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내 마음의 그림자다
언젠가 나이가 좀 들어서 군에 온 장병과 상담을 했었는데요, 이 장병은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있었고,
그녀와 결혼까지 약속을 한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부모님이 둘 사이의 사주팔자를 보고 오시
더니 결혼을 말린다는 거였어요. 두 사람이 아주 좋지 않은 사주를 가지고 있으니 결혼하면 안 된다고
했다는 거지요. 이 친구는 너무나도 그녀를 사랑하는데, 결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것이었지요.
저는 사실 조금 신기했던 것이, 결혼이라는 중대사를 앞두고, 또 서로 그토록 사랑하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사주팔자라는 그 결과만을 가지고 결혼을 안 할 생각까지 했다는 그 것만으로도 이해가
잘 되지 않데요.
백번 양보해서, 만약에 사주가 정말로 서로 잘 안 맞고, 좋지 않다고 할지라도 그렇다고 결혼을 안
하거나, 사랑을 포기한다면 그건 진짜 사랑이 아니겠지요. 결혼을 해서 잘 안 맞고, 시련이 닥쳐온
다고 한다면, 바로 그 시련을 통해, 그 힘겨운 결혼생활을 통해 인생을 배우고 깨달으며, 자신들의
業障을 消滅해 가기 위한 절호의 기회이고 깨달음의 기회가 온 것입니다. 結婚을 통해 괴로운 일이
올거면, 結婚을 피해간다고 할지라도 또 다른 방식으로 그 고통스런 업장은 오게 마련입니다. 業障
그것은 결혼의 문제가 아니라 自己 內面의 問題기 때문에, 그것을 풀기 전까지는 나타날 수밖에 없
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뿐만이 아니더라도, 저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점집에 가거나 용하다는 곳을 찾아다니며
사주를 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라곤 합니다.
석가모니부처께서는 분명하게 점을 보거나, 사주팔자를 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만약에 우리 삶이
미리 定해진 四柱八字가 있어서 그대로만 흘러간다면 사주를 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 삶은
業 卽, 四柱八字대로만 흘러가지 않습니다. 삶은 매순간순간 크게 바뀌고 變하지요. 절에 다니면서
마음공부를 하거나, 福德을 짓거나 하는 분이라면 더욱 놀랍게 삶의 行路는 매순간 變化되는 中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일년 뒤 運命이 오늘 하루 어떤 일을 했느냐에 따라서 확확 바뀔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보통 점을 보고 나면 그 점괘의 結果에 마음이 휘둘리게 됩니다. 점 결과에 휘둘리
면서 그것을 믿게 돼요. 좋은 거든 나쁜 거든 믿게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뭐냐 하면, 믿게 되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냐 하면 내 안에 있는 無限한 可能性을 축소시키게 됩니다.
여러분 앞에, 여러분의 내일에 아니면 한 달 뒤, 두 달 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압니까? 모릅니까?
그 누구도 여러분의 잎 날을 알 수 없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도 알 수 없어요. 신도 하나님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어찌 점쟁이가 어찌 여러분의 앞날을 알 수 있겠습니까. 왜 알 수 없을까요?
지금 여기 이 순간 텅~빈 바탕 이 자리에서 내가 마음을 어떻게 쓸지는, 自由意志 즉, 내 意志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즉, 어떠 마음도 미리 定해진 意圖가 없다는 소리에요.
自由意志, 마음, 意圖, 意識이 미리 定해진 게 있다고 하면 그건 佛敎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未來에는 無限大의 可能性이 놓여 있는데, 점을 딱 보게 되면 ‘아, 그렇게 된다고 했지’ 그 결과를 마음
속에서 그렇다고 딱 定해버립니다. 점괘를 믿어 버려요. 그러면 內面의 나의 無限한 可能性이 점괘처럼
축소, 제한되는 겁니다. 내 인생, 삶, 세상, 현실에 이제 그 점의 결과가 펼쳐질 확률이 점점 높아져요.
그래서 사실 점을 보러 다닌다는 것은 내 삶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이 내 안에 있지 않고 내 바깥에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즉, 스스로의 無限한 能力의 힘을 弱化시키는거에요. 그래서 이런 사람은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스스로 決定짓지 못하고 점쟁이를 찾아다니며 自己 代身 자신의 삶을 結定
해 주기를 바랍니다. 내면의 無限한 能力, 可能性의 힘을 자신이 아닌 外部로 넘겨버리는 것이지요.
점보러 갈까 고민 중이신가요? 가지 마세요.
사실 이 세상 이 모든 것들 우리들은 이미 언제나 完全하고 완벽한 삶을 꾸려 왔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살아온 그 모든 삶, 세상이 본래부터 이미 完全하고도 완벽합니다. 즉, 宇宙法界 宇宙森羅
萬相萬物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언제나 眞理로써 흐르고 있습니다.
本來 이미 完全하고 완벽한 이 세상 이 모든 것들 중에서 A라는 것을 선택해도 좋고 B라는 것을
선택해도 좋습니다. 아무런 문제가 문제가 없습니다. 만약 도저히 스스로 A나 B 중에서 선택을
못 하겠다면, 점쟁이를 찾아갈 것이 아니라, 마음을 텅~비우고 祈禱를 하거나, 冥想을 해 보세요.
마음 속에 오히려 고요하고 텅~빈 空間을 만들어 두게 된다면, 그텅~빈 그 空間에서 無限한 權能
과 智慧가 샘솟아 나오게 됩니다. 生覺, 判斷, 計算을 해서 A나 B 중에서 어느 한 쪽을 선택하기
보다, 오히려 내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깊은 內面을 들여다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속
깊은 내면, 참나, 본성이 시키는 대로 저질러 선택하면 됩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결정이 틀렸으면 어떡합니까.”라고 묻는 사람이 계실 겁니다. 만약에 그 결정이
틀렸다면 그것을 결정해 가지고 한동안 우왕좌왕하면서, 왔다 갔다 하면서 가슴 아파 보기도 하고
失敗도 해 보면서 그러다 다시 제자리를 잡아가도 됩니다. 그것은 失敗도 아니고, 늦는 것도 아닙
니다. 자기 자신에게 실패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 보고, 막막해서 오락가락 하며 고민할 수 있는
기회을 주어 보는 것입니다. 그러한 빗나가는 듯해 보이는, 돌아가는 것 같아 보이는 그 결정과 경험
속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삶의 공부, 깨달음을 배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대학에 갈 때 재수나 삼수를 했다면 그것은 失敗가 아닙니다. 재수를 하면서 뭔가
내 삶에서 배우고 깨닫고 느끼는 뭔가가 나에게는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에 재수를 했던 것이지요.
그 어떤 결정을 했다 할지라도, 그 결과에 대해 겁내거나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세상 그
어떤 것이든 스스로 책임지고 결정하고 받아들이겠다는 넓게 열린 마음만 있다면 우리의 삶에는
失敗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정말 뭘 원하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하더라도 괜찮습니다. 그저
자기 자신을 信賴하고, 믿고 맡긴 채, 스스로 결정하고 밀고 나가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나의 內面에 있는 根源的인 本性을 굳게 믿고 살아 나아가는 삶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 스스로
나 자신을 신뢰하고, 내 內面의 無限한 智慧와 能力, 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 主人이 되라고
하는 공부가 불교의 마음공부입니다. 客이 되는 공부이거나, 남들에게 떠넘기는 공부가 아니고,
自己 안에 이미 完全하게 자리한 自己 眞理를 깨우치는 것이 불교의 마음공부 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어떤 절에서 四柱八字를 봐준다고 한다면, 그런 절은 갈 필요가 없다고 말씀드릴 수 있
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 가르침과 다른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린다면 自身의 人生에 그 어떤 逆境이나 苦難이 닥쳐온다고 할지라도
그 고난과 역경을 받아들임으로써 그것을 통해 내 靈魂이 成長해 나가겠다고 선언을 해 보십시오.
그렇게 된다면, 그 어떤 業障이든, 運命이든지 다 받아들일 수 있고, 점집이나 사주를 보러 다니는
일도 그만두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삶은 자기 자신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자기의 삶에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고, 져야 하는
것이지, 他人에게 내 삶을 물어보거나, 점을 볼 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신의 마음의 힘을
약화시키는 허망한 짓이고, 마음이 점괘에 휘둘리는 결과를 가져올 뿐입니다. 자신의 깊은 내면에
있는 無限한 可能性, 無限한 能力을 四柱나 점의 結果로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뿐입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당당하게 자신의 주인으로 사는 삶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법상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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