이라고 해서 願力이라고 부릅니다. 願力
願力을 가질지언정 自身의 慾心에 얽매이게 되면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 밖에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慾心이 많아서 내가 이걸 반드시 가져야 되겠다는 執着이 甚하면 甚할수록 온몸에 毒이 퍼져 오릅니다. 눈빛부터가 毒氣가 보이기 시작하구요. 반드시 이렇게 되야 된다는 執着이 크면 클수록
그래 되면 어떻게 되냐하면요? 眞實된 見解(正見)를 잃어버려요. 모든 것은 내 我相과 貪慾心이 나를 支配해버립니다. 나를 지배하는 것이 올바른 正見이 아니고 바른 見解가 아니고 執着沈과 欲望心에 사로잡힌 삿된 見解가 나를 집어 삼킵니다.
그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내 것을 얻으려고 하는 執着心이 모든 것에 우선이 돼버려요. 그러니까 定常的인 生覺같으면 하지 못할 짓을 서슴치 않고 하기 시작합니다. 慾心이 過해 버리면.., 남들을 밟고 일어서서라도 저 사람들을 무너뜨리고서라도 내가 成功해야지. 저 사람들 전부 다 확 주저앉히고서라도 나혼자 富者가 되어서 내가 成功 해야지. 定常的이라면 想像할 수 없는 이런 일이 벌어진단 말이예요.
심지어 名譽欲 이런 것 같으면 어때요. 부모 자식지간에도 왕이 되려고 부모를 죽이고 자기가 왕에 오르는 일들도 과거에 많잖습니까? 돈이 수십억, 수백억 로또에 당첨되고 그래서 부모 자식지간에 막 파탄되고 가족간에 형제간에 부부 자식간에 인생이 파탄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돈, 욕심 앞에는 욕심에 사로잡혀 버리면 아무 것도 소용이 없어지는거예요. 사로잡혀버리면. 그런데 우리는 사로잡히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소소한 집착과 욕망들이 끊임없이,끊임없이 어찌보면 이게 삶의 原動力이기도 하죠.그러기 때문에 無條件 모든 慾心들이 다 잘못됐다는 말은 아닙니다. 慾心을 無條件 갖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過한 慾心을 갖지 마라는 말이지...
삶을 이끄는 原動力이 없으면 안되죠. 해라. 불교는...불교는 해라. 머무는 바, 집착하는 바 없이 마음을 내어 해라 저질러라. 核心은 뭐예요? 마음을 내라가 動詞입니다. 동사. 머무는 바 없는 구절 집착하는 바 없는 구절은 집착하는 바 없는 마음을 내라는 구절을 수식해주는 구절예요. 마음을 내라 언제 어디서든지. 그러나 어떻게 마음을 내냐? 執着하는 바 없는 마음을 내라. 어떤 마음도 내지 말라는말이 전혀 아니예요.
富者되겠다. 이런 마음 내지 말라는 말이 아니예요. 富者가 되야죠. 부자도 되고 돈도 벌고 진급도 하고 해야 됩니다. 자식 공부도 잘해야죠. 그런데 왜 잘해야 될까요? 왜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될까요? 잘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갔을 때, 그만한 影響力으로 보다 많은 사람을 敎化할 수 있고, 보다 많은 사람에게 정말 福을 傳해 줄 수 있고, 삶의 힘을 줄 수 있고, 智慧를 傳해 줄 수 있고, 내가 나다운 方式으로 世上에 寄與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利他的으로 기여할 수 있으려면, 그리고 배고픈 사람을 救濟하려면, 내가 돈이 있어야 구제할 수 있는게 아니겠어요. 그러면 내가 돈이 있어야죠. 그러니까 利他的인 願力을 가지고서 저질르란 말입니다. 利他的인 願力의 마음을 가지고 저지르고 실천해라 이 말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무조건 돈 벌지 마라. 진급하지 마라. 이런 종교 아닙니다. 돈 벌어라 하는 종교입니다. 진급도 해라 하는 종교입니다. 공부도 잘해라 하는 종교입니다. 最善을 다해서 熱心히 살아라 하는 종교입니다. 단지, 執着心없이 그렇게 해라. 執着心없이 그렇게 하라는 종교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을 듣고 불교를 공부한 사람들이 열심히 살지도 않고 이 다 無常하고 空한 건데 뭐하러 熱心히 사나, 돈 벌어서 뭐하나, 많이 있어도 적게 있어도 그냥 괜찮지 않느냐? 이렇게만 살아서는 안된다.
그러나 내 가슴이 願하면, 그냥 가슴이 뛰는거예요. 나는 가난한 삶에 가슴이 뛰어 그런 사람 있습니다. 가섭존자처럼 혹은 프란치스코 성인같은 사람처럼 혹은 요즘에 황대권 선생이나 이런 선생처럼 시골가서 歸農해가지고 나는 고요하게 農事지으면서 소박하게 가난하게 살면서 그것이 나를 가슴 뛰게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 사람은 그렇게 가면 되는 겁니다.
부처님이 가섭존자가 너무 가난하게 너무 궁핍하게 사니까, 가섭존자를 불러가지고 야 그렇게까지 하지 마라. 그 삶 또한 極端이니까, 너도 절에 와서 便하게 살면서 제자들 지도도 하고 그렇게 해라. 그랬더니 가섭존자가 부처님께 이랬단 말이죠.부처님 말씀도 분명히 맞는데, 제가 나같은 스님이 한명쯤은 있어도 나중에 후배 수많은 스님들에게 아 나같은 마음을 가진 스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분들에게는 하나의 보탬도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혹은 너무 심하게 나중에 타락한 사람이 있을 때, 이런 스님들이 귀감이 되는 그런 좋은 공부의 하나의 方便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 그렇다면 그것도 좋다. 그럼 그렇게 해라 너는 그렇게 해도 괜찮다. 거기에 저는 꼭 가난하게 살아야된다는 걸 얽매여 執着하지 않습니다. 가난하게 살아야 된다는 거를 잘났다고 우월감을 느끼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살아도 된다. 거기에도 執着하지 않으면 그렇게 살아도 된다. 말씀했단 말이죠.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라면 가난하게 사는 것도 좋고, 궁핍하게 사는 것도 좋고 돈이 없지만 거기에 滿足하며 사는 것도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라면 돈을 많이 벌어서 많이 베풀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보다 많은 사람을 내가 좋은 길로 이끌고, 이렇게 하겠다. 그것도 좋단 말이죠.
사람은 저마다 자기답게 살아야되니까, 自己다운 方式으로써 世上에 기여하기 위해서 태어난거니까, 그러니까 그러한 자기다운 방식의 원력을 가질지언정 過度하게 執着해서는 안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願力과 執着心이냐 慾心이냐의 差異는 뭐냐하면? 願力은 利他的인 마음을 가지고 그 일을 한거예요. 그러니까 돈을 많이 벌어서 베풀려고 했으니까, 願力을 가지고 돈을 熱心히 법니다. 願力이 있는 사람은 그것에 失敗해도 상관이 없어요. 또 하면 되니까, 다시 도전하면 되니까, 失敗하는 거는 내 인생의 실패가 아니예요. 왜? 내가 하는게 아닙니다. 願力은. 나는 어떤 하나의 存在가 되어서 우주법계를 대신해서 世上을 돕기 위해서 일하는 존재로 하나의 我相이 없는 것이죠. 그러니까 최선을 다할 뿐이지. 거기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했다. 안했다. 상관이 없어요. 내가 안된게 아니니까. 내가 절망할 것도 아닌겁니다. 그것 까지것 宇宙法界가 한 일인데, 나와는 상관이 없는데, 안되면 뭔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願力이 있는 사람은 되도 좋고 안되도 좋아요. 그런데 執着하는 사람은 되면 좋지만 안되면 괴롭단 말이예요. 너무 괴로와 죽을려고 그럽니다. 그래서 절망합니다.
그런데 願歷을 가진 사람은 我相이 我相으로 봐지지 않으니까, 최선을 다하되 되도 좋고 안되도 좋다. 안되면 어떻해요.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냥 다시 도전할 뿐이지. 아 이거 너무 과한거였구나.다시 조금 줄여서 다시 도전해봐야지.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다시 도전합니다.
왜? 그게 人生이니까, 나의 願力이고 나의 삶이니까, 그러니까 반드시 성공해야된다. 이것도 집착이거든요. 실패도 있고 성공도 있는 겁니다.
여러분 錯覺이 야 큰스님들이 하는 거는 뭐든지 승승장구해서 뭐든지 잘되겠지.그렇지 않습니다. 스님들도 좋은 일 하지만 하다가 안되기도 하고 하다가 신도님들한테 때로는 보면은 사기도 당해요. 어떤 스님들은 보니까, 뭐 하다가도 실패하기도 하고 그러고 또 다시 하는 겁니다.
다만 공부하는 사람은 어떠냐면? 그렇게 하다가 失敗를 했어요. 망했어요. 그러면 이 방향이 아니구나. 나답게 할 수 있는 방향이 뭘까? 거기서 뭔가 아주 좋은 힌트를 얻는 겁니다. 그 失敗의 가르침 속에서...그리고 다시 새롭게 도전하는 겁니다. 쿨하게... 執着없이... 그러니까 언제나 성공하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죠. 失敗를 通해 깨닫고 배우는 사람 그건 願力에만 可能한 겁니다. 執着하면 可能하지 않죠.
오늘은 여기까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성불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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