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불멸 |영원한 나를 찾아서
유당 | 2015.11.22. 11:22 http://cafe.daum.net/yourhappyhouse/Ev0h/5694
常住不滅
부처님께서 道를 깨치고 처음으로 외치시기를 "기이하고 기이하다.
모든 衆生이 다 항상 있어 없어지지 않는 佛性을 가지고 있구나! 그런데도 중생이
그 事實을 모르고 헛되이 헤매며 한없이, 고생만 하니, 참으로 안타깝구나"라고 말하셨다.
이 말씀이 우리 人間에게 永遠 不滅의 生命體가 깃들어 있음을 선언한 첫 소식이다.
그리하여 暗黑 속에 잠겼던 모든 生命체들이 永遠한 救援의 길을 얻게 되었으니, 그 은혜를
무엇으로 다 갚을 수 있으랴! 億萬劫이 다하도록 예배드리며 공양을 올리고 찬탄하자.
하지만 永遠토록 빛나는 이 生命體도, 道를 닦아 그 光明을 發散하기 前에는 항상 어둠에
가려서 사방 팔방 상하 十方이 캄캄하다. 그리하여 몸을 바꿔입게 되면 前生의 業은 아주
까막케 잊어먹고 말아서, 참다운 生命이 연속하기 때문에 前生 業이 없어지지 않는 줄은 모른다.
道를 깨치면 장님이 눈을 뜬 때와 같아서 영원히 어둡지 않아, 천번 만번 몸을 바꿔입어도
항상 밝다. 道에 눈을 뜨기 前에는 몸을 바꿔입을 때 그것으로 아주 죽는 줄 알았지만 道에 눈을
뜬 後에는 항상 밝으므로, 몸을 바꿔입으러 가는 것이 산 사람이 헌 옷을 새 옷으로 바꿔 입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道에 눈 뜨기 前에는 항상 業力에 시달려 苦痛만 받고 自由가 조금도 없지만,
道에 눈을 뜨면 자기자신이 大自由와 大智慧로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의 現實生活에 적용해 보면, 아무리 총명하고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도 道에 눈을 뜨기
前에는, 잠이 깊이 들었을 때 精神이 캄캄하여 죽은 사람같이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나 道를 깨친
사람은 항상 精神이 밝기 때문에 아무리 깊은 잠을 자도 캄캄하고 어두운 일이 절대로 없다.
그러므로 참으로 道를 깨쳤나를 試驗하려면 잠을 자 보면 스스로 알게 되는 것이다.
天下없이 크게 깨친 것 같고 모든 佛法을 다 안 것 같아도, 잠을 잘 때 精神이 캄캄하면 참으로 道를
깨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큰 道人들이 잠을 잘 때 精神이 캄캄한 것에 대해서 가장 注意
하였던 것이다. 道를 깨쳐서 明과 暗을 超越한 이 精神이 絶對的인 光明이니, 곧 事物이 지닌 法性이며,
佛性 그 自體이다.
常住不滅하는 事物의 法性 즉, 道를 깨치고 보면, 그 힘은 想像할 수도 없이 커서 비단 世俗의 학자들만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께서 말하는 法性은 깨치고 보면 다 알 수 있을 것이나, 이것은 十方
世界의 모든 부처님이 일시에 나타나서 千萬年이 다하도록 그 法性을 설명하려 하여도 털끝 하나만큼도
설명하지 못할 만큼 神奇하고 神秘롭다.
十方의 虛空이 시작도 끝도 없이 넓지마는 法性의 넓이에 비교하면 法性은 大海 같고 十方의 虛空은
大海 가운데 생겨난 조그만 거품과 같다. 虛空이 億千萬年 동안 무너지지 않고 그대로 있지만 그 긴
시간을 法性의 生命에 비교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불과하다.'고 하시니, 이것이 시방세계 즉 全 우주
공간의 모든 부처님의 설명이다. 이렇듯 거룩한 法을 닦게 되는 우리의 행복을 어디다 비유할 수 있
겠는가!
그러므로 古人은 이 法門 한마디 들으려고 全身을 불살랐으니, 이 肉身을 천만 번 불살라 法身佛께
供養 올려도 그 恩惠는 천만 분의 일도 갚지 못할 것이다. 오직 부지런히 공부하여 어서 빨리 道를
깨칠 때, 비로소 모든 부처님과 도인 스님들의 은혜를 일시에 갚는 것이니, 힘쓰고 힘써 공부하라!
- 성철 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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