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의 법성게 강의 제5강 영상법문 녹취록
1. 네 반갑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 ‘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라고 해서 어~ 한 티끌 속에 이 우주 전체가, 이 공간적인 우주전체가 어~ 다 담겨있다. 그 서로 그 속에 다 포함되고 있다 이런 인제 말씀드렸는데, 이제 오늘 배울 부분은요, 이것이 어~ 이렇게 空間的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時間的으로도 마찬가지다 이런 이야깁니다. ‘無量遠劫卽一念 一念卽是無量劫’ 그래서 無量한 遠劫이 아주 아득하고, 먼 어떤 劫이라는 時間이 곧 一念에 있고, 또 일념이 곧 무량한 것과 다르지 않다. 이렇게 이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마~ 劫이라는 내용은 여러분들이 많이 아마 들어보셨을 것 같은데요
뭐 칼파라고 해서 그~ 인도에서는 뭐 범천의 하루라고도 그러는데요 그 뭐 4억3천2백만 년을 一劫이라고 한다라고 인제 인도에서는 보통 생각했었는데 또 힌두교에서는 창조신 브라흐마의 하루라고 해서 43억2천만 년이 일 겁이다. 이렇게도 표현을 하고. 보통 불교에서는 반석겁, 혹은 또 뭐 겨자겁 이렇게 얘기를 해서 뭐 겨자겁은 그 사방 또 상하의 일유순되는, 다시 말해서 일 유순이면 15킬로미터 정도가 됩니다.좌우 사방 이렇게 15킬로미터가 되는 거대한 어~ 철로 만든, 철로 만든 그 城 안에다가 겨자씨 그 아주 쪼그만 겨자씨를 그 안에 가득 채우는 거죠.
가득 채운 다음에 백년마다 겨자씨 하나만 이렇게 그 15킬로미터 되는 반경에 있는 것을 백년 마다 한 개씩 뽑아가지고, 이게 이제 다 없어질 만큼의 시간, 그걸 이제 一劫이라고 한다. 이래서 겨자 겁이라고 불러요. 이제 반석 겁은 똑 같이 일 이 십리나 되는 큰 반석을 백년 마다 한 번씩 천상 세계에 있는 천인들이 내려와서 이렇게 흰 천으로 슬쩍 스치고 올라가서 이 돌이 다 닳아 없어질 만큼의 시간, 그니까 쉽게 말하면 無量한 時間, 그니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시간, 뭐 이렇게 표현한다고 할 수가 있겠죠.
2. 근데 또 인제 梵網經이라는 經典에 보니까 좀 재밌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어~ 이게 인제 그만큼 길다는 이야기이겠죠. 일천 겁, 일천 겁을 인연을 맺어야 우리가 한 나라에 같이 태어날 수 있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과 저는 벌써 한 나라에 태어났다는 것만으로도 천 겁 이상의 인연으로 이렇게 인연을 맺어왔던 것이겠죠. 이천 겁 인연을 맺으면 하루 동안 길을 같이 동행할 수가 있답니다. 삼천 겁을 맺으면 하룻밤을 한 집에서 이렇게 보낼 수 있다. 이~이건, 그 뭐 같은 공간에서 이렇게 보낼 수 있다 이런 얘기겠죠. 사천 겁을 맺어야 한 민족으로 태어나고 오천 겁을 맺었을 때 한 동네에 태어나고 육천 겁을 맺어야 하룻밤을 같이 자고
칠천 겁을 맺어야 부부의 인연으로 만난답니다. 팔천 겁의 인연을 맺었을 때 부모와 자녀로 만나게 된다. 부부간 보다는 부모 자녀가 더 가까운 거죠. 부부보다는. 부부는 뭐, 뭐 싫다 그러면 바로 끝나지만 자녀는 끝날 수가 없는 인연이지 않습니까? 이 팔천 겁이, 이 부모와 자녀지간인데 구천 겁이 형제자매랍니다. 부모와 자녀보다도 오리려 형제들은 같은 뱃속에서 같은 어머니 아버지 속에서 태어났다는 그 인연, 더욱더 아주 깊은 인연이라는 것이죠.
근데 이보다 더한 인연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안믿으실텐데, 스승과 제자의 인연은 一萬 劫 이상이 돼야 된다고 그럽니다. 왜 그럴까요? 형제자매는, 형제자매는 그냥 세속적인 인연을 맺고 만났다 헤어지고 만났다 헤어지는 거잖아요 그니까 아무리 형제자매 인연이라 할지라도, 뭐 예를 들어, 여기 계신 분들이 서로 전생에 부부였든, 자식이었든, 형제이었든 이랬을 수 있지만, 이번 생에 딴 집에서 태어나니까 다 남남처럼 살잖아요? 뭐 그렇게 큰 功德이, 이번 生까지 그 功德이 큰 인연으로 오지 않지 않습니까?
3. 근데 스승과 제자의 인연은 왜 이렇게 귀중하겠습니까? 스승과 제자의 인연은 億劫토록, 이 겁을 뛰어넘을 수 있는 一念卽是無量劫 이라고 하는 이 아무리 많은 劫동안을 인연 맺고 또 맺고, 또 맺는다 할지라도, 이 劫은 오직 한 生覺 지금 이 瞬間에 담겨있거든요. 이 劫을 超越해서, 이 時間이라는 幻想을 뛰어넘어서, 法을 바로 일깨우게 할 수 있는 그니까 이 法을 알지 못하면, 우리가 수 천, 수 만, 수억 겁을 輪廻한다 할지라도 끊임없이 輪廻하는 煩惱 妄想의 世界 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근데 이 스승과 제자의 인연은 그 끊임없는 수억 겁, 수조 겁을 반복하면서 태어나도 어찌할 수 없는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인연을 맺어주는 인연이 바로 스승과 제자의 인연입니다. 스승의 인연이란 말이죠.
그러니까 아무리 부모, 자식, 부부, 이들 간에 因緣이 아무리 강하고 찐하다해도 그 因緣은 劫을 뛰어넘게 하고 이 六途輪廻를 뛰어넘게 하고 그러지는 못한단 말이죠. 그 옛날에 처음으로 제가 이런 얘기를 들었을 때는요, 이 쪼금 좀, 약간 좀 이 마지막이 가장 수승한 게 스승과 제자라 이랬을 때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내지는 이거 뭐 불교 책 이니까, 불교, 뭐 좀 뭐 절에 좀 잘해라, 스님들한테 잘해라, 뭐 이런 얘기가 아닐까? 이렇게 생각했었습니다. 근데 時間이 정말 지나면 지날수록요, 정말 저를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했던 이 가까이 맺었던 스승님뿐 아니라, 뭐 하다못해 책 한권으로써, 아니면 말 한마디로써,아니면
2500여 년 전에 부처님께서 남겨주신 그 경전의 한 마디 한마디 가르침으로써 나를 이렇게 이끌어주신 그 수많은 스승님들, 스승님들의 은혜가 아~! 정말 어찌 이 은혜를, 그 제가 부모님의 은혜, 형제자매의 은혜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어찌 부모님의 은혜보다 못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 이 은혜는요, 정말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욱더, 아! 정말 이거는 정말 이~~ 뭐라 그러죠? 신비롭다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아~! 어떻게 이런 因緣이 있을 수 있을까? 정말 참된 스승이라는 因緣은요, 정말 우리가 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겁니다. 정말 그런 것들을 이렇게 점점 이렇게 저도 제안에서 막 가슴 아주 마~ 이렇게 떨리도록 이렇게 느끼게 되거든요. 그것은 정말 그니까 왜 그러냐면요,
이 세속에서의 일이 이 마음工夫에 그냥 확 마음이 와 있으면요 이 世俗的인 것 보다 마음工夫에 마음이 확 와 있는 사람은 이 마음을 理解를 할꺼예요. 世俗的인 그 어떤 것을 한들 그것들은 이번 生에서 끝나고, 다음 生 가면 다 물거품 될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오직 유독 이 마음工夫의 因緣만은 이 마음工夫의, 마음工夫하는, 이 마음工夫가 얼마나 진중하고 귀한지 안다면 이 말을 대번에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4. 그렇게 이제 劫이라는 것이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긴 歲月이지 않습니까? 상상할 수 없이 긴 歲月이라고 이렇게 말을 하고 있단 말이죠. 그런데 그 수도 없이 많은 긴 歲月 數億劫, 수조겁을 지난다 할지라도 그러니까 우린 어떻게 생각하냐면, 야! 그 수없이 많은 劫을 輪廻하고, 輪廻하고, 輪廻하면서 그 億劫을 輪廻 反復하면서 해도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이 깨달음이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내가 앞으로도 輪廻할 날이 얼마나 많이 남았는가 하면서 挫折하기 싶단말이죠. 그런데 좌절할 필요가 없단 말입니다. 無量遠劫이, 그 無量한 劫, 一劫도 그렇게 긴 時間일진대 無量은 限없이 셀 수 없는 量이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무량은 아득히, 까마득히 먼, 그러한 無量한 劫이 바로 卽 一念이다. 한 瞬間일 뿐이다.
無量한 劫이 지금 여기에서의 一念 한 生覺, 지금 여기서, 지금 이 자리에서의 이 一念과 다르지 않다. 一念卽是無量劫이다. 바로 지금 여기서의 한 生覺이, 지금 여기서의 한 마음이, 지금 이 자리에서, 지금 여기 이 瞬間 이 자리가 바로 無量한 劫 全切라는 말이다. 그 時間이라는 것은 우리가 生覺 속에서 만들어낸 幻想에 불과한 허망한 의식일 뿐이지, 時間은 없고 定해져 있지가 않습니다. 그 요즘에 보면요, 음~, 뭐~, 영적인 스승이라 해서 서양에서도 많이 유행하고 이런 사람 중에, 불교 쪽에서 아주 유명한 사람 중에 디팩초프라 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시간에 대해서 쓴 글에 이렇게 아름다운 글이 있더라구요.
지금 이 순간은 영원의 중심에 있다. 그러나 다른 순간도 마찬가지다. 영원이 모든 순간의 앞뒤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과거와 미래 그때와 지금 앞과 뒤는 따로 없다. 오직 영원한 순간이 있을 뿐이다. 우리의 모든 경험이 현재 이 순간의 깨어있음 안에서 오직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진다. 다른 때 다른 곳이 아니다.
5. 이 세상을 우리는 이렇게 時間을 直線的으로 이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과거에서부터 이렇게 현재로 오고 현재에서 미래로 가는 이런 直線이라고 생각해요. 직선이라고 생각하니까 과거는 이미 지나가서 다시는 우리가 볼 수 없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여기에 있고 미래는 저 멀리 있어서 미래는 아직 오지 않는 시대라고 생각하고요, 이 미래와 이 과거는 영영 만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와 과거도 영영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直線的인 思考方式이 있어서 그래요. 근데 지금 物理學에서 말하는 어떤 時間의 槪念, 뭐 빛의 槪念, 모든 物質의 槪念, 모든 槪念에서 直線은 없다 그래요. 物理學에서는. 直線은 없다. 모든 것은 휘어져 있다. 모든 것은 循環의 고리로 連結되어 있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時間이라는 槪念을 우리는 直線인 줄 알았는데, 과학에서 발견한 것은 直線이 아니라는 거예요. 循環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죽했으면 그 佛敎에서는 圓을 얘기를 많이 하고 오죽했으면 圓佛敎가 이걸 뭘로 할까, 이 眞理의 核心을 설하는 단어가 뭘까 하다가 圓을 딱 택해서 원불교에 이렇게 했단 말이죠. 모든 것은 圓으로 循環되는, 이 輪廻의 고리, 끊임없이 反復 循環하는 同一한 패턴이 반복되는 것이, 이 宇宙에는 모든 것이 連結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細胞를 쪼개고 쪼개고 들어가고, 들어가고, 들어가서 原子核이 있고 그 옆 속에 中性子 陽性子가 막 돌고 도는 그것의 그림을 딱 찍어놓고, 그리고 다음에 저 宇宙로, 銀河界로 나가고, 더 멀리로 나가고, 뭐~ 銀河團으로 나가고, 막 멀리멀리 나가고 나가서 그 宇宙 銀河界를 딱 찍어놓으면 그 사진이 원자핵 그 사진과 거의 一致한다는 거죠. 똑같이.
이~ 우리 太陽界만 해도 마찬가지이지 않습니까?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잖아요? 이 똑같다는 거죠. 모든 것은 끊임없이 反復되고 循環되는 어떤 프랙탈이라는 連結고리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비슷한 것이 계속 反復 循環된다는 말이죠. 循環이 되고 끊임없이 反復된다. 하루도 밤과 낮으로 계속 循環 反復되고, 빛과 어둠도, 呼吸도 들숨과 날숨으로 끊임없이 循環 反復되고, 季節도 봄, 여름, 가을, 겨울 끊임없이 循環 反復되고, 이 아름다운 단풍시즌이 곧 끝나가는 섭섭함이 있지만 내년 되면 다시 또 돌아올 수밖에 없고..... 언제나 우린 이미 지나가서 아쉽다고 생각하지만 지나간 것은 어김없이 다시 돌아옵니다. 하다못해 流行도 다시 돌아오잖아요. 옛날에는 그게 아니다 싶었던 流行이 다시 돌아오고, 돌아오고 하는 것처럼. 오래된 未來라고 말하듯이 옛날에, 옛날에 어떤 것들이 지금 다시금 照明을 받고 있기도 하고. 그것이야말로, 옛날의 그것이야말로 오히려 우리의 미래를 밝혀주는 유일한 지혜였구나 라는 것이 밝혀지기도 한단 말이죠.
6. 그래서 언제나 이 時間이라는 觀念은 循環 고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 循環이라는 건 뭐냐 하면, 이 圓이라는 것은 圓卓會議 같은 거 하는 理由가 뭐겠어요? 圓은 上下 垂直關係가 아니라는 말니다. 圓에는 높은 자리도 낮은 자리도 없고, 서로 相互 平等한 자리만 있을 뿐, 이 자리 저 자리 어느 자리에 있어도 同等해서 아래 위가 없는 겁니다. 同一한 자리가 되는 겁니다. 圓은 始作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 이건 뭘 의미하냐면 어느 자리에 있어도 다른 자리와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大平等하다는 겁니다. 圓은 이렇게 돌려놔도 저렇게 돌려놔도 다 똑같단 말이죠. 어느 자리도 그 자리가 결국 그자리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우린 過去 現在 未來가 있다고 時間이 있다고 여기지만 時間은 幻想이고 錯覺일 뿐입니다. 내 머릿속에 生覺으로 만들어 놓은 槪念 觀念 幻想에 불과합니다.
지금 이 瞬間은 過去와 連結되어 있습니다. 直線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서 過去를 만날 수 있고, 지금 여기 이 瞬間 이 자리에서 未來를 만날 수 있습니다. 단지 虛妄한 幻想인 이 生覺과 妄想 槪念으로 現在가 따로 있고, 過去가 따로 있고, 未來가 따로 있다고 錯覺할 뿐입이다. 이런 時間이라는 槪念의 防害物 때문에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過去 未來를 만나지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머리로 이해하기가 좀 힘들 수도 있는데요, 어~ 이렇게 이야기를 하더군요. 時間은 本來 없고 幻想일 뿐인데 마음이 생각이 時間을 느낄 때만 時間이 存在한다. 그래서 마음 생각이 時間을 느끼지 못할 때는 時間은 없다는 거죠.
뭔가에 우리가 沒入하고 있을 때는 時間을 忘覺하지 않습니까? 時間이, 야~ 시간이 몇 분 지났다, 얼만큼 갔다, 이런 걸 딱 잊어버리잖아요. 그 거기만 딱 몰입합니다. 딱 몰입하고 나면 시간이 얼마 지났는지도 모르는데 시계을 딱 보면 벌써 몇 시간이 훅 지나가있는 걸 알아요.그 시간이 가는 걸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게 된다. 즉 우리가 시간을 意識하고 있을 때는 시간이 안가고 더디게 갑니다 時間을 우리가 槪念 짓기 始作하면. 근데 時間을 槪念 짓지 않고 있을 때는 그러니까 時間이라는 것을 우리 머릿속으로 槪念 짓지 않고 있을 때는 時間은 없다는 말 입니다. 원래 없는 시간이지만 언제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르게 시간이 지나갔다.
그래서 시간을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시간은 늦게 갑니다. 그 군 생활 2년이 휙 가는, 저~ 한참 길고, 길고, 길게 안 가는 이유가 빨리 전역하기만을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니까 2년이 오래 걸리는 것 같은 거예요. 너무나도 즐거웠던 기억은 금방 홱 가버리거든요. 이것 또한 이렇게 우리가 마음속으로 시간을 오랫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니까 時間이라는 槪念이 實體化 되어서 더 오래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 뿐인 거죠.
7. 그런데요, 이런 느낌 이게 진짜 그런가했더니, 물리적인 시간 자체가 실제 그렇다라는 어떤 과학적인 어떤 연구가 나왔는데요, 어떤 얘기가 있냐면, 그 서양의 속담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지켜보는 냄비는 끓지 않는다.’ 이런 얘기 들어보셨습니까? 냄비에 물을 끓이는데 지켜보면서 빨리 끓어라, 빨리 끓어라, 빨리 끓어라, 마음 속으로 이러면 훨씬 늦게 끓는 답니다. 진짜로 늦게 끓는 답니다. 시간적으로. 근데 이거를 빨리 끓어라 라고 생각하지 않고 딱 잊고 있으면 실제 더 빨리 끓는다는 겁니다. 시간을 재보면. 정말 그런다는 거예요. 이거를 그 하버드 출신의 물리학자 이타노라는 박사가, 그 전자파 열을 발사해가지고 그 베릴륨이라는 原子 5천개 가량을 加熱하는 실험을 했다 그래요.
쉽게 말해서 이거를 어떻게 비유할 수 있냐면, 계란을 물에 끓이는 실험을 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걸 끓이는, 이 전자파로 전자를 가하면서 끓이는데, 한 번도 보지 않았을 때는 백퍼센트 이 원자가 익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네 번을 봤더니 1/3 만 익었어요. 보면 볼수록 이게 덜 익는 겁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64번을 봤더니 아예 익지를 않았다는 거예요. 아예 익지를 않았습니다. 열을 가했는데도 불구하고 익지 않았다. 이 베릴륨 원자가. 이게 과학적으로 증명이 됐습니다. 이것처럼 우리의 생각에는 그 時間이라는 槪念이 어떤 절대적인 것이라고 生覺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그 실제 냄비가 끓고 이런 것도 이렇다라는 거죠.
8. 그래서 時間은, 어떤 물리학자들은 時間은 어떠한 事物이 아니라 하나의 觀念일 뿐이다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이 時間에 대해서 우리의 어떤 槪念이 影響을 미치는 理由가, 여러분! 동물에서, 동물 세계에는 이런 일이 없는데요, 人間 世界에서는요 그~ 매주 월요일 아침 9시에 이 문명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죽는답니다. 統計를 보면 일주일 중에 월요일 아침 9시에 죽는 사람이 그렇게 많데요. 月요병 때문에 그렇습니다. 월요병 때문에. 월요일 아침 9시에 출근을 해야 되는 이 强迫觀念 때문에 죽는, 죽는, 스트레스 때문에 죽는 사람이 많은 거예요. 동물 세계를 보면 그런 일은 없다는 겁니다. 원시시대에도 그런 일이 없었다는 거죠. 이게 時間이라는 幻想이 주는 어떤 强迫感 이런 것 때문에 이런 않좋은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이런 답니다. 늘 時間이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 나는 時間이 없어 죽겠다. 시간이 부족하다. 맨날 시간이 부족하다라고 얘기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몸을 연구해봤더니, 시간이 없다라고 항상 조급해하는 사람은 心臟搏動이 엄청 빠르구요, 血壓이 높고, 인슐린 수치가 높고, 부정맥이 많더라는 겁니다. 그런데 난 있는 게 시간밖에 없어. 세월아 네월아 태평하게 사는 사람들은 맥박도 느리고, 혈압도 낮고 그러더라는 겁니다. 그 우리가 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지 않습니까? 自然의 모습을 보고 感歎하는 瞬間이 많은 사람들은 이 단풍을 보고 感動을 하고, 풀 한포기를 보고 感動을 하고, 일출의 장면을 보고 感動을 하고, 정말 어떤 아름다운 것을 보고 感動 잘 할 줄 아는 사람들, 그렇게 感動을 하는 瞬間, 그 순간 과학자들이 腦波나 뭐 이 다양한 것을 연구해 봤더니 장엄한 것을 보고 感動하는 瞬間에 老化가 딱 멈춰지더라는 겁니다. 노화되는 세포가 딱 멈춰지더라는 겁니다.
어떤 한 가지에 우리 意識이 딱 멈춰 서서 生覺과 妄想 分別 煩惱가 딱 멈춰지고 거기에 그 感動하는 瞬間이라는 것은 너와 내가 둘이 아닌 하나가 되는 瞬間입니다. 生覺 妄想이 딱 멈춰지고, 그 日出의 莊嚴한 風境과 내가 完全히 하나가 돼버리는 거예요. 그 너와 나라는 分別心을 딱 잊어버리는 瞬間이 되거든요. 나라는 我相과 生覺과 槪念이 텅~빈 바탕 자리에 내려놓아지는 瞬間이 되는 겁니다. 그 나라는 觀念이 딱 놓아지니까 늙을 내가 없어지는 거예요. 그 瞬間. 그니까 그 때 그 瞬間엔 老化가 딱 멈춰지고 더 점점 젊어질 수밖에 없다라는 것이죠.
9. 그래서 이런 것들을 보더라도, 어~ 아주 重要한 眞實이 바로 時間에 대한 우리의 觀念입니다. 아인슈타인도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시간은 보이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한 번에 한 방향으로만 직선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미래와 과거가 동시에 존재한다.
고 아인슈타인 이 얘기했습니다. 또 이렇게도 얘기했어요.
과거 현재 미래의 구별은 끈질기게 고집하는 우리의 幻想에 지나지 않는다.
핸니반 다이크 라는 시인이 이런 시를 썼더군요.
시간은 기다리는 이들에게는 너무 느리고 걱정하는 이들에게는 너무 빠르고 슬퍼하는 이들에게는 너무 길고 기뻐하는 이들에게는 너무 짧다네. 하지만 사랑하는 이들에게 시간이라는 것은 없다네. 라고 썼데요.
그~ 이건 뭐 時間하고도 일부분 관계가 있을 수 있고 時間이라는 것을 超越해서 우리가 過去와 現在와 未來가 무언가 알 수 없는, 무언가 因緣의 끈으로 連結되어져 있다라는 것을 알려주는 하나의 예인데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조이라는 사람이 그 열아홉살에 아버지와 막 대판 싸우고 인연을 끊고 세계여행을 떠났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너무 이제 유대인 유대교 이쪽에 너무 심하게 했는데 그걸 이해를 할 수 없었어요. 그래가지고 이제 나는 아버지와, 아버지를 이해를 못하겠다 하고 떠나서 세계여행을 하는데, 세계여행 중에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래가지고 충격을 받고 인도에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부랴부랴 돌아갔단 말이죠.
그래서 너무나도 이 아버지께 죄송스럽고 너무나도 막 그냥 가슴 아프고, 아버지에게 대못을 박고 아버님을 떠나보낸 거에 대해서 너무나도 죄송스러운 거예요. 그래서 아버님께 너무나도 이렇게 사죄하고 싶은 마음에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고 방황을 하다가, 그~ 어디죠? 저기... 예루살렘에 통곡의 벽이라는 곳이 있지 않습니까? 그 통곡의 벽에 가면 그 벽 사이사이에다가 사람들이 이제 자신들이 바라는 거, 희망하는 거, 뭐 이런 것들을 편지를 적어가지고 사이사이에 쪽지를 끼워 놓는 가 봐요. 그 쪽지에다가 너무나도 아버님께 죄송스러워서 그 통곡의 벽에 가서 아버님께 아버님의 종교라든가, 아버님의 사상, 아버님의 가르침, 이런 것들을 이해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죄송하다라는 내용의 구구절절의 편지를 쓰고, 아버님께 용서를 구한다라는 내용을 쓰고, 부디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저를 容恕했으면 좋았겠고,
또 아버님께 정말 죄송스럽다 이런 마음을 구구절절이 담아서 편지를 써가지고 이제, 이제 꼽을려고 찾고 찾다가 쪼끔 틈이 있어서 그 틈에다 딱 꽂는 瞬間 바로 밑에 있던, 그 편지가 똑 떨어진 거예요. 그 통곡의 벽이 얼마나 넓겠어요. 거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편지를 썼겠어요. 근데 그 하나가 톡 떨어지길래, 다시 끼워 줄려고 들었는데 왠지 모르게 열어보고 싶더라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이걸 열었는데, 무슨 편지였을까요?
아버지가 그 자리에 와서, 죽기 전에 와가지고 아들에게 쓴 편지에요. 아들이 봐 줄지 안 봐 줄진 모르지만 하나님께 쓴 편지에요. 우리 아들을 용서해라. 나는 내 아들을 용서했지만 하나님도 아들을 용서해주세요 하고. 이미 이 아버지는 이미 아들 용서했다라는 그런 내용을 거기 썼는데, 그 많고 많은, 그 수없이 많은 곳 가운데 하필이면 거기 딱 그렇게. 이런 일들이 우린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어떤 同時性들이 우리 人生에 많이 일어나죠, 그죠?
10. 제가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대학교 2학년, 3학년 땐가, 2학년 땐가 미국의 워싱턴을 갔단 말이에요. 미국 워싱턴에 지하철을 타고 있는데, 제 이름을 누가 부르는 거예요. 설마 이거 幻聽이겠지. 그 제 이름을 부르는데, 미국에서 한국, 한국말이 들리니까 설마하고 고개를 돌렸는데, 대학교 선배가, 그러고 그때 이게 대학생들이 미국에 잘 안가지 않습니까? 돈도 없고. 그 이 대학교 선배가 제 이름을 부르는 거예요. 저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또 워싱턴에 우연히 갔을 때, 우연하게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우연하게 만났는데 이 사람이 이 어떤 나이가 좀 있는, 이제 그 선배, 선배 제가 했었는데 그 선배가 불교에 엄청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그 제가 불교공부를 하는 걸 알고는 너무 막 반가워가지고
정말 저한테 막~맨 날 맨 날 막 뭘 물어보는 거예요. 제가 막 이렇게 얘기해줬더니, 너무 신기해가지고 저를 막 끌고 다니면서 얼마나 맛있는 걸 많이 사주는지. 제가 미국에서 돈이 없었거든요. 너무 돈이 없어가지고 정말 막 가난하게, 가난하게 지냈거든요. 근데 그, 그 선배가 한번은 너무 불교를 가르쳐줘서 너무 고맙다고 하면서 저를 저기 보스턴에 바닷가에 바다가 좍~ 보이는 아주 으리으리한 그 레스토랑에 데리고 가서 바닷가재를, 랍스터를 사주는 겁니다. 그 제가 이,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했더니 제 혼자 먹은 게 15만원, 그 선배가 먹은 게 십만 원 넘는데, 뭐 다른 것도 먹고, 맥주도 한 잔하고, 제가 그 가격을 보고 너무 억울해 가지고, 아휴~ 차라리 그걸 나를 줬으면, 몇 날 몇 일을 사는 건데.
너무 억울했는데, 두고두고 그 참 그래도 그 좋은 기억이 생각이 나데요. 그래가지고 아, 이 선배를 떠나기 전에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주고 싶은 겁니다. 그 마음만 냈는데 우연찮게 어떻게, 어떻게 만나게 된 우연하게 만나게 된 사람이 그 어디죠? 그 워싱턴에 있는, 그 저, 저 보스턴에 있는 그 외곽에 있는 어떤 한국 사찰을 다니는 거예요. 그래서 잘 됐다. 같이 가자. 그래서 그 한국 사찰을 가게 됐고, 마침 거기 있는 주지스님하고 또 인연이 되고 해서 그 주변에 그 선배가 아는 사람과 아는 사람들, 아는 사람들 해가지고 그 때 뭐 한 한 달 만에 그 절에 청년회를 제가 만들어 놓고, 한 열 몇 명 되는 청년회를 만들어 놓고 그러고 제가 인제 뉴욕으로 떠나갔던 그런 기억이 있었습니다. 근데 저는 뭐 그렇다치고 거기에서 만났던 그 선배가 너무, 너무, 너무 고마워 하길래
나중에 왜그런가 했더니, 이 선배는 미국에는 불교가 잘 없지 않습니까? 불교를 가르쳐 줄 사람도 없고 그런데 너무나도 불교에 막 갑자기 깊이 빠진 거예요. 그런데 책도 없고, 미국에서 책 사기도 비싸고, 그런데 이 물어볼 사람이 없었는데 이 저를, 이 여행하는 저를 만나가지고 자기는 정말 부처님을, 간절히 원했더니 이루어진 것 같다고. 이런 하나, 하나가 어찌 보면 하나의 同時性입니다.
11. 제가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워싱턴에서 그냥 아무 버스나 타고 시골 마을로 갔는데 그 시골마을에 한국인 전화번호는 있지도 않는데, 갑자기 그 한국인 전화번호가 뚝 떨려있었고, 거기에 딱 마침 전화번호를 봤더니만 절의 번호가 하나가 있었고, 그리로 전화해서 알아 봤더니 그 절의 스님이 거기서부터 멀리 찾아와가지고 저를 데리고 가서 맛있는 것 먹여주고, 재워주고, 용돈까지 주면서 보내줬고, 그래서 알고 봤더니 그 절에 지금, 그 이후에 그 절에 주지스님으로 갔던 스님이 엤날에 육군사관학교에 주지스님, 법사스님이셨습니다. 제가 그 도움을 받았던, 미국 워싱턴 법주사에서 도움을 받았던, 시간을 거슬러서 그 주지스님에게 내가 도움을 받았는데,
그 주지 스님은 아니지만, 그 역대 주지스님에게 도움을 받았는데, 제가 지금 주지스님이 계신 주지로 있던, 그 절 화랑호국사에 주지로 이렇게 와 있단 말이죠. 그니까 이런 것들이 가만히 생각해보면, 뭐 우리는 어떻게 생각했을 때는 우연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이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하나의 모든 어떤 同時性들이 우리 삶에는 언제나 登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돕고 있단 말이죠. 時間을 超越하는 同時性들이 우리 앞에 놓여있습니다.
이 歷史를 연구하는 학자들이나 이런 사람들도 보면요 자신이 역사를 연구하고, 역사를 연구하고 하던 어떤, 하다가 과거 2500년 삼천년 전에 있던 어떤 일들에 대해서 궁금하고, 궁금하고, 궁금하다가 지금 이 순간 어느 지역을, 어느 곳을 방문했는데 그 곳에서 그 놀라운 이 천년 삼천년을 넘어서 무언가 모르게 連結性 같은 것들을 느끼게 되고, 뭔가 모를 어떤 靈感 같은 것들을 느끼게 되고 이랬다라는 것들을 보고하는 경우도 많이 있거든요. 時間을 超越해서 우리가 간절히 願하고 있으면 連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12. 저희 은사스님께서 그 제가 옆에서 들었던 얘긴데요. 경주 남산에 그 천룡사라는 절을 복원을 하는데, 문화재 전문가랑 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왔더랍니다. 이걸 복원 할테니까, 인제 국가 예산을 좀 들여서 복원을 하자 뭐, 뭐 이러셨는지 그랬더니 그걸 어떻게 복원을 하느냐? 옛날에 좀 뭐 좀 탑이 다 여기저기 쓰러져 있고 파편도 많고 한데, 이걸 제대로 복원하기조차 힘든데, 그 탑이 어떻게 생겼는 줄 알고 복원하느냐 그랬더니 은사스님이 대충 이렇게, 이렇게, 요렇게, 요렇게 생겨서 나는 안다.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된다 이랬더니, 그걸 저, 저 스님 머릿속에 있는데 그게 옛날에 몇 천 년 전에 있던 것과 어떻게 똑같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랬더니 은사스님이 그때 인제 우스개로 그러시더랍니다.
도인이 왜 도인이겠냐? 이 자리에 딱 앉아가지고 마음을 딱 관하고 있으면 이천 년 전에, 천 년 전에 어떤 탑이 딱 이 자리에 있었는지 그게 안보이겠느냐고. 시간은 다 연결돼 있어서 탁 연결돼 있는데 이 파편조각 한 두 개만 딱 봐도 마음을 탁 관하면 그게 탁 보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그냥 그때는 막 웃으면서 믿거나 말거나 하면서 얘기를 하셨는데, 저희들은 그게 우습게 들리진 않았단 말이죠. 실제 사실은 그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실제 요즘에 그렇게 얘기하지 않습니까? 어떤 하나의 파편만 봐도 이제는 그걸 연구하면은 옛날에 어떤 것인들 알 수 있다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근데 정말 그 속에서 뭔가 모를, 어떤 알 수 없는 영감 같은 것들을 보게 될 수도 있는 것이란 말이죠. 그 연결돼 있기 때문에 그럽니다.
그래서 지금 量子物理學에서는 이, 이, 그런 예를 들어 塔에 있는 破片 하나만을 보더라도 그 속에, 2500년 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 수 있다. 심지어 아무것도 連結되어 있지 않은 것 같은 내 손톱 밑에 때를 잘 연구해서 再生, 홀로그램(hologram)으로 再生해서 알게 되면, 時空을 超越해서 2500년 전에 인도에서, 아프리카에서 세계 곳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었는지, 5만 년 전에 어떤 일이 벌어졌었는지, 地球의 歷史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환히 알 수 있다라는 겁니다. 이 티끌, 손톱 밑에 때 속에서. 이건 내 손톱 밑에 있는 것만이 그러는 게 아니라 모든 티끌, 모든 것들 속에 宇宙의 모든 時間 空間을 超越하는 모든 情報가 다 담겨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13. 이처럼 時間이라는 것은 完全히 連結되어 있습니다. 그래서요 그~ 이 존 휠러라는 사람이 ‘이중슬릿실험’이라는 것을 1983년에 했다 그러는데, 이 光量子라는 게 대충 설명하면 이런 것 같습니다. 이 光量子라는 걸 쏘아 보내주면 이 슬릿벽을 딱 通過하고 나서 뒤쪽 벽가서 이제 맺히는데, 이게 이 벽을 향해서 쏜 다음에 우리가 마음에서 意志로 저 벽에 가서 粒子가 되기를 원하면 粒子로 찍힌답니다. 그리고 波動이 되기를 願하면 波動으로 찍힌다는 거예요. 즉 요쪽에 파동으로 찍히는 판이 있고, 입자로 찍히는 판이 있어요.
이거를 딱 쏘고 나서 입자를 맘속에서 간절히, 맘속에서 원하면 바로 입자가 돼서 바로 저쪽에 딱 전달이 되고, 광양자를 쐈을 때.또 파동을 생각하면 파동이 된다는 거죠. 그런데 여기서 딱 마음을 가지고 딱 쏘면 바로 바로 어김없이 찍힌답니다. 그런데 이 이런 실험을 했다는 거예요. 이미 쏴버렸어요. 이미 쐈으니까 얘는 이제 출발했습니다. 출발했으니까 얘는 이제 출발했을 때 이미 얘는 뭐를, 입자로 갈지 파동으로 갈지 결정을 하고 출발을 한 거예요. 그런데 출발해서 슬릿 여기를 이미 통과한 다음에 뒤늦게 입자나 파동을 희망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그대로 찍히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둘 중 하나의 可能性을, 意識的으로 光量子가 壁을 통과한 다음에 선택했는데도 불구하고, 벽을 통과하기 以前에 어떻게 행동할 지를 이미 결정했다. 다시 말해서 現在에 내가 마음을 낸 것이 過去를 變化시키더라는 겁니다. 과거를 어떻게 결정할 지에 대해서 지금 現在 내가 마음먹은 것이 過去를 變化시킬 수 있더라는 사실입니다. 과거의 입자를 이~이 쉽게 말해서, 이게 좀 이해가 안 되실텐데, 쉽게 말해 뭐냐면요, 지금의 우리 마음이 現在만을 變化시키거나 未來를 變化시킬 수 있다고 生覺하지만 事實은 過去도 함께 變化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物質宇宙에서조차도....
우린 생각만 그렇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과학에서는 物質宇宙조차도 過去를 變化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佛敎的으로 본다면 이 物質宇宙가 곧 生覺/마음/意識일 뿐이거든요. 즉 萬法唯識이 아닙니까? 萬法이라는 物質宇宙는 오직 識뿐입니다. 이 生覺일 뿐이고 마음일 뿐입니다. 意識일 뿐이에요. 그니까 이 生覺 마음 意識이 바뀌면 物質宇宙도 바뀌는 것입니다. 그니까 定해진 物質宇宙는 없습니다. 근데 우리는 物質宇宙가 定해졌다는 觀念, 우리 認識으로 幻想으로 알고 있는 것뿐이죠. 그런데 觀念이 바뀌면 過去가 바뀝니다.
14. 여러분들이 과거에 안 좋은 기억들이 있었어요. 그래 그것 때문에 트라우마가 있었어요.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그 안 좋은 記憶 때문에 1년, 2년, 3년 고통을 받았어요. 고통을 받은 것 때문에, 그 옛날 같으면 종교? 난 관심도 없어! 불교? 그건 다 미신이야! 이렇게 생각했고, 나는 돈만 벌고 열심히 살면 되는거지, 이렇게만 생각했는데, 그 이 삼 년 너무나도 암담한 세월을 보내고 그 괴로운 세월을 보냈고 그 덕분에 내가 탈출하기 위해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法堂에 나오고 法門을 듣고 불교를 공부하게 됐다. 불교를 공부하게 됐더니 놀라운 어떤 내 人生에 變化가 일어났다.
불교를 공부해서 나중에 봤더니 아! 그때 그 암담하게 생각했던 그 정말 생각만 해도 막 그 트라우마가 생길만큼 괴로왔던 그 시기가 지금 생각해보니까 나를 이끌기 위한, 나를 이 놀라운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이끌기 위한 놀라운 순간이었구나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단 말이죠. 그걸 깨닫는 순간 과거의 트라우마가 딱 사라지게 됩니다. 아! 그거는 정말 나를 돕는 것이었구나! 내가 그때 착각했을 뿐이구나! 이건 나를 돕기 위한 놀라운 어떤 것이었는데
내가 이렇게 錯覺했구나 하고 한 生覺 딱 바꾸는 瞬間 즉 여러분들의 과거의 트라우마가 치유되는 순간, 과거를 용서하는 순간, 여러분들의 意識이, 意識의 水準이 높아져서 과거의 어지간한 것들은 탁 놓아지는 순간, 그 순간이 되면요, 과거의 것들은 그 때는 암담해서 죽을 것 같이 괴롭던 宇宙가 지금 생각했을 땐 놀랍게 아름다운, 좋은, 그냥 한 바탕 웃을 수 있는 것으로 바뀌고 맙니다.
15. 저는 요즘에는 이제 저의 아버님에 대해서 이렇게 막 대개 재밌게, 아버님은 뭐 옛날에 이랬다, 저랬다 하고 막 아버님이 너무 막 너무 패기도 많이 패고 막~ 아버님 말에 토를 한마디도 달수가 없었고 매일 같이 막~ 노가다를 하라고 그래서 아버님 혼자만 하면 되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까지 쉬는 날도 없이 매일 같이 남들은 고3 수험생 때 공부시키는데 나는 맨날 삽질하면서 이렇게 보냈다. 뭐 그러면서, 아버님이 성격이 불같으시니까 뭐, 야! 몽키, 스패너하고 뭐, 뭐하고 챙겨와 이러면 처음에는 초등학생이 몽키가 뭔지, 스패너가 뭔지 어찌 알겠습니까. 그래 그냥 어딨냐고 물어보면 저기라고만 얘기하지 거기가 어딘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쭈뼛쭈뼛하면서 모르겠는데, 모르겠는데 한 두 세 번 얘기하면 화를 버럭내고
막 욕을, 욕을 하십니다. 막~ 그것도 모르냐면서. 그 또 안 찾아오면 혼나고. 찾아서 또 물어보면은 이것 또 그것도 모른다고 혼내고. 하! 정말 이런 세월을 살면서 제가 그때는 너무 괴로웠어요. 그 어릴 때는. 너무 아버님 옆에 있는 게 너무 괴로웠고 진짜 일요일이 너무너무 두려웠습니다. 학교 가는 게 좋았고. 일요일이, 너무 쉬는 날이 두렵고 무섭고 이랬단 말이에요. 초등학교 때는. 그때는 그렇게 무서웠던 것이 지금에 와서는 제가 어느 순간 정말 아버님과 내 마음에서 진정으로 이걸 다 화해를 해버렸거든요. 그 사실은 어찌보면, 제 형제들 가운데도 아직도 아버님을 이렇게, 이렇게 아버님과의 어릴 적의 앙금이 이~남아있는 친구들이 있단 말이죠. 근데 이걸 탁 풀고 났더니만 아무렇지도 않고,
그니까 신기하게 아버님이 그 많은 형제들 가운데 뭐 제가 스님이고 이래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저한테는 어느 瞬間부턴가 마음을 완전히 확 풀어버리고 완전히 이렇게 내려놓고 인제 그러시는데, 그렇게 하신 것이 어느 瞬間 내가 내 마음과 完全히 和解를 한 다음부터입니다. 근데 놀라웠던 것은 그런 다음부터 전혀 옛날을 아무리 記憶하고 想起해도 두렵지가 않고 무섭지가 않고 웃깁니다. 웃기고, 재밌고, 좋은 추억이 되고. 지금은 아버님한테 막 농담 삼아서 그때 뭐 어떻게, 어떻게 뭐 그러셨는데 그때 기억나시냐? 그러면서 왜 그러셨냐 면서 막 이런 얘기를 하더라도 이제는 뭐 너무나도 재미가 있죠. 그니까 그 과거의 기억들이 어느 瞬間엔 공포였는데, 어느 瞬間에 즐거운 에피소드와 추억으로 바뀌더란 말이죠.
16. 즉 現在의 意識이 바뀌면 過去의 記憶도 똑같이 바뀝니다. 이번 生이 바뀌면 過去 前生과 그 前生도 바뀝니다. 이 生이 바뀌면 前生에 걸친 또 다른 내가 함께 解脫이 됩니다. 지금 이 生에 마음의 解脫을 하면 前生에 모든 내가 解脫이 되는 거예요. 量子物理學에서는 그~ 平行宇宙를 얘기하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요 이 평행우주를 이게 허사가 아니라고 얘기를 합니다. 양자물리학자들이 뭐라고 얘기하냐면요,
平行宇宙는 實際로 存在하고 어떤 공상과학소설가가 상상할 수 있는 것 보다 훨씬 더 신비한 존재로 實際 存在한다. 도이치 라는 교수는
평행우주에 사는 무수한 나들은 서로 영향을 미친다. 이 우주에 사는 나의 행동은 다른 우주에 사는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다른 우주에 사는 나의 행동은 이 우주에 사는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 라고 해서 이 평행우주의 가능성을 얘기하거든요.
同時에 나라는 어떤 分身들이 이 平行宇宙에 수없이 있다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것도 마찬가지라는 거죠. 지금 이 자리에서 내 意識이 어떻게 바뀌느냐에 따라서 平行宇宙에 있는 모든 또 다른 내가 同時에 影響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나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여기에 계시는 모든 분들이 사실은 우리 法性의 자리에서 봤을 때는, 다 또 다른 나와 다르지 않은 겁니다. 내가 한 生覺 工夫해서 깨달으면 여기에 있는 모든 분들이 함께 깨닫는 것과 똑같다. 다르지가 않다. 이처럼 過去, 現在, 未來라는 時間이 定해진 바가 없는 幻想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늙는다, 늙는다라고 生覺하니까 늙는 거지 實際 늙는다는 것도 우리 意識에서 만들어낸 虛構的인 生覺, 槪念 觀念 幻想인 虛想일 뿐입니다. 이~이런 얘기 아마 들으셨을 거예요. 하버드대학교 랭거 교수가 1979년에 75세 이상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마을을 1959년도 당시인 것처럼 꾸며놓고, 어르신들이 젊은 그 때의 20년 전으로 돌아가서 젊은 그 때 당시처럼 똑같이 살게 했단 말이죠. 옷 입는 거랑 이런 것도 똑같이. 근데 일주일 만에 제일 먼저 손가락 길이가 갑자기 길어지기 시작하더랍니다. 노인들이. 그리고 이 신체, 신체의 나이가 갑자기 탁 탁 탁 다운이 되기 시작하더라는 거예요.
나중에 BBC에서 그걸 보고 2010년에도 똑같은 연구를 했는데, 어떤 여배우는 뇌졸증에 시달렸는데, 휠체어에 타고 있었는데 갑자기 벌떡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또 이~저~ 거동이 힘들던 사람도 텝댄스를 출 정도로 좋아지기 시작했다. 내 意識이 과거 젊을 때에서 살면 젊어지는 겁니다. 未來에서 살거나 未來를 두려워하거나 나는 늙을텐데 이렇게 生覺하면 늙어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우리의 몸도 똑같이. 제가 전에 그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어느 瞬間에, 제가 이제 후배였을 때는 되게 이렇게 이 흰머리 이렇게 많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늙지는 않았는데, 제가 어느 순간, 어느 순간 갑자기 후배 분들이 이렇게 많이 생기면서 갑자기 어느 순간 딱 되니까, 갑자기 이~저~ 저한테 선배의 역할을 하게 되는 어떤 시기가 딱 생긴 거예요.
갑자기 선배로써 이렇게 지도를 해야 되는 상황에 딱 놓이니까 갑자기 제가 좀 충격을 받아가지고, 내가 이렇게 옛날에는 그 자리에 갈려면 내가 완전 미래의, 먼 미래의 일인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내가 그 자리에 가 있는 걸 보고서, 야! 내가 이렇게 늙었나 그러면서 어느 순간 마음속에서 쯧, 그래 이거 받아들여야 되겠구나! 나도 이렇게 늙었구나! 그래서 내가 아 나도 늙었지! 이렇게 생각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해부터 흰머리도 많아지면서 그 해부터 나이 들어 보인다는 얘기를 점점 많이 듣기 시작하는 거예요. 제가 인정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마 그러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참 意識/마음/生覺이라는 것이 정말 무섭구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17. 그 저런 얘기가 있습니다. 그 어디죠? 그 저기, 저~ 우리 저 印度, 베다라는 經典이 있지 않습니까? 베다에는 뭐라고 나와 있냐면 사람이 늙는 唯一한 理由는 늙은 사람을 보고 있기 때문에, 보고 살기 때문이다. 그럽니다. 즉 옆에 늙은 사람이 있으니까, 아 나도 저렇게 늙겠구나. 이 믿게 되는 거예요. 굳게 믿고, 아! 사람은 저렇게 늙는 구나 이렇게 굳게 믿기 때문에 늙는다. 이게 意識의 장난이란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원래 우리는 百年만 사는 存在가 아니라는 그런 얘기도 하고 있죠. 옛날 사람들은 貳百年 씩 살기도 했다고 그러기도 하고. 이 意識에서 固定觀念을 딱 打破하게 되면 우리 수명이 나이가 언제까지 延長될지 사실은 모른다는 얘기들도 있습니다.
이것처럼요, 時間이라는 것은 정말 우리 마음 속에서 만들어 낸 空虛한 幻想인 겁니다. 이 말은 뭘 의미하냐면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 意識 生覺 마음이 바뀌면 過去에 얽매이지 않고 未來를 두려워하지 않는 意識으로 바뀌게 되면 지금 이 자리에서 過去 現在 未來의 모든 것이 바뀔 수 있습니다. 變化라는 것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서 始作되지 課去나 어떤 뭐 未來나 따른 곳에서 始作되지 않습니다. 미래를 기다릴 것도 없고 과거를 아쉬워 할 것도 없다. 왜냐하면 미래나 과거라는 건 없기 때문에 그래요.
18. 여러분 제가 우리 사관생도, 이 젊은 20대 초반의 친구들을 데리고 템플스테이를 하지 않습니까? 그러다보니까 이제 좀 재미난 것도 좀 하고, 감동적이고 뭐 불교적인 것도 해야 되지만 너무 그것만 하면 이 저 집중을 잘 못하지 않습니까? 그니까 중간에 하나씩 하나씩 재밌는 것도 하고, 막 뛰는 것도 하고, 이렇게 런닝맨 게임 같은 것도 하고, 뭐 온갖 다양한 재미난 것도 중간, 중간에 넣어가지고 해요. 그래 이 친구들이 되게 신나합니다. 근데 이거는 제 생각에 40대, 50대, 60대 되신 어르신들이 하기에는 좀 적절치 못한 좀 경망스럽다고 느낄 수도 있는 이런 것들이에요. 그래가지고 당연히 그분들은 당연히 안하겠지라고 생각을 했어요. 근데 엊그제 제가 저 간부불자의 연세 좀 있으신 분들, 이런 수련회를 진행을 했는데, 그걸 원래 다른 분이 프로그램을 딱 짜고 제가 가서 보조를 하려고 이렇게 밀어드렸었어요.
그런데 그분이 갑자기 이틀 전에 딴 일이 생겨가지고 못 온다고 하고 프로그램도 못 짰다고 하셔서 갑자기 제가 갑자기 하루 이틀 만에 짜야 되는 거예요. 그 뭐 하루 이틀 만에 짤 시간도 없고, 제가 또 뭐 바쁜 그 일정이 있던 상황이라 어떡하지, 어떡하지 고민을 하다가 쯧! 에이 모르겠다. 연세 뭐 50, 60 이 되셔도 젊은 사람과 연세 든 사람과 뭐 다를 게 있겠나. 한 생각해보니까 마음이라는 건, 저부터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러지 않습니까? 여러분! 이 몸의 나이는 뭐 50, 60 이 됐어도 여러분 마음은 어때요? 20대 같지 않습니까? 실제로. 아이 저도, 저도 20같거든요. 10대 같기도 하고. 實際 우리 마음은 정말 그렇거든요.
근데 남들이 야 넌 주책이지. 너 나이 때처럼 행동해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내 나이 또래처럼 행동하고 여러분도 20대 초반의 이~ 여학생들처럼 옷도 입고 다니고 싶기도 하잖아요. 남들이 손가락 질 할까봐 못 입는 것뿐이지. 마음은 20대와 40대와 50대 60대 똑같거든요. 똑같다. 이 생각으로 그 프로그램을 약간만 바꾸고 그대로 가져가서 한 번 해봤습니다. 조금 점잖은 것부터 이렇게 강도를 높여가면서 실시했는데요, 제가 이틀 프로그램 진행하면서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50대 막 중반 후반 되셨고, 40대 후반 되고 이랬던 분들인데요, 생도들보다, 20대 초반 친구들 보다 더 열심히, 더 열심히 하고 뭐 런닝맨 이 게임 막, 막 경내를 돌아다니면서 막 하는데 얼마나 막 열정을 불태우면서 하는지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 필요는 없는데 너무 과도하게 열심히 하시고 막, 야아, 이 정말 젊은 청춘의 피가 얼마나 이 들끓는지, 저 깜짝 놀랐습니다. 이분들을 누가 이분들을 이, 이 50대 중반이라고 하겠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니깐요. 그니깐 아! 내 錯覺이었구나. 아! 나이 든 사람은 나이 든 대우를 해줘야 된다는 生覺이 錯覺이었구나. 아 그분들이 그런 나이든 대우를 반드시 願한다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죠. 待接, 뭐 이런 거는 아니지만, 이 거 方向이 나이든 사람은 나이든 사람만의 프로그램이 있다? 이게 아닙니다. 마음에서는. 마음에서는 그걸 超越해서 있는 것이구나. 그런 것들을 참 느끼게 되는 아주 좋은 계기가 됐었습니다.
19. 이처럼요 언제나 우리는 지금 이 자리뿐입니다, 여러분 인생에 과거는 없습니다. 이미 지나간 것은 幻想으로만 있습니다. 意識 識으로만 있어요. 마음으로만 있어요. 意識에 마음에 追憶, 槪念, 혹은 뭐라 그러죠? 記憶, 기억으로만 있습니다. 記憶으로만 있다는 거는 마음에 하나의 어떤 희뿌연 하나의 기억 속에만 있는 거예요. 그것은 진실인가? 그건 진실이 아닙니다. 안 좋았던 과거가 진실인가? 진실 아닙니다. 내가 누군가를 아주 憎惡했던 과거, 그건 진실이 아닙니다. 그 사람을 증오했던 게 아니라 지금 그 사람을 증오했었지만 과거에는,어쩌면 내가 그 사람을 前生에 엄청나게 몇 生을 괴롭히고 죽이고 했었을 수도 있어요.
근데 그 사람이 이 生에 그나마 그 정도로 나를 괴롭히는 걸로써 이 生에 앙갚음하고 갚기 위해서 그런 業을 지었을 수도 있어요. 그건 그 사람이 나쁜 놈이라서 나에게 괴롭혔던 게 아니라 그 사람과 나의 業이 이 生에서 풀기 위해서 前生에 둘이서, 어떤 식이냐 하면 前生에 둘이 만난 거예요. 이~이~ 뭐랄까? 다음 生을 計劃하는 法身의 次元에서는 어떤 아무 怨恨도 없고, 恨도 없고, 그냥 業이라는 中立的인 에너지만 있습니다. 다만 業 이건 풀긴 풀어야 되는 거예요. 그니까 내가 前生에 저 사람을 한 열 번 죽였고, 막 괴롭혔단 말예요. 그러니까 그 사람은 당했단 말이에요. 근데 두 사람이 만나서 다음 生 計劃을 짤 때는 막 으러렁대지 않습니다. 너 날 죽였지. 이러지 않는단 말이죠. 그냥 公平한 中立的인 業들의, 業만을 가지고서, 야! 너가 나를 이렇게 괴롭혔던 業이 있잖아.오! 그래, 그래. 미워, 미안하다고 할 것도 없어요. 왜냐하면 中立的이니까.
이런 業이, 均衡이 이런 業이 너와 내게 있어. 우리 다음 生에 우리 한 번 이 業을 풀러갈까? 야! 괜찮겠다. 야! 그럼 우리 다음 生에 내가 너를 좀 심하게 괴롭힐게. 야! 너가 나를 열 生 동안 괴롭혔잖아. 야! 십 生을 輪廻하면서 괴롭혔잖아. 내가 한방에 너를 과도하게 괴롭히면 어떨까?이~ 친구가, 야 그것도 괜찮겠는데. 나도 뭐 한 두 生, 세 生 괴롭힘 당하는 것 보다, 한 방에 끝내는 게 좋겠다. 야 내가 십대 때 만나가지고 내가 한 50대 될 때까지 너가 나를 계속 괴롭혀라.야 기왕이면 내 다리도 하나 부러뜨려주고,뭐 내 돈도 한번 가져가서 십억 정도 내가 벌어 논 돈 가져가 가지고 갚지 말고 마 이렇게 한 번 해서 한 방에 우리들의 業을 딱 끝내고 다음 生을 오면 어떨까?
지구별에서의 그거는 지금 생각하면 이건 幻想이거든요, 어차피. 꿈이거든요. 그때가면 으르렁대겠지만 지금은 으르렁 댈 필요가 없다는 걸 안다는 말이죠. 야 우리 지구별에 가서 한 번 그렇게 재미있는 꿈을 한 번 꾸고 올까? 그 둘이서 야 좋겠다, 좋겠다 하고 박수치면서 서로 얼싸안으면서, 야 좀 도와줘 하고, 나를 좀 괴롭혀줘 이렇게 하고,
야 그러면 내가 좀 심하게 너를 괴롭힐 테니까 그때 가서 좀 힘들어도 마 그때는 어쩔 수 없겠지만 어차피 그 生이 지나면 서로 풀 거니까 우리 그 재밌는 演劇을 하고 오자. 이러고 만났던 사람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그 친구가 나를 괴롭힌 거예요. 이 사실을 안다면 容恕하지 못 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과거를 그렇게 알고 깨달아서 그 과거를 용서하고, 과거의 수많은 어떤 나 자신을 용서하고 나 자신을 따뜻하게 감싸주고.
20. 제가 한 때, 그 제 과거에 제 어릴 적에 어떤 그 冥想을 하면서요, 제 어릴적에 제가 가장 그 서글펐을 때, 제가 가장 불쌍했을 때, 그리고 제가 이렇게 가장 눈물겨웠을 순간들이 몇 개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더라구요. 눈을 감고 그 場面으로 돌아갔어요. 돌아가서 지금의 제가 성숙한 제가 그때의 불쌍하고 눈물 흘리고 막 그 부끄러워하고 막 가슴아파하던 그 어린시절의 저를 이렇게 품어 안아주고, 따뜻하게 사랑해주고, 괜찮다고 얘기해주고, 이것은 다 꿈일 뿐이고 幻想일 뿐이요 하나의 演劇일 뿐이다라고 얘길 해주고 그러고 이렇게 했었던 어떤 記憶들이 있었는데, 그러고 났었을 때 제가 엄청 눈물을 많이 흘렸었습니다. 그 어릴적에. 어릴적에 나를 보니까 아 제가 너무 가슴이 아픈거예요.
아버님, 어머님이 이렇게 離婚을 하면서 또 막 안좋게 막 싸우시고 그럴 때 場面, 場面마다 그때 아픔이 있고, 상처가 있고, 그러면서 성장하면서 온갖 막 이런저런 상처들이 있었던 거예요. 그니까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보면서 제가 야 그 당시로 돌아가면서 야 참 이렇게, 이렇게 살았구나. 근데 지금에 와서 탁 되돌아보니까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가 전부다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그 하나하나가 없었다면 그것은 내가 아닌 거예요. 그것은 반드시 있어야 되는 것들이었고, 그때 거기서 演劇을 해줬던 아버님, 어머님, 거기서 함께 演劇을 해줬던 저희 누님과 동생 그 모든 配役의 사람들이 전부 다 아름답습니다.
지금까지도 이제 그 두 분이 離婚하셔서 따로따로 사시지만 제가 뒤늦게 이렇게, 이렇게 풀어드리고 그래서 인제 이렇게 나름대로 和解를 하시고 그러나 또 뭐 再婚들을 하시고 하셨으니까 또 어찌 할 순 없지만, 마음으로 그래도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계시고 또 아버님도 어머님한테 이렇게 탁 그런 따뜻한 메시지를 보내고, 또 새어머님도 다 理解하시면서 서로서로 이렇게 따뜻하게 하고 그 더욱더 다음 生에 우리 아름답게 좋은 因緣으로 만날 수 있지 않겠나, 이렇게 이야기를 하시고, 아! 이런 모습들 하나하나를 보면서, 아 우리 삶이라는 것은 이렇게 배워가는 것이구나!
우리의 과거는 아무리 상처가 있고, 아프고 괴로워도 그것은 그것 자체가 다가 아닙니다. 그것이 나타난 理由는 그것을 이렇게 깨닫고, 배우고, 회복해서 서로 풀고, 풀어서 그것을 깨닫기 위한 過程으로써 그래서 좀 더 성숙하기 위한 과정으로써 나타난 겁니다. 그 우리는 그 과거의 그 어떤 많은 상처 어릴 적에 상처 받은 나 그거를 가슴아파할 필요까진 없어요. 한 번쯤 안아줄 필요는 있겠지만. 왜냐면 그것이 온 목적이 우리를 괴롭히기 위한 목적도 아니었고, 우리를 깨닫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등장했기 때문에.
21. 그것을 언제 할 수 있느냐? 지금 해야 됩니다. 여러분의 過去를.... 지금 여러분이 나이도 들고, 성장하고, 성숙하고, 부처님 法을 만난 지금 解脫시켜주지 않으면 過去에 응어리진 것을 지금 解脫시켜주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 解脫시켜주면 過去는 반드시 사라집니다. 過去의 그 모든 業은 幻想일 뿐이기 때문에 오직 지금 여기 이 瞬間밖에 없어요. 過去의 業은 過去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이 瞬間에 있어요. 그니까 지금 業을 解脫하면, 지금 容恕해주고, 지금 나 自身을 사랑해주고 過去의 나 自身, 내가 잘못했던 나도 사랑해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독거려주고 사랑해주고
그 어떤 사람, 미워했던 사람, 증오했던 사람 그 모든 사람을 '지금 이 자리'에서 容恕해주면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마음이 가벼워 질 수 있는 겁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응어리진 앙갚음과 상처를 안고 살면 그 傷處에 投映해가지고 未來가 살아집니다. 世上을 볼 때, 남들을 볼 때 이 傷處에 投映해서 세상과 그 사람이 보여져요. 예를 들어 이 상처가 있는 사람은요, 상대방이 자기자랑 할 때 되게 재수 없게 느껴집니다. 왜냐면 내안에 상처가 있거든요. 이 상처로 投映해서 봐지게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근데 마음에 傷處가 없고 정말 解脫한 사람들은 상대가 자기 자랑을 아무리 해도 그렇게 기분나빠 하지 않아요. 그냥, 그냥 아름다워 보이는 거예요. 아 그럴 수 있구나! 저 사람은 참, 그 야~ 얼마나 정도의, 내 마음이 긍정적인 에너지로 넘치기 때문에 상대방의 그런 모든 것들이 좋게 보이는 거예요. 남들이 설령 안좋게 얘기해도 좋게 보이는 거예요. 마치 뭐와도 같냐면, 여러분이 기분 좋은 날, 남편이 막 백을 사주고 뭐 이렇게 뭐 자식이 뭔가 성적을 좋게 받아오고 남들한테 칭찬받고 기분 좋은 날은 자식이 아무리 집에서 막 난리를 쳐도 뭐 이뻐보인단 말이에요. 야아! 참 저렇게 애가 에너지가 넘치는구나. 참 저렇게 내 아들이 저렇게 에너지가 넘치고 참 좋구나. 이래 생각해요.
근데 내가 막 가슴이 옹졸해지고 막 화가나고 남들한테 욕도 얻어먹고 이런 날은 똑같이 애들이 뛰노는데 저, 저, 저 놈이 하면서 막 욕을 해가면서 저, 저놈이 커가지고 뭐가 될려나, 저, 저 이러면서 욕을 하면서 한단 말이죠. 똑같은 行動을 했는데도 아름답게 보이기도하고 나쁜 놈처럼 보이기도 한단 말이에요. 마음이 어떠냐, 마음 狀態에 따라서. 그 마음 狀態가 마음에 있는 하나의 응어리진 過去의 傷處들입니다. 그래서 지금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過去란 건 없어요. 언제나 過去는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 언제나 過去는 지금 여기에 있다. 그래서, 그래서 이 마음工夫가 중요한 것이고 이 마음工夫는 지금 여기에서 하는 工夫이고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工夫가 되면 過去와 未來라는 全切가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工夫가 될 수밖에 없단 말이죠. 그래서 過去나 未來에 얽매여가지고 未來를 두려워하면 두려워하는 일을 지금 이 瞬間에 끌어당기고 있는 겁니다. 未來를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 전혀. 未來에 어떻게 될까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돈이 없어도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단 말이에요. 우리는.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 통장잔고를, 지금 여기 이 瞬間에 내 통장 잔고를, 내 財産을, 지금 이 瞬間에 다 가져본 사람 있습니까? 지금 여기 이 瞬間이라는 現在에 통장 잔고를 다 가져본 사람 있습니까? 우린 가져본 적이 없어요. 안그렇습니까? 통장에 숫자로만 쓰여 있는 거지.
아이 안그래요? 통장에 숫자라는 槪念으로만 쓰여 있는 거예요. 숫자라는 槪念으로만. 그, 그러데요. 그 무슨 은행같은 데, 옛날에 은행같은 데서, 그 저 큰 은행에서 대출해줄 때 통장에, 예를 들어, 뭐 千萬 원이 있으면 그 천만 원 限度 내에서 돈을 꿔줘야 되잖아요? 근데 뭐 한 億도 꿔준다는 거죠. 어차피 이건 뭐 그러면서 利子를 벌어가지고, 이~ 불려가지고 돈 장사 한다는 뭐 이런 얘기를 하는 얘기도 언뜻 들었는데 그니까 내 돈이라는 生覺, 내 財産이라는 生覺은 幻想일 뿐입니다. 여러분들은 그 瞬間 그 財産을 다 써본 적도 없고 다 가져본 적도 없어요. 언제나 밥 먹을 때는 그냥 밥만 먹었을 뿐이고, 비싼 밥 먹을 땐 비싼 밥 먹었을 뿐이고, 싼 밥 먹을 땐 싼 밥 먹었을 뿐이에요.
22. 이 무슨 말이냐면요, 千億이 있어도 돈 안쓰는 사람은 돈이 千億 있는 사람처럼 안 살죠. 그냥, 그냥 가난하게 맨날, 맨날 사는 거예요. 그냥 소박하게 사는 거예요. 근데 또 돈을 별로 못 버는 사람도 때로는 쓸 때는 또 크게 쓰기도 하고 산단 말이죠. 그러다가 죽을 때 까지 다 써야지 이래 생각해도 죽을 때까지 그게 다 써 집니까? 죽을 때 까지 절대 다 안써져요. 그러다가 그 財産 돈 놓아두고 저 세상으로 가는 거지. 근데 그 많은 財産 돈 놔두고 가면 어떻게 돼요? 뒤에 이제 자식들끼리 박터지게 싸웁니다. 남긴 돈 財産가지고. 남긴 돈 財産이 없으면 자식들이 안싸웁니다. 자식들의 友愛가 깊어집니다. 父母님하고도 사이가 좋아져요. 부모님에게 孝道합니다. 돈 없는 부모님이 되면요 자식이 용돈을 갖다 줍니다. 어떤 자식도.
돈이 없으니까. 내가 밥 먹을 돈도 없는데 어느 자식이 가만 놔두겠어요? 돈이 많으면 돈을 갖다 주기는커녕, 용돈을 주기는커녕, 어떻게 하면 내가 이 많은 돈 이걸 뜯어갈 수 있을까 자식들끼리 지분싸움한단 말이에요. 지분 싸움하면서, 어떻게 더 많이 뜯어갈 수 있을까 이런 궁리나 하고.... 여러분 마음이 행복하게, 많은 사람이 마음 행복하게 사는 게 낫습니까? 아님 마음이 불행하게 마음이 막 초조하게 돈 많이 갖고 사는 게 낫겠습니까. 富者가 낫죠. 하하. 근데 이 마음이라는 게 정말 이게 重要한 겁니다. 그래서 그렇게 지금 이 자리에서, 지금 이 자리에서 무엇이든지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돈 벌려고 애쓸 것도 없고 未來를 두려워할 것은 더욱더 없고,
그래도 아무 일 없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과 비슷한 패턴의 삶이 죽을 때까지 심지어는 다음 生까지 계속됩니다. 이게 核心이에요. 지금까지 돈을 적절히 벌어왔다. 그거 죽을 때까지 가게 되어있습니다. 이건 福이기 때문에. 이거는 未來의 문제가 아니구요, 내안에 있는 福의 문젭니다. 근데 우린 돈 이걸 未來의 問題라고 錯覺하고 살아요. 그건 內面의 問題입니다. 卽, 지금 이 瞬間의 問題에요. 그것은. 未來에 내가 부자가 되고 가난해지는 이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이 瞬間 마음이 豊饒로우면 未來도 豊饒로울 수 밖에 없어요. 이 마음이 未來를 가져오는 거기 때문에. 지금 이 瞬間 마음이 가난하면 아무리 부자라도 허덕이며 살아요. 돈 못쓰고 살고.
그러니까 未來에 대한 두려움은 完全한 幻想입니다. 過去에 대한 회상도 完全한 幻想이고. 그냥 우리는 지금 이 자리일 뿐이에요. 지금 이 자리뿐. 지금 이 瞬間 이것. 이렇게 살고 있는 每 瞬間 지금 발 디디고 서 있는 지금 이 瞬間 이 자리, 이 자리만 있을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의 意識/마음/생각이 어떤 意識이냐가 이게 가장 重要한 關件인거죠. 지금 이 瞬間 의식이 滿足하고 지금 이 瞬間 의식이 幸福해하고 지금 이 瞬間 의식이 感謝해하고 지금 이 瞬間 의식이 사랑하고 지금 이 瞬間 나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면서 이런 어떤 마음에너지 波長으로 살면 지금 이 瞬間의 意識이 내 全 過去를 바꾸고 全切 未來를 바꿉니다. 있지도 않은 過去 未來라는 幻想에 빠져가지고 過去에 얽매이고 未來를 두려하며 살지 마시고 지금 이 瞬間 처한 지금 이 瞬間이 過去와 未來를 同時에 바꿀 수 있는 唯一한 힘을 지닌 空間이니까 힘을 지닌 時間이니까 지금 이 瞬間 이 자리를 오직 바라보면서 이 자리에서 아름다운 삶을 사시기를 바라면서 오늘 여기까지 말씀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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