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팔불중도(八不中道)

장백산-1 2015. 1. 29. 20:32

 

 

 

 

[無一우학 큰스님의 강론 - 金剛般若波羅蜜經  離相寂滅分 제십사] 

출처 : 無一 우학 편저 <금강경 핵심강의>p178

 

우리들이 잘 사는 길이란 眞理에 契合하는 삶이다. 眞理란 바로 공(空)의 世界이다.

空에는 아공(我空), 법공(法空)이 있다. 我空이란 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 四相에서 解放됨을 말하고

法空이란 主觀의 相뿐 아니라 客觀의 相마저 空해진 것을 말한다. 4相이 없어졌다는 觀念마저 떠난 것을

말하기도 한다. 이 我空, 法空을 얻은 이를 부처 또는 부처님 境地에 든다고 보는 것이다.

眞正 空해진 마음자리에는 我執, 法執이 없어지고 大自由人의 勇氣만 남는다. 그 아무것도 두렵지 않으며

그 어느 것도 障碍가 되지 않는다. 眞正 空해진 마음자리는 '第一波羅蜜'이니 '忍辱波羅蜜'이니 하는 구차한

말이 필요하지 않다.

 

 

'사랑한다'는 말은 아디까지나 말일 뿐이지 참사랑을 完全히 나타내지는 못하는 말이다.

大自由人은 實相을 바로 볼 수 있다. 부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淸淨하고 至極하면 實相을 볼 수 있다고

金剛經은 역설하고 있다. 實相을 바로 볼 수 있는 眼目을 키우기 위해 저 유명한 용수보살(龍樹菩薩)은

팔불중도(八不中道)를 제시하고 있다.

 

(1) 불생불멸(不生 不滅) ; 生과 滅의 兩極端을 否定, 모두를 因緣法, 因緣和合으로 觀察하였다.

                                  중생이 강하게 느끼는 生, 滅의 모습은 錯覺일 뿐이다.

 

(2) 불일불이(不一 不二) ; 一切의 모든 法은 眞理 本體에서는 하나이지만 나타난 現象界로서는 다를 수밖에

                                  없음을 觀察하였다. 즉, 하나이면서 다르고 다르면서 하나인 觀察法을 제시하고 있다.

 

(3) 불상부단(不常 不斷) ; 불상(不常)은 恒常 할 수 없다는 가르침이요 부단(不斷)은 모든 것이 斷絶되지 않는다는

                                   가르침이다. 예를 들어 生命體를 觀察함에는 永遠히 살리라는 生覺과 또한 죽어버리면

                                   完全히 끝이라는 生覺의 둘을 모두 지양하여 中道的 思考를 해야 함을 가르친다.

 

(4) 불거불래(不去 不來) ; 모든 유정(有情)들은 輪廻中에 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永遠히 온 것처럼 固執하는 것을

                                   否定하며, 또한 本來의 故鄕, 眞如空性의 世界로 돌아감을 忘覺한 衆生들을 깨우쳐 준다.

                                   本來 眞理의 當體는 오고 감이 없는데 臨時로 오고 가는 것을 實際의 現象으로 執着함을

                                   打破하는 가르침이다. 이 八不中道는 유(有)에 對한 固定觀念을 打破하면서도 現象界의

                                   有(있음)을 包容하므로 中道的 공(空)이라 한다.

 

 

우리는 공(空)을 잘 이해해야 한다.

불교를 어떤 이는 허무적멸지도(虛無寂滅之道)라 하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일이다.

大乘菩薩은 寂滅에 安住해서는 안된다. 無心한 그 자리에서 마음을 내어 6도만행(六度萬行)을 해야 한다.

온전한 自己 精神으로 客觀의 그 어디에도 安住하지 않으면서 客觀의 그 어디에도 손길이 닿는

自由自在의 힘이 이 법(法)의 末世에는 필요하다.

만나기 어려운 정법(正法)의 因緣을 잘 가꾸기 위해서 우리는 일체상(一切相)을 버리고 부처님을 禮敬,

讚歎해야 한다. 비우면 만배, 천만배 값진 보배가 채워지는 道理를 金剛經은 간곡히 우리에게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