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가족끼리 대화를 나누라

장백산-1 2016. 1. 20. 00:39

가족끼리 대화를 나누라  / 법정 스님    

'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란 말이 있다. 가정이 和睦하면 모든 일이 다 잘 되어간다는 뜻이다.
행복한 가정은 가족들 서로가 닮아 있지만,  불행한 가정은 그 구성원들 각자가 따로따로 논다.

 

흔히들 말하기를, 집은 있어도 가정은 없다고 한다. 家庭의 本質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식들 사이에 이해와 사랑으로 엮인 永遠한 共同體다. 이 공동체라는 의식이 소멸되면 썰렁한

집만 휑뎅그렁하게 서 있게 마련이다. 그것런 집은 마치 魂이 나가버린 肉身과 같다.

 

오늘날 청소년들의 비행이 사회 문제로 대두하게 된 근원을 추적해 보면 집만 남은 가정의 부재에

까닭이 있을 것 같다.  공동체 구성들 간의 이해와 사랑이 있는 따뜻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에게는

비행이나 탈선에 물들 위험이 적다.

 

 

가정이란 어떤 곳인가, 그곳은 우리가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곳, 우리가 없으면 우리를 기다리며
그리워하는 곳, 우리가 죽으면 통곡하는 곳, 우리가 우리 자신이 될 수 있고, 남에게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아늑하고 따뜻한 보금자리다. 이런 아늑하고 따뜻한 보금자리가 産業化와

都市化로 인해서 크게 위협받고 있는 가정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일찍이 農耕社會에서는 이런 위협이 적었는데, 일터가 집안이나 농경지가 아닌 산업사회의 냉혹한

기계로 옮겨지면서 가정 파괴의 그 위협이 가속화되었다. 가정의 구성원인 가족들 즉, 아버지와 어

머니와 아들, 딸 혹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형제자매들끼리 마주앉아 차분히 속마음을 열어

놓고 對話를 할 機會가 별로 없다.  

 

부모 자식 사이에도'~해라, ~하지 말라' '~해 달라, 싫다' 등 일방적인 명령이나 요구 불만의 표시만

있지, 거기에 이해와 사랑으로 주고받는 대화가 없기 때문에 딱딱하고 무표정한 집만 휑그러니 버티

고 있을 뿐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이 어떻게 이런 재미없는 집에 머무르려고 할 것인가.
자연히 집 밖으로 나돌 수밖에, 밖에 나가 유유상종, 같은 무리들끼리 어울리다 보면 해서는 안 될

일에도 빠져들기 십상이다. 오늘날의 가정은 한낱 숙박업소로 바뀌어 간다. 가저의 구성원들 각자

하는 일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기회가 별로 없다.  
식사시간도 각각이고 밖에서 돌아오면 저마다 자기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나 TV 아니면 전화에

매달려 지낸다.

 

 

解體되어 가는 가정에 活氣를 되찾게 하려면 어머니나 아버지 쪽에서 意識的으로 對話의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사랑스런 자식을 올바로 기르려면 먼저 사랑스런 부모가 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부부끼리 혹은 집안 식구들 사이에 대화를 이루려면 서로 간에 基本的인 原則들이 지켜져야 한다.

 

첫째, 대화할 때 중요한 것은 내가 말하는 것보다 相對方에게 말할 機會를 주어 그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일이다. 아내가 어린 자식들이라 할지라도 對等한 人格體로서 그들을 대해야만 온전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일방적인 훈계나 타이름은 결코 대화가 아니다.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며 바라고 있는지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무엇을 말하는가가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말하

가이다.

 

둘째, 대화를 할 때는 우리가 미리 짐작하고 있는 상대방에 대한 先入見을 버려야 한다.  한집안에서

살아온 가족들이므로 오래전부터 가까이서 지켜보아 온 觀念 때문에 그들의 새로워진 面을 찾아보

려고 노력 하지 않는다. 어른들은 歲月의 무게에 짓눌려 生覺이나 몸이 굳어 있지만, 아이들은 꽃처럼

날마다 새롭게 피어나고 있기 때문에 낡은 잣대로 그들을 재려고 해서는 그들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

할 수 없다. 靈魂에는 나이가 없기 때문에 나이가 어리다고 지례짐작으로 단정하지 말아야 한다.
더 따질 것도 없이, 우리 자신들이 어렸을 때, 固定觀念에 사로잡힌 완고한 부모님들과 허심탄회한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었던 일을 되돌아보라. 대화에는 서로 간에 눈높이를 맞추도록 해야 한다.

 

 

셋째, 대화할 때 상대방의 生覺을 바꾸려고 애쓰지 말고 논쟁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방을 설득하려

애를 쓰거나 이기려고 애를 쓰는 것은 대화의 기술이 아니다. 우리가 대화의 기회를 갖는 것은 우리

마음과 느낌을 서로 간에 나누기 위해서다. 마음과 느낌을 나눔으로써 이해의 길이 열리고 풍요로워

진다. 대화에는 이기거나 지는 일이 있을 수 없다. 우리의 느낌을 상대방에게 드러내고 상대방의 느낌

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하다. 우리는 자신의 느낌이 받아들여질 때 바로 자기 자신이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자신의 느낌이 거절당할 때는 자기 자신이 거절당하고 있다고 느낀다,  
이와 같은 서로 간에 느낌을 통해 사람의 사이가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가정에서는 儒敎的인 근엄함 때문인지 칭찬과 격려의 말이 적다. 자식이나

아내를 자랑하면 그것을 못나고 어리석은 팔불출로 몰아붙였다. 우리 어린 시절을 되돌아 보아도
꾸중과 야단을 맞았던 기억만 남아 있지, 칭찬과 격려의 말을 들었던 기억은 별로 없다.  가족과

친지들에게서 듣는 칭찬과 격려의 말은 우리 삶을 풍성하게 이루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이 칭찬과 격려가 우리에게 自信感과 勇氣를 갖게 한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하는 것은, 지속적으로 무엇인가를 얻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누군가에게 시간과 친절과 관심을 기울일 때, 또는 집안 식구들과 우리 자신을 나눌 때, 그것은

결코 그날 하루 일어났다가 곧 잊혀지고 말 일이 아니다. 이 기울임과 나눔은 평생을 두고 아름다운

記憶으로 남아 우리 생명 속에서 살아 숨 쉰다.  

 

오늘의 體驗은 내일의 記憶이 된다. 부부간이건 부모 자식 간이건 가족 상호 간의 관계가 이해와

사랑에 바탕을 둔 관계일 때, 그 가족이 이해와 사랑을 삶의 원리로 택했을 때,  이 이해와 사랑의

기운은  그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이웃 세상에 널리 퍼져 나간다. 이것이 사랑의 메아리다.

 

가족 구성원 끼리 대화를 나누라. 이해와 사랑으로 열린 대화를 나눔으로써 차디차고 무표정한

집을 맑고 향기로운 가정으로 바꾸어야 한다.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중에서-
 
-산방한담(山房閑談) 월간 맑고 향기롭게 2014년 0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