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모든 괴로움과 얽매임은 다 내 마음이 일으키는 것이다

장백산-1 2016. 1. 6. 15:32

모든 괴로움과 얽매임은 다 내 마음이 일으키는 것이다 


모든 괴로움과 얽매임은 잘 살펴보면 다 내 마음이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 괴로움과 얽매임이 내 마음 밖으로부터 오는 것인 줄 錯覺하고 이 종교 저 종교, 이 절 저 절,

이 사람 저 사람을 기웃거리고 찾아다니며 幸福과 自由를 구하지만 끝내 얻지 못한다. 그 이유는

安心立命의 道는 마음 밖에서 찾아서는 결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나 일어난 어떤 괴로움일지라도 마음 안으로 잘 살펴보면 그 모든 괴로움의 뿌리가 다

마음 가운데 있고 그 마음의 實體가 本來  空한 줄 알면 모든 괴로움은 저절로 사라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이 일으킨 한 生覺에 집착하고 사로잡혀서 옳다 그르다 모양으로 分別짓고 그 모양에

執着해서 온갖 괴로움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그 한 生覺을 돌이켜서 이 사로잡힘에서 벗어나면

모든 괴로움과 얽매임은 즉시 사라진다.

 

오늘 날 우리들의 苦惱 중 하나는 괴로움이고  또 다른 하나는 속박이다. 이 둘을 합해서 고(苦)라고

한다. 佛敎的인 표현으로는 괴로운 마음에서 벗어난 마음상태를 涅槃이라 하고, 스스로 만든 속박

에서 벗어난 마음상태를 解脫이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는 괴로움이 사라진 마음상태를 幸福이라

부르고, 속박이 사라진 마음상태를 自由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우리가 늘 自由와 幸福을 동시에

함께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完全한 幸福이 涅槃(열반), 完全한 自由가 解脫(해탈) 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모든 괴로움과 속박이 밖으로부터 오는 것 같고 남이 나를 얽어매고 괴롭히는 것

같지만 事實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잘 살펴보면 다 내 마음이 그렇게 짓는 겁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 괴로움과 얽매임이 내 마음 밖으로부터 오는 줄 錯覺하고 있다.

어리석다는 말에 기분이 나쁠 수도 있지만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괴롭다고 말 할 때

“왜 괴로우냐?”고 물어보면 “저 사람 때문에, 저것 때문에, 뭐가 안 되기 때문에 괴롭다.”라고

말 합니다. 이 말은 곧 모든 괴로움이 밖으로부터 온다는 말 입니다. ‘누구 때문에, 뭣 때문에,

뭐가 안되기 때문에’ 라는 이 같은 말은 그 사람이나 그 일을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데 내 마음

대로 잘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이때 내 마음대로 내 마음을 쉽게 고쳐먹을 수 있다면 괴로움과 속박이 사라지겠지만 문제는 내

힘으로는 쉽게 고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서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宗敎라는 것이 필요하게 된 것이지요. ‘이 종교가 더 좋을까? 저 종교가 더 좋을까?  하느님이 더

능력이 있을까? 알라가 더 힘이 셀까? 부처가 더 신통력이 있을까? 山神이 더 힘이 셀까?’ 이렇게

비교하면서 자기 마음에 드는 종교를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다닙니다.


같은 불교 안에서도 ‘아미타불, 석가모니불, 지장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세음보살 중 누가

더 내 괴로운 문제를 잘 해결해 줄까?’ 하기 때문에 지장전에서 기도하다 관음전에 가서도 기도

하고 또 山神閣에 가서도 기도하고, 신중단에 가서도 기도하고, 안 되면 굿도 하는 겁니다. 마음이

답답하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몸이 아프면 이 약 저 약 다 먹어보듯이 우리가 이 종교, 저 종교,

이 절, 저 저절 다 찾아다닐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괴로운 마음을 풀 수 있는 해결책을 이렇게 마음 밖으로만 찾아 헤매서는 우리가 바라는

幸福(열반)과 自由(해탈)은 끝내 얻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便安해지는 安心立命의 道는

마음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괴로움이라는 문제의 原因이 마음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原因을 마음 밖에서 찾아서는 괴로움과 속박에서 벗어나 涅槃(행복)

과 解脫(자유)  즉, 完全한 幸福과 完全한 自由에 다달을 수가 없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일어난

어떤 괴로움일지라도 즉, 아무리 어렵고 힘든 문제일지라도 그 原因이 내 마음 안에 있기 때문에

그 原因을 내 마음 안으로 돌이켜서 살펴보면 금방 問題의 本質을 알 수가 있어요. 모든 괴로움의

原因을 내 마음 안으로 돌려서 살펴보면 괴로움의 뿌리는 다 내 마음 가운데에 있고 그 괴로움은

慾心부리고 그 慾心이 잘 채워지지 않으면 화가 나게 되는 어리석은 내 마음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결국 이 세상 모든 문제의 원인은 내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事實 따지고 보면 이런 貪慾心, 분노하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은 고정불변하는 독립적인

實體가 없이 끊임없이 波動하는 에너지情報體이기 때문에 마음의 實體, 本質이 本來  텅~빈 空인

줄 分明하게 알면 모든 괴로움과 속박은 저절로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이

일으킨 한 生覺 卽, 分別心에 執着하고 사로잡혀 옳다 그르다 하는 分別心으로 모양을 짓고 그 모양

에 집착해서 온갖 괴로움을 스스로 만들어냅니다. 자신이 일으킨 한 生覺에 집착하고 사로잡혔다는

말은 主觀이 客觀化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般若心經에 나오는 ‘전도몽상(顚倒夢想)’의 마음상태를

말합니다.

 

자기가 일으킨 生覺 즉, 分別心에 집착하고 사로잡히면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 이외는 눈에 안

보이고 귀에 안 들어옵니다. 이럴 때는 오직 한 가지 길밖에 없어요. “네가 잘했다. 네가 맞다.”

이렇게 편들어 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귀에 안 들어오고 눈에 안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에게 마음공부, 수행이라는 말을 꺼내면 “수행 좋아하시네. 그렇게 좋으면 너나

실컷 해라.” "그게 밥먹여 주냐" 하면서 마음공부, 수행에 미리 진절머리를 내고 마음공부, 수행에

'마음'  ‘수’ 자도 듣기 싫다며 도망가 버립니다. 원수처럼 홱 돌아서 버릴 때는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안 들립니다. 왜 그러냐 하면 자기의 主觀을 이미 絶對的인 眞理로 客觀化 시켜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主觀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자기 스스로 세운 主觀인 줄 알면 이 사람은 깨어날 수가 있어요.

예를 들어 자기가 빨간 色眼鏡을 쓰고 世上을 보면서 “내 눈에는 빨갛게 보인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主觀을 主觀으로 아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나는 파랗게 보인다” 하면 ' 내 눈에는

빨갛게 보이지만 그 사람 눈에는 파랗게 보이는구나’ 하고 다름을 認定하기 때문에 서로간에 다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主觀을 客觀化시킨 사람은 ‘내 눈엔 빨갛게 보인다’가 아니라 ‘世上이 빨갛다’고 生覺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世上은 파랗다’고 하면 ‘눈이 삐었나? 어떻게 世上이 파랗게 보이냐?’ 이렇게

나오는 겁니다. 내가 옳다고 固執하는 게 아니라 내가 옳기 때문에 옳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네가 옳다는 네 生覺을 내려놓아라.”고 말하면 겉으로는 마지못해 “예, 제가 잘못했습니다. 참회

합니다.”라고 말은 하면서도 뒤돌아 서서는 ‘아니야, 그래도 내가 옳아. 고집하는 게 아니라 내가

옳은 거야.’라고 하지요.
 

固執 센 사람한테 물어보세요. 자기가 고집이 세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제가 고집이

좀 셉니까?”라고 되묻는 그 사람은 그래도 고집이 좀 덜 센 사람입니다. 그런데 “고집은 무슨 고집”

하는 사람을 보면 그런 사람들은 대개가 황소고집입니다. 그래서 황소고집을 부리는 사람은 자기가

고집이 센 줄을 모릅니다. 사실은 자기가 고집이 센줄 몰라야 황소고집이 되지 자기가 고집이 센줄

알면 황소고집이 될 수가 없어요.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다가도 ‘어, 내가 고집을 피우는구나.’ 라는

生覺이 들면 그 순간 고집을 내려놓게 됩니다.


술 취한 사람한테 물어봐도 자기가 술 취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내가 술은 왜 취해. 정신이 말짱하단 말이야.” 하며 몸을 비틀거리면서 혀 꼬이는 소리를 하지요.

오히려 “내가 좀 취했나?”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직 정신이 좀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 중에 누가 더 고집이 더 셀까요?  대체적으로 여자가 고집이 더 셉니다. 남자는

목소리만 크지 별로 고집은 세지 않아요. 그런데 여자는 자기가 옳다는 주장을 강하게 하다가 남자

가 강압적으로 큰소리를 치면 ‘그래, 네가 옳다고 해라.’ 하면서 마음 속으로는 ‘미친 놈이네’ 하면서

아예 相對를 안해 버립니다. ‘아이고, 모르면서 잘난 척 하기는 내가 너 같은 인간이랑 말도 안 한다.’

하고는 다음 날부터 입을 꽉 다물어 버리지요. 그러면 남자들은 여자가 진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입

니다. 사실은 ‘너는 상대할 가치도 없는 인간이다.’라고 마음의 門을 닫아 버린 거예요. 이게 황소고

집 입니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가 잔소리 할 때도 화가 나지만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더 화가 나는

겁니다.

 

또 고집은 나쁜 사람보다 착한 사람이 더 셉니다. 착한 게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자기가 좀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착한 사람은 항상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 生覺을 내려놓기 어렵습니다. 주위사람들이 항상 착하다고 認定을 하기 때문에 자기의

그릇됨을 감히 想像조차 할 수가 없는 거지요.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옳다는 生覺이 강해서 고집을

부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자신이 일으킨 生覺에 스스로 집착하고 사로잡혀 옳다 그르다 라는 分別하는 生覺

마음으로 이 世上 이 모든 것들을 이미 모양 짓고 그 모양에 執着하고 사로잡혀서 虛妄된實體도 없는

온갖 괴로움과 속박을 스스로 만들어 그 속박과 괴로움에 스스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겁니다. ‘내가

보기에’가 아니고 이 世上을 이미 客觀化시켜 자기가 이미 眞理와 眞理 아닌 것을 딱 定해 버린겁니다.

이때 한 生覺 돌이켜서 客觀化 시킨 이 世上에 대한 執着과 사로잡힘에서 벗어나면 般若心經에 있는

말대로 ‘遠離顚倒夢想’ 하면 모든 괴로움과 얽매임은 즉시 사라지고 究境涅槃  즉, 完全한 幸福(열반)

과 完全한 自由(해탈)에 도달하는 것 입니다.

 

괴로움과 속박도 모두 다 내 마음이 스스로 만들어낸 實體가 없는 虛妄한 굴레입니다. 자승자박,

自業自得, 自作自受, 因果應報 입니다. 이 굴레를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괴로움과 속박이라는 問題의

原因이 내 마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안에 있고 그 마음과  그 괴로움 그  속박  또한 고정

불변하는 독립된 實體가 없는 텅~빈 空한 것 卽, 끊임없이 波動하는 에너지정보체, 思念體, 念力體에

불과할 뿐임을 즉각 알아차리는 것 뿐입니다. 이것이 生과 死의 輪廻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 입니다.

 

이 점을 銘心하시고 精進하여 安心立命의 道理  즉, 完全한 幸福(열반)과 完全한 自由(해탈)을

누리는 삶, 인생, 세상, 현실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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