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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을 대하는 지혜로운 마음자세

장백산-1 2016. 1. 28. 23:28

병을 대하는 지혜로운 마음자세




 

佛法을 깨닫는다는 말은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있는 그대로를 무엇이라고 特定해서 特定한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모양도 없고, 성질도 없고, 흔적도 없고, 아무 느낌도 없고, 동서남북

상하사방이라는 방위도 없고,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이 순간 텅~빈 바탕 이 자리 ‘이것’을

깨우쳐서 깨닫는 의미이다. 바로 눈앞 지금 여기 이 순간 텅~빈 바탕 이 자리 ‘이것’에 마지못해

 이름을 지어 붙인 것이 佛性, 本來面目, 참나, 본래마음, 眞理, 法, 道 등의 다양한 이름들이다.


그런데 이것 卽, 眞理는 어느 때 어디에도 감춰져 있지 않다. 지금 여기 이 순간 텅~빈 바탕 이

자리에 이렇게 온전히 완전하게 드러나 있다. 지금 여기 이 순간 텅~빈 바탕 이 자리에 있는 이

대로의 現實, 世上, 삶이 바로 참다운 모습의 實相이고 眞實이고 眞理다. 당신의 몸이 아프든,

사업이 망했든, 우울하든, 괴롭든 아무런 상관없이, 지금 여기 이 순간 텅~빈 바탕 이 자리에

있는 이대로의 現實, 세상, 삶이 바로 완전하고 온전한 삶, 세상, 현실의 眞實이며 眞理인 것이다.


이를 승조스님은 촉사이진(觸事而眞)이라고 하여 부딪치는 것마다 모두가 다 眞理라고 했고,

도오스님은 촉목보리(觸目菩提)라고 하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깨달음 아닌 것이 없다

했다. 마조스님은 입처즉진(立處卽眞), 임제스님은 입처개진(立處皆眞)이라고 하여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처해 있는 그 자리가 바로 모두 眞理라고 했다.


그런데 이런 가르침 처럼 지금 여기 이 순간 텅~빈 바탕 이 자리에 있는 이대로가 있는 그대로

바로 眞理라면 왜 내 人生, 삶, 현실, 세상은 괴로운 것일까? 왜 나에게는 眞理가 안 보이고 아픔

만이 있는 것일까? 그 理由는 바로 이 세상 이 모든 것들을 상대로 벌이는 分別하는 生覺, 妄想,

觀念, 槪念인 분별심(分別心), 分別意識 때문이다. 分別心이란 지금 여기 이 순간 텅~빈 바탕 이

자리에 있는 이대로의 眞理를 있는 그대로의 眞理 自體로 바라보지 않고, 自己가 지어논 分別심

의 틀에 맞춰서 지금 여기 이 순간 텅~빈 바탕 이 자리에 있는 이대로의 眞理 즉, 이 세상 이 모든

것들을 分別心인 固定觀念대로 是非 分別 比較 判斷 解釋해서 좋다거나 나쁘다는 등의 二分法的

으로 眞理를 分離하는 生覺 마음 의식 개념 관념을 뜻한다.


예를 들어 보자. 몸이 좀 아프다. 지금 여기 이 순간 텅~빈 바탕 이 자리에 있는 그대로의 眞理는

그저 그냥 몸이 아프다는 事實뿐이다. 지금 여기서 몸이 앞다는 이 사실은 아무 문제가 없다. 몸

아픈 것은 어디까지나 中立的인 事件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 마음 의식, 분별심, 분별

의식은 지금 여기에서 몸이 아프다는 있는 그대로의 眞理, 現實을 상대로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을 하기 始作한다. 아파서 괴롭다거나, 아프니까 힘들다거나, 남들은 안 아픈데 왜 나만 아픈

것이냐 거나, 옛날에는 안 아팠는데 지금은 아프다거나 하면서 계속해서 지금 여기 이 순간 텅~빈

바탕 이 자리에 있는 이대로의 中立的인 現象, 眞理 즉, 몸이 아픈것을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

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眞理 즉, 다만 ‘아픈’ 現實이 ‘問題가 되는 狀況’

으로 바뀌게 된다.


어쩌면 담배와 술을 매일 먹고 운동도 안 하던 사람이 암 진단을 받고 수술해서 나았고 그 結果

앞으로는 운동도 열심히 하고 담배도 술도 끊으면서 健康한 삶을 살게 되었다면 암 진단이라는

現實은 그 사람을 괴롭힌 것이라기 보다는 도와준 것일 수도 있다. 이처럼 모든 病은 그 病이 나

에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를 알 수 없다. 病 그것 自體는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될 수 없는

그냥 그저 지금 여기 텅~빈 바탕 이 자리에 있는 그대로의 中立的 眞實일 뿐이다.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病 즉, 眞理를 相對로 어떤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을 하지 않은 채 그저 그냥 지금 여

기 있는 그대로의 眞理 즉, 病을 經驗하기만 할 수 있게 된다면 그 病  卽, 眞理는 더 以上 나를

괴롭힐 수가 없을 것이다.


‘자연치유’라는 책에서도 똑같은 藥을 처방해도 사람마다 치유의 효과가 다르게 나타나는데 그런

차이가 나는 가장 큰 理由는 사람 各各의 마음이 病을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 하는 마음 따라서

決定的으로 차이가 난다고  한다. 病을 怨望하고 拒否하면서 病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보다는

病이 왔음을 認定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더욱 빠른 병의 치유를 보인다는 것이다.


심지어 時限附 人生 선고를 받은 사람들의 경우, 대부분 처음에는 否定하고 憤怒하고 우울해 하는

段階를 밟아가지만 結局에는 스스로 죽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受容의 段階를 겪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바로 이 受容과 받아들임의 단계에 이른 이들은 그 瞬間 至高의 平和와 놀라운 고요함을 경

험게 된다고 한다. 지금 여기 이 순간 텅~빈 바탕 이 자리에 있는 이대로의 이 세상 이 모든 것들 즉,

眞理를 相對해서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있는 그대로 受容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은 바로 이처럼 삶과 죽음 조차도 뛰어넘을 수 있는 智慧와 平和를 누리게 해 준다.


만약 당신이 病에 걸렸을지라도 그 病과 상관없이 지금 여기 이순간 텅~빈 바탕 이 자리에 있는

당신은 있는 그대로 本來 이미 完全한 眞理다. 病은 우리의 意識을 깨우치게 하기 위한 꿈과 같은

세상, 삶의 연극 시나리오 스토리에 불과할 뿐 固定된 實體가 있는 진짜가 아니다. 病을 상대로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하지 않고 병을 있는 그대로 완전하게 받아들이면, 우리는 病으로 인해

괴로운 마음 그 마음 깊은 배경에 있는, 있는 그대로의 참된 眞理 즉, 지금 여기 이 순간 텅~빈

바탕 이 자리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病이 내게 찾아왔다는 現實, 진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 病이라는 現實은 事實은 삶의 眞實

이다. 眞理로써의 病이 나를 찾아 온 것이다. 問題로써 病이 온 것이 아니라 答으로 病이 왔다. 病

이라는 現實, 眞理를 시비 분별 비교 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를 허락해주라. 가슴을 열고 환영해

주라. 그리고 그  病을 사랑하라.


病은 나의 마음과 分離되어 따로 동떨어진 둘이 아니다. 그래서 病을 미워하면 病은 사라지지 않

는다. 내 마음과 病이 둘이 아닌 하나임을 깨닫고 病을 사랑해주며 認定, 許容해줄 때 病은 自然

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마음에서 病을 問題視하지 않게 되면, 病도 더 이상 내 마음에 問題를 안

겨주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病에 대한 단순한 마음 자세의 變化이지만, 그런 마음 자세의 變化는

마음 속 깊은 곳 根源에서는 病을 치유하는 核心的인 마음공부가 될 것이며 또한 藥師如來의 따뜻

한 손길이 될 것이다.


-법상스님, 동국의료원보, [동행] '15년 겨울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