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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법의 실천 --공존, 조화로운 삶

장백산-1 2015. 4. 23. 09:19

 

 

 

 

 


共存, 調和로운 삶 - 緣起法의 實踐

 

 

요즘처럼 開發과 發展이 모든 것의 尺度가 되는 時代에서, 또 온갖 氣象異變과 環境的 問題들이

전 세계적으로 災殃적인 수준으로 치닫고 있는 이 때에 自然과의 調和로운 共存을 바탕으로 하는

佛敎의 緣起法이 注目을 받게 되는 것은 어쩌면 當然한 理致일 것이다. 현대의 환경문제와 기상이변

등의 根本的인 原因은 人間과 自然을 둘로 나누고, 人間이 自然보다 우월하다는 人間中心主義에

따라 人間의 便利를 위해 自然을 함부로 훼손하는 것이 정당화되면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土臺 위에서 發展해 온 現代의 科學技術의 發展과 産業의 發達, 都市化 등은 이제 온갖 問題를

量産해 내고 있음이 分明해 졌다. 온갖 環境危機와 氣象異變을 가져왔고, 우리의 몸을 이루고 地球를

이루는 地水火風 사대(四大)의 汚染을 가져왔다. 지대(地大)와 관련하여 토양오염과 토지사막화를,

수대(水大)는 수질오염과 물부족 문제를, 화대(火大)에서는 에너지오염과 오존층 파괴, 지구온난화와

그로인한 각종의 기상이변을, 풍대(風大)는 대기오염과 황사 등의 문제를 가져왔다. 그로인해 전 지구가

앓고 있으며,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과 生命들이 앓고 있고 죽어가고 있다.

 

이제 結論은 分明해졌다. 人間과 自然을 둘로 나누고 人間에 依한 自然의 破壞를 正當化하는 그 어떤

思想이나 宗敎도 작금의 現實을 극복해 낼 수 없다. 現在의 재앙적인 환경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思想은

人間과 自然이 둘이 아니요, 物質과 精神이 둘이 아니며, 神과 人間, 붓다와 人間, 그리고 나와 너, 나라와

나라, 人種과 人種이 둘이 아니며 서로가 서로를 살려주고 보살펴주는 相依相關的이며 相互尊重하는

同體大悲의 存在로써 다르지 않다는 自覺이 필요하다. 이런 思想이 바로 緣起法, 相依相關性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消滅하면 저것도 消滅한다’는 緣起的이고 相依相關的인 가르침

안에서는 人間이 自然을 疎外시키거나 破壞시킬 수 없고, 自然을 破壞하는 것이 곧 人間을 破壞하는

것이라는 同體的이고 相依相關的인 智慧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緣起法에 依하면 온 宇宙의 모든 存在는

 따로 떨어져 存在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서로 다른 모든 것과 緊密한 聯關關係 속에서 存在할

수밖에 없다. 人間이 自然을 破壞하는 바로 그 行爲가 곧 人間이 人間 自身을 죽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緣起法의 實踐은 自然과의 共存이요 交感이고, 自然의 變化에 맞춰 함께 따라 흐르는 調和로운

삶이요 親環境的인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이 宇宙의 모든 存在들이 自然의 一部分으로써 自然스럽게, 緣起的인 調和를 깨뜨리지 않고

살아갈 때 이 世上은 참된 아름다움, 平和로운 깨끗한 땅, 정토(淨土)를 이루는 것이다.

季節의 變化에 깊숙이 交感하라. 自然의 소리에 內面의 소리가 共鳴하는 것을 지켜보라.

새 소리, 풀벌레 소리, 바람 소리, 파도 소리, 계곡의 물소리와 나뭇잎 서걱이는 소리가 내게 전해주는

眞理의 소식에 흠뻑 젖어들라.

 

겨울 들녘을 뚫고 올라오는 봄꽃 한 송이에서 자연불(自然佛)이 내리는 준엄한 法門을 들으라.

自然과의 調和로운 삶이 作爲的이지 않고 自然스럽게 흐를 때 내가 곧 自然이고, 내가 곧 연기(緣起)며,

내가 곧 眞理였음이 소리 없이 찾아 들 것이다. 自然을 내 몸처럼 아끼고, 나와 自然이 둘이 아님을 알며,

自然의 소리 없는 法門을 듣는 自然과의 調和와 共存이야말로 緣起法을 實踐하며 사는 修行者의 삶이다.

 

 

BBS 불교방송 라디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평일 07:50~08:00)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