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자기에게로 돌아오라

장백산-1 2014. 11. 2. 17:48

 

 

 

 

춘식스님 불이법문집 <자기에게 돌아오라> 출간| 염화실

심성일 | 조회 156 |추천 1 | 2014.05.19. 21:30

 

 

 


 

그대가 바로 부처다
바깥에서 부처를 구하지 말라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이며, 깨달음이란 存在의 眞實을 깨닫는 것이다. 眞實은 더없이 單純하다. 따라서 깨치기로 하면 한瞬間에 문득 깨칠 수 있을 만큼 쉽지만, 또한 대단히 어려울 수 있다. 生覺으로는 接近할 수 없으며, 知識도 소용이 없고, 努力이나 行爲를 通해 이루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그동안 살아온 習慣과 알음알이 때문에 바른 眼目을 갖추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혼자서 깨치기는 매우 어렵고, 좋은 禪知識이 반드시 必要한 것이 이 길이다.


부산 금정산의 대덕사에 주석하고 있는 춘식 스님의 가르침을 담은 첫 책 《자기에게 돌아오라》는 우리 불교계에 또 한 분의 훌륭한 선지식이 발견되었음을 전하는 반가운 소식이다. 存在의 實相을 알려주는 칠순 노선객의 거침없는 사자후는 도(道)를 證得한 선사(禪師)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분명한 힘이 있다.


스님은 바깥의 헛된 모양에 속지 않고 本來 있는 自己에게로 돌아오는 것이 眞正한 깨달음이며 참된 불교라고 말한다. 自己 바깥에서 부처를 찾지 말라고 역설한다.


“見性이란 꿈을 깨는 것과 같아. 宇宙 全剃가 부처님인데 그 부처가 바로 나란 말이야. 나를 떠나서 부처가 있지 않다 이 말이야.”

“나의 깨달음은 밖에서 求하는 것이 아니야. 마음 바깥에서 부처를 구하는 것은 잘못이야. 지금 ‘네!’라고 대답하는

自己가 있어 없어? 그 自己를 깨달으란 말이야. 그게 딴 사람한테 있어? 나한테 있으니까 自己한테서 찾아야지.

自己가 뭐냔 말이야. 이렇게 疑心해 가. 話頭는 자각(自覺)이야, 自覺!”

지금 여기에 없는 것을 쫒지 말고
지금 여기에 이미 있는 것을 돌아보라

시인이 오면 시를 읊고 검객이 오면 검을 논한다. 이것이 바로 선(禪)이라고 칠순의 노 선객은 말한다. 禪이란 어떤

定해진 規格이 없다. 森羅萬象이 自由自在하게 드러나듯이, 나고 죽음, 時空間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佛法이라

하기 以前에 本來  ‘이것’이 그렇게 하고 있다. '그것'이 '自己'다. 간화선이다 위빠사나다 하기 以前에 누구에게나

自己란 것은 있다. 이 自己란 眞正 무엇인가?


“一切가 自己이니까 自己란 게 따로 없다. ‘하나’니까 과거, 현재, 미래가 뒤섞여 한 덩어리가 된다. 宇宙 自體가 自己다 이 말이다. 이 이름 없는 한 物件! 우리는 自己를 나고 죽는 存在로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나고 죽는 그 自體다. 나고 죽음 속에서 나고 죽음을 벗어난 것이다. 이야기하자니 벗어난 것이지 둘이 아니다. 무슨 法이 있든지 이미 ‘나’다, 自己다. 종교 以前에 어떤 것이 이 自己냐 이 말이다.”

일상의 소란스러움에 떠밀려 밖으로 헐떡이며 求하는 현대인들에게 춘식 스님은 바로 지금 이 자리, 누구나 갖추고 있는 自己라는 한 物件을 돌아보라 말한다. 自己는 이미 自己이기에 따로 얻을 수도 없으며 결코 잃어버릴 수도 없다. 깨달음이란 엉뚱한 것을 나로 알고 執着하는 것이 아니라, 本來 있는 그대로의 自己에게로, 生覺과 感情, 삶과 죽음에 影響 받지 않는 永遠한 自己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스님은 제자들이 작은 깨달음에 멈추지 않고 窮極의 깨달음에 이르도록 지도하며, ‘이뭣고’ ‘마삼근’ 등의 화두를 바르게 참구하는 法을 비롯해 구도자들이 알아야 할 것들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自己에게 돌아오라’ ‘어떻게 保任해야 합니까?’ ‘이것이 무엇인가’ ‘오직 頓法만을 전한다’ 등 見性成佛이라는 彼岸으로 인도하는 60편의 등대 같은 글을 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