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느낌(수온)은 실체가 있습니까?
공하다, 라는 것은 없다는 게 아니라 있긴 있되,
인연 따라 있을 뿐이라서 인연이 닿으면 소멸되는 것이다, 라는 뜻이에요.
고정된 실체로 있는 것이 아니다.
언제까지나 영원히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잠시 인연 따라 물거품처럼,
꿈처럼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을 공하다, 라고 했습니다.
즉, 연기되어진 것은 공하다고 했는데,
이 몸둥아리도 연기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공하고
수, 느낌도 마찬가지예요.
좋다는 느낌, 혹은 싫다는 느낌,
그 느낌은 공하단 말이예요.
계속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았던 느낌도 계속되지 않는다.
좋은 느낌도 싫은 느낌으로 언제든지 바뀔 수 있어요.
옛날에 우리 보살님들이 결혼하실 때,
연애하실 때, 남편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느낌이고,
얼마나 가슴 설레는 느낌이였습니까?
그런데 결혼해서 살다보니,
그 느낌이 변하고 소멸될 수 있다는 거죠.
때로는 어떤 사람은 좋았던 사람이
오히려 더 원수 같은 이런 마음으로 바뀔 수도 있다.
이것처럼 느낌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인연 따라 바뀌는 겁니다.
원수 같은 사람이 어느 날 돌아봤더니 아주 참 괜찮은 사람이더라, 하고
좋은 느낌으로 바뀔 수도 있고요.
그리고
사랑은 동시에 증오를 내포하고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과도하게 사랑하면 할수록
사실은 증오의 씨앗도 함께 커 가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별로 사랑하지 않던 사람이 나를 배신하면 상관없어요.
그런데 내가 정말 사랑하고 믿고 아끼던 사람이 배신하면 더 크게 괴롭고,
더 큰 증오심과 복수심에 불탄단 말이죠.
그것처럼 모든 느낌이라는 것은
그것 자체에 고정된 실체적인 느낌이 있는 게 아닙니다.
전에 말씀 드린 것처럼, 사우나 할 때, 아우, 시원하다, 하듯이
더운 것은 싫은 느낌인데 우리는 시원하다, 한단 말이예요.
그러니까 어떨 때 더운 느낌은 아주 좋은 느낌입니다.
그런데 어떨 때에 더운 것은 아주 싫은 느낌이죠.
그러니까 덥기 때문에, 땀나는 상황, 아주 더운 상황,
그것은 좋은 느낌입니까?
싫은 느낌입니까?
정해진 바가 없죠. 인연 따라 달라지죠.
그죠?
여름에 더울 때 밭에서 일할 때는 얼마나 짜증스럽습니까?
그런데 마음먹고 사우나 들어가서 앉아 있을 때는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와, 시원하다, 하고 감탄사를 내뱉는단 말이죠.
그러니까 덥다, 라는 그것 자체는
좋은 느낌도 아니고 싫은 느낌도 아니고 중립인데,
내가 어떻게 인식할 것이냐에 따라서 좋은 느낌으로 되기도 하고,
나쁜 느낌으로 되기도 하는 겁니다.
땀이 많이 나고 있어요. 어떤 사람은 아주 싫을 수 있습니다.
찝찝하게 느낄 수 있지만,
다이어트 하려고 막 기를 쓰는 사람들은
땀이 쏟아지면 질수록 이게 살 빠지는 것 같은 느낌으로
아주 기쁘고 상쾌하단 말이예요.
그러니까 땀나는 상황은 이건 좋은 느낌도 아니고 싫은 느낌도 아니다.
실체가 없다는 겁니다.
내가 좋은 느낌으로써 받아들일 것이냐,
싫은 느낌으로써 받아들일 것이냐, 그 문제입니다.
보살님들, 감기가 걸렸어요.
감기에 걸려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그건 좋은 겁니까? 안 좋은 겁니까?
당장은 안 좋은 느낌이지만 그 감기라는 것은
우리를 치유하기 위한 자정작용이라고 했단 말이예요.
우리 몸에 탁한 기운, 탁한 에너지가 많이 있을 때,
감기라는 것을 통해서 탁한 에너지가 빠져 나가고 있다.
그리 생각하면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감정이나 느낌, 어떤 사람을 바라봤을 때,
좋은 느낌이 있느냐, 싫은 느낌이 있느냐,
그러한 모든 느낌이 실체가 아닙니다.
다만 그 감정이 실체가 있는 것처럼
착각을 해서 거기에 목숨을 거는 거예요.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한다, 이 사람을 사랑한다 했을 때,
사랑하는 느낌이 실체인 것 같단 말입니다.
진짜인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거기에 목숨 걸고 매달리고
그러다가 이게 실체인 줄 알고 거기에 빠져가지고
집안도 내팽개치고 자식도 내팽개치고
마누라도 내팽개치고 나쁜 짓도 하고 한 단 말이죠.
그런데 그 느낌이 "공"한 것인 줄을 모르니까
그 느낌에 속는 겁니다.
느낌에 속게 되면 이제 괴로움이 생기죠.
그 느낌에 집착하게 되면 괴로움이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이 느낌이 공하다, 라는 것을 몰랐을 때 괴로움이 생겨요.
느낌이 '공'하다, 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괴로울 게 없습니다.
제가 인도에 갔을 때, 더울 때는 40도에서 한 50도 가까이 올라갑니다.
너무너무 더워요. 죽을 것처럼 더운데,
그런데 제가 엄청 큰 걸망을 메고 배낭여행을 다니다 보니까
그 무거운 걸망을 메고 다니며 3개월 동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 고생하다가 한국 딱 오니까 한국의 더위는 더위가 아닌겁니다.
예전 같으면 더운 때는 좀 힘들었었는데
인도를 한 번 갔다 오니까 덥다, 라는 것 자체가
전혀 덥게 느껴지지가 않는 거예요.
달라진 거는 내 마음만 달라졌는데,
한국 더위가 덥게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그것처럼 어떤 한 가지 느낌을 가지고 거기에 얽매여 집착하게 되면
그 느낌에 빠져서 우리가 괴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지만
그것의 실체를 알게 되면 그 느낌에 빠져서 현혹될 필요가 없는 거죠.
느낌이라는 것이 공하다, 라는 것을 깨닫는 다면.
느낌 뿐 아니라
상온, 즉,
생각, 사고방식, 고정관념, 편견, 선입견, 사고 같은, 이런 것도 어떻습니까?
그것도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즉, 인연따라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공" 한 것들에 집착하지 않으니
괴로울 일이 없어지게 되는 겁니다.
법상 스님
_()()()_
'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유로운 정신, (0) | 2014.10.07 |
---|---|
지혜로운 네 가지 삶 (0) | 2014.10.06 |
십악참회/신업 (0) | 2014.10.04 |
[스크랩] 14. 10. 01 - 맑은 가난을 실천하는 삶 (0) | 2014.10.02 |
[스크랩] 14. 09. 30 - 원인속에 결과가 담겨있다. (0) | 2014.1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