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窮坐實際中道床

장백산-1 2014. 10. 11. 11:50

 

 

 

 

 

窮坐實際中道床 (궁좌실제중도상)

마침내 실제의 중도 자리에 앉으니            http://blog.daum.net/manicom/15311474      

 

 

中道의 자리란 어떤 特定한 時空의 자리가 아니라

온生命, 온누리가 緣起的으로 어울려 있는 한삶으로서의 자리를 말하며 이 자리를 화엄(華嚴)이라 말합니다.

 

'마침내(窮)'란 처음을 包含한 말로, 처음과 끝이 없는 데서, 처음과 끝을 세우니

그것이 眞如法界에서 말하는 中道의 자리입니다.

 
 
中道 實踐으로 나타나는 現象

여기에서는 '實際의 中道'라고 말하고 있는 데에 注意를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實際라는 말은 眞如, 法性, 法界, 如來, 佛,을 가리키는 말 중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中道란 모든 行動에서 實際가 그대로 드러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깨달음은 理解가 아니라 증득(曾得)입니다.

그래서 세 번째 게송에서 "증지(證智)라야 알 바"라고 했습니다.

證智란 瞬間瞬間 깨달음으로써 全切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證得하고 나서야 實踐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實踐 그 自體가 修行이어야 합니다.

앉을 때는 앉아 있음으로 全切가 되어야 하고, 이야기할 때는 이야기로 全切가 되어야 하며,

일할 때는 일로 全切가 되어야 합니다.

 

 

全切가 되기 위해서는 自己라는 것이 단지 因緣 條件에 依해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을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自己라고 하는 生覺을 完全히 텅~비운 데서 全切가 自己로서 드러나며,

이 때만이 因緣 條件으로 잠시 있는 '나'가 佛性/實際의 온전한 表現임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修行은 修行方法이나 地域의 差異로 그 높낮이를 定할 수 없습니다. 오직 언제 어디서나

텅~빈 마음의 實踐인 中道의 자리에 앉아 있는가  않는가에 依해서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갈수록 重要한 것은 學習입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들은 各種 媒體의 廣告나 敎育에 依해서

잘못된 情報를 너무 많이 갖고 있고 洗腦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實踐하는 中道 修行의 本質은

人爲的인 因緣 條件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이루어 있는 人爲的인 文明의 成果에 對한 反省이 全切的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데에는

異見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集團과 個人의 利益에 反하는 實踐은 정말 어려운 것 또한 自明한 現實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