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우주, 마음으로 접근하다 - 인터스텔라(Interstellar,2014)

장백산-1 2015. 1. 9. 15:52

 

 

 

우주, 마음으로 접근하다 - 인터스텔라(Interstellar,2014) ☞내인생의 영화들

2014/11/13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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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1997년작 <콘택트>에서 주인공 앨리(조디 포스터)와 팔머(매튜 맥커너히)는

연인이 되지만 앨리는 科學者로서, 팔머는 神學者로서 자주 의견다툼을 벌인다. 앨리는 "이 巨大한 宇宙에

만약 우리만 존재한다면 엄청난 空間의 낭비일 것"이라는 어릴 적 아버지의 조언을 신념으로 외계생명체를

탐색 중이다. 그녀는 자신이 찾고자 하는 絶對的인 眞理의 解答은 科學에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反面 神學者인 팔머는 종교를 대변하며 앨리에게 神을 믿을 것을 종용한다. 그러자 앨리는 팔머에게

神의 存在를 證明해보라고 따지고, 그에 대해 팔머는 이미 세상을 뜬 앨리의 아버지를 언급하며

이렇게 되묻는다. "아버지를 사랑했나요? 그럼 그것도 증명해 봐요."

 

 

 

 

 

物理的인 現象과 精神的인 現象은 嚴然히 다르다. 대표적인 예로 '거리(distance)'를 들어보자.

두 存在 間의 間隔인 거리는 物理的인 거리와 精神的인 거리가 確然히 다르다. 일반적으로 물리적인 거리는

絶對的이지만 정신적인 거리는 相對的이다. 다시 말해 물리적인 거리를 좁히려면 아주 정직하게 차근차근

밟아가야 하지만 정신적인 거리는 縮地法이 可能하다. 한국 서울에 사는 김씨와 미국 워싱턴에 사는 스티브는

물리적인 거리로는 비행기로 14시간 정도를 날아야 하는 엄청난 거리다. 하지만 김씨와 스티브가 아주 친한

친구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들의 정신적인 거리는 0m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정신적인 거리를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 마음이란 게 그렇지 않나. <콘택트>에서 신학자 팔머의 질문처럼

마음은 눈으로 볼 수 없고 證明할 수는 없지만 嚴然히 存在한다. 

 

 

 

구조적으로 <인터스텔라>는 '거리'에 대한 이야기다. 제목인 '인터스텔라(interstellar)'가 별과 별 사이, 

卽 恒星 間의 거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고, 쿠퍼(매튜 맥커너히) 일행은 지름길과도 같은 웜홀(worm hole)을

통해 星間 旅行을 한다. 그들이 다른 먼 銀河界로 여행길을 떠나게 된 건 종말이 다가온 인류가 살 새로운 行星을

찾기 위함이었다.


주목해야 할 건 그들의 '마음'이다. 쿠퍼는 어린 남매를, 아멜리아(앤 해서웨이)는 아버지 브랜드(마이클 케인)

박사를 地球에 두고 星間 旅行을 하게 된다. 지구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엄청난 거리를 달려 새로운 銀河界에

進入하지만 떠난 이들과 지구에 남은 이들 간의 마음의 거리는 더욱 짧아진다. 그리워서, 보고 싶어서 그들은

서로 눈물을 흘린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음은 물리적으로 멀어질수록 더 가까워진다.

어쩌면 사랑이란 宇宙 空間 속의 웜홀 같은 게 아닐까.


극 중 아멜리아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地球를 代替할 첫 행성인 밀러행성에서 시간과 연료를 허비하는

바람에 쿠퍼 일행은 만 박사가 있는 행성과 에드먼즈 박사가 있는 행성을 두고 選擇을 해야 했고, 그 때 아멜리아는

자신이 사랑하는 에드먼즈가 있는 행성으로 가자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젠 머리가 아닌 심장을 따르고 싶어요. 너무 오랫동안 理論에만 執着해왔죠. 사랑은 우리 人間이 發明한 게 아니지만 觀察이 可能하고 强力하죠.

사랑엔 뭔가 意味가 있을 거예요. 사랑이란 우리 人間이 理解 못하는 그 무언가를 意味할지도 몰라요.

사랑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더 높은 次元의 存在에 대한 證據일지도 모른다구요. 난 오랫동안 못 본 사람을

만나보겠다고 여길 왔어요. 사랑은 時空間을 超越하는 우리가 알 수 있는 唯一한 것이예요."

 

 

 

아멜리아의 마지막 대사처럼 사랑을 비롯한 人間의 마음이 時空間을 超越한다는 건 分明해 보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3次元의 空間에서 物質들은 모두 始作과 끝이 있지만 靈的인 存在, 卽 마음은

뚜렷한 形態가 없다. 마음은 形體가 없다보니 時空間을 쉽게 超越한다. 一律的이고 規則的인 모습의

時間과 空間 속에서 마음은 언제나 自由自在다. 이미 오십이 넘은 사람이 마음은 아직 이십대라고 하지를 않나,

지구를 떠나기 前에 아멜리아의 마음은 사랑하는 에드먼즈 박사가 있는 머나먼 다른 銀河界 行星에 이미 가 있지

않았을까. <인터스텔라>에서 마음은 그렇게 時空間을 超越하는 웜홀이었고, 相對性理論의 土臺가 되며, 심지어

블랙홀로 집약된 중력(重力)까지도 構成하는 物質로 解釋되고 있다. 그것이 전혀 신빙성이 없다고 볼 수 없는 게

상대성 이론을 만든 아인슈타인 박사도 자신의 이론을 쉽게 설명해 달라는 요구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름다운 여자와 함께 있는 1시간은 1분처럼 느껴지지만 뜨거운 난로 위에서의 1분은 1시간보다 길게 느껴진다."

 

 

 

 

<인터스텔라>에서 관객들이 宇宙의 神秘와 관련해 가장 충격을 받는 부분은 '重力과 時間'의 關係다.

중력이 커지면 시간이 느려진다는 게 가히 想像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쿠퍼 일행이 처음으로

도착한 밀러 행성의 경우 근처 블랙홀의 영향으로 그곳에서의 1시간은 지구의 7년과 같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걸 받아들이라는 말인가.
하지만 사실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人間이 빛의 速度로 달리면 時間은 멈추게 되고,

重力이 커지면 時間은 느려지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地球보다는 宇宙空間 속에서 時間은 더 빨리 가는데

그 差異로 인해 우리가 실제 사용하고 있는 GPS의 경우 相對性理論으로 補定해주지 않으면 잘못된 情報를

받게 된다고 한다. 이 우주에서 절대적인 건 '초속 30만km의 빛의 속도'밖에 없다. 그 外의 것들은 다 相對的이고

可變的이다. 마치 時도 때도 없이 變하는 人間의 마음과 닮았다.

 
宇宙가 끝이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설령 끝이 있다고 해도 그  宇宙 밖에는 또 뭐가 있을까. 답답할 노릇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의 공간 속에서도 분명히 존재는 하는데 끝을 알 수 없는 게 하나 있다.

그건 바로 人間의 靈的인 世界, 마음으로 마음은 形體도 없을뿐더러 끝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人間의 마음과 닮은 이 宇宙도 어쩌면 巨大한 누군가의 마음 한 구석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生覺은 내 生覺만이 아니다. <인터스텔라>를 두 번이나 보면서 自然스레 하게 된 生覺이다.

그만큼 <인터스텔라>에서 人間의 마음이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나다.

마음은 巨大한 宇宙와도 맞먹는다.

 

 

 

이제 마무리하겠다. 모든 인간에게는 우주와 맞먹는 마음이란 게 존재하지만 이 지구상에는

두 種類의 人間이 뚜렷이 區別된다. 평소 宇宙를 잊고 사는 사람과 宇宙를 生覺하면서 사는 사람이 그들이다.

前者의 경우 그 사람은 늘 한결같은 地球의 重力밖에 모른다. 그는 숨 쉴 수 있는 空氣를 당연시여기고

길가에 핀 풀 한포기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에게 중요한 건 成功이나 出世, 혹은 돈과 權力이다.

그에게 인생은 마라톤이다. 결승점까지 빨리 가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後者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그는 地球 外의 重力 差異를 認定하고, 흔히 볼 수 있는

풀 한포기의 가치를 가슴으로 느낀다. 그 한 포기 풀은 지구 밖으로만 나가도 쉽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에게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다. 地位 高下나 가진 것의 차이 貧富를 막론하고 모든 人生은 다 훌륭하다. 

이 두 인간 사이에서는 '우리'라는 槪念의 認識의 범위도 차이가 난다. 前者의 사람에게 우리라는 말은

'내 가족'이나 '내 직장', '내 나라'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後者는 다르다. 宇宙를 生覺하면서 사는 사람에게

우리는 '내 나라'를 벗어나 '地球人'과 宇宙人으로 擴張된다.

 

<인터스텔라>에서도 만(멧 데이먼) 박사가 논쟁 중에 말한다.

"人間의 意識은 아직 家族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하지만 想像해보라.

먼 훗날 宇宙時代가 到來해 다른 銀河界 外界行星의 外界人들 사이에서 같은 地球人을 만났을 때의 기쁨을.

그 때도 우리가 남일까. 최근 <그래비티>를 시작으로 <인터스텔라>로 이어지는 事實的인 宇宙映畵들에

우리가 열광하고 있는 理由는 바로 이런 의미가 아닐까.

實際로 '바바라 막스 허버드'같은 未來學者는 호모 사피엔스사피엔스(슬기슬기 인간) 以後의 人類는

'호모 유니버살리스(우주적 인간)'로 進化할 것이라고 말한다. 宇宙的 人間, 그것은 모든 生命體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서로 協力하며 全切에 奉使할 준비가 되어 있는 새로운 人類를 뜻한다고 한다.

 

"<인터스텔라>에서는 중력(重力)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차지합니다.

제가 본 바로는 <인터스텔라>에서 重力은 '存在'라는 意味를 지니고 있는 것 같더군요.

그러니까 重力은 곧 存在의 힘이라는 것. 그런데 말이죠. 제가 6년 전에 포스팅한 글에서

저는 이미 중력을 존재의 힘으로 해석했었답니다. 영화보다 깜짝 놀랐습니다. 

잠시 제가 천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아니, 천재일지도(풉!).

아래에 링크를 걸어놓을테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한번 읽어보시길...."

 

기리의 천재적인 통찰력이 돋보이는 중력에 대한 글☞http://blog.naver.com/lucas0213/40053188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