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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정신, 시대를 이끌다

장백산-1 2015. 12. 3. 21:40

불교 정신, 시대를 이끌다

 

언젠가 서울에서 목사님, 신부님, 스님들이 함께 모여 교육을 받을 일이 있었다. 많은 교육들 가운데

한 강의가 아주 의미 있게 느껴졌다. 현재 우리나라 심리학, 상담학계에서 아주 저명하신 교수님의

강의였는데, 현대 심리 상담학계의 이슈가 되고 있으며, 기존의 심리치료의 흐름 자체를 바꾸어 놓았

을 정도로 획기적인 심리 치유 기법이라는 설명과 함께 4시간 동안 강의가 이어졌다. 바로 마인드풀

니스(Mindfulness)라는 마음챙김, 혹은 관 수행에 대한 강의다.

 

물론 그동안의 언론 등을 통해 심리치료학계의 주류로써 불교 수행법이 각광을 받고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강의를 듣고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더구나 그 내용과 그 교수님을 선정

해 초빙한 분이 바로 목사님이다. 참석한 한 목사님은 마인드풀니스 코스를 6개월간 받으시면서 큰

효과를 경험했다는 말도 했다. 강의 내내 ‘분별하지 말고 알아차려라’, ‘판단하지 말고 지켜보라’는

말이 이어졌다.

 

이러한 내용의 강의를 스님들께가 아니라 심리학 교수님께 듣고 있으며, 그것도 목사, 신부님들과

함께 듣고 있고, 모두가 매우 흥미롭게 강의에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라웠다. 내용은 말

그대로 불교의 위빠사나, 사띠, 관 수행을 거의 변형시키지 않고 고스란히 가져다 놓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무언가 다른 새로운 것이 접목되어 변형 발전되었다기 보다는 그저 불교의 수행법을 고

스란히 ‘설법’하고 계시는 것이었다! 사실 이것은 비단 심리학계에서만의 현상이 아니다. 이제 수많

은 연구 분야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새로운 현대과학의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설법’되어지고 있다.

 


생태 환경 분야만 해도 어떤가. 데카르트와 베이컨, 뉴턴 등에 의해 체계화된 기계론적 자연관은 이후

화이트에 의해 반박되기 시작된 뒤부터, 점차 동물해방론으로, 생명중심주의로 이어졌고, 이어서

생태중심주의, 가이아 이론, 심층생태론, 생명평등주의 등으로 발전해 오고 있다. 이러한 생태 환경

윤리의 발전과정은 흡사 점차적으로 불교의 緣起的 世界觀에 이르기 위한 하나의 단계적 과정이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물리학은 또 어떤가. 기존의 뉴턴 물리학, 고전 물리학에서 우주는 물질로 이루어졌으며, 거대한

기계와 같은 것이었던데 반해 오늘날 상대론과 양자론을 주축으로 하는 현대 물리학, 양자 물리학은

그러한 근원을 완전히 뒤흔들면서, 점점 더 불교의 가르침을 더욱 분명히 뒷받침 해 주는 역할에 충실

하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요즘 유행하는 시크릿 같은 책들도 그렇고, 수많은 자기계발서나, 영성, 명상의 분야

에서도 불교 가르침은 조금씩 다른 옷을 입고 강력하게 확산되고 있다. 요즘 다양한 분야의 시대를

선도하는 수많은 책들을 읽다보면 그 안에서 불법을 분명하게 보게 된다. 그야말로 동서양의 어떤

분야나 학문을 막론하고 불교적 가르침이 모든 분야의 선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언젠가 고위직에 계시는 한 분께서는 기업인들 모임에 갔다가 현재 기업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이

상의상관적인 경영, 동체대비의 경영이라고 한다고 했다. 예전 같으면 대그룹이 어떻게든 더 많은

돈을 벌려고만 했었다면, 요즘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상의상관적 연기관에 의해 중소

기업인 하청업체들이 죽으면 곧 대그룹도 죽고 그들을 살릴 때 대그룹도 살 수 있으며, 그렇기에

하청업체와 대그룹은 동체대비의 관계로써 서로 서로 돕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서로 연결된 관계이

며, 곧 하나라는 것이 세계 경영계의 화두라고 했다. 요즘의 동반성장이며 상생경영의 구호도 여기

에서 비롯된다.

 


이 모든 것이 ‘불교’라는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더라도, 세계 곳곳에서 불법의 연기와 자비의

정신은 사회 곳곳에서 이미 구현되고 있다. 그만큼 사회가 깨어나고 있으며, 불법이 전해질 토대가

충실해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런 깨어남의 시대, 영적 각성의 시대에 우리 불교가, 또 나

자신이 해야 할 몫이 무엇일까. 이 귀한 불법의 주체자로써, 이 정신적 진보의 시대 중심에 서서

시대를 이끌고 갈 것인가, 아니면 주변인으로 전락해 뒤따르며 서성이기만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