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햘 수 없는 일 불교방송 다시듣기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우리의 人生에서는 내가 直接的으로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있고,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내 意志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말이다. 괴로움 없는 삶을 바란다면, 삶이 물 흐르듯이 自然스럽고 平和롭게 흘러가게 하고자 한다면 바로 이 點만 잘 깨달으면 된다.
삶은 아주 單純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힘써 행하고, 할 수 없는 것들은 애써 붙잡지 않으면 된다. 그렇게만 살면 삶에서 문제될 것이 하나도 없다.
삶에서 마주하는 우리의 가장 큰 問題는 내가 능히 할 수 있고 바꿀 수 있는 것들은 별로 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할 수 없는 것들,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대해 慾心내고 執着하면서 어떻게든 바꾸어 보려고 애쓰는데서 시작된다.
우리 意志로써 直接 바꾸고 變化시킬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또 내가 直接 할 수 없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아주 단순하다. 내 意志로 내 ‘안’에 있는 것들은 變化시킬 수 있지만, 내 ‘밖’에 있는 것들은 좀처럼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내 意志로 바꿀 수 있는 안에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生覺/마음/의식과 말과 行動이다. 生覺 마음, 시비 분별 비교 판단, 욕망, 해석, 언어, 행동에 대해서는 내가 내 意志대로 바꿀 수 있고 變化시킬 수 있다. 바로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이다. 바로 이러한 업(業)은 내가 짓는 行爲이기 때문에 내 스스로 직접 바꿀 수 있다.
그러면 내 바깥에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내가 세상에 業을 지어서 내보내면 바깥 世上에서는 그에 따른 結果인 보(報)를 보내준다. 卽, 業報/果報인 바깥 세상의 일들에 대해서는 지금 내가 直接的으로 바꿀 수가 없다. 이미 過去의 原因과 業이 因緣으로 만나서 現實로 나타나는 것인데, 그것을 어떻게 쉽게 바꿀 수 있겠는가?
즉, 내가 바꾸기 어려운 내 바깥의 것들로는, 富者가 되는 것, 남들에게 待接받고 稱讚 받는 것, 높은 地位와 名譽를 얻는 것, 인기를 얻는 것, 욕 얻어 먹지 않는 것, 상대방의 마음을 바꾸는 것, 좋은 집, 좋은 차를 가지는 것, 좋은 나라에 태어나는 것, 좋은 부모님, 좋은 환경을 받아 태어나는 것, 좋은 외모 몸을 받아 태어나는 것, 병 없는 건강한 몸을 얻는 것 등이 있다.
이런 것들은 外部에서 오는 것들이기 때문에 내 意志로 直接的으로 바꾸기 어려운 것들이다. 쉽게 말해 내 안에 있는 생각, 말, 행동 등은 내 意志대로 직접 바꾸기 쉽지만, 내 밖에 있는 인기, 조건, 환경, 부, 명예, 존경, 인정 등은 내 意志로 直接 바꾸기 어려운 것들이다.
예를 들어 경제력, 돈은 바깥 境界이기에 내 마음대로 안 되지만, 풍요로운 마음, 만족감 등은 內面의 境界이기에 내 마음에 달린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아주 단순하게 내 意志로 바꾸기 어려운 것들에 목숨 걸지 말고, 내가 直接 바꿀 수 있는 것들에만 마음을 쓰면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거꾸로 바꾸기 어려운 바깥에 있는 것에 대해서 執着하고 마음을 쓰기 때문에 人生이 점점 더 괴로워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내 바깥에 달려 있는 것들, 卽 명예, 인기, 존경, 인정, 부, 건강 등을 얻으려고 애를 쓰며 산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인 내 마음, 내 말, 내 행동에 대해서는 별 關心이 없다.
언제나 우리의 關心은 바깥에 있고, 結果에 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삶이 고되고 힘든 것이다. 부자가 되는 것은 내가 어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풍요로운 마음상태, 만족하는 삶, 작은 것에도 기뻐하는 마음을 選擇할 수 있을 뿐이다.
왜 자신이 直接 할 수 없는 것들에 목을 메면서 삶을 怨望하고, 바깥 世上에 拘束되어 휘둘리면서, 남들과 比較하면서, 스스로 苦痛과 不幸을 만들어 내는가? 다른 사람의 것을 貪내고 慾心내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마음인가. 그것은 나 안에 속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만 나에게 속한 것, 내가 직접 바꿀 수 있는 것, 나 자신의 것에만 관심을 쏟으면 된다.
돈이나 집과 자동차는 내 안에 속한 것이 아니다. 내가 내 뜻대로 직접 언제라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 것이 된다고 해도 끝까지 내 것으로 붙잡아 둘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다만 身口意 三業의 結果로 잠시 나에게 果報로써 온 것들일 뿐이다.
명성이나 지위, 인기나 존경 따위 또한 내 안에 속한 것들이 아니다. 나의 말과 生覺과 行動이 거룩했을 때 그에 따른 결과로써 사람들이 지위나 존경을 보낼 뿐이지, 그것이 本來부터 내 것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니 인기가 있더라도, 존경을 받더라도 그것은 내가 神經 쓸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내 것도 아니고, 내가 내 뜻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인기가 많고, 지위가 높더라도 그것은 내 意志와는 相關없이 언젠가는 사라질 것들이다. 그것들이 사라지고 무너질 때는 결코 우리에게 묻지 않는다. 우리의 意志로 어쩔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뜻하지 않은 苦痛, 不幸, 事件 病이 찾아왔을지라도 거기에 크게 神經 쓰며 괴로워할 것은 없다. 어차피 그것들은 나에게 속한 것도 아니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애초부터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찾아 온 고통에게 화를 내거나, 원망하거나,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욕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차피 그것은 宇宙法界에 세상에 속한 일일 뿐, 나에게 속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相關 할 바가 아니다. 나는 단지 내 길을 가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면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를테면, 그 뜻하지 않은 不幸한 일에 ‘不幸’, ‘苦痛’, ‘挫折’이란 이름을 붙이지 않는 것, 그 일 속에서 삶의 意味를 찾고, 그 일을 通해 깨닫고, 받아들여서 그것 함께 있어주고, 오히려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보내주고, 따뜻하고도 긍정적인 말과 적극적이며 확신에 넘치는 행동을 하는, 그런 것들이 바로 그 苦通스런 일 앞에서 우리가 우리 意志로써 할 수 있고, 바꿀 수 있는 것들이다.
빨리 이 苦痛이 지나가기를 바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차피 그 고통이 언제 오고 언제 갈 것인지는, 내게 달린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그것을 바꾸려고 해 봐야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苦痛 自體가 아니라, 그 苦痛에 對한 나의 解釋, 判斷, 마음가짐 等 意業과 口業인 말, 身業인 行動을 選擇할 수 있을 뿐이다.
남들이 나에 대해 나쁜 評價를 내리거나, 辱을 하거나, 미워하더라도 事實 그것은 그들에게 달린 문제일 뿐, 내가 상관 할 바는 아니다. 그것은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에게 속한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방에게 달려있는 일이다. 그것을 내가 바꾸려고 한다면, 그것은 곧 고통을 불러올 뿐이다.
나에 대한 상대방의 평가가 좋아지도록 바꾸려 애쓸 것이 아니라, 정작 바꾸어야 할 것은 나를 좋게 평가해주기를 바라는 바로 그 나의 마음이다. 바꾸어야 할 부분은 상대방의 마음이 아닌, 바로 내 마음인 것이다. 상대가 나를 좋게 평가해 주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상대가 나를 좋게 평가해 주기를 바라는 그 生覺을 바꾸어야 한다. 前者는 相對를 바꾸려는 것이고, 그것은 내게 달린 일이 아니다. 그러나 後者는 나를 바꾸려는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다.
상대방은 언제나 자기 스스로 내린 自己만의 判斷과 解釋으로 나를 評價한다. 그리고 그 평가는 全的으로 그의 일이지 내 일이 아니다. 상대방에게 나의 진심을 왜 못 알아 봐 주느냐고 따질 이유는 없다. 상대방이 만약 잘못된 평가로 나를 미워할지라도 그 또한 그의 문제이고, 그로인해 괴로운 것도 그 사람이다. 전혀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닌 것이다.
그 사람의 평가에 내가 괴로워하고 가슴 아파 한다면 공연히 내가 그의 판단에 구속된 것일 뿐, 지혜로운 이라면 전혀 그럴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의 머릿 속에 들어가서 나에 대한 판단 하나 하나를 전부 다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천만에! 그러려고 애를 쓰느라 힘을 쓸 아무런 이유도 없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나에게 속한 것만 신경 쓰면 된다.
이처럼 事實 삶이란 매우 單純하다. 내 意志로 할 수 있고 바꿀 수 있는 것에만 神經을 쓰고, 直接的인 내 意志로 바꿀 수 없는 것에는 神經을 끄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反對로만 살아왔던 우리의 習慣이 우리를 괴롭게 만들어 왔었다는 사실을 이젠 直視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공연히 내 意志로 바꿀 수 없는 外部 條件들을 바꾸려 애쓰지 말고, 내가 직저 할 수 있고 바꿀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만 關心을 두고, 마음을 다해 보라. 그럴 때 비로소 모든 苦痛과 問題는 끝이 나고, 自由롭고 平和로운 삶이 우리 앞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BBS 불교방송 라디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평일 07:50~08:00) 방송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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