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생기고 하는 몸뚱이는 단 일초를 가만히 있지 못한다 사람들은 相 속에 들어앉아 相을 여의고 있는 걸 모르고 뒤바뀐 生覺을 한다.
가만히 생각을 해 보라 말이여. 어째 실감이 안 가겠느냐 말이여. 가만히 생각을 해봐요. 그러니까 그럴 때는 이렇게 알아야 돼. 이거 적혈구 백혈구가 모아진 거라 말이여. 一秒 동안에 약 삼십만 마리가 죽어 나가고 일초 동안에 약 삼십만 마리가 살아 나온단 말이지. 이거 죽고 살고 죽고 살고 하는 게 가죽주머니다 이렇게 생각하란 말이여. 그래서 나중에 갈 때는 몽땅 갈 때는 흙구덩이나 불구덩이로 들어갈 거다. 이래 생각하면 이건 진짜가 아니다. 이걸 끌고 다니는 놈이 絶對性자리다 肉身 이건 相對性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것이 곧 납득이 가 버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어떻든지 여러분 절대로 虛空으로서인 여러분이라는 거 절대 잊어버리지 마세요. 이것이 또 科學的으로 맞아요. 과학적으로 틀린 것 아니에요. 여러분이 虛空으로서인 여러분이라고 해서 설법을 들어야 이것이 實感이 가지, 그만 肉身으로서인 내다 가죽주머니로서인 내다 色身으로서인 내다 이런 생각하면 도저히 설법이 납득이 안 갑니다. 그러니까 이 肉身은 原來 性稟이 없다는 거 여러분이 잘 아시는 거. 時時로 變한다는 거 아는 거 아니라요? 變하기 때문에 어린애가 어른이 되고 어른이 늙어서 노인이 되고 노인이 되어서 불구덩이나 흙구덩이로 가는 거 아니에요? 이걸 確實히 알아버리면 말이죠 그만 虛空으로서인 여러분이다 말하기 前에 벌써 여러분은 虛空에 앉아 있어요. 事實로 科學的으로 말이지 虛空에 앉아 있어요. 지금 여러분이 보고 듣고 하는 놈이 어디 있죠? 여러분의 몸뚱이에 앉아가 있는 줄 아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여러분의 몸뚱이에서 한 번 찾아내 봐요. 못 찾아요. 내가 말한 것도 틀리지. 虛空에 앉아 있단 말도 안 맞아요. 그렇게 말을 안 할 도리가 없어요. 그만 虛空이에요. 여러분들은 그만 法身 虛空身이에요. 듣고 하는 이놈을 우선 임시로 가죽주머니를 通해서 듣기 때문에 이 몸을 내다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여러분들이 확실히 再認識해야 됩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재인식 떡 해 놓으면 죽는 곽 매일 짊어지고 다니더라도 까딱없어요. 나중에 이 몸도 버려 버려야 돼. 나중에 뭐할 거요? 젊은 너희는 버리지 마라. 좀 있다 버려라 늙은 우리 같은 건 버려버려야지 뭐 할 거예요. 힘도 없고 술도 한 잔 마음대로 못 먹고 술 한 두어 잔 먹으면 醉해 버리고. 허허허. 싹싹 버리고 새 몸 받지. 그러나 虛空으로서인 내라는 이런 生覺이 있을 때 그렇지 色身으로서인 내라 하면 말이지 아무리 늙어서 이러한 몸이라도 한시라도 더 살고 싶은 것이 원칙이에요. 하나 이거 참 죽는 법 잘 내놨어요. 그거 안 내놨으면 큰일 날 뻔 했어요. 만날 이 꼬라지, 만약 이 꼬라지 가지고 억 년이나 虛空같이 살면 뭐할 거여. 다리가 아파 찌떡찌떡 하고 학교도 한 번 못 가보고. 학교도 다시 한 번 가봐야 되고 공부도 한번 해봐야 되고 황군처럼 회사에도 한 번 다녀봐야 되고. 하하하. 그거 다 장난이거든. 이런 장난 안 하고 어쩔 거냐 말이여. 그러하니 좌우간 어떻든지 虛空으로서인 여러분으로서 모든 설법을 들어야 됩니다. 설법만 들을 거 아니라 虛空으로서인 여러분으로서 日常生活을 해야 합니다. 귀한 딸이 있어도 虛空으로서인 내 딸이라. 또 귀한 아들이 있다면 虛空으로서인 내 아들이라. 그런데 이거 變하는 거여. 내 딸도 變하는 거여. 자꾸 變해. 뼈도 新陳代謝가 돼서 變해. 몸뚱이도 신진대사가 돼서 變해. 아이들도 자꾸 變해. 이 귀여운 딸도 나중에 불구덩이나 흙구덩이로 가. 불구덩이로 가면 한 줌 재로 나와. 흙구덩이 묻으면 한 삽의 흙으로 나와. 내 귀한 딸이 그리 돼. 내 귀한 아들이 그리 돼. 귀한 손자가 그리 돼. 이걸 모르고 말이지 아이고 하고 좋아서 뭐 어쩌고저쩌고 이래 한다는 것은, 그래서 내가 말하는 것이… 좌우간 어떻든지 虛空으로서인 여러분으로서 이 말 들으세요. 그리하면 이 쇠소의 소식을 알아. 머리 없는 쇠소의 혓바닥이 설법하는 줄을 알아. 아까 내가 말했죠? 내가 설법하지 않는다는 거. 설법하는 내 입을 빌어서 이런 말 저런 말 하고 있지만 이 설법을, 진짜 이 설법을, 이말 하겠다. 저 말 하겠다 하는 것은 無形無色인 虛空, 꼭 虛空과 같은 法身이 이 입을 빌어서 나불나불나불 말하는 거예요. 여러분도 이와 마찬가지죠. 꼭 마찬가집니다. 그러면 이거는 이대로 해 놉시다. 머리없는 쇠소의 혓바닥이 설법을 한다 이건 답을 써 오세요. 간단하게 말이죠. 그리고 그 답 남 보여 주지 마세요. 여러분만 알아서 써 오세요. 이 답이 옳으면 옳다고 하겠고 그르면 그른 대로 思考方式을 고치면 되겠다 해서 말하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들 거기서 공부가 됩니다. 그런 줄 아세요. 그건 그 말이고 우리가 相을 여의어야 해요. 우리가 相을 여의어야 한다지만 相을 여읜다는 것이 모순된 말이에요. 뒤바뀐 生覺이 딱 붙어 있어서 그렇지 原來 相을 여의어 있어. 왜 그러냐. 이거 헛거라 헛거라. 이거 완전하게 일초를 못 가지고 있어. 여러분의 몸뚱이 단 一秒를 가만히 못 있어. 한 쪽에서 죽고 생기고 죽고 생기고 이래. 이걸 알아버리면 相 속에 들어앉아서 相을 여의어 있어. 그런데 世上 사람들은 이걸 모르고 자꾸 뒤바뀐 生覺을 가지고서 이 變하는 걸 내 몸이다 이래서 뒤바뀐 生覺을 하기 때문에 못하는 것이지. 相을 여읜다는 건 뭣이지? 제일 쉬운 거여. 아 이거 헛거로구나. 헛거란 것에 딱 實感이 가면 이 相을 덮어쓰라고 해도 거기에 안 머물러. 이렇게 相을 여의는 법이에요. 만약 나는 相을 여의어야 되겠다 하면 나는 여의어야 되겠다는 相을 하나 더 덮어쓰거든. 相을 여의는 법은 아, 이거 헛거로구나. 요거 내 法身이 이걸 臨時로 쓰고 있구나. 이렇게 生覺을 하면 저절로 여기에 머물지 않아. 이것이 相을 여의는 것이지 나는 相을 여의어야 되겠다 이렇게 하면 나는 相을 여의어야 되겠다는 이 生覺 하나 더 짊어지거든. 그러면 四相에서 五相이 된단 말이야. 이걸 단단히 알아야 돼. 보살님들, 이거 단단히 알아야 됩니다. 이걸 헛거로만 알면은 저절로 여의어지는 거예요. 그렇죠? 이건데 나는 이걸 여의어야 되겠다 生覺하면 나는 이걸 여의어야 되겠다 하는 생각 하나 더 붙지 안 해요? 그와 마찬가지에요. 보살님들 단단히 들으세요. 이렇게 알아야 됩니다. 좌우간 어떻든지 오늘 얘기 다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