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단에 머물지 않는다
마음을 조복하는 자는 聲聞乘(성문승)이요, 마음을 조복하지 못하는 자는 凡夫라 합니다.
보살(菩薩)은 마음을 조복하는 데도 마음을 조복하지 못하는 데도 머물지도 않는다 합니다.
무언가를 극복한다, 극복하지 못한다 하는 이분법적인 생각은 모두 觀念이고 分別心입니다.
무엇이 어떠하다, 혹은 그렇지 않다가 모두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하는 생각 마음입니다.
보살은 이 시비하고 분별하는 생각 마음에 머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모든 면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 눈앞에 사물이 드러나 있기에 내가 사물을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해서 보고 있다고 분별하여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사물을
단정하여 안다고 하는 자는 사물의 이치에 어두운 衆生이고, 이 세상 모든 것들이 고정된
실체라고 할 게 없으니 나도 있는 것이 아니고 사물도 있는 것이 아니며 내가 사물을 보는 일
또한 없다고 여기는 자가 바로 어설프게 깨달은 聲聞乘입니다. 이런 견해는 양극단에 치우친
시비 분별하는 이분법적인 생각 마음입니다.
본다 안본다, 한다 안한다, 있다 없다, 사물이다 사물이 아니다, ..... 어리석었을 때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서로서로 따로따로 있다는 시비 분별하는 생각 마음에 치우쳤다가, 조금 깨닫고 나서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은 고정된 실체가 없는 것들이라는 역시 시비 분별하는 생각 마음에 치우칩니다.
깨달음이란 있고 없다, 좋다 싫다 는 등의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하는 이분법적인 생각 마음에
갇히는 의식의 어떤 상태가 아닙니다. 分明히 現象的으로는 지금 여기 있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차별되고 분별되어 이러저러한 것들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분별되고 차별되어 나타
나보이는 現象은 깨닫건 깨닫지 못하건 사라지는 것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공부를 조금 하고 나서 보니 지금 여기 있는 차별되고 분별된 그러저러한 것들이 실체가 없다,
그러니 이 세상 모든 것들이 텅~비어 아무것도 없다고 여기는 역시 시비 분별하는 생각 마음에 사로
잡히게 됩니다. 이것이 없음의 병이며, 이것이 아직 시비심 분별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마음
공부 상태입니다. 무엇이 이렇다 저렇다 어떻다는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하는 이분법적인 생각
마음 견해가 여전히 가슴속 깊은 무의식에 있는 것입니다.
있고 없음(有 無), 밝고 어두움(明 暗), 중생과 부처(衆生 佛), 無明 智慧등의 모든 시비 분별이 모두
이원적인 양극단(兩極端)의 시비 분별하는 생각 마음의 産物입니다. 양극단이란 바로 분별된 어떤
생각 마음을 말합니다. 깨달음이란 양극단에 머물지 않는 생각 마음입니다. 양극단에 머물지 않는
다고 얘기를 하면 또다시 양극단을 벗어난 특별한 다른 세계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分離 분별을 前提條件으로 하는 무의식적으로 시비 분별하는 생각 망상 번뇌 즉, 분별심 분별의식
의 전형적인 행태입니다.
무의식적 습관적으로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하는 생각 망상 번뇌 즉, 분별심 분별의식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의식 상태에서는 이러한 심리가 무의식적 자동적으로 發動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 것도 없이 텅~빈 본마음에 의지하는 시비 분별하는 생각 마음이나 아무런 소견이 없다면 이 세상
모든 것들로 드러나는 온갖 現象이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텅~비어서 이것이다 저것이다 라고 분별해
서 말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매번 실수하기 쉬운 것은 깨달음이란 양극단을 벗어난 의식 상태라는 말을 듣고 양극단을
벗어난 특별한 의식 상태를 목표로 읜위적으로 생각 마음을 조작하는 심리 행태입니다. 양극단을 벗어
나려는 의도적이고 인위적인 또 다른 이분법적인 시비 분별하는 생각 마음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말
입니다.
그러나 불이법은 그렇게 의도적 인위적인 시비 분별하는 생각 마음으로 얻어지는 이치가 아닙니다.
시비 분별하는 양극단에 머물지 않게 되는 智慧, 不二法은 인간의 인위적이고 의도적인 노력에 의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주삼라만상만물, 우리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本來부터 이미 완전하
게 양극단에 머물지 않는 智慧 즉, 不二法임을 깨닫는데서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의식이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상대로 무의식적으로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하는
어떠한 관념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 가치들, 오염된 생각들에서 깨어난다면 양극단에 머물지 않는
존재의 본질, 존재의 참모습이 본래부터 이미 지금 여기 이 자리에 도착해 있음을 밝게 보게 됩니다.
그러니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이 본마음에 의식을 연결하여 그 어떠한 시비분별, 가치 분별,
세상에 대한 분별, 법에 대한 분별도 모두가 다 착각임을 알아채서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생각 마음
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불이법 즉, 시비 분별하는 생각 마음에 머물지 않게 되는 智慧는 분명해집니다.
眞實은 本來부터 이미 如如해서 인위적으로 노력하는 시비 분별하는 생각 마음으로는 얻을 수 없지만,
時節 因緣이 도래하면 眞實, 眞理, 不二法, 無生法 卽,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
석하는 생각 마음, 분별심 분별의식에 머물지 않는 智慧는 자연스럽게 저절로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인간들이 경험하는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지금 여기 눈앞에 있는 그
대로 드러나 있지만, 그것들 또한 있는 그대로 진실, 진리, 불이법, 무생법 그 하나의 일이어서 있어도
있는 게 아닌 겁니다. 또한 없기만 한 것도 아닌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이기에 누가 때리면 아프고, 소
리 지르면 귀가 따갑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 겁니다.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펼쳐져서 드러나 있는 온갖 현상이 그 인연을 그대로 따르지만 본마음
에는 아무런 흔적도 자취도 내용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이 있는 가운데 일이 없는 참된 소식입
니다. 일이 없기를 바라지 마시고, 온갖 일을 하는 가운데서도 아무 일도 없는 것임이 당연해져야 합
니다.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스스로 그렇지 못하다면, 법이 그렇지 못한 것이 아니라 波動
하는 에너지정보체, 의식체인 나 스스로가 아직도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
하는 허망한 생각 망상 번뇌라는 분별심 분별의식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다는 증거입니다.
- 릴라 - 가져온 곳 : 카페 >무진장 - 행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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