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과 깨달음의 비유
불교를 깨달음의 종교라고 한다. 그러나 정작 깨달음이 무엇인지 터득하고 나면, 어리석음과 깨달음의
경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저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는 이대로의 현실, 세상, 삶
이 대로 진실된 실상이지,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는 이대로가 아닌 저 멀리 어디에 더 성스럽
거나 더 위대한 그 어떤 별도의 깨달음의 세계는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반야심경에서 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고 , 色이 있는 그대로 空이고 공이 있는 그대로 색이라고,
색의 세계 공의 세계가 따로 따로 있는 세상이 아님을 말하고, 無智亦無得이라고 하여 智慧도 없고 터득
할 깨달음도 없다고 설하고 있다. 또한 以無所得故라고 하여 얻을 법이 없다고 설한다.
예를 들어 보자. 우리가 건강할 때는 그저 하루 하루를 멀쩡하게 그냥 살면 되는 것이지, 건강한 사람들은
매일 아침 일어나 건강한 자신을 보면서 신기해하고, 기뻐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하루 하루를 건강한 몸
을 가지고 그저 살 뿐이다. 이처럼 건강할 때는 건강이라는 상이 없다. 그러나 몸이 아픈 사람에게는 건강
이라는 감사하고도 놀라운 경계가 따로 있다고 여겨져 건강을 찾는다.
말기 암환자라고 해 보자. 그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 너무나도 부러울 것이다. 자신도 건강해 질 수만 있으
면 무엇이든 다 하려고 할 것이다. 눈에 실명이 온 사람의 경우라면, 두 눈이 멀쩡한 사람이 얼마나 선망의
대상일까. 이처럼 아픔이 찾아오면 그 때 아픔이 없는 건강을 찾는다. 즉, 아플 때, 문제가 생겼을 때는 병
의 경계와 건강이라는 경계가 따로 따로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불교도 이와 같다. 불교에서의 깨달음은 곧 건강한 상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깨달은
자는 이미 건강하기 때문에, 따로 건강한 상태, 깨달음의 상태라고 할 만한 무언가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저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그저 하루 하루를 건강하게 살 뿐이다. 그러나 문제가 생긴 사람, 병이 생긴
사람에게는 건강이 지상 최대의 목표가 된다. 그래서 의사는 병이 생긴 사람에게 빨리 나을 수 있도록 ‘건강’
이라는 滅聖諦, 卽 병이 사라진 상태가 가능함을 보여준다. 그래서 아픈 사람은 건강이라는 멸성제를 만들어,
건강을 목표로 열심히 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즉 道聖諦를 실천하는 것이다.
깨달은 자에게는 병이 없으니, 즉 괴로움이 없으니, 苦聖諦가 없고, 병의 원인을 구하거나, 병이 없는 건강한
이상세계를 꿈꿀 것도 없고, 병을 치료하는 방법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즉 苦集滅道라는 사성제가 필요 없
는 것이다. 이것이 반야심경의 ‘무고집멸도’의 의미다. 병든 자에게는 병이 나은 상태가 놀라운 환희의 순간
일 것이다.
예를 들어 눈이 멀어 아무 것도 보지 못하던 사람이, 수술을 잘 마쳐서, 결국 멀쩡한 두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면 그는 엄청난 환희심을 느낄 것이다. 그것이 바로 見性이다. 자기 마음의 본래성품(본성
/불성)을 보는 순간,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에 환희심과 깨달음의 체험 같은 것이
찾아온다. 그러나 실명된 사람이 처음에는 환희심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현실이 너무 당연하게 느껴지듯, 見性 체험도 처음 잠깐의 환희심은 있겠지만, 견성도 결국에는 왔다
가 가는 하나의 경계일 뿐, 도리어 그 이후의 평범하고 당연하게 아무 문제 없이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진정한 깨달음의 삶이다.
깨달음을 어떤 특정한 경계라고 여기지 말라. 깨달음이라는 별따른 경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깨달음
을 깨달음 이전과 깨달음 이후의 다른 특별한 경계로 여긴다면, 그 깨달음도 깨달음 이전과 이후를 둘로
나누는 虛妄한 分別心일 뿐이다. 그래서 佛法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병이 있는 사람을 위한 치료약,
卽 應病與藥이라는 方便의 가르침만이 있을 뿐 별도의 불법, 진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병이 사라지면
저절로 병이 없는 건강함이 드러나 현실에서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일 뿐이다. 平常心이 곧 道인 것이다.
[불교방송 라디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07:52~08:00)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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