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는 없다 /춘식스님
어떤 것이 中道라는 答이 있는 것이 아니고
相對로 하여금 깨닫게 해주는 것이 中道다.
中道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眼目만 갖추어졌다면 뭐라하든지 옳고 ,
眼目을 갖추지 못했으면 그 答은 옳지 않다 이소리야.
그 말을 쫓아가면 한로축괴(韓盧逐塊)가 되는거야.
사람들은 마음이다 中道다 하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인 줄 알아.
道는 없다는 소리여. 그래서 禪定에 든다는 것은 이승의 見解야.
언제든지 定이어야 大定이지, 들어가고 나오고,
좋을 때 있고 나쁠 때가 있고 하는것은 올바른 것이 아니여.
진짜일 때가 있고 가짜일 때가 있는 것은 진짜가 아니지?
언제든 진짜여야 진짜다.
그러니까 大涅槃은 언제든지 涅槃이고, 언제든지 禪定이고
本來 그렇다 그거야. 본래 부처야 그것을 自己가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
부처님이니 큰스님 이야기 백날 들어봐야 소용없어.
核心은 自己가 깨닫는 것이지 깨닫지 못하고서 佛法을 說해봐야
全部 마설魔說이고 道가 아니야.
깨달으면 언제나 自性을 觀하지만, 自性이 어디 따로 있나?
自性을 觀하는 것도 이것이고, 觀하지 않는 것도 이거야.
그러니까 宇宙 全切가 通해서 全部 道 아닌게 없다 이말이야
그래서 마음에 執着해서 마음을 觀하는 것은 道가 아니라고 그런거야.
처음 공부하는 사람들은 혼돈이 올 수 있어.
모두 선방에서 고요히 앉아서 이뭐꼬 하고 있는데,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요함을 찾는 것이 큰 病이라고 옛사람들이 그러거든?
그러니까 올바른 선지식을 만나 지도를 받아야 해.
절망 眼目이 밝은 사람은 道가 있지를 아니해.
道가 없는 가운데서 代用을 쓰니까 사람들이 알수 없지.
뭘 던져주면 그것이 있는 줄 아는데 실은 그것이
나온 바도 없고 들어간 바도 없어. 없는 가운데서 作用을 쓰거든?
向上一路를 이야기하면 향상일로가 잇는 줄 알고 거기에 빠진단 말이야.
전부 自己 속에서 가지고 노는 것인데 무슨 향상일로가 따로 있겠노?
그러니까 了達하지 못하면 아무리 이야기 해봐야 소용이 없어
話頭를 打破한다는 것은 그것을 요달하는 것, 견성성불을 말하는 거지,
어느 公案을 아는데 어느 공안은 모른다. ..이런데에 속으면 안돼.
道가 바깥에 있는게 아니고 全部 自己 살림인 줄을 알아야 해.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선지식에게 속고,
불조에세 속고, 시공에 속고, 현실 변화에 속아.
내 꿈인데 속을 일이 뭐가 있노? 속일 사람이 없는데 누구한테 속노?
나 하나 自己 뿐인데 무슨 向上一路가 있고 向下一路가 있겠노?
향상일로가 항하일로고 향하일로가 향상일로야.
내가 自由自在하는 것인데 딴 사람이 없다니까? 그런데 뭐가 있는줄 안단 말이야
그래서 自己가 뭐를 알았다고 뻗대고 그러거든?
自己 眼目이 밝지 못하면 그런데 속아. 눈 밝은 사람은 그런 것을 턱 안다고.
입으로 큰소리 치는 것만 살아잇는 것이 아니야.
죽은 사람의 눈이 살아있는 것을 알아야해.
해골바가지의 눈동자가 밝다 그소리야. 중생들은 전부 삶속에서 놀아나거든?
그것은 永遠하지 않아서 힘이 없어.
그런데 죽어버린 사람은 다시 죽을 일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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