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 완릉록 11. 보리의 마음

장백산-1 2014. 12. 2. 00:50

 

 

 

 

 

◈ 완릉록 11. 보리의 마음

 

"만약 그렇다면 어느 곳이 깨달음입니까?"

 

"깨달음은 一定한 處所가 없느니라.

부처라 해서 역시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며, 중생이라 해서 깨달음을 잃는 것도 아니다.

깨달음은 몸으로 얻지 못하며, 마음으로도 구할 수 없는 것이니, 일체중생이 있는 그대로 깨달음의 모양이니라."

 

"그러면 어떻게 보리심을 냅니까?"

"보리는 얻는 것이 아니다. 네 지금 얻음이 없는 마음을 내기만 하면, 결정코 한 法도 얻을 수 없는 것

그대로가 보리의 마음이니라. 보리는 머물 자리가 없기 때문에 얻을 그 무엇도 없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내가 연등부처님의 처소에서 작은 法도 얻을 수 없었으므로, 연등부처님께서 나에게 受記하셨느니라'고 하셨다.

일체 중생이 본래 보리이므로, 다시 보리를 얻으려 할 필요가 없음을 명백히 알아야 한다. 네 이제 보리심을 낸다는

말을 듣고 한 마음을 가지고 배워서 부처를 얻는다고 말하여, 오로지 부처가 되려고 한다면 네가 3대아승기겁을

닦는다 해도 다만 報身, 化身의 부처만을 얻을 뿐, 너의 根本 然源인 참된 性稟의 부처와는 아무런 相關도 없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밖으로 구하는 모양있는 부처는 그대와는 닮지 않았도다'고 하였다."


 
********원오당 한소리********
 

"만약 그렇다면 어느 곳이 깨달음입니까?" "깨달음은 일정한 처소가 없느니라. 부처라 해서 역시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며, 중생이라 해서 깨달음을 잃는 것도 아니다. 깨달음은 몸으로 얻지 못하며, 마음으로도 구할 수 없는 것이니, 일체중생이 있는 그대로 깨달음의 모양이니라." 묻고 또 물어 사구백비(四句百非)가 되여간다. 마음이 부처임도 알았고, 妄想이 부처임도 알았다. 그러면서 깨달음이 어느 곳에 있느냐고 묻는다. 부처와 마음과 망상은 다 작용과 형상을 따라 붙여진 이름일 뿐이다. 그러면 깨달음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깨달음이란. 작용과 형상이 일으나는 그 본체를 말한다. 다시말해 마음은 形相이 없다. 그래서 있지만 느낄 수도 볼 수도 만질 수도 상상으로도 알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단지 作用이 일어나고 形相으로 지어지니 그 本體가 있을 것이다라고 터득할 뿐이다. 그래서 황벽스님은 깨달음은 一定한 處所가 없다고 하신다. 그러니 處所도 없고 形相도 없으니, 부처도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니며 중생이라고 잃은 것도 아니다라고 하시는데 여기서 어쩔 수 없이 삼신불(三身佛)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부처를 세가지로 나누어 설하면 마음의 텅~빈 바탕 本體인 법신(法身), 마음의 作用인 보신(普身), 마음의 形相인 화신(化身)인데 마음의 본체인 법신은 毘盧遮那佛이라고 칭하고

마음의 작용인 보신은 盧遮那佛이라고 칭하고 마음의 형상인 화신은 석가모니佛이라고 칭한다. 그러니 여기서 말하는 法身을 깨달음이라고 칭한다. 그럼 어찌 法身은 마음 그 自體인데 어찌 마음으로 마음을 볼수 있겠는가? 눈으로 눈을 볼 수 없듯이 오직 그 자체는 알 수 없다. 그래서 황벽스님이 마음이 作用하고 그 마음의 作用으로 形相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석가모니인 것처럼 "깨달음은 몸으로 얻지 못하며, 마음으로도 구할 수 없는 것이니, 일체중생이 있는 그대로 깨달음의 모양이니라."라고 하시면서

일체중생 역시 석가모니처럼 마음이 깨달아 있고 作用하고 形相으로 그대의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생시불(衆生是佛)인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내가 연등부처님의 처소에서 작은 법도 얻을 수 없었으므로, 연등부처님께서 나에게 수기하셨느니라'고 하셨다. 석존께서 경에서 말씀한 것을 인용하여 수기란 바로 너가 부처라고 일러주시는 것이 수기인 것이된다. 그러니 수기를 받았으면 그냥 내가 부처이구나 하면 될 것을

내가 왜 부처일까? 부처짓도 못하는데 하면서 見解를 냄으로 중생이란 形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일체 중생이 본래 보리이므로, 다시 보리를 얻으려 할 필요가 없음을 명백히 알아야 한다. 라고 부연하는 것은 바로 너의 마음 그 자체가 부처이고 그 부처가 작용을 일으킴이 바로 보리심이라고 알려 주신다. 그런데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또 내가 일으키는 것은 모두 번뇌망상뿐인데 무슨 보리심인가?라는 見解를 짓겠지...........

 

그러나 그런 見解만 짓지 않는다면 作用은 全部 부처가 일으키는 보리심임을 그대로 알아차려야 한다. 그래서 또 作用과 形相에 매달려 부처를 구할려고 한다면 안되기 때문에 이렇게 설하신다. "네 이제 보리심을 낸다는 말을 듣고 한 마음을 가지고 배워서 부처를 얻는다고 말하여, 오로지 부처가 되려고 한다면 네가 3대아승지겁을 닦는다 해도

다만 報身, 化身의 부처만을 얻을 뿐, 너의 根本 然源인 참된 性稟의 부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니라. " 라고 말씀하시어

法身은 證得되고 터득되는 것이지 作用과 形相으로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계신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밖으로 구하는 모양있는 부처는 그대와는 닮지 않았도다'고 하였다." 여기서 밖으로 드러나는 모양있는 부처란 바로 化身佛을 말하는 것이니

일어남을 알아차리는 것은 報身이요 形相은 化身이니

모양있는 부처는 그대 마음의 본체인 법신과는 닮지 않았도다라고 일러 주신다. 그러니 法身을 깨닫는 다는 말은 말일뿐 "석가도 몰랐는데 가섭이 알겠느냐?"라고 말했듯이

깨달음을 얻는 다는 말은 말도 안되는 말일 뿐이다. 그래서 眞如이며, 참性稟이며, 法身인 깨달음을 증득하라. 라고 해야 한다. 참性稟이 바로 깨달음인 것이다. 그래서 견성성불(見性成佛)인 것이다! ***본불본락(本佛本樂) 하옵소서! ()()()*** ***화엄동산에서 원오스님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