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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깨달아 있는 존재라고?

장백산-1 2015. 3. 18. 14:46

 

 

 

 

15. 03. 16 - 이미 깨달아 있는 존재라고?    

 

향광심
|2015.03.17. 19:17   http://cafe.daum.net/truenature/S27F/369        

 

 

         

 

 

 

BBS 불교방송 라디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평일 07:50~08:00)

2015년 03월 16일 방송

' 이미 깨달아 있는 존재라고? '

 

 

 

 

이미 깨달아 있는 존재라고?

 

 

불교의 가르침은 우리가 이미 깨달아 있는 存在라고 합니다. 이미 波羅蜜多를 마치고 저 깨달음의 언덕에

到着해 있는 存在인데, 다만 내 스스로 그렇지 않다고 錯覺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지요. 마음 속 虛妄한

煩惱妄想과 萬物을 둘로 나누는 分別心 때문에 스스로를 自身이 만들어 놓은 虛妄한 想(相)이라는 틀 속에

가둬놓았을 뿐이라고 합니다. 내 마음이 마음을 써서 마음 속에 만들어 놓은 生覺 妄想 煩惱 相이라는

幻想의 虛妄한 舞臺 위에서 그것이 진짜인 줄 알고 헛된 演極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아직 깨닫지 못했다고 여기고 괴롭다고 여기는 이 괴로운 世上의 實體, 實際의 모습은

生覺 妄想 煩惱가 만들어낸 幻想에 불과합니다. 意識이 빚어 낸 꿈 신기루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같은

것일 뿐이지요. 우리는 깨닫지 못한 중생이 아닙니다. 다만 부처가 중생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사실 우리가 깨닫기 위해서 애써 해야 할 것은 거의 없습니다. 깨닫기 위한 方法 같은

것은 사실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이미 頂上에 到着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頂上에 오르기 위한 다른

方法이 있을 수가 없지요. 다만 頂上에 이미 到着해 있지만 스스로 到着하지 못했다고 여기는 妄想이

있기 때문에 그 分別妄想을 깨주기 위해서 修行이라는 方便을 쓰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大乘佛敎에서는 破邪顯正이라는 표현을 쓰는데요, 바른 眞理를 드러내려면 삿된 것을 破打하기만

하면 된다는 말입니다. 없는 깨달음을 새롭게 만들어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말이지요. 없는 眞理를

새로 만들거나, 저 쪽 眞理의 언덕에 가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 쪽 언덕에서 저 쪽 언덕으로

건너간다는 波羅蜜多行은 하나의 修行의 方便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쪽 저쪽이 아닌 언제나 하나의 眞實된 언덕, 頂上에 언제나 발 딛고 서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立處皆眞이라고 하지요.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唯一한 일은 破邪, 삿된 것을 破하기만 하면 됩니다.

무엇이 삿된 것일까요? 分別心, 煩惱, 妄想, 生覺, 觀念, 槪念으로 世上을 造作하는 것입니다.

 

佛敎의 모든 修行 方便은 단 하나, 그것은 바로 世上을 造作해 내는 分別 妄想 生覺 觀念 槪念 相을

打破하는데 그 目的이 있습니다. 위빠사나, 四念處 修行이라는 것도 分別 없이 지켜보는알아차림을

通해 分別 煩惱 妄想에 끄달려 가지 않도록 하는 修行法입니다. 看話禪도 話頭를 통해 그 어떤 分別妄想도

올라오지 못하도록, 生覺이나 槪念的 理解가 오지도 가지도 못하도록 탁 쳐내주는 役割을 하는 것입니다.

 

참된 修行이란 修行을 해도 안 되고, 안 해도 안 되고, 方法도 없고, 方法이 없는 것도 아니게 되어

도무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콱 막혀서 分別 妄想

煩惱 生覺이 갈 길을 잃게 되었을 때 그때 비로소 참된 工夫가 始作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生覺 煩惱 妄想 分別이나 論理的인 理解를 通해서는 眞理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물론 敎學을 通해서도

어느 정도 도움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窮極的으로는 머리로 思量하는 그 모든 分別 妄想 生覺을 내려놓고,

곧장 즉바로 지금 여기 이 瞬間 이 자리에 分明하게 드러나 있는 眞實 이 自體를 確認할 수 있어야 합니다.

 

事實 우리는 이미 언제나 깨달아 있는 存在임을, 頂上에 到達해 있는 存在임을 確認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서 있는 當然한 자리, 當處이기 때문이지요. 그렇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唯一한 것은

없는 깨달음을 새롭게 얻어 가지는 것이 아니라, 깨달아 있는 存在가 아니라는 虛妄된 妄想의 꿈,

幻想에서 빠져나오는 것입니다. 虛妄한 妄想의 꿈, 幻想에서 깨어나는 것만이 唯一하게 해야 할

일이지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虛妄한 妄想의 꿈, 幻想에서 깨어날 수 있을까요?

 

마음만 일으키면 發心만 하면 우리가 願하는 그 모든 것은 可能해집니다. 이 工夫를 마음工夫라고 하는

理由가 그것입니다. 마음을 내지 않아 그렇지, 이 眞理를 確認하고 말겠다는 간절한 마음만 일으킨다면

, 간절한 發心만 하면 우리가 願하는 그 모든 것이 저절로 명백하게 스스로를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BBS 불교방송 라디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평일 07:50~08:00)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