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세가지 마음의 의미?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불교의 대표적 가르침이자, 華嚴經의 핵심적인 가르침은 ‘一切唯心造’이다.
오늘은 一切唯心造의 세 가지 意味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一切唯心造에서 ‘一切’는 무엇인가?
一切는 말 그대로 一切, 모든 것, 우주삼라만상만물, 이 세상 모든 것이다.
첫 번째 一切唯心造라는 말의 뜻은 마음(心)이 일체, 우주삼라만상, 우리가 살고 있는 이 世上 모든 것,
現象世界를 창조한다는 의미다. 여기서의 이 마음은 자기계발서, 시크릿, ‘마음 나는대로 이루어진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등의 유행했던 책들에서 바로 이 첫 번째 一切唯心造서의 마음(心)의
權能을 설명하는 대표적이고 일상생활에서 인간이 사용하는 마음이다.
卽, 인간의 느낌 감정, 생각 상상 이미지, 의지 의도 충동 욕망 욕구, 분별하는 마음 분별의식이 現實
世上를 창조하는 창조주이다. 그런데 重要한 事實은 이 現象世界는 固定된 實體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법계의 因緣에 따라서 잠시 왔다가 머물다 사라지는 因緣假合의 存在 즉, 잠시 因과 緣의 임시적인
만남에 의한 그림자, 꿈, 신기루, 幻影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이 現象世界는 텅~비어 空해서 非實體的인
것이다. 그렇기에 現實世界는 끊임없이 變化하기 때문에 無常하며 고정된 실체가 없는 비실체적인 것
이기 때문에 無我인 것이다. 꿈, 신기루, 허깨비, 물거품, 그림자, 번개와 같은 것일 뿐이다.
두 번째 一切唯心造의 의미는 깨닫겠다는 마음을 일으킴(發心함)으로써 出世間의 세계, 즉 眞理의 世界
에 대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물론 禪불교에서 말하는 本來面目, 佛性이라고 말하는 참
性稟, 인간 마음의 본래 성품, 本性은 어느 누가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고, 창조하는 것도 아니다. 참 성품,
본래마음, 분별하는 마음의 본래 성품, 본성은 본래 이미 완전하게 이루어져 있다. 다만 人間의 意識은
虛妄한 妄想 分別心으로 因해서 본래 이미 완전한 이 참 성품, 본성, 불성, 진리의 성품을 보지 못하고,
제 分別心 妄想 生覺 煩惱 스스로 虛妄하게 창조해 낸 꿈과 같은 가짜의 現實世上만을 分別하고 認識
해서 보는 것일 뿐이다.
佛法을 공부하는 이유가 바로 그렇게 허망하게 分別妄想이라는 분별심, 色眼鏡을 쓰고 가짜의 現實
世上만을 바라보는 衆生界의 왜곡되고 전도된 現實世上을 되돌려서 分別妄想이라는 색안경 없이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現實世上의 眞實, 實相, 참 모습을 보는데 있는 것이다. 사실 분별망상이
라는 색안경을 쓰지 않고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세상의 진실, 실상을 볼 수 있는 깨달음, 지혜를
터득하는 特別하게 定해진 방법은 따로 없다. 이미 山 頂上에 到着해 있는 사람에게 산 정상에 도
착 할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따로 필요 없듯이, 깨달음 지혜는 본래 이미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에 완전하게 완성되어 있고 이 세상 모든 것, 우주만물은 이 깨달음,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있기 때문에 또 다시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다른 방법이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다만 方便으로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한 方法을 말한다면 그 방편은 一切唯心造라는 방법밖에 없는 것이다.
分別妄想이라는 허망한 색안경을 버리고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세상의 진실, 실상과 마주하려고
하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세상의 참된 진실 세계를 보겠노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바로 이 간절한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 이 간절한 마음이 바로 一切唯心造
의 두 번째 의미다.
왜냐하면 깨달음이라는 의식의 세계도 結局에는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佛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發心이고, 發菩提心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스스로 이 세상 모든 것, 우주만물을 이루
고 있는 本性에 契合하고야 말겠노라는 간절한 發心, 發願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全部다. 그렇기에 간
절한 發心, 發菩提心을 길 없는 길이라고 말한다. 간절한 發心, 발보리심이야말로 참된 修行인 것이다.
간절한 發心과 간절한 믿음, 이 두 가지 마음이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세상의 진실, 참 모습을 볼 수
있는 깨달음을 可能하게 한다.
大發心과 大信心을 내어 깨달음을 얻고자 하지만 도무지 本性을 밝힐 방법도 없고, 알 수도 없다보니
그저 답답하고 궁금하고 오리무중일 뿐이다. 오로지 本性을 알고자 하는 疑心만이 있을 뿐, 다른 방법
은 전혀 없다. 이것이 바로 大疑心이며, 話頭고, 疑情이다. 이처럼 大疑心, 大發心, 大信心이라는 세가지
마음이 곧 깨달음을 可能케하는 모든 방법이다. 大發心, 大疑心, 大信心이 한 마디로 ‘마음(心)’ 아닌가.
바로 이처럼 大發心 大疑心 大信心의 마음이 깨달음을 가능케한다. 現實世上에서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意圖도 그런 마음을 낼 때만이 可能해지고, 出世間의 참 모습, 본성, 참된 진실의 세계, 깨달음에 이르고
말겠다는 意志도 그런 마음을 낼 때만이 可能해지는 것이다.
세 번째로 根源的인 次元에서의 一切唯心造의 마음의 의미가 있다. 이 根源 次元에서의 마음은 우리가
보통 알고 살아가면서 항상 쓰고 있는 衆生心, 分別心, 分別意識이라는 마음이 아니라, 본바탕, 한마음,
본마음, 진심, 본래면목, 본성, 불성을 의미한다. 本來面目이라는 이 본바탕 본래마음자리에서 이 세상
모든 것, 우주삼라만상만물이 생겨나왔다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을 드러내는 배경인 그 한바탕 본
바탕이 바로 이 한마음, 진심, 본심이라고 지칭하는 것이며, 法이고, 自性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우주만물을 이 세상으로 드러내는 본바탕인 한마음, 본성, 본래마음이 없이는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이
루어질 수가 없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생겨나온 根源的인 바탕, 본질적인 배경이 바로 이 한마음이라는
본성, 불성, 자성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법상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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