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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정신,

장백산-1 2014. 10. 7. 02:46

 

 

 

 

나라는 존재를 "생각"이라고 착각하면 | 법상스님 감동어

 

 

 

 

어느 宗敎도 마찬가지인데, 여러분이 독실하게 불교를 믿었어요.

그러다가 기독교를 믿게 됐습니다.

하나님, 열심히 믿게 되었어요.

 

그럼 예전에 佛子였을 때는 佛敎的인 思考方式,

佛敎的 價値觀이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眞理다, 라고 굳게 믿고 있다가

宗敎를 탁 바꿔버리면 불교는 완전히 안 좋은 것 같고,

다른 宗敎가 좋은 것처럼 느낄 수도 있습니다.

 또한  그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生覺하는 思考方式, 그것은 끊임없이 變합니다.

옛날에 '옳다'고 生覺했던 것이 지금에 와서 틀린 生覺일 수도 있죠.

 

옛날에는 이것은 반드시 '맞다'라고 生覺했었엇지만,

時間 歲月이 지나고 나서

아, 내가 그때는 그 것이 정말 맞다고 生覺했었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까 나의 어리석은 錯覺 誤慢이었구나,

이렇게 生覺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狀況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判斷하지 마라,

이렇게 얘기하는 理由가 우리 누구라도 어떻게 될지 모른단 말이지요.

 

 

生覺  思考, 固定觀念 이런 것들은 끊임없이 變하고 바뀝니다.

그런데 내 生覺이라고 딱 固定되게 生覺하는 것, 내 價値觀, 내 世界觀이라고

固定되게 生覺한 것, 그 生覺 觀念  自體가 안 바뀔까요?

 

 

生覺 思考 마음은 繼續해서 變化하고 바뀝니다.

때로는 전혀 다른 것으로 180도로 바뀌기도 한단 말이죠.

 

 

 

그런데 그 가운데 어떤 것을 내 生覺/마음/意識이라고 하고 固執하렵니까?

그러니까 그 生覺/意識/마음이 固定된 내 生覺이 아니죠.

 가만히 生覺해보면 固定된 내 生覺/마음/의식이란 게 있습니까?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부모님을 통해서 배워온 거,

익혀온 거, 선생님들을 통해서, TV에서, 각종 언론에서,

주변에서 보고, 듣고, 익혀 온 거, 이 情報들을 가지고 짜맞춰 가지고

이게  나라고, 내 生覺이라고 生覺하는 것일 뿐이지,

순수 오리지널 나 ,내 生刻이 어디 있겠습니까?

 

 

生覺 가운데. 누군가의 生覺을 내 生覺이라고 탁 붙잡은 것이지,

데 그 生覺 또한 끊임없이 變化하고 바뀌는 에너지 波動이란  말이죠.

 

 

에너지 파동이기에 그리고 바뀌어야 되는 거죠.

절대적으로 안 바뀌겠다고 하고 한 가지 生覺에 탁 執着한다면

이것처럼 어리석은 생각/마음/의식이 없는 겁니다.

 

 

이거는 반드시 옳은 거니까

이것만은 절대 못 버린다, 하고 執着하고 있다면,

그거는 五蘊이 空하다 라는 事實을 모르는 어리석은 意識이예요.

 

 

   五蘊이 空하다 라는 事實을 알면

어떤 한 生覺이 옳다 라는 生覺 하지도 않할지언정

그 生覺만이 全的으로 옳다, 라고 執着하지는 않는 거죠.

 

 

옛날에 綜敎戰爭 같은 거 많이 일어났잖아요?

그 종교전쟁이 일어나는 原因이 뭡니까?

 내 宗敎라는 틀/가치관, 이 眞理, 이거는 全的으로 옳다는 겁니다.

그리고 너희 宗敎는 全的으로 틀렸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他 宗敎에 대해 마음을 열지 못하는 거예요.

마음을 딱 닫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宗敎의 이름으로 世上 사람들을 죽이고

戰爭을 일으키는 것이 可能하다고 生覺했다는 거죠.

 

 

 

佛敎는 어떠냐하면, 金剛經의 核心 가르침이 그겁니다.

 

 

佛法을 믿는 사람들은 佛敎에도 執着하지 않는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무리 眞理라고 하더라도

그 가르침  自體에도 執着하면

제대로 된 佛子가 아니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執着하지 않을 때, 활짝 열린, 유연한 마음을 갖었을 때

그 마음이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옳은 觀念 槪念 相 이라도

거기에 執着하면 틀린 게 되어버립니다.

 이 말이 아주 重要한 이야기예요.

 아무리 옳아도 거기에 너무 過度하게 執着하면 그건 틀린 겁니다.

 

 

아무리 옳은 觀念 槪念도 生覺에서 옳다 라고 生覺하는 것이지

그 生覺 自體가 全的으로 宇宙的으로 옳은 生覺은 아닐 수 있기 때문에

그 生覺에 完全하게 執着하게 되면 그런 生覺으로 因해서 괴로워집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렇게 돼야 된다, 라고 執着했을 때 마음이 괴롭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되도 좋고 저렇게 되도 좋다고 마음 먹고 生覺할 때는 괴로운 마음이 없습니다.

 

 

뭐 職場生活하는 사람이 이 부서에 가야되겠다, 저 부서에 가야되겠다,

이번 연말에 이렇게 해야 되겠다, 이런 固執이 있으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때 괴롭지만

어떻게 되든 다 부처님 뜻으로 받아들이겠다, 이렇게 마음먹으면

어떻게 되도  괴로울 게 하나도 없어요.

 

 

 

農事도 반드시 잘돼야 될 텐데 하고 執着을 하면 안 되었을 때 괴로운 데,

잘되면 좋고, 안되더라도 다 이 게 다  宇宙 法界의 깊은 뜻이 있겠거니, 하고 받아들이면

그렇게 크게 괴로운 마음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事實은 生覺에 對한 固執, 집착 

生覺에 對한 執着이 괴로움을 가져다 줍니다.

 

 

이 五蘊이 괴로움을 가져온다고 그랬어요.

病이 나거나 했을 때 이 괴로움을 가져다 줄 수도 있고,

受蘊, 어떤 느낌에 固執했을 때, 느낌이 괴로움을 가져다줍니다.

 

 

想蘊, 어떤 生覺에 固執하면

그 固執한 만큼에 크기만큼 괴로움이 오게 됩니다.

 

生覺에도, 固正觀念, 家値觀에도 執着하면

그 執着은 곧 괴로움을 불러 올 수밖에 없단 말이죠.

 이런 生覺 觀念 價値觀등은  空하니까 執着할 건덕지가 아닌데 執着한단 말이예요.

 

그런 空한 生覺들을 나와 同一視하며 執着을 하니까

우리의 마음/의식은 괴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라는 事實을 깨달으셔야 합니다. 

 

 

 

 

 

법상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