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불법(佛法)이란?

장백산-1 2015. 6. 23. 13:54

 

 

 

 

불법(佛法)이란?


불법(佛法)이라고 말할 때, 이미 벌써 佛法은 佛法이 아니니라.

一切가 있는 그대로 佛法인지라 佛法이라고 따로 내세울 땐

벌써 잃어버리는 말이니라.


물질(物質)은 쓰는 것이요, 정신(精神)은 바탕인데,

物質과 精神의 일단화(一單化)를 佛法이라 하나니라.
 

佛法에 하나로 完全을 이루지 못하면,

인생의 영원한 전정(前程)을 보증할 길이 없나니라.

佛法은 어느 시대 어떤 인간의 호흡에도 맞는 것이니라.

佛法을 듣고 生命의 中心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人間의 生命을 잃어 버린 사람이니라.


佛은 마음(精神)을 뜻하고, 法은 物質을 뜻하는데,

佛法이라는 名과 相(名相), 이름과 개념이 생기기 前부터,

부처가 이 세상에 出現하기 前부터,

나라는 것은  이미 존재한 것이니라.


질그릇 같은 나를 버리면 칠보(七寶)로 된 그릇인 청정법신(淸淨法身)이 되느니라.

입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요, 손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니, 귀가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니

말하고 일하는 듣는 그것의 정체(正體)를 알아야 말하고 일하고 소리를 듣는 참인간(眞人間)이

되느니라.


佛法은 肉體나 靈魂의 責任者이다.

책임자 없이 살아가는 人生은 그 얼마나 不安한가.

이 事實을 알면, 곧 佛法에 歸依게 될 것이니라.


세간법(世間法)과 佛法이 둘이 아닌 하나요,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닌 하나니,

이 불이법(不二法)을 증득(證得)해야 참人間이 되느니라.

佛法을 알면 속인(俗人)이라도 중(僧)이요, 중(僧)이라도 佛法을 모르면 이는 곧 俗人이니라.

여러가지의 자물쇠를 열려면 여러가지의 열쇠가 필요한 것 같이

백천삼매(百千三昧/우주삼라만상)의 무량묘리(無量妙理)를 해득(解得)하려면

百千萬의 智慧의 열쇠를 얻어야 하느니라.


佛法을 부인(否認)하는 것은 自己가 自己를 否認하는 것이요,

佛法을 배척(排斥)하는 것은 自己가 自己를 배척하는 것이니,

이는 곧 自己가 바로 부처(佛/法身)))이기 때문이니라.

自然의 소리소리가 다 법문(法門)이요,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부처(法身)의 진신(眞身)이건만,

佛法 만나기는 백천만겁(百千萬劫)에 어렵다고 하니,

그 무슨 불가사의(不可思議)한 道理인지 알아 볼 일이니라.

 

불교(佛敎)란?

불교(佛敎)라고 주장할 때 벌써 佛敎 敎理와는 어긋난 것이니,

불교 교리는 아집(我執)을 떠난 교리이기 때문이니라.

불교의 종지(宗旨)는 악(惡)을 징계하고 선(善)을 장려하는 종교가 아니라,

善과 惡이 다 佛法인 까닭에 天堂 · 極樂의 즐거움의 世上이나, 그 반대로

地獄의 극도로 고통스런(極苦) 世界가 다 내 마음의 創造物인 까닭이니라.

 

먼저 대가(代價)없이는 얻어지지 않고, 노력 없이는 성공이 오지 않는 것이

宇宙의 運行 原理이니라. 一切, 萬法은 그대로 불(佛)이기 때문에(法/現象 = 佛/진리/깨달음)

불교의 가르침은 一定한 規則이나 組織을 세워서 가르치지 않고, 기류차제(機類次第/根機에 따라서)로

가르칠 뿐이니라. 佛敎에서 말하는 유심(唯心)이란 유물(唯物)과 相對가 되는 唯心이 아니요,

物과 心 (物質과 마음)이 둘이 아닌 絶對的인 唯心임을 말하는 것이니라.

 

허공(虛空)은 마음을 낳고, 마음은 인격(人格)을 낳고, 인격은 行動을 낳나니라.

世上 사람들은 物心 兩面이라는 말을 宇宙의 총칭(總稱)인 줄 알지만,

宇宙의 정체(正體)는 따로 있나니라. 불교에서는 신(神)을 超越하여 법신(法身)이 있고,

靈魂 위에 진인(眞人)이 있음을 알아, 그것을 證得하는 것으로 구경(究竟)으로 삼는데,

육신(肉身)과 精神과 靈魂의 根本이 法身(청정법신)이요,

그 根本인 淸淨法身을 잃어 버린 肉身과 精神과 靈魂이 서로 교환이동(交換移動)하는

生活이 바로 사바세계(娑婆世界)라고 하는 人間世上이니라.

 

佛敎는 全人類의 자아(自我)를 完成시키는 敎育機官이니,

다종(多宗). 각법(各法)의 宗敎가 다 眞我 完成의 가교(架橋)요 過程이니라.

불교 교리의 오의(奧義)는 말이나 글 생각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法(진리/깨달음/자기자신)이지만,

各者가 다 이미 法身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마음과 마음이 서로 通해서 應할 수 있고,

法을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을 수 없으되  주고 받을 수 없는 그 法을

전불(前佛) · 후불(後佛)이 以心傳心으로 相續하여 가느니라.


[滿空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