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인연일 뿐 불교방송 다시듣기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인연일 뿐
『이취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습니다. “欲望은 화살과 같이 빠르고 정확하다. 두 남녀 사이에서 불붙는 욕망은 번뇌의 뿌리이다. 이성(異性)보다 강한 욕망은 없다. 이 세상에서 이성과 같은 것이 하나만 있다는 사실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異性은 煩惱의 뿌리가 아니라 깨달음의 뿌리이다. 마치 메마른 땅이나 사막에서는 연꽃이 피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煩惱 때문에 깨달음의 싹은 튼다.”
남녀 사이에서 불붙는 욕망의 크기만큼 거대하고 꼼짝달싹 못하게 하는 것이 또 있을까. 이성보다 더 강한 욕망은 없다. 보통 불교에서는 이성과의 사랑을 수행에 방해가 되는 것이라고 하여 무조건 거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經典에서는 오히려 異性은 번뇌의 뿌리가 아니라 깨달음의 뿌리라고 설하고 있다. 이성에 대한 욕망의 크기가 큰 만큼 그로인한 깨달음도 크다는 것이다. 이성으로 인해 가슴 아파하고, 번뇌해도 좋다. 그로인해 깨달음의 싹은 트기 때문이다.
푸른 하늘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라. 다만 사랑하는 동안 사랑이 생겨나고 머물고 떠나가는 그 모든 過程을 온전한 깨어있는 의식으로 지켜보라. 사랑으로 인한 아픔도 사랑으로 인한 기쁨도 모두를 받아들이라. 어느 한 쪽만 일어나기를 바라지 말라. 양쪽 모두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사랑으로 인한 기쁨만을 바라는 사람은 불붙는 욕망으로써의 사랑에 빠지고 말지만, 사랑으로 인한 슬픔도 아픔도 모두를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사랑은 聖스러운 修行의 過程이다. 온전히 사랑하는 순간순간을 깊이 느껴 볼 수 있고 알아챌 수 있다면 그것은 욕망이 아닌 깨달음의 순간이 된다.
사랑으로 인한 가슴 아픈 번뇌의 마음도 있는 그대로 지켜보고, 아파하는 그 根本에까지 바라봄이 빛을 놓을 수 있도록 살피고 또 살피라. 그렇게 되면 異性이 固定된 實體가 아님을 보게 된다. 異性에 대한 感貞, 이를테면 사랑과 번뇌까지도 實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미워하는 것이 아니며, 내가 그로 인해 행복하고 아파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러한 因緣이었음을, 다만 그러한 狀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한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사람과 나와의 因緣이 사랑이었을 뿐이다.
모든 因緣은 한 번 모이면 반드시 사라진다는 무상(無常)의 屬性을 가진다. 인연 따라 모인 것은 인연이 다 하면 반드시 흩어지게 마련이다. 모이고 흩어지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참된 사랑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면 잠시 모인 사랑의 인연에 얽매이지도 집착하지도 않는다. 사랑 또한 다만 인연으로 사랑이 되었음을 안다면 그 사랑이라는 불붙는 감정 그 자체가 사랑이 아닌 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한 사랑의 뜨거운 감정은 다만 因緣이 만들어 낸 幻影일 뿐이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이슬처럼 눈부시게 사랑하라. 그러나 눈부신 햇살은 곧 정오를 맞고 이윽고 짠한 석양으로 기울어져 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라. 받아들일 것을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이야말로 참된 사랑이다.
사랑처럼 미움도 미움이 아니라 미움이라는 인연일 뿐이다. 그 사람이 미운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사람과 나와의 인연이 미움일 뿐이다. 그러니 다만 그 미움의 인연을, 그 상황을 미워할지언정 그 사람을 미워할 필요는 없다.
사랑도 미움도 인연이 만들어 낸 造化일 뿐, 거기에 얽매이는 순간 사랑에 미움에 휩쓸리고 만다. 사랑하고 미워하되 얽매이지는 말라.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다만 사랑이라는 인연일 뿐이다.
BBS 불교방송 라디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평일 07:50~08:00) 방송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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