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성품 악한 성품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이 일으키는 문제 선과 악 相對性에서 발생 부처님은 그 위에 존재
正定이 제일 첫째 소식이고. 내 마음이 가라앉아. 눈하고 妥協을 안 해. 귀하고 타협을 안 해. 혓바닥하고 타협을 안 해. 그러면 내 마음이 그만 虛空과 같이 환하단 말이죠. 그런데 한 生覺을 일으켜서 한 여김을 턱 일으켜서 이런 일을 해 보겠다 저런 일을 해 보겠다. 또 色身은 내의 그림자거든요. 하기 때문에 色身 살려야 되거든요. 이래서 會社에 나가겠다 장사를 하러 나가겠다 이래서 한 生覺을 턱 일으키면은 그만 그대로 아무 失手 없이 그대로 일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 말하는 이 道力은 벌써 問題가 다르죠. 法을 굴릴 수 있어. 그러하기 때문에 여기엔 어떠한 문제가 있느냐. 우리는 악한 거를 굴려서 착한 거 만들 줄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좀 어렵습니다. 처음에 말부터. 그러나 나중에 차차차차 이런 말을 늘상 해싸면은 나중에 그만 自己 自身도 어느 사이 모르게 알아버립니다. 악한 일을 굴려서 착한 일을 만들 줄 알아. 착한 일을 굴려서 악한 것을 만들 줄 알아.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착하다 악하다 性稟 하나지요? 性稟 하나죠? 結果는 달라요. 그렇죠? 結果는 다르지만 性稟은 하나 아니에요? 그러하니 우선 이것부터 알아야 됩니다. 착한 성품이 따로 있고 악한 성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만 내가 公然히 마음을 그래 일으켜. 마음은 하난데 악하게 마음을 먹고 착하게 마음을 먹고 할 따름이에요. 그러나 性稟은 하나거든요. 그러면 악한 걸 일으켜서, 악한 걸 굴려서 착한 걸 만들어서 무엇에 써먹겠느냐. 衆生을 제도하는 겁니다. 악함을 굴려서 착한 걸 만들고 착함을 굴려서 악한 걸 만들어. 굴려. 만들 줄 알아. 그러하면은 착한 걸 굴려서 악한 걸 만들면 이걸로써 무엇을 써먹겠느냐. 聖賢들을 제도하는 겁니다. 이것은 좀 어렵죠. 왜 聖賢을 제도할 필요가 있느냐. 聖賢들은 착한 데만 들어앉아 있거든. 이 佛法이 이렇기 때문에 어렵다 하는 거예요. 한쪽에 치우쳤다 말이여. 착하다 하면 악하다, 相對性이거든. 부처님은 相對性이 없어. 相對性 위에 쑥 올라가 있어. 그러기 때문에 악한 걸 쓸려면 악한 것도 해. 착한 걸 쓸려면 착하기도 해. 마음대로 해. 그러나 聖賢들은 착한 데만 딱 들어앉아 있어. 거기서 징역살이하고 있어. 하하하. 이것 참 우습죠.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이것 참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하니 착한 걸 굴려서 악한 걸 만드는데 이걸로써 성현들을 구하는 거예요. 이 성현들을 우리가, 여러분들이 구하지 않고 누가 구할 거예요? 이거 말이 너무 엉뚱해 놔서 잘 곧이 들을런지 안 들을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여러분들이 자꾸 다지고 다지고 다져 보면, 아, 그렇구나 우리의 法身자리, 이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이 자리, 이 자리는 바로 누리의 主人公이로구나. 여기는 성현이니, 악이니 선이니, 아무 것도 들어붙지 않는 자리구나. 이걸 알게 됩니다. 또 착한 걸 굴려서 악을 만들어서 성현을 제도하고, 악을 굴려서 선한 걸 만들면 중생들을 제도하는 겁니다. 다른 거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것이 道力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道力을 여러분들이 앞으로 쓰려고 하면은, 여기는 노소가 相關이 없고 남녀가 分別이 없고 여기는 인종이 分別이 없습니다. 이 자리는.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자린데 여기 무슨 놈의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고 늙은 것이 있고 젊은 것이 있겠어요? 요 자리에 앉아야 비로소 道力을 갖다 내 쓸 수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악한 걸 굴려서 착한 걸 만들어. 착한 걸로는 중생을 제도해. 그러니까 요 말이 착하다 악하다는 것이 하나라는 그 말 아니에요? 또 착한 걸 굴려서 악한 걸 만들어서 성현을 제도하고, 악한 걸 굴려서 착한 걸 만들어서 중생을 제도하고. 그러하니까 여러분들이 이거 엉뚱하게 생각하지 마시오. 나는 착하다. 선행을 했다. 성현들 이름. 지구가 생긴 뒤로의 성현들 이름 한 여남은 개 있잖아요? 이 사람들 제도해야 됩니다. 이 사람들 제도 누가 하겠느냐. 여러분이 하는 거예요. 이 공부하는 사람이 하는 거예요. 이 공부 할 줄 모르면은 제도 안 됩니다. 아, 우리가 성현이라고 떠받치는 이 자리를 우리가 어떻게 제도할 겁니까. 이거 아무 것도 천지도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말 들으면 말이죠 웃습니다. 날보고 미쳤다고 할 겁니다. 아니 성현들을 제도해? 할 겁니다. 왜 그러느냐. 저 사람들은 좋다 하는 데에, 선에다가, 착하다 하는 데에 딱 들어앉아 있거든요. 우리는 들어앉아 있지 안 해. 나 안 들어앉아 있습니다. 내 아무 것도 모르지만. 그러하니 만약 선에 들어앉을려면 들어앉을 수도 있어. 선을 버릴라면 버릴 수도 있어. 악한 데 들어앉을라면 악한데 들어앉을 수도 있어. 악을 버릴라면 버릴 수도 있어. 나는 그렇습니다. 내가 아무 실력이 없지만은 나는 그렇게 마음 가진 지가 오랩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한테는 별로 마... 하하하. 부처님께서야 굉장한 분이니까 존경 안 할 수 없지만도 이전 성현들 존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말할 때는 존경하라고 합니다. 중생보다는 낫지 않느냐 말이여. 중생보다 높으니 그리 해야 되지 않겠느냐. 그러기 때문에 서울서도 내가 몇 번 말했지만 그런 말 했습니다. 사실 이렇고 이렇다 말이여. 우리는 絶對性 자리에 있기 때문에, 선이다 악이다 이거 相對性이거든. 相對性 위에 앉았어. 그 밑에 앉았어. 그러하니 벌써 선이다 하면 이거 성현들이고, 악이다 하면 이거 도치기 같은 사람들이니까 안 돼. 도치기라 해서 버릴 필요가 없어. 성현이라 해서 나는 관심을 안 가져. 가질 필요가 없어. 그러나 쓸 땐 써먹는다 말이죠. 요것이 道力입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할라면 어떻게 하느냐. 正定이 되지 안 해서는 내 마음이 그만 해말쑥해. 가라앉지 안 해서는 도저히 이 道力을 이루지 못하는 겁니다. 그렇겠지요. 어떻습니까? 자, 법운, 어때? 그렇겠는가. 事實로 그래. 우리가 선도 쓸 줄 알고 악도 쓸 줄 알아야 되요. 물론 이거 보통 자리에 가서 이런 말 하면 까딱하면 사람들 버려버려요. 그러나 이 자리는 이런 말했자 버려지는 자리가 아니라. 벌써 相對性엔 앉아가 있지 않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