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 완릉록 18-9 배휴의 깨달음

장백산-1 2015. 1. 10. 02:52

 

 

 

 

 

 

◈ 완릉록 18-9 배휴의 깨달음 |자유로운 공간

보현행 | | 조회 4 |추천 0 | 2015.01.09. 23:35 http://cafe.daum.net/wono1/H43v/16170 

 

◈ 완릉록 18-9 배휴의 깨달음 

대사께서는 일찍이 대중을 흩으시고,
홍주(洪州)땅 개원사(開元寺)에 머물고 계셨다.
이 때에

상공 배휴거사가 어느 날 절로 들어오다가 벽화를 보고 그 절 주지스님에게 물었다.
"이것은 무슨 그림입니까?" "고승들을 그린 그림입니다."
"고승들의 겉모습은 여기에 있지만, 고승들은 어디에 계십니까?"

그 절 주지스님이 아무런 대답을 못하자

배휴가 "이 곳에 禪僧은 없습니까?" 하고 물으니,
 "한 분이 계십니다."라고 대답했다.
상공은 마침내 대사를 청하여 뵙고,
전에 주지스님에게 물었던 일을 스님께 여쭈었다.
 그러자 대사가 불렀다.
"배휴!"
"예!"
"어디에 있는고?"
상공은 이 말 끝에 깨치고 대사를 다시 청하여 개당설법을 하시게 하였다.

 
********원오당 한소리********
 
[대사께서는 일찍이 대중을 흩으시고, 홍주(洪州) 땅의 개원사(開元寺)에 머물고 계셨다.]
이 이야기는 배휴가 회창 2년 종릉관찰사로 재임시 황벽스님을 만나 용흥사에 계시도록
하여 조석으로 참례하고 法을 물었다.
그때 기록들이 傳心法要이며 그러다 배휴는 다른 고을로 떠나고
황벽스님도 또 유랑의 납자로 용흥사를 떠나 천하를 유람하며
남전스님과 많은 철을 보내다 완릉지방을 유랑하고 있을 때
배휴가 완릉 관찰사로 오면서 그 소식을 듣고
황벽스님을 개원사로 모셔와 주하게 하였으며 용흥사에 계실때처럼
조석문안을 드리면서 물었든 선문답에서
배휴가 마음을 깨친 시절인연을
여기에 기록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때에 상공 배휴거사가 어느 날 절로 들어오다가
 벽화를 보고 그 절 주지스님에게 물었다.
"이것은 무슨 그림입니까?" "고승들을 그린 그림입니다."
"고승들의 겉모습은 여기에 있지만, 고승들은 어디에 계십니까?"
그 절 주지스님이 아무런 대답을 못하자 배휴가
"이 곳에 선승은 없습니까?" 하고 물으니,
 "한 분이 계십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때에라는 말은 모든 경전에 '이시(爾時)'에라고 하듯이
[한 때 부처님이 기원정사에서 제자들 누구와 이렇게 말씀하심을 내가 들었다]와
같이 격을 갖추어 쓴 글이다. 절에 들어오던 배휴거사가 아마도
벽화로 그려져 있든 고승대덕들의 화상을 보고 주지에게
이 화상들은 누구를 그린 것이냐고 물으니
이 절에 주지가 고승들을 그린 것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래도 마음工夫를 좀 했던 배휴라
眞理는 言說이 없고 形相이 없다라는 것을 아는 배휴가 물었을 것이다.
고승의 그림은 이렇게 형상으로 모셔져 있는데.
그럼 그 고승들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
이 말은 그 고승들의 主人公인 마음은 어디에 있느냐 고 뭍고 있다.
일반 절의 주지라면 의식과 행위적 불교는 알지 모르지만
마음工夫를 하지 않는 그 승이 무어라 말을 해야 할까
지금 극락에 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 도솔천에 계실 것입니다라고 하든지
아무튼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는 것을 보면 이 주지승 또한 법사나 율사였덩 모양이다.
 
그래서 배휴가 혹시 마음을 아는 선승은 없습니까라고 禪僧을 찾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僧에는 差別이 없지만 우리가 戒定慧 三學을 말하듯이
戒를 가리키고 지키게 하는 僧을 율사(律師)라고 하고
佛法을 가리키는 僧을 법사(法師)라고 하고
마음을 가리키는 승을 선사(禪師)라고 하듯이
지금의 사찰의 풍속도는 공찰은 이 법도를 지키기는 한다.
叢林은 사찰을 말하며
총림은 불교경전 공부를 하는 講院과
율법인 의식을 가리키는 律院
그리고 참선 수행을 하는 禪院
이렇게 모두를 갖추고 있는 사찰을 총림이라고 한다.
 
총림에는 그 사찰의 정신적 지주인 선원의 조실스님과 수좌들을 말하여
이 분들이야말로 진정 스님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이렇게 다시 만난 황벽스님에게 조석으로 문안을 드리면서 서로
혜여져 있을때 일을 거론하면서 배휴가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상공은 마침내 대사를 청하여 뵙고,
전에 주지스님에게 물었던 일을 스님께 여쭈었다.]
그러자 대사가 불렀다.
"배휴!"
"예!"
"어디에 있는고?"]
 
여기서 한 소리에 무엇을 깨쳤을까?

배휴라고 불렀다! 관찰사는 직함이요 배휴는 이름이다.

原來 主人公인 배휴(本來面目)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직함 이름 이것은 因緣 따라서 붙여진 名色일 뿐이다.

 

그런데 이 배휴라고 부를 때 이 소리를 알아듣는 놈은 누구인가?

부르는 소리에 습관적으로 그냥 예! 라고 했다.

그런데 예라고 대답하는 놈은 어디에 있느냐고 다시 소리친다.

누가 물었으며, 누가 들었으며, 예라고 한놈은 누구이며

무엇인가가 있어 대답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황벽스님이 그놈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닥달을 하신다.

누구지 누구지 누구지..........!

그럼 들은 것은 귀일 것이고

대답은 입이 했을 것이고

지금 어디에 있느냐하는 것은 지금 여기에 있는데

그러나 四大는 地水火風으로 五蘊의 集合體요

原來 方位處所가 없는데 지금 나는 여기에 있다.

그럼 名色과 몸과 場所는 虛象인데

과연 누가 이렇게 뭍고 답하느냐???

그 때..........!

電氣에 感電되듯이 전율같은 것이 마음속에서 흐르는듯 한 소식이 感覺되어진다.

이것이 무엇일까???? 이 뭣 꼬~~~~~!

그래 그래 그래

이 허망한 몸이나 기관이나 부질없는 이름에 이끌려 내가 하던 모든 일이

虛想이구나 하는 瞬間 구름같이 내 몸에서 빠져나가면서

여태 살아오면서 하든 모든 짓이 허깨비처럼 나에게서 흩어짐을

순간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는 昭昭靈靈하게 知覺되어지는 이 마음이란 한 物件만이

또렸하게 느껴지면서 모든 名色이 사라지고 모든 生覺마져 떠오르지 않는

지금까지 自己를 짓누르고 있던 그 모든 일체가 연기처럼 사라졌을 것이다.

그래 그래 그래 그래

이것이야 이것이야 이것이야 이거다!

바로 이놈이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면서 헛깨비같이 춤을 추었음을

그 짧은 찰라에 감지하였을 것이다.

.

.

이렇게 또 심즉불(心卽佛)이 현현(顯顯)한 것이다.

이심전심(以心傳心)

 

이렇게 마음을 깨친 배휴가 그때부터

[상공은 이 말 끝에 깨치고 대사를 다시 청하여 개당설법을 하시게 하였다]

 

이 것이 배휴와 황벽스님의 時節因緣이다

世上事 모든 것이 다 因緣之所生이듯 이렇게 참스승과 제자가 동등하게

마음을 얻고 부터 묻고 질문한 것도 전심법요와 완릉록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이제껏 보설을 읽으면서 많은 차이점이 있음도 알았을 것이다.

 

만약

황벽스님이 배휴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였을까

그야 당연히 그렇게 황벽스님은 일개 납자로써 세상을 풍미하시다

자취도 남김없이 갔을 것이다.

이 소중한 一心法이 이렇게 傳해지게 된 것도 자취와 흔적을 남기지 않는

납승인 황벽스님의 자취가 우리에게 전해진 것도

모두 배휴가 스스로 기록하여 전한 것이지

황벽스님 역시 황벽산의 이름만 전해 올 뿐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황벽스님의 이 方便도 중요하지만

황벽스님의 마음을 터득하여 스스로 알아야 할 것이다!

 

 ***본불본락(本佛本樂) 하옵소서! ()()()*** ***화엄동산에서 원오스님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