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를 하는 근본 목적은?
우리가 法堂에 와서 부처의 가르침인 불교를 공부하고 불교라는 종교를 갖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불교의 근원적인 목적이 무엇일까? 혹은 모든 종교가 갖고 있는 종교의 근본 목적, 본질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佛敎의 根源的인 目的이 무엇이냐’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해탈(자유)와 열반(행복)을
추구하는 종교다. 그리고 ‘나만의 해탈과 열반뿐 아니라 무한한 우주 속에 존재하는 일체중생들 또한
해탈과 열반으로 이끄는 종교다.’라고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金剛經에서 수행자는 어떻게 마음에 머물러야 하고,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수보리가 석가모니
부처님께 여쭙니다. 부처님께 ‘어떻게 마음을 수행해야 하느냐,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느냐.’ 하고
묻는다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예상은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우리들에게 특정한 수행법을 알려주면서 ‘이렇게 수행해라.
저렇게 수행해라’라고 답을 할 것으로 일반적으로 알고 있었는데, 금강경에서 석가모니부처님은 이렇게
대답을 하십니다.
‘무한한 우주에 존재하는 일체 모든 중생들, 九類 衆生이라고 하는 일체 모든 것들을 완전한 열반으로
인도하여 완전히 멸도에 들게 하리라. 라고 하는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라고 말씀 한다 말이죠. 다시
말해서, ‘내가 어떻게 마음을 써야 하고 어떻게 수행을 해야 되느냐?’라는 질문에 ‘일체 중생을 열반
으로 이끌어야 한다.’라고 하는‘일체중생을 구제하겠다.’라고 하는 그 동체대비의 마음, 자비의 마음,
사랑의 마음을 내야 한다.라고 대답을 하고 계시다는 말이죠.
다시 말해서 불교의 근본적인 목적은 일반적으로는 깨달음에 있다. 라고 생각하기 쉽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언가요? 그 깨달음을 얻어서 무엇에 쓰려고 합니까.
깨달음을 얻어서 그것으로써 내가 돈 좀 벌어볼까, 명예를 앞세워 볼까, 내가 좀 큰 스님으로 대접받아
볼까? 깨달은 자로서의 어떤 큰 대접을 받아볼까. 라는 생각으로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겠습니까?
나 홀로 깨달음을 얻어서 나 혼자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겠다.라는 그런 마음으로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죠. 우리가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이유, 인류의 수많은 수행자, 스님들께서 깨달음
을 얻으려고 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깨달음을 얻었을 때 일체 중생들을 구제하기가 쉬워진다. 다시 말해
일체 중생들 많은 사람들을 행복으로 이끌고 평화로움으로 이끌고 자비로 이끄는 것이 훨씬 쉬워진다는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그런 목적에서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못되게 거꾸로 생각하면
안되는 겁니다. 불교는 그냥 깨달음을 얻으면 끝나는 종교구나. 깨달음만 얻으면 끝나는 거구나. 이렇게
됐을 때 우리의 智慧는 증장되기 쉽지만, 慈悲를 소홀히 하기 쉽게 됩니다.
물론 지혜와 자비는 둘이 아닙니다. 결국에는 하나로 만나는데, 그런데 너무 지혜 즉, 깨달음과 수행에
집착하고 매진해 있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자비와 사랑을 조금 소홀히 하기 쉬운 경향이 있다는 말이죠.
그런데 어찌되었든 간에 불교에서의 근본적인 목적, 우리가 절에 공부하러 다니는 근본적인 목적은,
내가 깨달아서 나 혼자 어떻게 잘 먹고 잘 살겠다. 불교의 가르침을 통해서 내 마음 좀 편안해 보겠다.
어떻게든 내 삶이 좀 아름다워져야 하지 않겠나.라는 이같은 목적으로만 절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次元의 목적은 불교를 공부함으로써 나의 행복과 자유도 행복과 자유이지만 더 나아가서 내 주변
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것들의 행복에 내가 도움을 주기 위해서 그래서 그 많은 사람들을 자비와
사랑으로 이끌어 주기 위한 목적, 그 목적으로 우리가 불교공부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사실을 분명하게 우리가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모든
목적이 자비와 사랑의 실천 거기에 있다면, 사실 내가 수행을 해 나가면서, 마음공부를 해 나아가면서
또 절에 다니면서 내가 어느 정도 마음공부가 되었느냐. 내가 어느 정도 영적으로 성숙되었느냐. 나의
삶에 어떤 진보가 있었느냐. 내가 조금 더 깨달음에 가까워 졌느냐. 이것을 살펴보려고 한다면, 어떻게
하면 되느냐. 그것은 내가 얼마만큼 자비로워지고 있느냐. 내가 절에 다니기 전보다 절에 다니면서 조금
더 자비로워 졌느냐. 무자비하고 악의에 찬 화와 증오에 물든 행동을 얼마만큼 줄여 나아가고 있느냐.
많은 사람들을 볼 때, 얼마만큼 더 사랑의 눈빛으로 보고 있느냐. 내 마음에 사랑이 가득 채워지고 있는지,
사랑과 자비로 넘쳐나고 있는지, 아니면 이것이 너무나도 부족한가. 이것을 이제 살펴보면, 내가 얼마만큼
수행이 되어가고 있고, 얼마만큼 삶을 바른 방향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판단해 볼 수 있는 매우 소중한
잣대가 된다는 겁니다.
-법상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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