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성성불 VIP 멤버십???
우리는 보통 깨닫기만 하면 지금의 나와는 전혀 다른 어떤 위대한 靈的 슈퍼맨이 되는 것으로 錯覺한다.
깨닫기만 하면 지금의 내가 아닌 聖스럽고 非凡한 人物로 완전히 탈바꿈하는 것처럼 여긴다. 또한
깨달아서 道通 하기만 하면 나만의 特別한 世上이 활짝 열리고, 너와 내가 둘이 아닌 놀라운 神秘
體驗이 계속되고, 온 宇宙가 開闢(개벽)을 하는 것 같은 실로 엄청난 體驗 狀態가 되는 것으로 여기
기도 한다. 또한 혹은 깨달은 사람만이 가지는 特別한 분위기와 마음 씀씀이가 있을 것이라고 여기
거나, 特別난 行動거지와 심지어 尊敬받을 만한 外形的인 모습이 되어있을 거라고 想像하기도 한다.
깨닫기만 하면 見性成佛한 道人들만의 特別한 VIP 멤버십이 있고, 道人들만이 누리는 特權이나 宇宙
로부터의 特別 우대 서비스 같은 것이 있을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과연 그런 것들이 깨달음이고, 그런 特別 VIP 멤버쉽이 있는 사람이 깨달은 者일까?
전혀 정말 아니다. 사람들의 그런 生覺은 깨달음에 대한 전형적이고 일반적인 誤判이고, 錯覺일 뿐이다.
깨달았다고 해서 特別히 聖人처럼 行動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깨달음은 特別한 行動이 따로 있거나,
特別한 神秘로움을 자아내는 유니폼이 있거나, 연예인들처럼 소위 떳다고 차량을 바꿔주는 등의 그런
特別 대우 같은 것도 없다. 깨달음은 심지어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무슨 宇宙에너지나 쿤달리니
에너지가 차크라를 따라서 上昇하는 것도 아니고, 능엄경에서 말하는 50가지 魔障과 용맹하게 싸워서
이겨야만 비로소 達成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얻어야 하고, 추구해야 할 特別한 깨달음의 狀態가 따로 있다고 生覺한다면, 그 生覺은
이미 世上을, 宇宙萬物을 둘로 나누는 二分法, 分離 分別心일 뿐이다. 지금의 나와 깨달은 後의 나를 둘로
나누어 놓는 것은 전혀 眞理, 깨달음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진리 깨달음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아니 하나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經典에서 衆生과 부처, 生과 死, 涅槃은 둘이 아니라고 말한다. 色卽是空 空卽是色
이라는 表現에서도 볼 수 있듯이, 모양 形體가 있는 現實世界, 삶, 現象일 뿐인 世界가 있는 그대로 바로 텅~비어
空한 實相, 텅~빈 바탕 空間의 性稟 하나, 바로 지금 여기 이 瞬間 이 자리일 뿐인 것이지, 따로 저멀리 어디에
근사하고 멋들어진 별도의 깨달음, 眞理, 부처, 하나님이 있는 것이 아니다.
깨달음이란 어떤 特別한 意識 狀態가 아니다. 깨달음, 眞理, 부처, 하느님이란 그저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있음’ '現存'일 뿐이다. 法華經에서 말하는 ‘가난한 아들의 비유' 처럼, 아들은 아버지가 부유한 長者임을
몰랐다가 뒤늦게 알게 되었을지라도, 그 事實을 몰랐던 그 시절도 長者의 아들임에는 變함이 없는 것이다.
우리의 겉모습은 因緣에 따라서 富者가 되기도하고 가난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能力이 있다가 없어지기도
하는 등 다양한 變化를 거듭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이 世上 모든 것의 ‘있음’, 實相, 本質, 根源은 現實 狀況과
전혀 無關하게 가난할 때도 부자일 때도, 능력이 있거나 없거나 아무런 變化가 없다. 언제나 우리는 그냥
그저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 存在하고 있을 뿐이다. 부자거나 가난한 사람이거나 그들의 根源的인 ‘있음’,
實相. 根本, 本來面目은 永遠히 變化하지 않는 끊임없이 永遠히 波動하는 텅~빈 바탕 空間意識 하나뿐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비록 깨달았다고 할지라도 變化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깨닫기 전과 깨달은 후가 달라졌다면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다. 眞正한 깨달음은 깨닫고 난 후에 깨달을 것이 없었다는 事實을 깨닫는 것이다.
깨달았다고 해서 갑자기 聖人 특유의 行動거지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먹는 음식이나 말투 따위가 바뀌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의 日常生活이지만 다만 한 가지, 깨달으면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事實,
나라는 存在가 바로 부처, 하느님, 眞理, 깨달음, 本來面目, 如來 그 自體임을 確認한 것일 뿐이다. 나라는 存在의
本質은 가난한 거지가 아니라 부유한 장자의 아들이라는 事實, 本來 부처, 本來 깨달은 存在, 眞理 그 自體라는
事實을 분명하고 또렸하게 確認한 것일 뿐이다.
이런 事實을 깨닫고 確認한다고 해서 本人이나 世上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며, 깨닫고 確認하기 위해 高難度의
妙技 같은 혹독한 修行이 必要한 것도 아니다. 깨달았든 깨닫지 못했든 우리라는 存在의 本質은 언제나 부처
자리, 當處, 立處皆眞, 一心, 眞理, 깨달음의 자리와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 房 안에서 房을 찾는데 무슨 修行
이나 노력이 필요하고, 이미 깨달아 있는 存在가 깨달음을 찾는 것에 무슨 神秘體驗 같은 것이 必要한가?
우리는 다만 우리라는 存在가 이미 完全하게 깨달아 있는 眞理, 붓다, 하느님임을 아직 確認하지 못했을 뿐이다.
또한 우리는 우리라는 존재가 이미 하느님, 붓다, 깨달아 있는 존재(覺者), 眞理 그 自體임을 確認한다고 해도
우리의 외모나 性格 職業 能力 財産 같은 겉 껍데기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깨달음에 대한, 깨달은 者에 대한 固定觀念, 相을 가지지 말라. 바로 그 固定觀念, 相 때문에 깨달음,
眞理를 確認하는 것이 어렵다. 또한 바로 그 固定觀念, 相 때문에 참 스승을 눈 앞에 두고도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법상
'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는 이 자리 (0) | 2015.07.27 |
---|---|
늙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라 (0) | 2015.07.27 |
수행은 투쟁이나 고행이 아니다 (0) | 2015.07.24 |
우리는 이미 도착해 있다 (0) | 2015.07.19 |
변화는 곧 변화가 아니다 (0) | 2015.0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